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목차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하나님의 거룩 (1)

우리가 사탄을 논했으니 이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해 말해 보자.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 중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아주 적고 아주 간단하다. 그럼 우리 처음부터 말해 보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후부터 지금까지 인류를 이끌어 살아가게 하였다. 인류를 축복해 주신 것이든, 인류에게 율법이나 계명을 정해 주신 것이든, 각종 생활의 법칙을 정해 주신 것이든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 본심과 목적이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는가? 우선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아마 너희에게 있어서 꽤 범위가 크고 또한 빈말 같겠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행하신 그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을 이끌어 정상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사람에게 규례를 지키게 하든 아니면 율법을 지키게 하든 사람이 사탄을 경배하지 않고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또한 최초의 목적이었다. 시초에 사람이 아직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간단한 율법과 법칙, 각 방면의 규정들을 만들었는데, 그 규정의 말씀은 아주 간단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데, 그러면 그의 이런 마음은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다른 의도가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의 이런 목적은 정당하고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규정을 만드시든 하나님의 이런 모든 규정들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간에 도달하는 효과는 사람에게 있어 다 긍정적인 것이고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사심과 잡념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사람에 대해 어떤 다른 목적이나 혹은 사람의 어떤 것을 이용하려는 것이 있는가? 티끌만큼도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마음으로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뒤섞임이 없고 사심과 잡념이 없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람을 위한 것이며, 자신을 위한 목적은 없다. 그는 비록 사람에게 계획과 뜻을 두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행한 그 모든 것은 순전히 인류를 위한 것이며, 그가 행한 그 모든 것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인류가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럼 그런 마음은 귀하지 않은가? 그의 그런 귀한 마음을 너는 사탄에게서 티끌만큼이라도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사탄에게서는 티끌만큼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행한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자연적인 유로이다. 그럼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서 볼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그런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다 금고아처럼 각 사람의 머리에 씌우고 강제로 각 사람의 몸에 주입시켰는가? 이런 방식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가?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한 방면이다. 또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이 너희에게 하시는 역사 방식은 많다. 너희는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기만 하면 할 말을 잃는가? (권면하는 방식입니다.) 두 가지 방식을 말했다. 또 있는가? 위협하는 방식이 있는가? 너희에게 말을 빙빙 돌려 하는가? (아닙니다.)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너를 인도하였는가? (깨닫게 해 주시고 빛 비추어 주십니다.)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주며 너에게 그것은 진리에 부합되지 않으니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분명히 알려 준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런 역사 방식은 너에게 네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라고 느끼게 하는가?

하나님은 너무 높아 너에게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느끼게 하는가? 하나님과 네가 아주 친밀하여 거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이 너를 인도할 때, 하나님이 공급하고 도와주고 보살펴 줄 때, 너에게 하나님은 가까이할 만하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하나님의 따뜻함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의 패괴를 책망하거나 너의 패역을 심판하고 징계할 때는 또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 말씀의 책망이 있지 않은가? 환경이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로 징계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럼, 어느 정도까지 징계하는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입니다.) 징계하는 것이 사탄이 사람을 잔인하게 해하는 그 정도까지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는 온유함과 사랑이 있고, 섬세함과 사람에 대한 염려가 있고 특별히 기준이 있고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너에게 “넌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고 반드시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렬한 느낌을 줄 리가 없다. 하나님은 너에게 그렇게 강렬한 의식이나 느낌을 주어 너의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게 할 리가 전혀 없다. 더 나아가 네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너는 어떤 느낌이었는가? 네가 하나님의 권병과 위력을 느꼈을 때, 너는 어떤 느낌이었는가? 너는 하나님의 신성불가침을 느끼지 않았는가? 그때 너로 하여금 너와 하나님과의 거리를 느끼게 했는가? 하나님이 두렵다고 느끼게 하였는가? (아닙니다.) 느낀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이 행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얻게 된 느낌이 아닌가? 만약 사탄이 했다면 사람에게 그런 느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진리로, 그의 생명으로 끊임없이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 사람이 연약할 때, 사람이 소극적이 될 때도 하나님은 “소극적이 되지 마라. 왜 소극적이냐? 뭘 연약해? 연약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이렇게 연약하고 늘 소극적인데 살아서 뭣하냐? 죽고 말지!”라고 강압적으로 너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역할 리가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그렇게 할 권병이 없겠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였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실질, 즉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로 인한 것이다. 그가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람이 한두 마디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자랑하고 칭찬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 실질의 유로이다. 