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4집 (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 대한 설교 교통

【124-B-4】

각 부분에서 자신의 몫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지금 분명하게 아시겠죠? 바로 각 방면의 진리 실제에 모두 진입해서 자신의 몫이 되고, 진실한 생명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의 영적 생명이 자라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데, 깨달은 진리가 많을수록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이 실제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이 실제가 많아지면 바로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진정한 사람이죠. 사람이 하나님의 각 방면의 진리에 다 진입하지 못하고, 경력하지 못하고, 자신의 몫을 세우는 진실한 간증을 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생명이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없다고 얘기합니다. 왜 생명이 없습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알고, 진리도 잘 교통합니다. 마치 어느 방면의 진리에서든지 다 자신이 세운 그 몫, 자신이 깨달은 그 몫, 자신의 그 몫의 간증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의 진리 실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입으로 말은 잘하지만 그 실제를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완전히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은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이 글귀 도리는 잘 말하고, 말재주도 저보다 훨씬 좋고, 정말 말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는데, 왜 도태되었습니까? 왜 서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아는 것은 다 글귀 도리이지, 전혀 진리 실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의 각 부분에서, 하나님이 발표하신 각 방면의 진리에서 자신의 그 몫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 드러나고 도태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스스로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글귀 도리는 말할 줄 아는데, 교회에서 말을 제일 못하는 사람을 보세요. 그 사람에게 권면의 말과 도리적인 말을 하라고 하면 그도 적지 않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의 말재주는 누구나 다 좋고, 다 잘합니다. 그런데 왜 본분만 하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까? 왜 사역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글귀 도리나 영적 이론은 많이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왜 오히려 본분 하나도 잘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습니까? 생명이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없으면 영원히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하지 못합니다. 글귀 도리를 얼마나 알고 말할 줄 안다고 해서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더욱이 진리와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알아들으셨죠? 그러면 그 구절을 자세히 말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진리 실제가 있다면 하나님 말씀의 어느 구절이 이미 생명의 일부가 되었는지 말해 보세요. 이 문제는 대답하기가 쉽습니까? 어느 구절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고 인식하여 우리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되었고, 어느 구절의 말씀과 어느 항목의 진리가 생존의 토대가 되었습니까? 이런 간증이 있습니까? 글귀 도리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20가지 진리 점검 문제를 내려보낸 지 몇 개월 되었는데,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감감무소식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평소 설교할 땐 아주 능숙하게 잘하더니 20가지에 답하라고 하니, 왜 말이 없습니까? 그런 말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런 사람이 한 그런 말 중에서 1/10이나 1/100을 내놓아도 이 몇 가지 문제에 답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 아닙니까?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에게 내려보낸 문제에 깊이가 있습니까? 거짓 인솔자들이 말하는 영적 도리에 비해 깊습니까? 왜 말이 없습니까? 중요한 부분을 말할 때면 할 말이 없고, 바깥 일을 말할 때면 말을 하는데, 실제적으로 교통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자세히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글귀 도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를 말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을 나와 바꾸려 하지 않고, 다만 자신 수중의 폐품을 내 앞에 가지고 와서 알짱거리며 나를 만족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할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현 상태에 만족하시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요구하시는데, 사람은 폐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 어슬렁거리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폐품’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하나는 글귀 도리이고, 또 뭐가 있습니까? 생명 경력 간증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런 간증만 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또 저를 징계하신 적도 있어요. 하나님은 저한테 얼마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얼마의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이런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증명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뭐라고 하실까요? 폐품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어슬렁거리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당신에게 생명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그 폐품을 꺼내 들고 “나한테 생명이 없는지 보세요! 이렇게 많은 경력과 간증이 있는데, 나한테 생명이 없다뇨?”라고 하는데, 아주 당당합니다.

아래에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혐오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탐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 거기에서 벗어나 나에게 마음을 바치지 못한다.”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혐오한다.” ‘공헌’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공헌이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복음 확장에 대해 진실한 공헌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다면 이것이 공헌입니다. 베풀고 봉헌하는 것도 그 안에 포함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집에 베풀고, 중요한 사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진실한 공헌이 있고, 진실한 화비(역주: 헌신, 소비)도 있으며, 어떤 본분을 하면서 공헌하고 성과도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 확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런 것은 바로 공헌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이방인들이 말하는 공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시대에 적을 얼마 죽이고, 어느 전투에서 승리하여 얼마나 많은 적장의 목을 베었는지, 이것은 다 전쟁에서의 공헌입니다. 공을 세운 것인데, 특등 공로자, 일등 공로자, 이등 공로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에서의 공헌도 있습니다. 발명품 하나를 만들어 과학적 성과가 있고, 한 항목의 과학 실험을 해서 어떤 것을 발명해 인류의 건강에 어떤 공헌을 하는데, 이것이 이방인들의 공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복음 확장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는 것에 대해 공헌하는 것인데, 이런 공헌은 사람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선행이고, 가장 바람직한 선행입니다. 사람이 가장 좋은 선행을 예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나는 사람이 공헌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공헌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토색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토색하는 것을 혐오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토색한다면 이러한 본심은 불량한 것인데, 우리의 공헌도 참되지 못하며, 거래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토색이 없고 공헌만 있다면 이런 사람은 진실한 믿음이 있고,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공헌만 있고 토색이 없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사랑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축복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 집의 복음 확장에서 주요 역할과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사역 가운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사역을 유지하고 독촉하고 이끌면서 직접 애로 사항을 해결하고 문제를 해결해 하나님 집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한다면, 이런 것은 다 공헌에 속합니다. 그러면 공헌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누가 책임지고 누가 이끌든지 나는 건성으로 하고 속일 거야. 뭐라고 말해도 나는 나대로 할 거야.”라고 합니다. 결국 아무리 오래 해도 뚜렷한 효과가 없는데, 이 사역은 그 사람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공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재촉하면 조금 하고, 재촉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데, 아무런 공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기에 소질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책임지고 리더 역할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책임을 맡으라고 하고 지위를 줘도 괜찮지만 리더 역할은 못해. 그냥 지위만 주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고 지위를 차지하게 하면 “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사역을 넘겨 받지만 실제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지위의 복만 누리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토색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공헌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아주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습니까?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을 거면 왜 그 지위를 넘겨 받고 그 본분과 책임을 떠맡았습니까? 그런 사람은 맡은 후에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본심이 불량하고,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고, 인격이 비천하여 신뢰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