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하)

아예 믿지도 않는 자녀와 친척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 사람들은 다 사심이 너무 많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 사람들은 사랑만 논하는데, 자녀와 친척이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의 뜻인지도 상관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아내를, 혹은 부모를 하나님 앞으로 끌어온다. 성령이 동의하는지, 성령이 역사하는지 관여치 않고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위해 ‘인재를 받아들인다’. 네가 믿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그 불신파들이 설사 마지못해 따를지라도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와 시련을 거치지 않고 도성육신한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을 거치지 않는다면 아예 온전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이 처음에 이름을 내걸고 따를 때부터 성령은 함께 하지 않았는데, 그 원인은 그들의 조건과 실제 *정형에 근거하면 그들이 전혀 온전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도 그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 없고 어떤 깨우침이나 인도도 하지 않으며, 다만 그들이 임의대로 따르게 내버려 두었다가 마지막에 그들의 결말을 드러내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열심과 사람의 뜻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성령이 역사하도록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든 간에 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모가 자녀를 아끼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람의 본심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모두 자신의 타산과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정말로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것인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인가?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될 대상이다. 사람이 그들을 아무리 사랑할지라도 성령의 역사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열심과 사랑은 사람의 뜻을 대표할 뿐, 결코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지 못한다. 설령 이름만 내걸고 믿는 그 사람들, 거짓으로 따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사람들에 대해 가장 큰 사랑이나 긍휼을 베풀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동정을 얻을 수 없고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만일 진심으로 따른다면 소질이 아주 낮아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 역사가 간혹 있다. 그러나 소질이 매우 뛰어날지라도 진심으로 믿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함께함이 아예 없는데, 이런 사람은 아예 구원의 여지가 없다. 설사 책을 보거나, 간혹 말씀을 듣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더라도 최종의 안식에 살아남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추구하는지의 여부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견해가 어떤지에 달려 있지 않고, 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함께함이 있는지, 또 한동안의 성령 역사가 그의 성정을 어느 정도 변화시켰는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지에 달렸다. 만일 성령 역사가 있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 변화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순수해질 것이다. 사람이 따른 시간이 길든 짧든 변화만 있으면 곧 성령 역사가 있는 것이고, 만일 변화가 없다면 성령 역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사 효력하였다 하더라도 복받으려는 속셈의 부추김을 받은 것이다. 간혹 효력하는 것은 그의 성정 변화를 대체할 수 없으므로 마지막에는 여전히 멸망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효력하는 자가 필요 없고, 성품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충성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도 전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은혜시대에 적용되는 것으로, 사람의 귀숙과는 관계가 없으며 은혜시대 그 단계에만 적용되었을 뿐이다. 이 말에 내포된 뜻은 다만 사람이 누릴 평안과 물질적 축복을 놓고 말한 것이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다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고, 한 사람이 복을 받으면 온 가족이 다 그를 통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은, 모두 그 본인의 실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자신의 공통적인 실질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예 이런 논법이 없고 이런 규정이 없다. 한 사람이 마지막에 살아남게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였기 때문이고, 만일 어떤 사람이 최종의 안식 가운데서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그 본인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사람에게는 적합한 귀숙이 있다. 이 귀숙은 모두 그 자체의 실질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자녀의 악행을 부모에게 더할 수 없고 자녀의 의를 부모가 더불어 누릴 수도 없으며, 부모의 악행을 자녀에게 더할 수 없고 부모의 의를 자녀와 더불어 누릴 수도 없다. 각자의 죄는 각자가 담당하고 각자의 복은 각자가 누리는데, 누가 누구를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이 공의이다. 사람이 보기엔, 만일 부모가 복을 받으면 자녀도 복을 받을 수 있고 만일 자녀가 악을 행하면 부모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뜻이고 사람의 행실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각 사람의 결말은 다 그가 행한 실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그 결정 또한 모두 적합한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없고 더욱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징벌받을 수도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부모가 자녀를 아낀다고 하여 그들이 의를 행한다고 할 수 없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한다 하여 부모가 의를 행한다고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의 참뜻이다. 아무도 그가 자녀들을 깊이 사랑한다 하여 악을 행하는 자녀들을 안식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그가 의를 행한다 하여 그의 아내(남편)를 안식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행정에 있는 규정으로, 그 누구에게도 예외란 없다. 의를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의를 행하는 자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악을 행하는 자이며, 의를 행하는 자는 결국은 살아남 수 있는 자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결국은 멸망될 대상이며, 거룩한 자는 거룩한 자이지 더러운 자가 아니고, 더러운 자는 더러운 자이지 거룩한 성분이 전혀 없다. 설령 악을 행하는 자의 자녀들이 의를 행하는 사람이고, 설령 의인의 부모가 악을 행하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악인은 훼멸되는 자이고 모든 의인은 살아남는 자이다. 믿는 남편과 믿지 않는 아내는 본래 관계가 없고 믿는 자녀와 믿지 않는 부모는 결코 관계가 없다. 이는 서로 맞지 않는 두 부류이다. 안식에 들어가기 전에는 육체적인 혈육의 정이 있지만 안식에 들어가면 더 이상 육체적인 혈육의 정이라는 말이 없다. 본분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는 본래 원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본래 적대되며, 안식에 들어가는 자와 훼멸되는 자는 합할 수 없는 두 부류의 피조물이다. 본분을 하는 피조물은 생존할 수 있고 본분을 하지 않는 피조물은 훼멸될 것인데, 영원까지이다. 네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네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인가? 네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인가? 네가 너의 믿지 않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도대체 올바른 것인가, 아닌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너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만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모두 훼멸될 대상이다.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는 육체적인 관계가 있고 또한 혈연 관계가 있지만 이후에 가서는 모두 타파된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본래 합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되는 것이다. 안식 가운데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다. 그 패역한 자들이 모두 훼멸되면 땅에는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데, 부모가 어디에 있고 자녀가 어디에 있으며, 부부 사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육체적 관계는 모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본래 합하지 않는 것으로 단절된 것이다!

