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7

(2)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원천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너희는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말의 진정한 함의에 대해 일부분의 요해(了解): 인식하다.가 생겼는가? (예.) 내가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이 제목을 말할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즉시 하나님은 진리이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공급하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는 이 정도까지만 생각하였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매일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것은 공급이라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정상적으로 생존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는데,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도가 아주 명확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인류의 이 생존 환경을 지켜 주고 또한 이 인류의 생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공급해 주기도 하며 더욱이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주재하여 인류가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정상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유에게 공급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인식하고 요해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화제는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 자신에 대해 아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알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일용할 양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까요.’ 이 말이 맞는가? (틀립니다.) 어디가 틀렸는가?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만 인식하면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역사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형벌 심판만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일부분 성품만 알고 하나님의 일부분 권병만 요해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이 말이 맞는가? (틀립니다.) 왜 틀렸는가? (너무 편면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 해도 조금은 허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각 방면의 역사에다 우리들이 볼 수 있고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만물, 산천, 호수, 씨앗, 햇빛, 이슬 등을 더하여 인식하면 우리들의 인식은 아주 실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철이 들고부터 이런 것들을 다 보아 왔기에 아주 실제적이라고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만유를 창조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행사는 지금까지 없었던 때가 없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유가 단지 하나님이 일부 사람을 택하여 그들에게 사역함으로 그들을 구원하려 하기 때문이고, 그 외의 일들은 하나님과 무관하고, 하나님의 권병과 무관하고, 하나님의 신분과 무관하고, 하나님의 행사와 무관하다고 한다면 그것을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를 편면적으로 어떤 한 무리 사람들에게만 국한시킨다면 그것을 근시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참된 인식인가? 사람의 그런 인식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재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이 일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으며 속으로 ‘하나님께서 만유를 주재하시는 걸 난 본 적도 없고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라서 알고 싶지도 않아,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게 있으면 하시겠지, 나랑은 상관없어. 난 그냥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구원만 받으면 돼. 난 이런 것에만 신경 쓸 거야. 다른 건 알고 싶지도 않고 상관하고 싶지도 않아.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신 법칙이나 하나님께서 만유에게 어떻게 공급하시고 인류에게 어떻게 공급하시는지는 나와 상관없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대역무도한 것이 아닌가? 너희들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너희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다. 너희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교조주의자’들은 자신의 소위 영적인 관점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성경 속에 제한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제한하고 이런 글 표면의 도리에 제한할 생각만 하며, 하나님을 더 많이 알려고 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이 마음을 더 많이 기울여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매우 유치하고 또한 아주 종교적이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알기 매우 어렵다. 오늘 내가 말한 이 두 이야기와 이 두 가지 방면에 대해 처음 듣고 막 접촉했을 때, 너희는 그것들이 좀 심오하다거나 혹은 조금 추상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또 알기 쉽지 않다고 느꼈을지도 모르며, 더욱이 그것들이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결시키기 어렵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물 중에서, 인류 가운데서 무릇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이 하셨던 일은 사람마다, 즉 하나님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마다 마땅히 분명하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식으로 인해 너는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이 만유에게 공급하는 방식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사실이다는 것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되는데, 그것은 허황된 것이 아니고 전설도 아니며 막연한 것도 아니고 어떤 학설도 아니며 어떤 정신적인 의존도 아니라 진실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렇게 만유에게 공급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면서 그의 방식과 그의 리듬에 따라 만유와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에게 이런 법칙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만물은 하나님의 명정아래에서 각자의 직무와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인류를 위해, 인류의 생존 공간과 생존 환경을 위해 자신의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인류에게 이런 생존 환경이 없었다면 인류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다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며 단지 빈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금방 한 이야기를 다시 보도록 하자. 큰 산과 시냇물, 여기에서 큰 산의 역할은 무엇인가? 큰 산에는 만물이 번식하고 있어서 그 자체에 이미 존재 가치가 있다. 