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5】

예를 들어. 누군가 옷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입었는데, 감기에 걸렸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네요!”라고 뒤집어씌웁니다. “왜 하나님의 징계인가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옷을 똑같이 입었어도 다른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왜 유독 당신만 감기에 걸렸겠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징계인 겁니다!” 이런 논법이 성립됩니까? 이건 죄를 덮어씌우는 게 아닙니까? 이건 논단하는 게 아닙니까? 이것은 논단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면역력 수치 높낮이가 다르고, 사람의 연령도 다르며, 몸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하나님의 징벌이야!”라고 오명을 덮어씌운다면 적합합니까? 규례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겉면의 일에서 “마치……같네요.”라고 말하는데, 그런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규례에 맞춰서는 안 됩니다.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에서 논쟁해서는 안 되고,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런 일에 닥친 사람도 맹목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스스로 기도하고 찾고 구해 보세요. 아마 한동안 지나면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많은 일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의사가 어떤 사람의 병을 진단하는 것도 한 방면의 증상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의 실증에 근거해야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에서 세 번째 방면은 어떤 일들입니까? (사소한 일들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은 주로 이 몇 가지 방면입니다. 그리고 또 의식주에 관한 그런 자질구레한 일도 있습니다. 잘 누리는 사람도 있고 못 누리는 사람도 있는데, 누가 잘 누리면 “아유, 하나님 축복이야!” 누가 가난해서 끼니를 때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야!” 이렇게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의 안배가 있는데, 우리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제 경력해서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많은 일들에 대해 참으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심지어 사람이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어떤 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분명히 알았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다고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저는 조금 꿰뚫어 본 것 같아도 감히 말을 못하는데, 어찌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후회하지 않도록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무관한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들이 주로 세 가지 부류, 세 가지 방면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세 가지 방면의 일들을 모두 귀납해 보세요. 모두 몇 가지 조목이 있는지, 여러분이 본 것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몇 가지 조목이 있는지, 분명하게 귀납한 후에 이런 일들에 대해 마땅히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문제는 그 가운데 찾고 구할 진리가 있지만 어떤 일은 중요시하지 말고, 신경 쓰지도 마세요. 아무 의의도 없습니다. 심지어 찾고 구할 진리가 없고, 비밀이랄 것도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포기하세요. 100년을 중시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진리와 무관한 이런 부류의 일들은 우리가 원칙을 장악하고,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의식주행은 진리와 무관합니다. 왜 진리와 무관할까요? 사람이 좋은 걸 먹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없고, 더욱이 진리를 실행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잘 먹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증오한다고 할 수 없고, 더욱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없으며,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활이 좋든 나쁘든, 무엇을 입든, 몸에 무엇을 치장하든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을지, 이후에 어떤 귀숙이 있을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런 일에서 구속을 받아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좋은 옷을 입지 못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흥미가 없고, 본분을 하는 데도 흥미가 없어요. 언제 좋은 옷을 입고 누리게 된다면 저는 본분을 할 때 틀림없이 신바람이 날 거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사람에게 정말로 좋은 옷을 입히고 누리게 한다면 정말 본분을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말하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고, 사람을 속이는 말입니다. 여기에 사탄의 간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저에게 지위를 줘서 인솔자 일꾼을 하라고 한다면 저는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사역을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성립됩니까? 인솔자 일꾼이 되면 바로 본분을 잘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테스트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이 사역을 잘할 수 있는지,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는 사람의 인품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사람의 분량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인품이 있지만, 진리가 없고 그런 분량이 없기 때문에 해낼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본분도 잘하고, 힘도 바칠 수 있고, 인품까지 있다면 조건이 갖춰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도 인품이 없다면 역시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방면은 좋은 인성이 있어야 하고, 또 한 방면은 진리를 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본분을 잘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분을 잘하는 것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지위가 있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솔자 일꾼들이 처음에는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인솔자 일꾼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 누구누구보다도 나을 거야!” 나중에 인솔자가 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사람보다 조금도 낫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어디가 나은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겉면의 말에 속으면 되겠습니까? 속임수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사탄 본성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와 무관한 이 몇 가지 일에 대해 어떤 일은 포기해야 합니다. 