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하나님의 거룩 (2)

5. 사탄은 어떻게 사회 조류로 사람을 패괴시키는가

사회 조류는 지금에 와서야 있게 된 것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있게 된 것인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기 시작할 때부터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 조류는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 (옷차림과 치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늘 접하는 것이다. 옷차림과 치장, 최신 유행, 패션 트렌드,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또 어떤 것이 있는가? 사람이 흔히 말하는 사회의 일부 유행어는 포함되지 않는가? 사람이 지향하는 생활 방식은 포함되지 않는가? 사람이 좋아하는 유명 가수, 유명 배우, 사람이 읽기 좋아하는 잡지나 소설은 포함되지 않는가? (포함됩니다.) 너희가 보기엔 어느 방면의 조류가 사람을 시킬 수 있는가? 어느 방면의 조류가 너희에게 있어 가장 큰 유혹이 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40~50세, 50~60세, 70~80세가 되었는데, 이 나이에 무슨 조류를 따르겠습니까, 조류는 우리에게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는가? (안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스타를 쫓아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런 건 다 18~19세, 20여 세 아이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유행하는 옷도 입지 않아요, 다 멋쟁이들이나 하는 일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일들이 너희를 패괴시킬 수 있는가? (유행하는 말들입니다.) 그런 말들이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는가? 그럼 내가 한 가지를 말해 볼 테니, 맞는지 들어 보아라.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이것은 조류가 아닌가? 이것은 너희가 말한 패션이나 맛있는 먹거리, 그런 조류보다 강하지 않은가? (강합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이것은 사탄의 철학이다. 인류 사회의 어디에서나 이 한 마디는 아주 성행하기에 조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주입되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 받아들이지 않던 데로부터 받아들인 후에는 습관이 되어 예삿일이 되는데, 더 나아가 자신이 현실 생활을 접할 때, 점차적으로 이 말을 묵인하게 되고 이 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며, 마지막에는 그 말의 존재에 찬성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 과정이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이 아닌가? 아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너희는 이 말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인데, 사람마다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한 일,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겪은 모든 일에 근거하면 이 말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는 정도가 각기 다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 이 말을 얼마나 경력했든지 상관없이 이 말이 사람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효과는 무엇인가? (돈이 만능이라고 하면서 돈을 숭상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인류, 즉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너희를 포함해 각 사람마다 성정에서 유로되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무엇이라고 봐야 하는가? 돈을 숭상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이것을 없애 버리기 쉬운가? 쉽지 않겠지? 사탄이 사람을 아주 깊이 패괴시킨 것 같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이런 조류로 사람을 패괴시킨 것은 사람에게서 모두 어떻게 표현되는가? 너희는 이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고 하루도 생활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사람은 돈이 있는 만큼 지위도 있고 존귀하다고 보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기를 펴지 못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고, 기도 펴고, 큰소리도 칠 수 있고, 판을 치며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과 이런 조류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대가든 다 치르게 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과 인격을 잃게 되지 않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본분할 기회를 잃고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게 되지 않겠는가? 이런 것은 사람에게 손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이 한 마디로 이 정도까지 패괴시켰는데, 그 속셈이 음험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이 수단은 아주 악독하지 않은가? 이런 말이 유행하면 네가 처음에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데서 진리라고 여기는 데에 이르기까지 너는 그것에게 철저히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너도 어쩔 수 없이 이 한 마디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이 말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받았는가? 참 도(道)이고 진리인 줄 알면서도 추구할 힘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고난받으면서 이를 위해 바치기를 원치 않으며,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희생할지언정 끝까지 하나님께 대항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든, 어떻게 하시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크다고 깨닫든 여전히 자기 고집대로 이 말을 위해 대가를 치른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이미 너의 행위와 생각을 좌우하는데, 너는 이 말에 너의 운명이 좌우되기를 바랄지언정 그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치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이 말에 좌우되고 지배되는 것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켜 효과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패괴된 성정이 네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닌가? 