하나님의 그런 모든 역사 방식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게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애쓰는 선한 마음,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도달하려는 효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채택한 서로 다른 방식과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는지, 사람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는지를 포함한 하나님의 그런 모든 역사 방식에서, 하나님의 애쓰는 선한 마음에서 너는 그 어떤 사악함이나 간사함이 있는 것을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유로한 하나님의 모든 실질을 포함해 하나님이 행하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하나님이 생각한 것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이 거룩함을 사람은 인간 세상에서, 자신에게서 본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사람에게서, 사탄에게서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유일무이한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에게서 하신 것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신 것과 하나님이 사람을 일깨워 주고 권면하신 것을 포함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모든 것은 다 하나의 실질에서 온 것이고 다 하나님의 거룩에서 온 것이다. 만약 거룩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어떤 사람도 그를 대신해 이런 사역을 할 수 없다. 만약 이 사람들을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준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너희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지 너희는 생각해 보았는가? 너희가 여기에 온전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럼 너희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너희도 “저는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방자하고 뻔뻔스럽게 큰소리치며 하나님 앞에서 건들건들하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100% 그럴 수 있고 그러고도 남는다! 사람에 대한 사탄의 태도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본성은 하나님과 완전히 다르고 사탄의 실질은 하나님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게 한다. 사탄의 어떤 실질이 하나님의 거룩과 서로 대비되는가? (사악입니다.) 사탄의 사악한 본성이 하나님의 거룩과 서로 대비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런 유로가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을 대표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사람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사탄의 패괴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사탄의 생활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미 무엇이 거룩인지 모르고, 어떻게 거룩을 정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설령 네가 하나님의 거룩을 느낄 때일지라도 너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이라고 확실하게 정의할 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인식과의 차이이다.

사탄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 어떤 대표적인 특징이 있는가? 사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너희가 경력(역주: 체험)하는 가운데서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사탄은 늘 어떻게 하려고 하고 또 각 사람에게 어떻게 하려고 꾀한다. 사탄에게 특징이 하나 있는데, 너희는 아마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사탄이 두렵거나 혐오스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특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탄이 하는 모든 것은 사람을 잔인하게 해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이 일을 벌여 사람을 잔인하게 해하는 것인데, 사람을 어떻게 잔인하게 해하는가? 구체적인 표현과 자세한 내용이 있는가? (유인하고,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맞다. 이것은 몇 가지 측면의 표현이다. 또 있는가? (미혹합니다.) 미혹하고 공격하고 참소하는데, 이것도 맞다. 또 있는가? (거짓말합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사탄의 가장 큰 본성이다. 사탄은 늘 그렇게 하는데, 말주변이 뛰어나고 막힘이 없다. 또 있는가?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묘사하면 너희는 등골이 오싹해질 것인데, 이것은 너희를 겁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태도와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것이지만 반대로 사탄은 사람을 아끼는가? 아끼지 않는다. 사탄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사탄은 사람을 해하고 싶어 하고 사람을 해할 궁리만 한다. 그럼 그것이 사람을 해하려고 궁리할 때, 그것의 심정은 다급하지 않겠는가? (다급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에게 역사하는 데에 있어 사탄의 악독하고 사악한 본성을 잘 형용할 수 있는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 그것으로 너희에게 사탄의 혐오스러움을 진실로 느끼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이 각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모두 강압적으로 점유하고 들러붙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완전히 통제하고 사람을 잔인하게 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그런 목적과 야심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강압적으로 점유한다’는 무슨 뜻인가? 네가 원하는 상황에서인가 아니면 원치 않는 상황에서인가? 네가 아는 상황에서인가 아니면 모르는 상황에서인가? 네가 다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이다! 네가 분명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 짓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 전제도 없고 아무 배경도 없이 사탄은 네 주위를 맴돌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강압적으로 점유하고 들러붙어 너를 완전히 통제하고 너를 잔인하게 해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나님에게서 인류를 쟁탈하는 가장 전형적인 속셈과 표현이다. 이 말을 듣고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등골이 오싹해지고 마음속으로 겁이 납니다.) 역겹지 않은가? (역겹습니다.) 그럼 너희가 역겨움을 느낄 때 사탄이 뻔뻔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느껴집니다.) 너희가 사탄이 뻔뻔스럽다고 느낄 때, 늘 너희를 통제하려는 주변의 사람들과 지위와 이익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역겹게 느껴지지 않는가? (역겹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떤 방식으로 강압적으로 사람에게 들러붙고 사람을 점유하는지 너희는 분명히 아는가? ‘점유하다’와 ‘들러붙다’, 이 두 단어를 언급하면 듣기에 꺼림칙하고 또 역겹다. 그렇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네가 허락하지도 않았고 아직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사탄은 너에게 들러붙고 너를 점유하고 패괴시킨다. 너는 어떤 느낌이겠는가? 증오스럽지 않겠는가? 역겹지 않겠는가? 네가 사탄의 그런 행위에 대해 그렇게 증오하고 역겨워할 때, 반대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겠는가? (감격스럽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구해 주심에 감격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각, 너는 하나님께 너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주재하게 할 소망이나 심지가 있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배경에서 있게 된 것인가? 사탄이 강압적으로 점유하고 들러붙을까 봐 두려워하는 배경에서인가? 그런 마음 상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옳지 않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두려워할 게 없다. 그렇지? 네가 사탄의 사악한 실질을 알고 있을 때는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애쓰는 선한 마음 그리고 사람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더 정확한 이해가 있거나 혹은 그것을 보배롭게 여겨 사랑할 것이다. 