동시에 큰 산은 또 시냇물이 제멋대로 흐르지 못하게 가로막아 인류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바로 큰 산은 그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하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만물, 곧 나무와 풀 그리고 산속의 각종 식물과 동물이 번식하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큰 산은 또 시냇물을 위해 방향을 인도해 주고 시냇물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여 아주 자연스레 큰 산의 발아래에서 강으로 흘러들게 하고 모여서 바다를 이루게 한다. 이런 법칙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할 때 특별히 정해 놓은 안배이다. 큰 산과 광풍은 어떤가? 큰 산 자체도 바람이 필요하고 큰 산에 있는 생물에게도 바람을 불어 줄 필요가 있다. 동시에 큰 산은 광풍을 제약하여 함부로 휘몰아치지 못하게 한다. 이 법칙에 한 면으로는 큰 산의 직책이 있다. 큰 산의 직책, 이 법칙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인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것이다. 큰 산에게는 자신의 직책이 있고 광풍에게도 자신의 직책이 있다. 그럼 큰 산과 거센 파도는 어떤가? 큰 산의 존재가 없다면 물 자체에 흐르는 방향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물도 범람할 것이다. 큰 산은 큰 산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고, 바다도 바다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에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로 제약하고 있다. 큰 산은 바다를 제약하여 바다가 범람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터전을 보호하며 또한 바다로 하여금 바닷속의 만물을 양육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인가? (아닙니다.) 그 역시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것이다. 이 장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큰 산은 어디에 두고, 시냇물은 어디에서부터 흐르고, 광풍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까지 불며, 거센 파도가 얼마나 높이 칠지에 대한 이런 것은 하나님이 이미 다 정해 놓았는데, 여기에는 다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사이다. 지금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 중 어디에서나 다 볼 수 있지 않은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말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에게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법칙을 연구하라는 것인가? 사람에게 천문, 물리에 대해 취미를 가지라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감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 가운데서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임을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이 면을 인식할 수 있다면 네 마음속에 참으로 하나님의 주도적 지위를 확정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임을 확정할 수도 있다. 그럼 만물의 법칙과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도움이 됩니다.)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우선 네가 하나님의 이런 행사를 인식하게 될 때, 여전히 천문, 지리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여전히 의혹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연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였음을 확정하고 게다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일부 법칙들을 인식하게 된 후, 너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만유에게 공급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 이 ‘공급’은 어떤 의미상에서 말한 것인가 아니면 한 가지 특정된 환경하에서 말한 것인가? 하나님이 만유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아주 광범위한 의미상에서, 넓은 범위에서 말한 것이다, 그렇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만유와 볼 수 없는 만유를 받쳐 주고 관리하고 주재하며 또한 인류에게 필요한 이 생존 환경을 받쳐 주고 관리하고 주재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서, 인류에게 어떤 계절에 어떤 환경이 필요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예비해 주고, 어떤 공기와 온도가 인류의 생존에 적합하면 하나님은 역시 그렇게 관리하고 계신다. 이 모든 법칙은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고, 우연에서 온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행사에서 온 것이다. 이 모든 법칙의 근원과 만물의 생존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네가 믿든 믿지 않든, 네가 보았든 보지 못했든, 네가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이 사실은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만 믿으면서 하나님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나타내어 그들이 그의 존재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의 신분과 그의 확실한 존재도 요해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관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는 이 사실에 대해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며 더욱이 의심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또한 이 태도로 인해 그들이 여태껏 이 자연계의 법칙은 스스로 형성된 것이고, 자연계의 변천과 변화, 자연계의 일부 현상과 모든 법칙은 다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는지 상상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만유를 관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전제의 제한을 받아 사람은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고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도 단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국도시대에만 국한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행사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을 단지 하나님의 선민에게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이고, 이것 또한 사람을 매우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동시에 또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져다준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천지 만물에 그것의 자연 법칙과 자연적인 생존 법칙이 있고, 그것을 관리하고 공급하거나 유지하는 그 어떤 주재자는 없다고 믿고 있다. 설령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행사임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각 사람의 가장 큰 사각지대이다. 그러므로 내가 일단 성경이나 소위 영적 용어와 상관없는 일부 일들을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듣고는 귀찮아하고 지긋지긋해하며 불편을 느끼면서 그런 것은 영적 인물과 영적 일에서 벗어난 것 같다며 좋은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함에 있어서 비록 우리가 천문학을 말하지 않고 지리를 연구하지 않고 생물도 연구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만유에게 공급하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임을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공과(功課)이고 반드시 배워야 할 공과이다. 이것을 알았겠지? (네.)