네가 이렇게 하면 사탄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네.) 그러면 너는 사탄이 이렇게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을 보았는가? (못 봤습니다.) 보지 못했다. 느끼기는 했는가? (못 느꼈습니다.) 느끼지 못했다. 여기에서 너는 사탄의 사악함을 보았는가? (봤습니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또한 자신도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는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서 오는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그것을 끌어안고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의 지배에 맡기고 그것이 제멋대로 우롱하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에게 점점 더 깊게 패괴되어 간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위의 몇 가지 방식은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고 사람마다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이 몇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지식이 있고 과학적 이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각 사람은 다 전통문화의 계승자로서, 사탄이 가져다준 전통문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가고 있으며, 또한 사탄이 가져다준 사회 조류에 협력하고 있다. 사람은 사탄과 항상 관계가 밀접하여 시시각각 사탄이 하는 모든 것에 협력하고 있고 사탄이 가져다준 간사, 교만, 악독, 사악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람은 사탄의 이런 성정이 있게 된 후, 이 인류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행복하겠는가 아니면 비통하겠는가? (비통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모두 이런 것에 결박되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어떤 사람은 안경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지식 있어 보이고, 말할 때도 조곤조곤하고, 게다가 언변이 뛰어나고 말에는 이치도, 근거도 있다. 또 나이가 지긋해 여러 일에 경험이 많고, 경력도 꽤 많아 크고 작은 일에서 전후 관계를 말할 수 있고, 근거도 댈 수 있으며, 또한 체계적인 이론으로 이런 일의 진위와 이치도 평가할 줄 안다. 또한 사람이 보기에 그의 행위와 겉모습, 그리고 그의 됨됨이, 인격, 인성 등 각 방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이런 사람은 현재의 사회 조류에 특히 잘 영합하므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며,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다. 비록 나이는 많아도 여태껏 조류에 뒤떨어지려 하지 않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운다. 이런 사람의 겉모습은 흠잡을 데 없지만 마음속 실질은 오히려 사탄에게 완전히, 철저히 패괴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겉모습은 온유하고 우아하며, 지식도 있고 도덕과 규범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인격도 있으며, 게다가 젊은이들 못지않게 아는 것도 많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의 본성 실질은 오히려 사탄과 추호의 차이도 없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완전한 사탄의 표본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성과’이다. 나의 이 말이 너희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배운 지식, 장악한 과학, 이 사회 조류에 적응하기 위해 걷는 길은 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도구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그리하여 사람은 이런 완전한 사탄의 패괴된 성정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실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이런 것들은 겉으로 보기엔 어떤 흠도 잡을 데가 없는데, 그 원인은 사람의 행위가 비정상이 아니고, 각 사람마다 정상적으로 일하고 생활하며,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신문을 보고, 정상적으로 배우고 말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겉면의 도덕 규범을 좀 배워 문안할 줄 알고 예의를 중시하며, 인사치레할 줄 알고 사람을 잘 헤아릴 줄 알며, 타인에게 우호적이고 도와주며 베풀고, 혹은 시시콜콜 따지지 않고, 남의 덕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의 패괴 성정이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 그 실질은 사람이 겉면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실질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사람에게 공개한다 해도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는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 사람의 관념과 사상을 아주 철저히 점유한 까닭이다. 이런 점유와 패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가끔 있는 것도 아니라 언제 어디에나 다 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3~4년, 5~6년이 되었다 할지라도 사탄이 주입한 이런 사상과 관점을 계속 지키면서 보배로 여겨 내려놓지 못한다.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사악하고, 교만하고, 악독한 본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항상 서로 다투고, 따지며,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교만한 본성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만일 사탄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유교와 도교의 전통문화 같은 것이 좋은 것이고 긍정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화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왜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받아들이고도 함께 있으면 더욱 분열되는가?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 것들은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 사탄이 사람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사탄의 것들은 외적으로 얼마나 근사하고 위대하든,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과 사람에게 살아내게 하는 것은 다 교만한 것이고, 다 간사하고 사악한 본성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아무리 잘 위장할지라도, 지식이 아무리 풍부할지라도, 아무리 가정교육을 잘 받았을지라도 사탄에게 패괴된 자신의 성정을 덮어 감추기는 어렵다. 