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속편)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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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능(2)

4.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여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다

한 사람의 탄생은 외로운 영혼이 이 세상에 와서 인생을 경험하는 출발점이자 창조주의 설계에 따라 창조주의 권능을 경험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당연히 한 사람 또는 한 영혼이 창조주의 주재와 권능을 인지하고 창조주의 권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사람은 평생 동안 창조주가 설계해 놓은 운명 속에서 살아간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수십 년의 삶을 살아가면서 창조주의 주재를 인정하고 창조주의 권능을 인지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수십 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한 것임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느끼거나 정리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이러한 삶의 경험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마음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을 진정한 삶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목표와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또한 한 사람이 창조주를 경배하지 않거나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고 죽음에 직면할 때, 즉 영혼이 다시 창조주와 마주할 때 그 영혼은 더없는 공포와 불안에 떨게 될 것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하고 운명이 누구에 의해 좌우되는지도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 삶을 영위하면서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은 사람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며, 삶의 이유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 창조주의 주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의 권세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은 창조주가 사람을 만든 의미를 안다. 창조주를 경배해야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이 창조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이런 사람은, 삶은 창조주가 배치한 것이고 죽음은 창조주의 주재에 있으며 삶과 죽음 모두 창조주의 권능으로 정해져 있음을 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자연스레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편안히 내려놓게 된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반항하거나 극도의 두려움에 떨지 않고 곧 닥칠 모든 것을 흔쾌히 수용하고 이에 순종하며 창조주가 마련한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창조주의 권능을 알아가는 기회로 만들고, 또한 창조된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절호의 기회로 만든다면 분명히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창조주의 축복과 인도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의 빛 속에서 행하고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으며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또 창조주의 경이로운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창조주의 권능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분명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창조주에게 열납될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관문을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욥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관문을 흔쾌히 맞이하는 태도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순조롭게 인생의 길을 갔고 그의 삶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며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갔다.

5. 욥은 평생 동안 추구하고 얻은 것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성경은 욥에 대해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7)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욥은 어떠한 미련이나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욥은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한 사람이었다. 그의 의로운 행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후세에 기려졌다. 그는 인류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땅에서 하나님께 의인이라고 불렸다. 하나님이 준 시련을 받기도 했고 사탄의 시험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의인’이란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하나님을 굳게 증거했다. 하나님의 시련을 받는 수십 년 동안 그는 이전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으며, 더 성실하고 담담하게 살았다. 그는 의로운 행위 덕에 하나님이 준 시련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욥은 시련을 받은 후 수십 년 동안 삶의 가치와 창조주의 주재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창조주가 복을 베풀어 주는 것과 거두어 가는 것에 대해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욥에 대한 성경 기록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이전보다 더 축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욥이 창조주의 주재를 깨닫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욥은 나이를 먹고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재산에 대해 추호도 걱정하지 않았고 다른 근심거리도 없었다. 어떠한 미련도 없었고 당연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길을 갔기에 자신의 최후도 걱정하지 않았다. 현대인 중에 죽음을 앞두고 욥처럼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왜 겉보기에 쉬워 보이는데도 이런 자세를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다. 욥이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기를 추구하는 주관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상태에서 인생의 중요한 몇 개의 관문을 넘겼고, 자신의 노년을 보냈으며,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했다. 욥이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든 그의 추구와 인생 목표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행복한 것이었다. 그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조주의 축복이나 칭찬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추구와 인생 목표이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창조주의 주재를 조금씩 깨닫고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함과 동시에 그의 경이로운 행사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를 알아가면서 느끼는 따뜻함과 잊지 못할 경험, 마음 깊이 새겨진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뜻을 깨닫는 과정에서 위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주의 위대함, 경이로움, 사랑스러움, 신실함을 경험하여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욥이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평생 동안 추구하고 얻은 것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창조주가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에도 담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 없이 성결하게 창조주와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욥이 소유했던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너희들은 그런 행복을 소유할 조건을 갖추었느냐? 지금의 사람들이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욥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사람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포에 질려 덜덜 떠는 사람도 있다. 기절하는 사람,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사람, 심지어 대성통곡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행동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당혹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마음 깊은 곳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대해 제대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고 진심으로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계획하거나 통제하려 들고, 자신 스스로 운명과 생사를 결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여야 그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이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 운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주재하며, 사람이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숨을 거두기 전 끊임없이 유언을 남기고 걱정과 미련을 남긴다. 마음의 짐이 몹시 무겁고 원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과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고통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아쉬움과 근심 없이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하고 싶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미련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주의 주재와 권세를 깨닫고 창조주의 주재와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류의 다툼과 죄악, 사탄의 올무에서 멀어질 수 있다. 욥처럼 창조주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살 수 있고, 자유롭고 가치와 의미가 있는 정정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 욥처럼 창조주의 시련과 박탈,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할 수 있다. 욥처럼 평생 동안 창조주를 경배하여 창조주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욥처럼 창조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의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욥처럼 행복한 삶을 살다 고통이나 근심과 미련 없이 행복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며, 욥처럼 빛 속에서 지내며 빛 속에서 삶의 모든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빛 속에서 순조롭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즉,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깨달아 빛 속에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리하여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피조물로서 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주재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위의 여섯 가지 관문은 창조주가 모든 정상인을 위해 설계한, 일생을 살면서 거쳐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단계이다. 모든 관문은 현실적이고 사람이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의 예정과 창조주의 주재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모든 관문은 중요한 길목이 된다. 이러한 관문을 어떻게 하나씩 순조롭게 통과할 것인지는 지금 너희가 직면하게 되는 어려운 과제이다.