방금 말한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너희에게 있어서 비록 이야기 내용이 좀 특별하고 이야기하는 방식과 표현하는 방식도 좀 특별하지만 나는 그저 간단한 말과 간단한 방식으로 너희가 더 깊은 것을 얻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뿐이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즉, 너희로 하여금 이런 작은 이야기 속에서, 이런 화면 속에서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하거나 믿게 하려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유한한 화면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행사를 보게 하고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목적이 너희에게서 언제 완전히 실현되어 효과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너희 개개인의 경력과 추구에 달렸다. 만일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이 점차적으로 너에게 더 깊은 일깨움을 주고, 너에게 강한 의식과 분명한 인식이 있게 하여 하나님의 진실한 행사와 점점 가까워지게 하는데, 거리가 없고 오차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네가 하나님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너에게 해는 없다. 그러니 너희가 그것을 정말 이야기로 보면 된다.

너희는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어떤 인식이라도 얻었는가? 말해 보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신 두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고 관리한다는 것을 진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지혜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속에서 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비할 바 없는 크나큰 사랑을 더욱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음, 이 두 가지 이야기와 지난번에 우리가 교통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는 서로 동떨어진 것인가? 필연적인 연계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어떤 연계가 있는가?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빈틈없이 안배하는 것을 보게 되지 않는가? 하나님이 한 모든 것과 하나님이 기울인 모든 마음과 생각은 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하나님의 애쓰시는 선한 마음을 아주 분명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해 놓은 공기를 바로 마시기만 하면 되고 사람이 먹는 채소와 과일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동쪽에서 서쪽까지 각지마다 그 지역의 산물이 있다. 서로 다른 지대에서 나는 농작물과 채소와 과일도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놓은 것이기에 인류는 안심하고 생활하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이다. 전체 환경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은 만물로 하여금 모두 함께 살아가며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 부딪치고 또 서로 의존하게 하며, 이런 방식으로, 이런 법칙으로 만물이 생존해 나가고 존재해 나가는 것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런 생존 환경에서 매우 안정되게, 매우 평안하게 성장할 수 있고,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렇게 계속 번성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런 자연환경을 균형되게 하는 것으로 인류의 생존을 보장한다. 만약 하나님이 주재하거나 주관하지 않는다면 이런 환경은 설령 하나님이 만든 것일지라도 그 누구도 그것을 지키면서 계속 균형되게 할 수 없고 인류의 생존도 보장하지 못한다. 보다시피, 하나님이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완벽하다! 만약 사람이 씨앗을 하나 만들어 흙 속에 묻는다면 발아할 수 있겠는가? 만약 사람이 나무를 한 그루 만들어 땅에 심는다면 수백 년이 지난다 해도 나뭇잎 하나 생기지 않는다. 사람은 아예 생명이 있는 씨앗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역주: 순종)하면서 살아야 한다. 어떤 곳에는 공기가 없는데, 그렇다면 그곳은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곳이다. 바로 하나님이 너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너는 그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에 대해서는 보호이고, 또 그런 것에는 모두 심오한 비밀이 있다. 이런 환경의 각 방면, 즉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의 길이, 넓이, 높이, 깊이 그리고 지구상에 구비된 이 모든 생물――산 것과 죽은 것은 다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놓았고 생각해 놓은 것이다. 왜 이런 것이 필요하고 왜 저런 것이 필요하지 않는지, 이런 것을 여기에 둔 것은 어떤 목적이고 저런 것을 저기에 둔 것은 또 어떤 목적인지,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이미 생각해 놓았기에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너무나 완벽하다!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늘 큰 산을 옮기려 하는데, 큰 산을 옮길 바에야 차라리 평원에 가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은가? 큰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큰 산 옆에서 사는가?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큰 산을 옮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거센 태풍과 거센 파도가 와 사람의 터전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보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그렇습니다.) 인류는 파괴할 줄밖에 모르고, 사탄은 사람을 선동해 파괴하게 하며, 마왕은 항상 큰일을 하고 기이한 일을 해서 자신을 내세우고 후세에 길이 빛나게 하려 한다. 