다시 말하면, 네가 그를 성인(聖人), 완벽한 사람, 천사로 여기든, 또 그를 얼마나 순결하다고 여기든, 그가 겉으로 얼마나 잘 포장하든, 그가 뒤에서 하는 생활과 그가 유로하는 성정의 실질은 다 무엇이겠는가? 틀림없이 전부 다 사탄의 사악한 본성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너희 주변에 있는,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좋은 사람, 혹은 이전에 생각했던 좋은 사람, 또는 네가 숭배했던 우상에 대해 너는 지금의 분량으로 어떻게 보는가? 우선 이런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 그가 성실한 사람인지, 사람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 볼 것인데, 그가 하는 말과 일이 사람에게 덕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을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유로하는 소위 선이나 사랑, 좋은 것은 다 무엇인가? 모두 거짓된 것이고 가식이다. 그 거짓의 배후에는 남에게 말하지 못할 사악한 목적이 있는데,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우상으로 여겨 숭배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너희는 분명히 보았는가? (분명히 보았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패괴시키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거기에 긍정적인 것들이 있는가? (없습니다.) 우선 사람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가? (모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위인이나 어떤 간행물이나 방송을 막론하고 그들이 말하는 그런 선과 악은 정확한 것인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인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이 한 가지 사건이나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가? (공정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있는가? (없습니다.) 이 세상과 이 인류는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진리의 기준에 따라 가늠하는가? (아닙니다.) 왜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가? 사람이 그렇게 많은 지식을 배우고 그렇게 많은 과학을 알았다면 사람의 능력은 커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마저도 분별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은 진리가 구비되지 않았고, 과학과 지식은 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사악하게 하고 패괴시켜 사람에게 진리도, 생명도, 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사탄이 사람을 이렇게 사악하게 하고 패괴시켰는데, 너는 사탄에게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인류에게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아마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이나 집 없는 사람을 구제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또 자선단체에서 선을 행하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것도 다 선행이 아닙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을 뭐라고 해야 하는가? 사탄은 각종 방식과 각종 학설로 사람을 패괴시킨다. 그것이 사람을 패괴시킨다는 것은 모호한 개념인가? 모호하지 않다. 그것도 실제적인 일을 얼마간 하지만 다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갖가지 외식하는 일과 혹세무민하는 일도 포함된다. 패괴된 인류도 사탄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이 사회에서 어떤 관점과 학설을 제창하고, 또 왕조마다, 시기마다 제창하여 사람에게 사상을 주입시킨다. 그런 사상과 학설이 사람 마음속에 점차 뿌리를 내리게 되면 사람은 나중에 그런 것에 따라 살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탄과 합하여 하나가 된 것이 아닌가? 사탄과 하나가 되면 최종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같게 되지 않겠는가? 이 일을 과감하게 인정하지 못하는구나. 그렇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사람이 곧 사탄이 되고 사람의 본성도 사탄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왜 사탄의 본성이 사악하다고 하는가? 이것은 그것이 일을 저지르고 유로한 것에서 해부하여 본성을 정한 것이지 근거 없이 사탄이 사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사탄이 사악하다는 말만 한다면 너희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너희는 속으로 ‘그건 말씀하실 필요도 없어요, 사탄은 원래 사악하니까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사탄의 어떤 면이 사악한가?”,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니까 사악한 것이죠.” 너희는 이렇게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세히 말해 주니, 너희는 사탄의 사악한 실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알게 됐습니다.) 사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 이렇게 알게 되었는데, 그럼 너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는가? 이것은 연관이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연관은 너희에게 상처가 되었는가? (아닙니다.) 너희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예.)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매우 큽니다.) 나는 이런 두리뭉실한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 구체적으로 말해 보아라. 이 ‘매우 크다’는 도대체 얼마만큼 큰 것인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개념이 마음속에서 이미 어느 정도 명확해졌습니다.) 음, 또 누가 보충하겠는가? 너희가 말해 보아라, 내가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이 방면의 실질을 교통함에 있어 사탄의 사악한 실질을 교통할 필요가 있는가? (있습니다.) 왜 필요한가? (사탄의 사악이 하나님의 거룩을 안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런가? 그 말은 절반만 맞다. 다시 말해, 사탄의 사악함이 없다면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맞다. 그러나 네가 만일 하나님의 거룩은 사탄의 사악이 안받침해 낸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옳은가? 네가 이렇게 변증법적으로 말한다면 이 말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다. 