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7】

여러분은 세부적인 문제를 제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진리 실행에 관련되고, 우리가 오늘 교통한 화제에 관련된 일도 다 좋고, 아니면 실행길을 찾는 문제나 실행 원칙의 문제를 제기해도 됩니다!

문제 (1) 늘 체면, 명예, 지위의 속박을 받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심판 형벌을 거쳐도 여전히 본성의 통제를 받고 얼마 진입하지 못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답: 늘 체면, 허영심, 지위의 속박을 받고 어떻게 벗어날지 모르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는데, 이와 같은 문제는 본성 안의 것입니다. 바로 사람 육체의 정욕과 같습니다. 그것을 단번에 파내려고 하고 내보내려고 하면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해낼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것을 근원으로부터 내보내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실행의 원칙을 어느 정도 잡고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것이 우리를 속박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고, 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세하게 교통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제가 말하는 이런 길만 듣고서는 소용이 없는데, 그러면 실행할 줄 모르게 됩니다. 구체적인 실행은 바로 ‘내가 왜 허영심, 지위, 체면의 속박을 받을까’라고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이 일부터 먼저 꿰뚫어 봐야 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지금 이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내놓고, 우리가 이 일을 판단하고 해부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을 투철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자신의 ‘병’이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왜 허영심, 지위, 체면의 속박을 받습니까? 사람이 사탄 독소의 독해를 받으면서 살고 있기에 이런 것들의 속박을 받는 것입니다. 사탄 철학에 어떤 말이 있습니까? “사람은 체면을 지키고, 나무는 껍질을 지킨다.” 사람은 얼굴도 있고 살가죽도 있기에 체면이 수모를 당하면 그것은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고, 남을 볼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람이 살아갈 면목이 없을 정도로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어떤 일입니까? 어떤 사람은 진리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가장 비열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예를 들어, 누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한바탕 때렸다면 이것을 수치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바보짓을 한 것이 아니고 추한 짓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남의 돈을 적지 않게 훔쳐 붙잡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야말로 살 면목이 없는 일이고, 커다란 치욕을 당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로 낯을 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얼굴에 빛이 없고, 수치스러운 것입니까? 그러니 우리가 긍정적인 일을 했다면, 설령 악인의 훼방과 논단 혹은 박해를 당할지라도 마음속으로 참으로 낯을 들 수 없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떳떳하고 마음속으로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광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붙잡히고, 본분을 한다는 이유로 붙잡혔을 때, 그들이 피켓에 하나님을 믿으며 어떻게 어떻게 했다는 글을 써 우리에게 죄명을 씌우고 조리돌리지만, 우리 마음은 평안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왜 잡혔어요?”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하나님을 믿어서요”라고 하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이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조금도 수치심이 없는 것을 보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어, 하나님 믿는 건 나쁜 일이라 할 수 없지. 이 정부가 정말 가증스럽네. 하나님 믿는 사람까지 붙잡다니.’ 그러면서 당신을 죄인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일을 하면 정말로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습니까? 나쁜 짓을 해서 다른 사람이 “왜 잡혀 왔어?”라고 물어볼 때 “남의 돈 훔치다가 잡혔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여럿이 “남의 돈을 훔치다니, 이 나쁜 놈아!”라고 비난을 할 겁니다. 도둑은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하고, 어디에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나쁜 놈이기에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부정한 짓을 저질러 10명, 20명의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면 그건 머리를 들 수가 없겠죠, 그것은 짐승이니까요! 우리 크리스천들을 보세요, 큰 붉은 용이 갖은 방법으로 추적하고 지명 수배하고 잡는다 해도 우리 마음은 평안하지 않습니까? 이 일에서는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에는 책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바르면 마음이 편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이 방면의 일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고,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그럼 어떤 사람이 명예와 지위의 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것이 어떤 일인지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심판 형벌을 받는 것에 대해 말을 하자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패괴된 실질과 본성을 드러내시니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내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왜 이렇게 깊이 패괴됐지? 이건 진정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지만 사람 앞에서는 또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패괴는 다 같고, 전 인류가 다 이래.’ 그래서 머리 들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적그리스도가 되어 온갖 못된 짓만 일삼다가 드러나면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는 느낌과 같습니까?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 집에서 드러내고 수리 대처하고 해부한다면, 어떤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어 반항하고 원망하며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데,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이것은 교만하고 자대하는 것이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독선적이며,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잘못하고도 맞다고 말하며, 제멋대로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늘 체면, 허영심, 지위만 중시하는 것과 여기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차이가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중시하는 것이 다르기에 체면, 허영심과 지위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설사 마음속으로는 기분 나쁘고 아무리 고통받을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고, 순복할 수 있으며, 반항하지 않고, 대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체면과 허영심이 매우 심해서 다른 사람이 한 게 진리에 부합되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사탄 본성이 너무나 심각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위와 체면, 허영심을 너무나 탐내고 너무나 중요시하는데, 심지어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위, 체면, 허영심이 진리보다 높고 지고지상합니다. 