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4】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자 할 때, 무엇이 제 역할을 해야 실행할 수 있을까요? 가장 주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정상인의 양심과 이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상인의 양심과 이지는 바로 정상 인성에 갖춰져 있는 그 양심과 이지입니다. 그 양심과 이지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의식이 있게 되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양심이 평안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느낄 수 있기에 마음속으로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것을 어긴다면 양심이 평안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은 일이 닥치면 그 일을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양심입니다. 양심이 지배하는 여기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올바른 마음입니다. 양심은 정확하게 무엇을 대표합니까? 양심은 사람의 영을 대표하고, 사람의 올바른 마음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그 사람을 지배하여 진리를 실행하게 하고, 긍정적인 일을 하게 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합니다. 이 책임과 본분을 이방인들은 뭐라고 합니까? 의무라고 합니다. 사실, 의무라고 말하면 적합하지 않고, 책임이나 본분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양심과 이지가 있는 사람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정확하죠. 진리를 깨달았어도 지금까지 진리에 따라 실행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 양심과 이지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는데도 조그마한 책망도 없고, 마음이 조그마한 고통도 없이 예전처럼 평온하고 편안하다면, 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을 영적인 용어로 어떻게 해석합니까? 사람의 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람의 영이 없습니다! 보통의 말로는 양심이 없다고 하는데, 영적인 용어로는 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영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짐승’, ‘이방인’, ‘사람 탈을 쓴 짐승’, 이 몇 개 용어는 다 적합합니다. 이방인들은 다 영이 없기에 사람 탈을 쓴 짐승입니다. 가장 듣기 거북한 이 말이 실은 사실에 가장 부합되는 말인데,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럼 영이 없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을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 남을 욕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남을 욕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에 맞는 말입니다. 마치 돼지에게 “돼지, 이 짐승아!”라고 말하고, 개에게 “개, 이 짐승아, 너,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듣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개, 돼지, 소에게 짐승이라고 말하면 그게 욕하는 거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할 수 없겠죠. 왜 욕이 아닐까요? 그것은 그 자체가 바로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짐승이라고 하지 않으면 사실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말에게 “어, 노형, 왜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겁니까? 짐승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인데, 이것은 짐승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심판하시는 말씀, 사람을 심판하시는 말씀을 보고 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왜 관념이 있었겠습니까? 그 일에 대한 사실의 진상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경력하고 나서야 “사람은 패괴되어 정말로 짐승과 같습니다. 인성이 없고, 사람의 양심과 이지도 없어 하는 말, 하는 일, 살아내는 모습이 짐승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짐승’, ‘마귀’, ‘사탄’, ‘사탄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는 관념이 없게 되어, 말씀하신 것이 매우 적절하고, 천만 번 지당하고, 조금도 틀림없다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에 대해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여 도달한 효과가 아닙니까? 보세요, 교계의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 같이 생각하기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경력하고 나면 또 달라지고 바뀌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고, 사실이고, 천만 번 지당하여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관념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탄복하기까지 합니다. 이 정도까지 경력해서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사실이고, 다 실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든, 사람이 이해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모두 진리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합니다.”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정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된 사람이 아닙니까? 정복된 후에는 진리를 추구할 수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고, 다 사실임을 인정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더 이상 관념이 없게 되는데, 관념이 없으니 패역도 적어지게 됩니다. 설사 순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패괴되어 패역하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된 후,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되고, 정식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얻는 것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진리를 추구하여 참으로 진리를 얼마 깨닫게 될 때는 어떻게 말하게 될까요? “지금 저는 긍정적인 것이 무엇이고, 부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분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정상 인성에 어떤 긍정적인 것들과 어떤 진리 실제를 갖춰야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아주 많은 것들이 모두 진리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의 절반 이상은 부정적인 것이며, 또 일부분은 진리와 무관한 것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주 적습니다. 그럼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에 근거해서 볼 때 사람이 중요시하는 것이 다 진리와 무관한 일이라면 그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저는 부정적인 것도 추구하지 않았고, 악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 악인들이 저지르는 짓도 하지 않았고, 중요시하지도 않았으며, 끼어들지도 않았고, 그 사람들과 섞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가요?”