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비밀 4(하)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때 직접 영의 방식과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의 외형을 입지 않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채워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은 비로소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접촉할 수가 없어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힐 것이다. 첫 번째 성육신은 죄에서 사람을 속량했다. 이는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해 온 것,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존재했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 제물이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써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질 수 있다.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얻고 정결케 한 뒤에야 구원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는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는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창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를 공급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 직접 하늘에 간구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육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영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입은 육신뿐이다. 사람은 이 육신을 통해야만 모든 진리와 도를 깨닫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성육신은 사람의 죄를 충분히 벗겨 버릴 수 있고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한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가 두 번째의 성육신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끝났으며, 말세의 성육신을 통해 이미 그가 택한 사람들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모두 각기 부류대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사역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말세 사역에서 말씀의 위력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위력을 넘어섰으며, 말씀의 권병은 이적과 기사의 권병을 능가하였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모든 패괴 성품을 다 들추어냈다. 너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어도 말씀으로 들추어내면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의 권병 아니겠느냐? 이는 모두 오늘날의 말씀 사역으로 얻은 성과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할 수 없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만들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병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그친다. 하지만 사람의 육은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며,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남아 있다. 즉, 정결케 되지 못한 사람은 계속 죄에 속하고 더러움에 속한다. 오직 말씀으로 정결케 되어야만 하나님께 얻어지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고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은 그저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하나님께 돌려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패괴된 사람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더러움이 남아 있고 대적과 거역이 남아 있다. 다만 속량받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 속량받기 전에 이미 사탄의 많은 독소가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수천 년 동안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내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것은 그저 속량받은 것에 불과하다. 즉, 비싼 값을 치르고 사람을 사 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 내면에 있는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심판하고 형벌하는 이번 단계의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패괴된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주어진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말씀의 심판과 형벌, 연단으로 패괴를 벗겨 정결케 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구원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 이번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자 두 번째 구원 사역이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는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들춰내며,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개인적인 소망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은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러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여전히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이 모압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원망했고,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는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권세에 완전히 순종하지는 못한다는 뜻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패괴 성품 아니겠느냐? 너는 형벌받지 않았을 때 누구보다 높이 손을 들었다. 심지어 예수보다도 더 높이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겠습니다! 저희는 죽을지언정 사탄에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탄을 내치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저버리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무너뜨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도 크게 외쳤지만 결국 형벌 시대가 오자, 사람의 패괴 성품은 또 드러났다. 사람은 외치지도 않았고 의지도 없어졌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패괴로, 죄보다 더 깊고, 사탄이 사람 안에 심어 놓은,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들이다. 사람의 죄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본성을 사람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의 심판을 통해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그때부터 차츰 변화될 수 있다. 사람이 예전에 그렇게 외친 것은 모두 원래 가지고 있는 패괴 성품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 안에 있는 불순물이다. 오랜 심판과 형벌로 사람은 모두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다 말씀으로 이룬 것 아니더냐? 너는 봉사자가 되기 전까지 크게 외치지 않았더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됐어! 이 이름을 받아들인 자는 모두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거야! 누구나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 있다고!” 하지만 봉사자의 시련을 주자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어디에 두시든 저는 당신이 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누가 내 바울이냐?”라는 하나님 말씀을 봤을 때 그는 “제가 바울이 되겠습니다!”라고 했고, 또 “욥의 믿음이 어떠하냐?”라고 했을 때는 “제가 욥의 믿음을 갖추겠습니다. 저에게 시련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하지만 봉사자의 시련이 닥치자 그 즉시 쓰러져 일어서지도 못할 뻔했다. 그 후 사람 마음속의 불순물도 차츰 줄어들었다. 이것은 모두 말씀으로 이룬 것 아니더냐? 그러므로 오늘날 너희가 체험한 것은 모두 말씀으로 이룬 성과다. 그것은 심지어 예수가 지난날 이적과 기사를 나타냄으로써 얻은 성과보다도 크다.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병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병을 보았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기적을 보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며, 말씀의 심판은 더더욱 하나님의 권병을 대변하고 전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지금 도달한 것, 즉 지금 사람의 분량, 인식, 사랑, 충성심, 순종, 그리고 깨달음까지, 이 모든 것은 말씀의 심판으로 얻은 결실이다. 네가 충성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말씀을 통해 이룬 것이다. 이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확실히 평범하지 않으며, 많은 것들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고 비밀이고 또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순종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복종한 적이 없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완전히 승복하게 되어 더는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말씀 속에서 쓰러지고 말씀의 심판 아래 엎드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그 ‘음성’ 앞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 속에 엎드린 것처럼 말씀으로 사람을 폭로하지 않아도 모두 엎드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속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패괴를 깨달아 구원받는 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모든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전해 주어 귀 있는 자들이 다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말씀이 성과를 내는 것이지, 영으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 쓰러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옛 성품을 완전히 들추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고 변화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성육신의 실제적인 사역이다.