그런 사람은 수리 대처를 받거나 체면과 허영심이 깎이면 고통이 매우 크고, 매우 참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말했으면 어떤 문제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복할 수 있다면 허영심, 체면, 지위를 쉽게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 진리가 있고 원칙이 있다면 이런 일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진리와 원칙이 없다면 지위, 허영심, 명예를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깁니다. 지위, 명예, 허영심을 잃으면 ‘차라리 목숨을 버리고, 살지 말고 죽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내려놓기 쉽겠습니까?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래 인솔자 일꾼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아주 긴 시간 동안 여러 번 생각을 해 봤는데,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솔자 일꾼을 하지 말라고 하시면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변함없이 본분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만약 나에게 다른 본분을 하라고 하시면 내가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인솔자 일꾼도 하지 않고, 어떤 본분도 하지 않는다면, 계속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선민과 같이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정상적으로 진리를 추구할 수 있을까?’ 저는 생각하고 나서 ‘할 수 있을 거야, 큰 문제 아니야, 며칠 안에 적응될 거야.’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건 당신 생각인데, 당신 생각이 현실과 같을까요?”라고 하는데, 이 문제, 참 잘 제기하셨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아마 별 문제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제 자신의 경력에 근거해 확정한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경력에 근거해 말합니까?”라고 묻는데, 저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가장 심하게 받았을 때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그렇게 지내 왔던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저에게 등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저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는데, 저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마땅합니다. 저는 마땅히 심판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계속 사역을 하라고 하셨는데, “계속 교회를 인솔해야 한다. 예전에 하던 것을 계속 하고, 했던 대로 계속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던 일이 익숙해서 하기 쉬웠습니다. 제가 하니 어떤 형제자매들은 “형제님이 또 인솔자입니까? 이전에 형제님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고, 또 논단도 했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일은 따지지 않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공격하며 보복하지 않았고, 제가 발탁한 사람은 다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고, 저의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도태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도 나름 제게 잘해줍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발탁되지 못한 건 제 탓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렇게 지내 왔습니다. 따라서 제가 방금 “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한 말이 상상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방금 제기한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진리 구하기를 중시하고 진리에 순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허영심, 체면은 긍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 실제가 아니므로 그것을 중시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을 포기하면 어떻단 말입니까? 아무리 수치당해도 괜찮습니다. 진리를 중요시하기만 하면 얼마나 큰 치욕을 받든 다 지나가게 되고, 다 일시적인 일이고, 다 일시적인 고통이지 영원한 고통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대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에 순복할 줄 알게 되면 어떤 허영심, 명예, 지위든 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당신이 저에게 보통 형제가 되어 따르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 따를 것이고, 지금 저보고 설교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저는 설교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을 것입니다. 누가 말한 것이 맞고 성령의 깨우침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누가 말하는 것이 도리이고 빈말이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귓등으로 흘려 버리면 끝입니다. 누가 “형제님은 말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저는 말하지 않고, 맹세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일을 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진리와 원칙에 부합될 것인데, 이 일을 하기 쉽지 않습니까? 매우 수월한 일입니다! 고통받아 본 사람과 고통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같을까요? 지위와 명예를 항상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근원적으로 볼 때, 고통을 많이 받으면 해결할 수 있고, 고통을 너무 적게 받으면 내려놓지 못합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내려놓지 못해 꽤나 견디기 힘들었는데, 고통을 많이 받고 나서 나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진리를 추구하면 당연히 더 빨리 내려놓게 되죠. 이런 걸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설령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고생을 겪으면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며느리도 20년을 참고 견디면 시어머니가 된다”는 도리입니다. 참고 견디면서 시어머니가 되면 된 것이고, 실력이 수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습니까? 진리 원칙을 중시하고, 진리에 순복할 줄 알아야 하며, 또 지위, 명예, 허영심, 체면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그런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옥수수떡이나 비지떡처럼 값진 것이 아닌데, 왜 내려놓지 못합니까? 그런 것을 마음에 둬서 뭐 합니까? 그런 것은 값이 없습니다. 사람이 수치를 좀 당하고 의를 위해 핍박을 좀 받는다면 스스로 긍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사역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실제적인 본분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때는 지위, 명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인생,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값지고, 무엇보다도 진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위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본분이 중요합니까? 본분을 잘하는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지위가 있어도 사역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귀입니다. 지위를 보물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놈이 아니고, 땅에 떨어져도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싸구려 비지떡과 같은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