라고 말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 사람들도 겉보기엔 괜찮습니다. “저는 또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압니다. 저는 본분을 할 때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릇되게 말하고 그들이 인솔하는 길이 틀리면 저는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분별이 있어 그들과 단절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한 것이 많으면 저는 또 그들을 폭로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런 사람은 도대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볼 줄 압니까? 어떤 분들은 어리둥절하시죠? 사실,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진리와 무관한 일들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일들에서 어떤 일들은 별로 악한 일이 아니지만 긍정적인 것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그 사람이 중요시하는 일, 진리와 무관한 일은 모두 어떤 일들입니까? 어떤 일들이 진리와 무관한 일들에 속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사 우리가 한평생 중요시해도 진리를 얻을 수 없는 일, 비록 악을 행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진리를 얻을 수도 없는 일, 그런 일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그런 일들을 해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일을 붙들고 경력하면서 그런 일을 중요시하는데, 그 결과 여러 해 동안 그런 일 가운데서 살았어도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고, 생명은 조금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진리와 무관한 일에서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규례는 백년을 지켜도 거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규례만 잡고 지키면 백년을 지켜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진리와 무관한 첫 번째 부류의 일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두 번째 부류의 일은 바로 사람이 관념, 잘잘못, 시비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떤 일에서 잘잘못을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옳고 저렇게 하면 틀리다,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고 저렇게 하면 적합하다고 하며 늘 이렇게 잡고 늘어집니다. 우리가 진리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맞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릇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 행실에 따라 맞게 했을지라도 그것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잘못을 했을지라도 범죄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오늘 네가 물건을 살 때 0.5위안을 더 써도 책망을 받지 않고, 0.5위안을 적게 써도 상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일이니 성령이 하는 사역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내가 사역하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에서 잡고 늘어져도 쓸모없고, 진리와 무관해 백년을 잡고 늘어져도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이것은 진리와 무관한 두 번째 부류의 일입니다. 원칙에 어긋난 일들에 대해 모든 사람이 참답게 해부하고 분석하고 분별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진리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개별적인 일의 방식이라면 잘잘못을 논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잡고 늘어지기 좋아합니까? 대부분 소질이 비교적 낮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 순수하지 못하고, 심지어 터득이 좀 치우치고 그릇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잡고 늘어지기 좋아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은 지 1~2년 되는 새 신자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진리를 참답게 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치우치고 그릇된 것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만약 믿은 지가 이미 7~8년이나 10여 년이 되고 오래 믿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일을 잡고 늘어진다면, 영이 별로 통하지 않고, 좀 치우치고 그릇된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들을 계속 잡고 늘어지며 놓지 않으면서 계속 그것을 진리를 추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럼 이런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습니까?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경력상에서의 편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와 무관한 그런 일을 잡고 늘어지는 그 사람들 중 악인은 한 명도 없다고 확실히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악인이 아닙니다. 그들 대다수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터득이 순수하지 못하거나 새 신자여서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진리를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힘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에 속하지 않고, 경력상의 편차와 실행상의 편차에 속합니다. 잘 아셨겠죠?

진리와 무관한 일의 세 번째 방면은 바로 아주 하찮은 그런 겉면의 일들이고, 진리 원칙의 문제에 관련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었고, 어떤 사람은 좋은 옷을 입었고, 어떤 사람은 금은 장신구를 했는데, 다른 사람이 보고는 “이건 문제입니다. 육체를 탐하는 것이니 사탄에게 속합니다!”라고 남에게 함부로 죄를 덮어 씌워 사소한 일을 요란스럽게 처리합니다! 이것은 진리와 무관한 일이 아닙니까? 이런 일은 추궁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누가 물만두를 먹은 뒤 찬물을 마셔서 설사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한다면, 맞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갑자기 전염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저주가 임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은 추측할 수 없으니 규례에 씌워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이 꿰뚫어 볼 수 있어 정말 그렇게 된 일이고, 다방면으로 검증해서 확실히 그런 일이라고 확정되면 그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방면으로만 검증했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은 너무 성급히 말하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