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5집 (a)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에 대한 설교 교통

【125-A-2】

지금 많은 사람들이 왜 육체적인 누림과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할까요? 왜 포기하지 못할까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이방인들이 잘 입고 잘 누리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마음에 두며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이방인 연예인들을 좀 보세요, 이방인들이 입고, 꾸미고, 누리고, 먹고 마시는 것들을 보세요, 정말 부럽네요. 전 언제면 저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까요?”라고 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누림을 탐하는 것이 아닙니까? 형제자매 중에 누가 좋은 옷을 입고 다른 형제자매가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것으로 꾸민 걸 보면 ‘저 사람도 하나님 믿고 우리도 하나님 믿는데, 저 사람들은 왜 잘 입고, 왜 저렇게 좋게 꾸밀 수 있는 거야? 난 왜 안 되는 거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누림을 탐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심지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가정이 있을까? 저 사람 집은 왜 저렇게 돈이 많을까? 우리 집은 왜 가난할까? 난 왜 좋은 걸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걸까? 이건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거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의 누림을 탐하다 못해 좋은 옷을 못 입고, 좋은 것으로 꾸미지 못하면, 밥맛도 잃고, 잠도 못 자고, 본분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 부분에서 넘어가지 못하죠. 그것은 어떤 문제일까요? 우리는 육체적인 누림에 대한 모든 것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육체가 좋아하는 것, 누리는 것이 도대체 긍정적인 것인지 아닌지,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시계를 차는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요? 그것이 진리일까요? 아닙니다. 왜 긍정적인 것이 아니고, 진리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시계를 차고, 좋은 차를 몰아야 하나님께 축복받은 것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은 그런 것을 누려야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가 탐하고 누리는 것들,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그 사람이 육체적인 것을 얼마나 잘 누리는지에 근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가 무엇을 누려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인정해 주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무엇에 근거합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진리의 실제가 있는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인지, 본분을 합격되게 하는지에 근거하십니다. 또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실한 사람이 되었는지에 근거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조건에 도달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몇 가지 조건에 도달했다면, 설사 육체의 것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좋은 옷도 별로 입어 보지 못했고, 좋은 시계도 차 보지 못했고, 좋은 차도 몰아 보지 못했고, 무슨 별장이나 호화로운 주택에서 살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주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조건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신 요구와 그런 조건에 도달한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받고 인정받습니다. 이 일은 분명하게 아셨죠? 다른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시계를 차고, 좋은 차를 몰고, 호화로운 주택에서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맞는 것일까요? 그것은 확실히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리는 것을 몹시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육체적인 누림을 탐하는 사람이고, 육체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육체로 사는 사람이고, 완전히 육체에 속한 사람입니다. 완전히 육체에 속한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면 육체에 속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아무 의의도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육체가 누리는 그런 것보다 가치가 없다고 여기죠. 예를 들어, 좋은 시계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 이 두 가지를 앞에 놓는다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좋은 시계를 버리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좋은 시계를 택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걸 뭐,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진리를 택할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예요. 저는 가난에 시달리더라도 시계를 안 차고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시험이 없을 때는 “저는 진리를 택할래요.”, “저는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잘 하는 걸 택하겠습니다.”, “저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걸 택할 겁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걸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좋은 시계, 좋은 집, 좋은 차가 앞에 놓이고 시험에 놓일 때는 돌변해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시험이 임하기만 하면,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사라지고, 육체적인 누림을 탐합니다. 좋은 시계, 좋은 옷, 좋은 차를 보기만 하면 눈이 번쩍입니다. 그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그런 사람은 육체에 속한 사람이고, 사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시험이 없을 때 하는 말은 정말 듣기 좋습니다. 겉으로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틀림없어!”라고 하게 되죠. 