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의 교통 설교

목차

124집 (b)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9편 말씀>에 대한 설교 교통

【124-B-2】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 <제19편 말씀>에서 주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까? 주로 하나님께서 말세 역사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으로 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려고 하십니까? 간단히 말해, 바로 한 무리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럼 이긴 자란 어떤 것을 말할까요? 아마 어떤 사람은 잘 몰라서 “이긴 자가 어떤 건가요? 이긴 자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한 가지 논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긴 자란 진정으로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고 마지막에 간증을 선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맞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 가운데서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긴 자입니다.”라고 합니다. 다 맞습니다. 다 맞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실한 경력과 진실한 간증도 있어야 합니다. 이는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말하든 저는 하나님을 따를 것이고, 끝까지 견지하리라고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이러면 이긴 자가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어떤 사람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왜 틀렸습니까?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는지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그 심지(心志)가 다 크지만 시련이 임하면 또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잡혀서 하룻밤 사이에 유다가 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유다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들인 심혈 대가와 그렇게 컸던 심지가 하룻밤 사이에 모두 사라졌는데, 마치 수증기처럼 날아갔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진리 실제가 없으면 굳게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시련이 임했을 때, 심지가 있다고 효과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욥은 시련이 임했을 때 어떻게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말해 보겠습니까? 그가 온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그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원인뿐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 이 한 마디 말이 바로 욥의 생명인 것입니다. 욥이 여러 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이런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만 있는 역대의 성도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욥과 같은 간증을 설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너무나 귀합니다. 그럼 이긴 자의 생명은 무슨 생명이겠습니까? 바로 욥의 생명인데,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생명입니다. 사람이 이런 생명을 얻어 그 생명이 마음속에서 형성되고 자라나게 되면 바로 이긴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명이 없다면, 겉으로 심지가 아무리 크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고 해도 굳게 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큰 붉은 용의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감옥에서 결국 유다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은 평상시 흐리멍덩하게 믿은 게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일부 사람은 그렇다고 하지만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소수의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인성도 정말 좋으며,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얻기 전에는 모두 나약해서 시련이 임하기만 하면 이겨 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긴 자의 생명이 무엇이고, 간증이 무엇인지,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의 심지와 믿음으로는 간증을 서려고 해도 불가능하며 간증을 선다고 보장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난이 임하지 않았을 때는 믿음이 가득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고통을 어느 정도 받아도 물러가지 않았는데, 시련이 임하자 왜 주저앉았겠습니까? 왜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본분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왜 소극적이 되고 나태해지겠습니까? 왜 하던 본분에서 손을 떼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생명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명이 없는 사람은 이렇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시련과 환난이 임하기만 하면 소극적이 되고, 비관하고, 실망하는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겠습니까?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말은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왜 큰 붉은 용을 멸하시지 않습니까? 큰 붉은 용을 멸하시면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와 마귀들은 왜 여전히 이렇게 창궐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고 정죄합니까? 하나님은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의문은 사람마다 갖고 있는데, 이는 무엇을 설명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지금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모두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이스라엘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 네 글자는 바로 하나님 선민의 대명사입니다! 세상의 많은 나라가 모두 일어나 이스라엘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정죄하며, 심지어 군대를 파견해 이스라엘을 지구에서 훼멸하려고 할 때 곧 하나님의 행사가 보여질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선민에게 가장 큰 환난이 임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이 낙담하고 실망해서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모든 행사를 다 나타낸 후에야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온 인류를 향해 그분의 행사를 나타내 모든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게 하실 겁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도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게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세상 끝 날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건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땅을 향해서는 모습을 감추시고, 거룩한 나라를 향해서는 모습을 나타내시는데, 사악한 세상과 사악한 인류에게는 그분의 행사와 성품만 나타내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많은 나라의 정죄와 비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출병까지 하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기에, 이스라엘 족속은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최후 결전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겠습니까? 바로 여러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모든 사람이 보고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은 확실히 참 하나님이다!”라고 하면서 무너질 것입니다. 철저히 무너지고, 이를 갈고 애곡하며 죽어서 묻힐 곳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세는 그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갈수록 더 악화되고,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심각해지는 형세하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구원해 주실까? 이렇게 가다간 우리도 사악한 인류에게 훼멸당하지 않을까?’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밤낮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을 하신 이후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사악한 세력이 갈수록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이 그렇게 미쳐 날뛰고 있는데, 하나님은 왜 그들을 멸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실까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이런 일에는 두 가지 방면의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둘째는 필연적인 추세인 것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악한 무리들이 그렇게 미쳐 날뛰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도록 허락하셨겠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만약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세력이 미쳐 날뛰면서 정죄하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세력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적그리스도의 실질을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인류가 깊이 패괴되어 사탄의 후손이 된 사실의 진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악한 세력의 실질과 진상을 철저히 드러내 사람에게 보여 주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입니다. 만약 이런 일들을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 주지 않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지 않고, 언젠가 재난이 임할 때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을 모두 멸해 버린다면, 사람에게 어떤 관념이 생길까요? 사람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안 하셔. 하나님을 믿는 교계를 모두 멸하시다니,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이 그렇게 미친 듯이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들을 꿰뚫어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길 것이며, 심지어 그들을 위해 대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마귀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모두 하나님께 훼멸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사람들은 “맞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날 믿지 않는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죽으면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 아닙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모두가 하나님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바로 이런 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종 마귀 사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선민을 대하는지를 드러내 빛 가운데 폭로해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최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기뻐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지 않겠습니까? 꼭 그럴 것입니다.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본성인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조금만 관념이 있어도 거역하고 대적하며, 조금만 사람의 뜻에 맞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 하나님을 진실로 찬미하지 않습니다. 이 패괴된 인류의 본성을 사람 스스로는 꿰뚫어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꿰뚫어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에 사람의 뜻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모든 이슬람 교도들이 이스라엘을 정죄하고 반대하고 공격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르면 각 나라에 흩어져 떠돌게 하고, 돌아갈 나라가 없고, 돌아갈 집이 없게 하여 갖은 고생을 다 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최종 목적은 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가 연합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는 바로 하나님의 행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를 발하여 여러 나라를 징벌하시고, 여러 나라의 군인들을 모두 훼멸하실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최후의 시각이 아니면 하나님은 행사를 나타내시지 않고,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과 어느 나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손을 쓰시는데, 사람들이 “손을 쓸 때가 되면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최후의 시각,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니면 하나님은 손을 쓰시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고, 이것 또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이 추적하면 두려워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 맞을까? 하나님이 나를 구해 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그것을 멸하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다 이런 연약한 면이 있고, 이런 경력이 있으며,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시지만 손을 써야 할 때는 손을 쓰시고, 손을 쓸 필요가 없으면 손을 쓰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생사의 고비에 직면했을 때는 종종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습니다. 생사존망의 때가 되지 않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직 한순간이 남아 있기만 해도 하나님은 손을 쓰시지 않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보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