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6】

도대체 어떻게 긍정적인 것을 추구해야 합니까? 진리 진입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진리 진입과 무관한 일은 상대하지 말고, 거들떠보지도 말며, 절대 그것에 묶여서는 안 됩니다. 옳고 그른, 얽히고 설킨 그런 일에 묶이지 말고, 빠져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마땅히 “오늘 임한 일에서 나는 진리를 구했는가? 진리로 문제를 해결했는가? 원칙 있게 일을 처리했는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분별하고, 일을 판단했는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가?”, 이런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반성해 봐야 합니다. 여러 번 반성하고 나면, 이런 일이 다시 임할 때는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할지 알게 되고, 어떻게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알게 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이 몇 가지 방면에 효과가 있으면, 당신은 하나님의 뜻에 맞고, 진리 실제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이고, 또한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도달하여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약 범사에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기를 중요시하고, 범사에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고, 범사에 분별이 있고,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중요시한다면 이것은 다 긍정적인 것에 속합니다. 이것은 다 사람이 매일 진정으로 진리 실행에 진입이 있고, 참으로 진리 추구를 중요시하며, 참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기를 중요시하고,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여 원칙 있게 일 처리 하기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늘 이렇게 중요시하면 자신도 모르게 진리 실제를 살아내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고, 빛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긍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진리와 관련된 일이겠습니까? 진리와 관련된 일은 주로 어떤 방면일까요? 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관련된 일이고, 다 본분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며, 다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이고, 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진리와 관련된 일이고,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중요시해야 할 일입니다. 진리와 관련된 일을 이제 분명하게 아셨겠죠? 한 방면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관련되고, 한 방면은 본분과 관련되며, 한 방면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되고, 한 방면은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되며, 한 방면은 사탄과의 싸움과 관련되는데, 이런 일은 다 진리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데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진리와 관련된 이런 일들을 중요시하지 않고, 반대로 진리와 무관한 일을 중요시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떤 인솔자 일꾼이 좋은 시계를 찬 것을 보게 된다면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런 일에서 영향을 받는다면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바깥 사물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럼 당신 마음속에 진리가 있겠습니까? 진리가 없는 사람은 늘 육체적인 누림만 중요시하는데, 누가 육체를 잘 누리고 있으면 견딜 수가 없어 자기도 좀 누리려고 하고, 이익을 함께 나눠 가지려고 하며, 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누리면 나도 그것을 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늘 사람을 따르는데,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면 자기도 그것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있으면 자기도 그것을 가지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중요시하면 자기도 그것을 중요시합니다. 이는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어떤 인솔자 일꾼이 좋은 시계를 차고 다닌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그런 여건이 되고, 그 집이 워낙 넉넉해서 좋은 것을 입고 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선민들 중 어떤 사람은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환경에서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로 사람에게 다 유익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일로 서로 드러나게 하고, 사람들이 공과를 배우게 하고, 포기할 줄 알게 하며, 육체를 배반하게 하는 이런 효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부 사람들에게 꾸밀 줄 알게 하고, 세련되고 잘 생기게 하셔서 못 생기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고 나서 영향을 받고 소극적이 되어 고생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많이 고생하고 많이 부딪치면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알게 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육체의 그런 일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육체를 이겨 내는 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 선민이 배워야 할 공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안배하시고 허락하신 것은 다 하나님 선민에게 유익하고, 다 사람들에게 공과를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일을 보고 나서도 공과를 배우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따라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떤 형제자매가 부유한 가정의 형제자매와 같이 협력하며 본분을 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그 부유한 형제자매가 먹는 것, 입는 것, 차는 것에 다 영향을 받습니다. 나중에 늘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늘 기도하면서 자신을 반성해서 인식하게 되고 공과를 배우게 됐다면 부유한 가정의 형제자매가 어떤 옷을 입든, 무엇을 먹든, 어떻게 꾸미든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이 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좋은 것을 차지 못해도 변함없이 협력하면서 본분을 하고, 변함없이 본분에 충성하며, 변함없이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말씀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인정해 주실까요?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겠죠? 