인류 가운데는 본래 가정이 없었다. 단지 남자와 여자 두 부류의 사람만 있었을 뿐, 결코 국가가 없었고 가정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패괴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하나 하나의 가족 단체를 이루었고 나중에 또 국가와 민족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국가와 민족은 또 하나 하나의 핵가족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각 부류의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와 서로 달리 나뉘어진 경계에 따라 서로 다른 종족 가운데 분포되었다. 사실, 세계에 얼마나 많은 종족이 있든 인류의 조상은 결국 여전히 하나이다. 최초에 사람은 오직 두 부류만 있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단지 남자와 여자이다. 그러나 사역의 진전과 역사(歷史)의 추이 그리고 지형의 변천으로 인해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더 많은 서로 다른 정도의 부류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얼마나 많은 종족으로 나뉘어 있든 온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어느 종족의 사람이든 다 피조물이고 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비록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다 하나님이 친히 창조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어느 부류든 다 피조물이다. 피조된 인류인 만큼 인류에게 있어야 할 귀숙이 있는데, 인류를 안배하는 규정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을 행하는 사람이나 의를 행하는 사람이나 결국은 다 피조물이다. 악을 행하는 피조물은 마지막에 가서는 멸망될 대상이고, 의를 행하는 피조물은 살아남을 대상이다. 이것은 두 부류의 피조물에 대한 가장 적합한 안배이다. 악을 행하는 자를 그가 패역했다 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사탄에게 노략당해 구제불능의 대상인 것이다. 의를 행하는 자를 그가 생존할 수 있다 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사탄에게 패괴되었어도 구원받을 대상이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피조물이고, 구제불능일 뿐만 아니라 이미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당한 피조물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도 사람이고 또한 극도로 패괴된 사람이고 구제불능이지만 마찬가지로 피조물이다. 의를 행하는 자도 역시 패괴된 사람이지만 그 성정을 벗어버리려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의가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패괴성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최종에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인데, 사탄의 패괴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사역이 종결된 후, 모든 피조물에는 멸망될 것도 있고 생존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경영 사역의 필연적 추세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 생존할 수 없고, 끝까지 순복하고 따르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존한다.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인 이상, 남겨둘 사람도 있고 도태시킬 사람도 있다. 이것은 각 부류 사람의 서로 다른 결말이고 피조물에 대한 가장 적합한 안배이다. 인류에 대한 최종의 안배는 가정을 타파하고 민족을 타파하고 국경을 타파해 나누는 것이다. 사람의 조상은 결국 다 하나이고 사람은 다 같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가정의 구분이 없고 국경의 구분도 없다. 결론적으로, 악을 행하는 피조물은 훼멸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피조물은 생존한다. 그리하여 이후의 안식 가운데는 가정이 없고 국가가 없고 민족은 더욱 없다. 이런 인류가 가장 거룩한 인류이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것은 사람이 땅에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사람은 본래부터 만물의 주인이다. 최초에 사람은 패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을 행할 줄도 몰랐기에 사람을 지은 여호와의 뜻은 사람이 땅에서 생존하고 땅의 만물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패괴된 후 더 이상 만물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의 이 기능을 회복시키고 사람의 최초의 이지(理智)와 순복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또한 안식 가운데에 있는 인류의 모습이 바로 구원 사역이 도달하려던 효과이다. 비록 더 이상 에덴동산과 같은 생활은 아니지만 그 실질은 같은 것이다. 다만 인류가 이제는 더 이상 패괴되지 않은 인류가 아니라 패괴되었어도 구원받은 인류이다. 구원받은 이런 인류는 최종에(즉 사역이 끝난 이후) 안식에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징벌받을 그런 대상도 역시 마지막에 그 결말이 철저히 드러나고, 사역이 끝난 후에 훼멸된다. 곧, 사역이 끝난 후에는 악을 행한 그 사람들과 구원받은 그 사람들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각 부류의 사람을(악을 행하는 자나 구원을 받는 자를) 드러내는 이 사역은 모든 사람에게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사람이 도태되면 살아남을 그 사람들도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은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지 먼저 구원받은 무리의 사람들을 안식에 들어가게 한 다음, 그 밖의 악인을 한쪽에 두어 조금씩 조금씩 심판하거나 징벌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악인이 훼멸되고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안식에 들어갈 때면, 전 우주의 사역이 모두 끝날 것이다. 복을 받는 것과 화를 입는 것은 선후의 구분이 없다. 복을 받는 사람은 영원히 생존하고, 화를 입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한다. 이 두 단계의 사역은 동시에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패역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순복하는 그 사람들의 의가 드러나며, 바로 복을 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악행으로 화를 입는 것이 드러난다. 만일 악을 행하는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그 사람들은 영원히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을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 사람들이 상응한 보응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사역의 순서이다. 만일 상선벌악의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피조물은 영원히 제 각각의 귀숙에 들어갈 수 없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간 후, 악을 행한 사람이 다 훼멸되면 전 인류는 모두 정상 궤도에 진입할 것이고, 각 부류의 사람은 모두 그가 해야 할 기능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안식의 날이고 인류 발전의 필연적 추세이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최종의 큰 공을 이루는 것이고, 사역의 마무리이다. 이 사역으로 온 인류의 부패한 육체적 삶을 끝마치고 패괴된 인류의 생활을 끝마치게 되면 인류는 그때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게 된다. 