몇십 년의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20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간다. 이 나이대의 사람은 나이로 보면 성인이지만 인생과 운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면서 차츰 중년에 접어들게 된다. 3~40대가 되면 인생이나 운명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지만 이 나이대의 사람도 인생과 운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은 4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이 만든 인류와 천지 만물에 대해 알기 시작하며, 인생과 운명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오랫동안 따랐고 어느덧 중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거나 정의하지 못하고 그에게 진심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복받는 것에만 몰두하고 그 외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나이를 먹었어도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실제 공과에 전혀 진입하지 못했기에 어리석기 그지없고 평생을 헛되이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삶은 인생 경험과 운명에 대한 인식에 따라 약 세 단계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유년기, 즉 출생부터 중년 또는 태어나서 30세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성장기, 즉 중년부터 노년 또는 30세부터 60세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세 번째 단계는 성숙기, 즉 노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또는 60세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서 중년에 이를 때까지 운명과 삶에 대한 인식들을 보면, 대체로 실제에 부합되는 실용적인 내용 하나 없이, 그저 남의 말에 주관 없이 흔들리는 말잔치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인생관과 삶의 방식은 얄팍하고 유치하다. 이 시기가 바로 사람의 유년기이다. 사람은 삶의 온갖 고초를 겪은 후 운명을 실감하게 된다. 마음속 깊은 곳과 무의식 속에 운명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 잡고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실제로 주재한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사람의 성장기이다. 사람이 더 이상 운명에 맞서지 않고 분란을 피하며 하늘의 뜻을 따르고 자신의 일생의 공로와 잘못을 정리하며 창조주가 자신의 삶을 판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기가 있다. 바로 사람의 성숙기이다. 삶의 세 단계에 수반되는 다양한 경험과 성과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 사람의 수명이 60세라면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는 데 주어진 시간은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길게 살거나 100세까지 장수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삶의 법칙에 따라 보면 한 사람이 ‘창조주의 주재를 깨닫는다’라는 주제를 접하고 창조주의 주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또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성과를 얻는 데 주어진 시간은 3~40년에 불과하다. 사람은 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욕심에 눈이 멀어 삶의 근본이나 창조주의 주재를 알아야 할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로 인해 이 세상에서 인생과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하지 못하고,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인도를 직접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고 하나님이 사람의 최후를 조속히 배정하여 되도록 빨리 하나님의 참모습을 목격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대역무도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반대로 제한된 시간 동안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조주의 주재를 깨닫는 사람은 굉장히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품은 희망을 통해 각기 다른 관점과 추구하는 바가 드러났다. 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그의 주재를 알려고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생각도 없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은 타락과 파멸을 자초하는 부류이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권능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람의 선택은 부질없는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결정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고 그의 주재에 순종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지 않겠다고 한들 어쩌겠느냐? 하나님이 손해 보겠느냐?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지 않고 너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이다. 하루빨리 하나님과 협력하고 그의 배치에 따르며 그의 권능과 그가 행한 모든 것을 깨닫는 사람은 희망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삶을 헛되이 살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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