그것들은 자신이 생존하는 유일한 환경마저도 잘 유지하지 못하면서 만물에게 공급하고 관리하려고 하는데, 참으로 너무나 무지하고 너무나 어리석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 하였는가?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는가?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만약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너희에게 방법이 있는가?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면 너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 이런 생존 상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인류의 탐욕과 파괴 때문이 아닌가?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는가? 만약 하나님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즉 하나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는 것,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에 대한 약탈과 참해를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내가 말한 이 방법은 간단하지 않은가? (간단합니다.) 간단하면서도 가능한 것이다. 간단하기는 간단한데, 일부분 사람에게는 가능하겠지만 이 지구상의 대부분 사람들에게도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지금 적어도 너희는 할 수 있지 않은가?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에 근거해 말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인식이 있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상황하에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꾸는 데는 그래도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려는 화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생존에 대해 책임지는 이상,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공급할 것이기에 설령 네가 사탄에게 파괴된 이런 생존 환경에서 병에 걸리거나 오염되거나 침해를 받았다 하더라도 다 괜찮다. 하나님은 너의 생명이 지속되도록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너는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가?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죽도록 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렇지?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만유의 생명의 근원임을 알아야 할 중요성을 조금 느꼈는가? 너희는 어떻게 느꼈는가? 너희가 좀 말해 보아라. (전에는 한 번도 산이랑, 바다랑, 호수를 하나님의 행사와 연관시켜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하나님의 교통을 듣고 보니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지혜가 모두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만드실 때는 모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었으며 만물은 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최종의 수혜자는 인류라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듣고 나서 특별히 새롭고 기묘하다고 느꼈고 하나님의 행사가 이토록 실제적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또한 실제 속에서, 저희의 일상생활 속에서, 저희가 접하는 만물 가운데서 사실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진실로 보았습니다.) 정말 보았다, 그렇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근거 없이 공급하는 것이 아니고 한마디 말씀으로 공급하고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일을 많이 하였는데, 심지어 너에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너에게 유익하다. 사람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만유 가운데서 태어나 만물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마치 식물이 내보내는 기체가 공기를 정화하고, 잘 정화된 그 공기를 사람이 마시면 사람에게 유익한 것과 같다. 어떤 식물은 사람에게 독성이 있다. 그럼 독성이 있는 그 식물은 다른 어떤 식물과 상극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지은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기묘함이다! 오늘 이 방면의 화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주로 사람과 만물이 서로 의존한다는 것과 사람이 만물을 떠날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님이 만물을 만든 중요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했다. 사람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사람에게 공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만약 너를 진공 속에 두면 너는 즉시 죽게 된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이다. 이것은 너에게 사람이 만물을 떠날 수 없음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어떤 태도로 만물을 대해야 하겠는가? (아껴야 합니다.) 아끼고 보호하며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파괴하지 말고 낭비하지 말며 제멋대로 변경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소제목만 교통하겠다. 너희는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고 잘 상고해 보아라! 다음에는 세부적인 것들을 말해 보자. 오늘의 예배는 여기까지 하자, 짜이찌엔!(再見)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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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요해(了解): 인식하다.

②명정(命定): 명하여 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