사람이 비록 모두 육체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삶의 실질은 패괴된 인류의 삶과 크게 다르고 생존의 의의 또한 패괴된 인류의 생존 의의와 같지 않다. 비록 새 사람의 삶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인류의 삶이라 할 수 있고 인성과 이지를 회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전에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들이고, 또한 이미 하나님께 정복된 후 다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며, 이 사람들도 하나님을 욕되게 한 적이 있으나 후에 또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존은 검증을 거친 후에 살아남은 가장 의의가 있는 생존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증거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고 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멸망될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증거를 서지 못해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훼멸되는 것은 그들의 악행으로 멸망되는 것이다. 그들을 멸하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귀숙이다. 사람이 이후에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가면 사람의 상상처럼 부부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부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모자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때는 사람이 모두 각기 부류대로 되었고 가정도 이미 타파된다. 사탄은 철저히 실패하여 더 이상 인류를 교란하지 못하고 사람에게도 더 이상 사탄의 패괴성정이 없게 된다. 그 패역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훼멸되었고 오직 순복하는 사람만 생존하게 된다. 이같이 온 식구가 다 생존하게 된 집은 거의 없는데, 어찌 또 육체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때는 사람이 살아오던 지난날의 육체적인 삶을 철저히 폐하였는데, 사람과 사람이 또 육체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탄의 패괴성정이 없으면 사람의 삶도 더 이상 지난날의 옛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잃을 것이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잃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가 있지만 사람이 모두 안식에 들어갈 때면 육체적인 관계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인류야말로 공의로움이 있고 거룩함이 있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인류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지었고 인류를 땅에 두고 오늘날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또 인류를 구원하였고 인류의 속죄제가 되었다. 마지막 때에 이르러 그는 또 인류를 정복하여 철저히 인류를 구원해 내고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는 사역은 사람의 원래 형상과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가 그의 나라를 세우고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은 바로 땅에서의 그의 권병(역주: 권세)을 회복하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의 그의 권병을 회복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가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그것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지 못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므로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고(원문: 背道而馳) 사탄을 경배하여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게 되었다, 즉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야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벗겨버려야 한다.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려면 반드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원래 모습을 점차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고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다. 마지막에 그 패역의 자식들을 철저히 멸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땅에서 더 잘 생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만큼 그를 경배하게 하며,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만큼 뒤섞임이 조금도 없게 철저히 회복시킨다. 그가 그의 권병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그를 경배하고, 모두 그에게 순복하고,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원수들을 다 그의 권병으로 인해 훼멸되게 하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람들 가운데 존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며, 그가 원하는 인류는 그를 경배하고 그에게 완전히 순복하는 인류이며 그의 영광이 있는 인류이다. 만일 패괴된 인류를 구원해 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창조한 의의는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 가운데서 더 이상 그의 권병이 없을 것이고 또한 땅에 더 이상 그의 나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그를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받을 수 없고 땅에서 그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인류의 그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을 다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역이 완성된 것을 상징하고 그의 큰 공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표징이다. 인류가 처음의 모습을 다 회복하고 각자의 직책을 다하며 자신의 본래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면 하나님이 땅에서 그를 경배하는 무리를 얻게 되고 땅에서 그를 경배하는 나라가 세워지게 된다. 그가 땅에서 영원히 승리하고 그와 적대되는 자들이 영원히 멸망되면 그가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의 뜻과 만물을 창조한 뜻을 회복하게 되고, 그의 땅에서의 권병, 그리고 원수 가운데서의 권병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그가 완전히 승리한 표징이다. 그로부터 인류는 안식에 들어가고 정상적인 생활 궤도에 들어가게 되며, 하나님도 사람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땅의 더러움과 패역 그리고 땅의 애곡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적대되는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며, 오직 하나님과 그가 구원했던 사람들만이 남게 되고 또한 그가 창조한 만물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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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