설령 하나님이 일을 하면서 유로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에게 있는 이런 실질은 원래 있는 것이고, 자연적인 유로이며, 하나님 자신이 고유한 것이고, 그대로 있었는데, 단지 사람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된 성정 안에서 살고 사탄의 패괴 실질 안에서 살면서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 거룩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 말해 보아라, 먼저 사탄의 사악한 실질에 대해 교통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몇 가지 방면을 교통했지만 사탄의 실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아마 이런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당신이 교통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내용인데, 어째서 계속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켰는지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사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이제 이런 의문이 해결되었는가?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하나님의 교통을 듣고 사악에 대해 분별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사악에 대한 분별과 정확한 정의가 있게 된 뒤에 사악의 구체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표현, 근원, 실질도 다 분명하게 보고 나서 다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말해야 비로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이고 그것이 바로 거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의식하거나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사탄의 사악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혹은 이 인류 가운데서 사람이 했던 어떤 일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일들은 거룩과 연관시킬 수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그릇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내가 사탄의 실질에 관하여 지금 이렇게 교통했는데, 그럼 너희는 최근 몇 년 동안의 경력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게 되었는가? 너희가 말해 보아라. 듣기 좋은 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다. 네 자신이 경력한 하나님의 거룩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뿐인가? 하나님의 사랑만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단편적이지 않은가? 단편적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사랑 외에 하나님께 또 다른 방면의 실질이 있는데, 너희는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은 명절, 풍속, 미신을 혐오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너는 하나님이 무엇을 혐오한다고만 말했는데,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혐오한다는 뜻인가? (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의 거룩에는 실제 내용은 없고 단지 혐오만 있는 것인가? 너희는 속으로 ‘하나님께서 이런 사악한 것들을 혐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추리가 아닌가? 그것은 일종의 추정과 판단이 아닌가? 너희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함에 있어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실제를 떠나는 것입니다.) 실제를 떠난 도리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이다. 또 있는가? (추리, 상상입니다.) 추리와 상상, 이것도 가장 기피해야 하는 한 가지이다. 왜 추리하거나 상상하지 말아야 하는가? 추리해 내고 상상해 낸 것은 정말 본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된 실질인가? (아닙니다.) 또 무엇을 기피해야 하는가? 듣기 좋은 단어를 나열해 하나님의 실질을 묘사하는 것을 기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풀려 과장하는 것이 아닌가? 허튼소리 하는 것이 아닌가? 추리하고 판단하는 것은 허튼소리 하는 것이고,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 말하는 것 역시 허튼소리 하는 것이다. 또 있는가? 근거 없이 찬미하는 것 역시 허튼소리 하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의 이런 허튼소리를 들으면 누림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누림이 없다는 말의 동의어는 무엇인가? (‘괴롭다’입니다.) 듣고 있으면 괴롭다! 하나님께서 한 무리 사람들을 인도하고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하는데, 이 무리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들어도 무슨 뜻인지 늘 알아듣지 못한다. “하나님은 좋은가?”라고 물으면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얼마나 좋은가?”라고 물으면 “아주 아주 좋아요!”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아주 아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묘사해 봐라.”라고 하면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아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허튼소리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허튼소리는 방금 너희가 “하나님께서 사탄의 패괴된 성정을 증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유사합니다.) 그럼 너희는 방금 허튼소리 한 것이 아닌가? 허튼소리 하는 것은 대부분 어디에서 오는가? (사탄에게서요.) 사탄에게서 온다. 허튼소리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의 무책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네.) 네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허튼소리를 하면 그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네가 지식을 배워 좀 추리할 줄 알고 논리를 안다고 다 써먹고, 또 여기에도 사용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까지 사용하는데, 하나님이 들으면 괴롭지 않겠는가? 너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알아가려고 한단 말인가?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대해 언급하면 반드시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인식한 만큼 말하고 솔직한 말을 하고 실제적인 것을 말해야지 겉치레로 말하거나 아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오는 것이다. 사탄은 성정이 교만하여 비행기 태워 주면 좋아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면 좋아한다. 