하지만 교회 인솔자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시계를 찬 것을 보고 나서는 어떻습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좋은 시계를 찼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좋은 옷을 입었을까? 난 왜 못 입지? 난 왜 못 갖지? 이건 불공평해. 좋은 것을 입을 거면 다같이 입고, 찰 거면 모두 다 차야지, 왜 저 사람만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속이 편치 않고,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사람의 속셈과 속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이 그렇게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다같이 어렵게 살 때는 누구를 봐도 관념이 없었습니다. “다 같이 고생하잖아!”라고 하면서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어떤 사람이 치킨을 먹으면 속이 끓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난 겁니다. 사람은 일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솔자가 좋은 스위스제 시계를 차고 오니 보자마자 “저건 무슨 시계지? 되게 좋아 보이네, 자세히 좀 봐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누군가 “하나님 말씀 읽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말씀 책은 앞에 펴놓고, 머리는 책을 향해 있지만, 눈은 그 시계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왜 시계 쪽으로 쏠릴까요? 눈에서 탐욕스런 빛이 나오는데, 왜 그럴까요? 무엇을 말합니까? 그 사람은 육체적인 누림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눈은 어떻게 그렇게 민감한지! 다른 사람은 누가 손목에 뭘 찼는지 별로 주의하지 않는데, 그 사람은 그저 그런 것만 관찰합니다. 여자를 볼 때는 목걸이를 했는지, 귀걸이를 했는지, 손에는 액세서리를 했는지만 보고, 남자를 볼 때는 손목에 어떤 시계를 찼는지만 봅니다. 그런 사람은 좀 사악한 끼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은 다 육체를 탐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육체를 탐하는 사람이 마음을 진리 쪽에 기울일 수 있을까요? 가서 그 사람의 마음을 진리 쪽으로 향하게 바로잡아 주려고 할 때는 차갑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육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쪽으로 놔주면 즉시 난리가 납니다. 눈이 막 초롱초롱해집니다. 그건 무슨 문제입니까? 육체적인 누림을 너무 탐하면 마음이 딴 곳에 가 있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진리를 실행하면 나도 실행하고, 그중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도 실행하지 말아야지. 인솔자 일꾼이 다 앞장서서 진리를 실행한다면, 조금 실행할 수는 있지만, 인솔자 일꾼 중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도 실행 안 할 거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늘 유행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이라 해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버릴 것이고, 부모에게 속박받지 않을 거야. 아빠 엄마라도 진리를 증오한다면 내 부모가 아니야! 그저 부모니까 육체적인 의무나 좀 하고, 돈이나 좀 드리면 돼! 그렇지만 절대로 속박받지는 않을 거야. 부모라도 진리를 증오한다면 나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부모는 배반할 거야.’라고 하는 이런 태도를 가질 것입니다. 부모가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들도 사탄 마귀입니다! 사람이 만약 진리를 이 정도까지 사랑하게 되고 원칙이 있게 된다면,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용서하지 않고, 그런 사람에 대해 맞서 선을 분명하게 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에 거짓 인솔자나 적그리스도가 있다 하더라도 통제를 받을까요? 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인사물의 속박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사탄을 이긴 사람이고, 진정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육체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죠. 이 일을 꿰뚫어 보셨죠? 그러면 교회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진리는 실행하지 않고, “저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선입견이 있었어요.”라고 뒤에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시비를 조장하고 헐뜯는다면, 또 구속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을 거절하고 피하고 혐오해야 합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봤자 득이 될 게 없습니다. 아무런 의의가 없죠.

좋은 것을 먹는 일, 예를 들어 치킨을 먹는 건 진리인가요? 긍정적인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먹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영적인 사람이라면 먹지 말아야죠! 치킨 따위는 개나 줘 버려야 합니다! 아예 버려서 짓밟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입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분별력이 없네요. 그것은 영에 속하는 척하는 게 아닙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보는지 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는데, 정말 어떤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네요. 치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여건이 되면, 간혹 한 끼씩 먹는 것도 괜찮습니다. 맛도 좋습니다. 그러나 편식을 하면 안 되죠. 여건이 안 되는데도 기어코 치킨을 먹겠다면서 그걸 못 먹으면 못산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각종 음식은 정확하게 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한 가지만 좋아하면 안 됩니다, “저는 고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맛있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튀긴 음식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등등, 그런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여건이 주어지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이니 생기면 먹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시지 않아 여건이 안 된다고 해도 그런 것에 속박받지 말고, 못 먹는다고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지거나 살고 싶은 생각까지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채만 예비해 주면 야채를 먹으면 되고, 나중에 풀뿌리, 풀 죽을 예비해 주실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