사탄이 그렇게 가증스러운데도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과 너의 의지하려는 마음과 신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겠는가? 너는 사탄이 그렇게 너를 해하기 원하는가? 사탄의 사악함과 추악함을 보고 난 후,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보아라! 그러면 이제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는가?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제는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흠 없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은 유일무이하다’는 이런 칭호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그럴 만하십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만물 가운데서 오로지 하나님 자신만이 사람의 이런 인식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하나님 외에 또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단지 네가 유의하지 않을 때, 너를 약간 보살피고 배려하고 돌볼 뿐인가?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전부를 주었는데, 그 어떤 요구나 그 어떤 속셈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람에게 주었다. 진리로, 말씀으로, 그의 생명으로 사람을 이끌고 인도하여 사탄의 잔혹한 해를 멀리하고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멀리하게 하며,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고 똑똑히 보게 한다. 그러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는 진실한 것이 아닌가? 너희 각 사람이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이렇게 오래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것을 다시 회상해 보아라. 네가 느낀 것이 깊든 얕든, 그것은 너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네가 가장 먼저 얻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닌가? 생명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전에 너에게 일깨워 준 적이 있든 없든, 하나님이 너에게 그런 것들을 주고 난 후, 어떤 것으로 보답하고 갚으라고 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나님께도 너를 점유하려는 목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보좌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면 ‘보좌에 오르려고 하는’ 그런 것은 사탄이 ‘강압적으로 점유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고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려고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을 하나님의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되게 하려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려는 것과 사탄이 강압적으로 점유하고 들러붙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가? (사탄은 강박적인 것이고, 하나님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게 합니다) 사탄은 강박적으로 하게 하고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하게 한다. 이런 구별이 있지 않은가? 네가 원치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네가 원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하겠는가? (그래도 어느 정도 깨우쳐 주고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끝까지 원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강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얻어 뭐하겠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너를 점유해서 뭐하겠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는 이 말을 너희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이 일에서 하나님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늘 오해하고 또 “하나님은 늘 나를 점유하려고 하시는데, 나를 점유해서 뭘 하시려는 거지? 난 점유되고 싶지 않고 혼자 결정하고 싶어! 사탄이 사람을 점유하고 하나님도 사람을 점유하시면 그건 같잖아!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점유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어떤 구별이 있는가? 잘 생각해 보아라. (저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려는 것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말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경영 취지에 관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점유’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탄이 점거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점유된다면 사탄이 더는 점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점유한다’는 말은 마치 빈집이 있는데, 먼저 온 사람이 주인이 되고, 그 사람이 주인이 되면 나중에 온 사람은 주인이 될 수 없고 종이 되거나 전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그런 뜻인가? (그런 뜻이 좀 있습니다.) 또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며,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려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고 잔혹하게 해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네가 이해하는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또 다른 인식이나 깨달음이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한다는 것은 말씀으로 사람을 점유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의 생명으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한다’는 진실한 함의이다. 그렇지? 또 다르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은 진리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공급해 주어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사탄의 궤계에 빠지거나 사탄의 참해를 당하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은 사실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는 이 내용의 실제를 말하지 못했구나.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본래부터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너희에게 물어보자.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한다’는 것은 빈말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하는 것은 바로 네 마음에 들어가 거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너의 일언일행을 지배하는 것인가? 너에게 왼팔을 들라고 하면 네가 감히 오른팔을 들지 못하는 것인가? 너에게 앉으라고 하면 네가 감히 서지 못하는 것인가? 너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네가 감히 서쪽으로 가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의미의 점유를 말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사람에게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살아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경영하면서 사람에게 행한 사역이 지금 마지막 이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으로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살아내게 하려는 것인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보면 마치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해 사람의 마음속에 거하면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살면서 사람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사람을 지배하고 배치하여 사람에게 어디로 가라 하면 사람이 거기로 가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마치 각 사람이 다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성품을 구비한 것 같아 보이는데, 이렇게 말한다면 사람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행사를 시행할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말하는 ‘점유’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사유가 있고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유가 있고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은 상호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물어보자.