그런 사람은 이 방면에서 온전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형제자매 옆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안배해 놓으신 것은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려고 하신 것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럼 우리같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운이 안 좋은 거네요. 온전케 될 수 없으니!”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틀린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차별 대우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가정의 자녀도 진리를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온전케 하십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와 같이 있게 된다면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처음에 ‘봐봐, 내가 얼마나 행복해! 나는 하나님께 축복 받았어. 그러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돈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입고, 더 좋은 것을 차고, 생긴 것도 더 잘 생겼지. 당신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못생겼으니, 깔보고 업신여겨도 돼!’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부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땅히 다른 사람의 장점을 봐야 합니다. 어떤 장점을 봐야 합니까? ‘그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식주 조건이 다 안 좋지만 하나님께 진짜 충성하고 진리를 잘 추구해. 내가 이렇게 잘 입고, 좋은 것으로 치장해도 그 사람은 영향을 받지 않고, 마치 이런 것에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이건 그 사람의 장점이고, 나한테는 부족한 점이야! 이게 바로 정상 인성에 갖춰져 있어야 할 이지인데, 나는 왜 없을까?’ 그런 사람은 이런 공과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외에 그런 사람은 또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상황을 바꿔 내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그 사람이 먹는 그런 음식을 먹고, 그 사람이 입는 그런 옷을 입는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 또 하나님을 위해 충성되게 본분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긴 어렵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낫고,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나보다 훨씬 강하구나! 난 그렇지 못한데! 내가 이렇게 잘 누리고, 잘 입고, 좋은 것으로 치장해도 그 사람만큼 충성되게 본분하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면도 그 사람보다 못한데, 만약 내가 그 사람의 그런 고생을 한다면 아마 벌써 소극적이 돼서 물러났을 거야. 나는 그 사람의 그런 분량이 없고, 그 사람의 그런 인품도 없어!’ 그가 이런 것을 인식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 형제자매에 대해 탄복할 것입니다. ‘저 사람의 인품은 나보다 훨씬 낫고 좋구나. 저 사람에게 있는 정상 인성이 나한테는 없어!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혜로 나를 보호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까지 하나님을 따라올 수 있었을까? 또 이렇게 본분을 할 수 있었을까? 어려워!’ 이것은 반성해 봐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럼 도대체 어떤 사람이 더 귀할까요? 어떤 사람에게 장점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일까요? 부유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사람일까요? 하나님은 겉으로 잘 입었든 못 입었든, 생김새가 좋든 안 좋든, 얼마를 누렸든 그런 것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고생할 심지가 얼마 있는지,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심지가 얼마 있는지,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보시며,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잘 생긴 사람에게 날마다 성령 역사가 있고, 못생긴 사람에게 성령의 깨우침이 전혀 없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무엇에 근거할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무엇을 근거로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사람의 외적 조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실행하는지에 근거해 성령이 역사하실지,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하나님이 축복하실지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데, 하나님 선민이 정말로 깨달았다면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을 중요시하면 될까요? 형제자매들이 인솔자 일꾼을 투표로 선거하라고 하면 무엇에 근거하겠습니까? 차림새에 근거하겠습니까, 생김새에 근거하겠습니까 아니면 키나 나이에 근거하겠습니까? 무엇에 근거하겠습니까?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습니다. 늘 겉모습만 보고,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을 중요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증오하시고,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늘 먹고 입고 누리는 것만 중요시하는 그런 일은 진리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한번 따라해 보세요. (늘 먹고 입고 누리는 것만 중요시하는 것은 다 진리와 무관한 일입니다.) 다 알아들으셨죠? 왜 여러분들에게 한번 따라 해보라고 하겠습니까?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런 일을 참으로 꿰뚫어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본분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즉, 20~30대가 절반 이상이고, 40~50대는 절반이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먹고 입고 누리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이것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교통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매우 실제적입니다. 전에 우리는 정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통했습니다. 정감에 치우쳐 살면 사람의 생명에 해가 된다는 이런 말을 적지 않게 했습니다. 그럼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정감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육체에 속하는 사람이 정감에 속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일은 다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다 같은 성질이고, 다 같은 본성 안의 것이며, 사탄의 본성 중 두 가지 중요한 방면입니다. 정감에 치우쳐 살지 않는 것이 바로 육체에 치우쳐 살지 않는 것입니다. 육체에 치우쳐 사는 것은 주로 정감에 치우쳐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히 성립됩니다. 또한 한가지 일이어서 매우 비슷하고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