인류가 배운 듣기 좋은 말을 한데 나열하여 안겨 줘야 흐뭇해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추어올리고 아첨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사람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마음대로 찬미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찬미와 아첨은 증오하고 아예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도 없이 함부로 하나님께 찬미하고 서원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아예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네가 인식하지 못했으면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인식했다면 실제적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에 어떤 실제 내용이 있는지, 너희는 구체적인 인식이 있는가? 지금은 함부로 허튼소리 못하겠지? 허튼소리 하지 않겠다고 입을 봉하고 있어도 안 된다, 그래도 인식은 조금 있지 않은가? 너희는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은 착실하게 대하는구나, 그렇지?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제가 패역을 유로할 때나 과오가 있을 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임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임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부합되지 않는 환경이 임했을 때, 이 방면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인도해 주셨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음, 이것은 경력 가운데서 본 것이다, 그렇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을 주재하신 것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켜 사람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 괴롭힘 속에서 살고 있다고 교통해 주셔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사역은 모두 거룩하다는 것을 진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통하신 내용에서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괴롭힘을 당해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아주 실제적이다. 그것은 참된 인식이다. 또 다른 인식이 있는가? (제가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전에 사탄이 했던 말과 사탄이 했던 일에 대해 교통해 주셨는데, 거기에서 사탄의 사악함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무엇은 먹을 수 있고 무엇은 먹을 수 없다고 알려 주신 말씀에서 유로된 것은 다 매우 깨끗하고 매우 직설적인 것이라고 교통해 주셨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점만 보충하겠습니다.) 응, 위의 몇 사람이 말한 것을 듣고 나서 너희는 누구의 말에 그나마 ‘아멘’이라 하겠는가? 누가 말하고 교통한 것이 오늘 우리가 교통한 화제와 가깝고 더욱 실제적인가? 마지막 자매가 교통한 것은 어떤가? (좋습니다.) 네가 그의 말에 아멘한다면 그가 한 어떤 말이 핵심을 찔렀는가? 직접적으로 말해 보아라, 아는 만큼 교통해 보아라, 틀려도 괜찮다. (금방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직설적이고 솔직하며 사탄처럼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보았습니다.) 응, 그것은 한 방면이다. 이 말을 너희들은 다 들었겠지? (네.) 그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가? (맞습니다.) 이 자매를 위해 박수를 쳐주자. 아주 좋다! 이 두 차례의 교통에서 너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수확이 있는 것 같구나. 하지만 아직 계속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가는 이 과제는 매우 깊어서 하루아침에 되거나 한두 마디 말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패괴된 성정의 여러 방면, 지식이나, 철학이나, 사람의 사상관점, 그리고 사람 자신의 여러 방면의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감에 있어 너무나 큰 장애물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런 화제를 들었을 때, 아마 어떤 것에는 이르지 못하고, 어떤 것은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것은 아예 실제와 연관시키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 너희의 인식을 좀 듣고 나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내가 교통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말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하나님 거룩의 실질을 인식하려는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가장 간단한 말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인식한 것을 형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 말은 아주 간단하고 또 내가 말한 적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며, 어떤 인상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이 말을 기억했는데, 이건 아주 좋다. 정말 괜찮다. 출발이 아주 좋다. 나는 너희가 깊다고 여기거나 이르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런 화제에 대해 너희들이 서로 많이 교통하기 바란다. 많이 교통해도 이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누군가 너희에게 많이 지도해 줄 것이다. 너희가 지금 이를 수 있는 이 부분만이라도 많이 교통하면, 교통할 때 성령이 역사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을 요해하고 인식하는 것은 각 사람의 생명 진입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 너희가 소홀히 하지 말고 또한 그것을 장난으로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함에 있어 기초 중의 기초이고 토대 중의 토대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글귀나 도리에서 살고 있다면 설령 사람이 소위 진리의 표면적인 말에 따라 행하면서 산다고 해도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믿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공백이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통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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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③안받침하다: 한 사물을 통해 다른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다.

④요해(了解): 알다 등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