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이런 모든 말씀과 진리는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 소유소시의 유로가 아닌가? (맞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하는 그런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고 구비해야 할 것인가? 잘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할 때, 무슨 원인으로 사람을 심판하는가? 그런 말씀은 어떻게 온 것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그런 말씀의 내용은 무엇인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사람의 패괴 성품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여 도달하는 효과는 하나님의 실질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점유하려는 것은 빈말인가? 확실히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그런 말씀을 했는가?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한 목적은 무엇인가? 그런 말씀으로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한 모든 진리로 사람의 생명을 만들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악에서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그 경지까지 도달했을 때,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욥과 베드로처럼, 그들이 길 끝까지 갔을 때, 그들의 생명이 성숙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게 되었을 때, 그래도 사탄이 그들을 데려갈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들을 점유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들러붙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이런 상황을 하나님 편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미 점유했다고 하는 것인데, 사람 편에서는 어떤 느낌이겠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병 그리고 하나님의 도(道)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사람의 모든 것을 점유하여 사람의 살아냄과 사람의 실질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도달한 느낌이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 시각 인류의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점유된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지금 너희는 이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나님의 영이 너를 점유한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너를 점유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도(道)이다. 즉,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이때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있지만 이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생명인데, 이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따랐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얻었든,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 말이 옳지 않은가? 설령 어느 날 하나님이 “너의 마음은 나에 의해 점유되었고 너는 내 생명을 구비하였다.”라고 말씀한다 해도 너는 네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느껴지겠는가? (아닙니다.) 그때면 너는 어떻게 바뀌겠는가?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인 순복이 있지 않겠는가? 너의 몸과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너에게 베풀어 준 생명으로 가득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하는 하나의 아주 정상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 하나님으로 될 수 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얻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사람이 하나님의 신분을 구비할 수 있겠는가? 그럼 하나님의 실질은 구비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은 사람이다. 너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도(道)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으로 구비되었을 뿐이지 영원히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조금 전의 화제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내가 너희에게 아브라함이 거룩하냐고 물어보았는데, 그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깨달았겠지? 욥은 거룩한가? (거룩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에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경력했고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구비했다 할지라도 영원히 사람을 거룩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이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점유한다’라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도(道) 그리고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기억하였구나. 그렇지? 나는 너희가 더 깊이 깨닫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은 “그러면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는 왜 거룩하지 않다고 합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문제를 너희는 어떻게 보는가? 아마 너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로봇이 하나 있는데, 네가 그것의 전원 스위치를 켜면 그것이 춤도 추고 말도 한다. 너는 그것이 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너는 그것이 귀엽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너는 그것이 생동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너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로봇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한다. 네가 전원 스위치를 끄면 그것이 계속 그런 동작을 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로봇이 움직일 때, 너는 그것이 생동감 있고 귀여운 것을 보고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 평가가 실제적인 평가이든 아니면 겉면의 평가이든 결론적으로 너는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전원 스위치를 끄면 그것이 어떤 성질인지 볼 수 있는가? 그것에게 어떤 본질이 구비되어 있는지 볼 수 있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즉, 그 로봇이 설령 움직일 수 있고 멈출 수 있다 해도 너는 로봇에게 ‘어떤 실질이 있다’라는 그런 말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닌가? 이런 말은 더 하지 않겠다. 너희가 그 의미를 대체적으로 알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교통하도록 하자. 짜이찌엔(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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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금고아: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금테.

② 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