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실제적으로 심판함으로써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 하나님의 권병이자 성육신의 의의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즉, 말씀으로 얻은 사역 성과를 나타내고 영이 육신에 왔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방식을 통해 그의 권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비록 육신은 평범한 정상 인성을 지닌 외형이지만, 말씀으로 얻은 성과를 통해 그가 권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 주며, 그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 선포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그가 하나님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 누구도 그를 범할 수 없고 그의 말씀의 심판을 뛰어넘을 수 없으며 어떤 흑암 세력도 그의 권병을 능가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람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과 그의 권병, 그리고 그의 말씀의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가져온 사역 또한 그가 지닌 권병이다. 성육신한 이유는 육신도 권병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여 사람이 보고 만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역은 모든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행하는 사역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성과도 뚜렷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병을 지니고 있지 않아 모두가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본질은 권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그의 권병을 볼 수 없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사역할 때도 그의 권병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실제적으로 사역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사역은 모두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가 권병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거스를 수 없는 그의 일면과 그의 진노를 알지 못할지라도 그는 은밀한 권병, 은밀한 진노, 공개적인 말씀을 통해 말씀의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모든 지혜로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모두 권병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이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이 이루어진다. 이것 역시 성육신의 또 다른 측면의 의의이다. 즉,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함이고, 말씀의 실제로 사람에게서 성과를 얻고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성육신을 통해 하지 않는다면 전혀 성과를 얻을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없다. 성육신하지 않은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육에 속한 피조물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는 서로 다르며, 그 성질 또한 달라서 하나님의 영과 육에 속한 사람은 전혀 맞는 구석이 없고, ‘수교’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창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며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이 올라 영이 될 수 없을뿐더러 지극히 낮추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 때처럼 말이다. 오직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속량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 제물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늘 위아래를 몇 번 왕복해야지’, 사람을 하늘로 올려 보내 구원받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이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올라가 속죄 제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사역을 친히 해야 했다. 매번의 성육신은 다 몹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중 한 단계라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수모를 감내하며 성육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수많은 비밀을 알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사역을 알게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지금까지 사람이 풀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되며, 역대 선지자와 사도가 한 사역과 사역의 원칙을 알게 된다. 또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과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사역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한 사역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품도 알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을 알게 된 것도 역시 말씀을 통해서이다. 과거에 네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깨닫고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예수의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지만 이번 단계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한 말씀은 역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을 능가한다. 선지자가 한 예언일지라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선지자가 한 말은 예언에 불과하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 당시 하나님이 하려고 했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것도 아니며, 또 사람에게 진리를 베푸는 것도 비밀을 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베풀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 단계에서 한 말씀에는 예언도 있고 진리도 있지만, 그 말씀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첫 단계 사역은 여호와의 사역이었다.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해 주는 것이었고, 땅에 사역의 발원지를 마련하기 위한 시작 사역이었다. 당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므로 첫 단계 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어야 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이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예언을 하게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예언을 했지만, 이는 그저 하나님 사역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첫 단계 사역에서는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으므로 선지자를 통해 각 나라와 족속을 효유했다.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말세에 하는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역대에 행한 적이 없다. 비록 이사야, 다니엘, 요한이 많은 예언을 했지만, 그들이 한 예언은 지금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말은 예언에 그쳤지만 지금 하는 말은 예언이 아니다. 내가 모든 말을 예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한 말이 모두 내가 떠난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말씀 사역은 예수 시대에 한 적이 없고, 율법시대에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난날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한편,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말씀이지만 말씀에도 차이가 있다. 여호와가 한 말씀의 본질은 무엇이더냐? 그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 그 말씀이 생명과 영적인 일에 관련되지는 않았다. 어째서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각 지역에 효유했다고 하겠느냐? ‘효유’라는 두 글자는 분명히 알리고 직접 지시한다는 뜻이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쳤을 뿐, 비유 같은 것도 없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사람을 책망하거나 징계한 것이 아니었고 심판하거나 형벌한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는 그저 인도하기만 했다. 여호와는 모세를 시켜 그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라고 일러 주면서 날마다 해 뜨기 전에 주워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까지 두면 썩어 버리니 그날 먹을 양만 넉넉히 거두라고 했다. 여호와는 사람을 꾸짖거나 사람의 본성을 들추어내지 않았고, 사람 내면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아 단순히 기계적인 행동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을 반포해 백성들을 이끌어 주기만 한 것이다.

복음을 확장하여 진심으로 찾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역을 알고 또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려면, 너는 반드시 하나님이 행한 각 단계 사역의 실상과 본질, 그리고 사역의 의의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네가 교제하는 것을 듣고 여호와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이해하고, 세 단계 사역 간의 연계성과 차이점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사람들이 모두 듣고 난 뒤 세 단계 사역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전부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그들이 각각 다른 시대에 사역했고, 사역 내용도 말씀도 다르지만, 사역의 원칙은 모두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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