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4집 (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 대한 설교 교통

【124-B-5】

계속 말씀 읽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 거기에서 벗어나 나에게 마음을 바치지 못한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사실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죠.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 참으로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그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다고 말해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바쳤다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본분함에 있어 대가를 지불하거나 고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실제가 없으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다고 하는 것은 기만이고, 허위이며, 허풍 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하라고 하면 뒤섞임이 있습니다. 본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은 진심으로 하고, 하나님 집의 일은 형식적으로 하고, 흐리멍덩하게 대충대충 해서 속입니다. 결국 자신의 일은 확실하게 잘 처리했지만, 하나님 집에서 부탁한 일은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그럼 그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친 것입니까? 그럼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복 받으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크고, 복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따르며, 복을 받고 국도에 들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분을 좀 하는데, 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진지하게 이 일을 따지고 들면 더 이상 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본분하고 봉헌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또 더 많이 화비하고, 고생을 하라고 하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많이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지금 당장 저에게 10만 불만 준다면 열심히 뛰어다니며 본분을 할 것입니다. 제 주머니에 금덩이 한 조각을 넣어 준다면 매일 땀 흘리며 본분을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사람은 물질의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합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 본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500불을 주면서 “일을 괜찮게 했으니 상으로 드립니다. 더 잘하세요.”라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요? 그 외 대다수 사람들은 소극적이 되어 “왜 그 사람한테만 줍니까? 공평하지 못해요!”라고 하면서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본분을 할 수 있었는데, 상을 주니 오히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사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지금 다 억지로 본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유혹도 이겨 내지 못하고, 조그마한 공격도 이겨 내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변고나 조그마한 공격, 위험이 있어도 줄행랑을 놓을 텐데, 간증을 굳게 서서 진정한 이긴 자가 될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봅시다. 외국에서 경찰이 본분을 하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체포하거나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교계 사람들에게 잡혀가 한바탕 혹독하게 두들겨 맞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소극적이 될까요 아니면 더욱 힘이 생길까요? 굳게 설 수 있을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해외로 도피한 건 바로 감옥살이의 고통을 덜기 위한 거였습니다. 근데 왜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저는 본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이긴 자의 간증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지금 사람들의 믿음은 기준에 도달했습니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너무 작습니다! “반드시 내 말의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각 방면의 진리를 발표하셨겠습니까? 사람에게 베풀어 주어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새 생명과 영적인 생명을 베풀어 주시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에 다 완전히 진입하고, 자신의 진실한 간증을 설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된 사람만이 참된 이긴 자입니다. 참된 이긴 자는 다시 각종 시련이 임할지라도, 누가 체포되고 누가 해를 입어 목숨을 잃었을지라도 연약해지지 않고, 소극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하면서 계속 화비할 수 있고,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본분을 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면서 그 어떤 인사물의 구속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이긴 자의 간증입니다!

계속 말씀 읽겠습니다. “내가 말을 할 때, 사람은 모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음성을 그쳤을 때, 사람은 또 자신의 ‘경영’을 시작하였고, 내 말이 그의 ‘경영’의 부속물인 듯,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것은 어떤 정형입니까? 이것은 사람을 드러낸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귀담아듣고 온 정신을 가다듬지만,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지 않으실 때, 사람은 또 자기의 경영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영을 시작한다”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자신의 비뚠 길을 계속 가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시하고 추구하던 것을 그대로 하며, 자신이 추구하던 지위와 명리를 그대로 추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던 세상을 그대로 추구하며, 감정에 휘둘려 살던 그대로 계속 나아가면서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태도로 대하는데, 진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이면 경력해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경력하고 실행하게 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마지막에 하나님 말씀에 대해 참된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리가 확실히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고, 사람이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이 아니라 마땅히 얻어야 할 생명이라고 느끼게 되며, 이 생명을 얻지 못하면 사람이 멸망된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 전 인류에게는 생명이 없고, 육체의 생명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짐승의 생명과 같아서 한 차례 재난만 오면 다 멸망됩니다. 어떤 사람은 운전하다가 ‘꽝’ 하고 차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어떤 사람은 운전할 때 코너를 제대로 돌지 못해서 ‘꽝’ 하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데, 육체의 생명은 동물의 목숨처럼 그렇게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진리를 발표하여 사람에게 새 생명과 영적인 생명, 더구나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시려고 하는데,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마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람이 보배를 압니까? 사람은 보배를 모릅니다. 예수님이 예를 하나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것이 사람에게 있어야 할 마음 상태입니다. 그럼 이 비유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그 비유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해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실 때 사람이 그 생명의 소중함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깨우쳐 주셔서 보배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의 이 말씀은 바로 영생의 도이고, 이 영생의 도를 얻으면 영원히 죽지 않으며, 인류를 훼멸하는 대재난이 임할 때에도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살아남게 하시면 그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이런 진리는 다 사람됨의 진리이고, 영원한 생명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으며, 마지막에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면, 이 영생의 도를 얻은 것입니다. 언젠가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면 바로 영생의 도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이 갖가지 무술을 배워서 어떤 효과와 경지에 도달합니까? 몸에 병이 없고, 아주 건강해지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 누구도 그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효과는 가져올 수 있지만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까? 전쟁이 오면 총알 한 방에 목숨을 잃고, 온역이 오면 온역에 목숨을 잃고, 지진이 오면 지진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 어떤 무술을 할 줄 안다 해도 쓸모없고, 재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술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습니까? 더 오래 사는 걸 못 봤습니다. 무술을 잘 배웠다고 해서 120~130세, 130~140세까지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의 장수 노인들이 다 무술을 배웠던 사람입니까? 정말 장수하는 사람들은 무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생의 도를 얻는 사람은 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마지막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럼 무술을 배우는 데에 공력을 많이 허비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큰 공력을 허비하겠습니까? 평생의 공력입니다. 10살 정도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단련해야 하는데, 70~80살까지 계속 단련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2~30년 단련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됩니다. 그렇지만 계속 단련하지 않으면 했던 것도 사라지고, 쉽게 잃게 되기 때문에 유지해야 되고, 계속 단련해야 됩니다. 하지만 늙을 때까지 단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예가 사라진 것 같고, 몸 각 부위의 기관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때 가면 배웠던 무예가 쓸모없게 되고,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게 되며, 다른 사람과 과감하게 무예를 겨루지도 못합니다. 무예가 폐기된 후에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게 됩니다. 무술을 배우는 사람을 보면 그 당시는 몸이 건강하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무술을 배우는 그 대가와 시간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면 어떻겠습니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지 않겠습니까? 당연합니다. 그 사람들도 한평생 배우는데, 우리도 한평생 이런 진리와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진리와 생명을 얻었을 때는 무술을 배우지 않아도 몸이 좋아지고, 아무런 병도 없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찬미한다면 생기가 넘치고, 사람 안의 생명이 일정한 효과에 도달해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어 마치 우주의 모든 비밀을 본 것과 같죠. 생기가 넘치게 되면 사람은 자연히 젊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삼을 자주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은 다 인삼을 먹을 것입니다. 인삼은 먹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인삼이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생기가 넘치고, 생명력이 있게 하는 것은 진리이며, 진리가 바로 가장 좋은 약입니다. 사람이 일단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여 생명이 되게 할 때, 그 힘은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