상관하지 말고, 따지고 들지 마세요.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그 외에 어떤 일은 진리를 찾고 구해 해결해야 하며,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고, 정확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말썽을 부리며 시비를 따진다면 그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고, 진리의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나 그런 일에 대해 우리는 추궁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사람의 분량이 어떤 상태인지, 그 사람이 왜 그런 시비 가운데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그 사람이 시비를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지, 그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본성 실질은 무엇인지,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런 것에 대해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꿰뚫어 보았다면, 그 사람을 꿰뚫어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다음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좀 더 쉬워지는데, 그러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럼 우리 자신이 아직도 늘 진리와 무관한 일부 일들을 중시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역시 진리의 원칙에 근거해 대해야 합니다.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 진리를 찾고 구해 해결해야 할 것은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많은 문젯거리와 많은 방해물을 없애 버리게 돼 진리를 추구해서 정확한 궤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에 대해 우리는 지금 거의 분별했고, 기본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던데요.”라고 말할 때, 귀를 막고 듣지 않으면 됩니까? 들어야 할 것은 들어야 합니다. 다 들어야 분별하게 되고, 정확하게 해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좀 오해하고 있네요. 그 사람이 겉면의 일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편면적으로 봤고, 규례에 맞췄네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을 미워하면 됩니까? 미워하지 말고, 정확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은 진리와 무관한 일이지만 우리는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진리로 문제 해결하기를 찾고 구해 그 일에 대해 정확한 태도와 입장이 있게 된다면 틀림없이 간증을 설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진리와 상관없는 일에 대해 따지고, 마구 시비를 가리고, 사단을 일으킨다고 해서 당신도 따라서 시비를 조장하고 사단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육체적인 애호와 논쟁 가운데서 살게 되는데, 당신도 진리가 없는 것이고, 그 사람처럼 진리와 무관한 일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은 어린 아이가 싸움을 하고, 소꿉장난하며,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형제자매와 낯을 붉히며 논쟁하고 서로 버티면서 물러서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해결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됐어요?”라고 물을 것이고, 당신은 “10년이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자라지 않은 10살짜리 아이죠! 10년을 믿었는데도 그런 의의 없는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진리의 실제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장래성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분량이 너무 작아서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에서 옥신각신하며 필사적으로 다퉈서 꼭 잘잘못과 시비를 가리고, 이치를 따지며, 이기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는 긍정적인 사람입니까?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이방인의 속어로 어떻게 말합니까? 그런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길 한가운데서 욕지거리를 퍼붓는 몰상식한 여자가 아닙니까? 제멋대로인 망나니가 아닙니까? 시비나 논쟁을 좋아하는 소인배가 아닙니까? 염치없는 자가 아닙니까? 이렇게 분별하면 완전히 적합합니다. 어떤 사람은 온종일 이런 일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솔자를 만나면 “당신은 청렴한 분이니, 제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하고, 판단을 내려 줘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신에게 무슨 판단을 내려 줘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은 모두가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데, 교회에서 누가 당신에게 그런 일에 판단을 내려 주겠습니까?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아무리 이치가 있다 해도 쓸모없습니다. 자신이 정말 양심과 이지가 있다면 왜 진리 추구를 중시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사람들과 이런 일을 잡고 늘어집니까? 왜 육체를 배반하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빛 가운데 살지 못합니까? 왜 광명정대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까? 이런 사람은 좋은 놈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맞습니까? 저에게 판단을 내려 달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판단해 줄 겁니다. “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진리를 추구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을 잡고 늘어지지 마세요. 의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이 말한 게 틀렸다고 할 때, 당신이 정말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해도 좀 인내하세요. 인내하면 아량이 넓어집니다! 인내해야 할 일이라든가 사람에게 오해받은 일에 부딪쳤을 때, 참고 또 참으면 아량이 넓어지고, 분량도 자라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당신은 온전케 될 수 없고, 자라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 사람이 말한 것이 맞고 진리에 부합된다면 당신은 진리를 찾고 구해서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문제를 반성해 봐야 합니다. 그다음 진리로 해결해야 되죠. 그러면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안배하고 배치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 일에 부딪치면 당신은 공과를 충분히 배우게 되고, 분량이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께 축복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굳이 그렇게 잡고 늘어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잡고 늘어지는 것은 당신에게 분량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진리에 순복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잡고 늘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당신도 옳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 사람도 틀렸고, 당신도 틀린 것입니다. 당신이 맞다면 그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겠습니까? 당신은 벌써 진리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