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하)

당시에 예수가 정식으로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처럼 그도 때로는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후에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임하여’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신분과 해야 할 직분을 나타내었다. 그 이전에는 그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요한마저도 몰랐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는 29세였다.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이 열리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게 그를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세례를 받지 않은 29세 전에는 정상 사람의 생활을 하였다. 정상적으로 식사할 때는 식사하였고 잠도 자고 옷도 입었는데, 타인과 다른 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이 육안으로 본 것이다. 때로는 연약함도 있었고 때로는 어떤 일을 꿰뚫어 볼 수도 없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의 나이와 그의 총명, 지혜는 함께’ 자라났다. 이것은 다만 그에게 평범한 정상 인성이 있고, 정상 사람과 특별한 차이가 없으며, 그에게도 정상 사람의 성장 과정이 있고 조금의 특별함도 없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시험을 받기 시작하였고, 뒤이어 직분을 하고 역사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능력도 있고 지혜도 있고 권병(역주: 권세)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령이 그의 몸에 역사하지 않는다거나 성령이 그의 몸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는데, 다만 정식으로 역사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는 시간의 제한이 있고, 더더구나 정상 사람은 모두 정상 사람의 성장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계속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그가 강생할 때에는 다른 사람과 달랐는데, 샛별이 나타났었다. 또 그가 강생하기 전에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마리아가 한 남자 아기를 낳으리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느니라고 알려 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을 때는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을 때이지, 성령이 그에게 금방 임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몸에 임하였다는 것은 그가 직분을 하기 시작한 것을 놓고 말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 전에도 하나님의 영이 있었지만,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다. 이는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은 경솔히 역사하지 않고 세례받는 이 방식으로 그를 증거하였다. 물에서 올라오자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이 직분을 하기 시작하였고, 구속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예표한다. 즉, 은혜시대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하든지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도 특별한 변화가 없이 여전히 원래의 육신이었다. 단지 그가 사역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분을 나타냈을 뿐이고, 게다가 그는 권병과 능력이 가득하였다. 이 면만 이전과 같지 않았다. 신분이 달라졌는데, 즉 지위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증거에 속하는 것이지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다. 사람은 처음에 몰랐었는데 성령이 그렇게 증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는 예수가 매우 큰 사역을 하였다고 해도 하나님 자신이 증거하지 않았다면, 그가 한 일이 얼마나 크든 사람은 그의 신분을 알 리가 만무하다. 사람은 육안으로는 꿰뚫어 볼 수 없기에 반드시 성령이 증거하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도성육신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그가 여전히 이전처럼 역사하고 아무런 구별이 없었다면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주로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사람에게 그가 바로 하나님이고, 그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하나님이 증거한 것이 틀림없음을 분명히 보게 하는데, 이것도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이전의 사역과 이후의 사역이 다 같다면 그의 도성육신 직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고, 성령의 역사 부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그러면 사람은 성령 역사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선명한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증거한 후에는 성령이 성령의 증거를 수호해야 하므로 반드시 그의 몸에 지혜와 권병을 나타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라야 했다. 물론, 이것은 세례의 효능이 아니다. 세례는 단지 의식인데, 세례받는 그런 방식으로 그가 직분을 시작하는 시간을 나타내었을 뿐이다. 그런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성령이 성령을 증거한 이상 끝까지 책임진다. 예수가 직분을 하기 전에는 그도 각처에서 말씀을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 어떤 큰 사역은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직분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육신에 낮추고 은밀히 있으면서 때가 되지 않으면 아예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례받기 전에 그가 역사하지 않은 것은 두 방면의 원인이 있다. 한 방면은 성령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임하여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바로 아직 그에게 역사할 능력과 권병을 주지 않은 것이다). 설사 그가 자신의 신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후에 할 사역을 할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이기에 누구도 어길 수 없는데, 심지어 예수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 자신의 사역에 엇나갈 리가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낮추시는 일면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에 법칙이 있는 일면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참여할 수가 없다. 다른 한 방면은, 그가 세례받기 전에는 단지 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어서 보통 정상 사람과 어떤 구별도 없었다. 이것도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초자연적이지 않은 한 방면이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은 하나님 영의 안배를 어기지 않고 모두 순서 있고 절차 있게 아주 정상적으로 역사한다. 그의 사역에 권병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된 것은 오직 세례받은 후부터였다. 다시 말하면, 설사 도성육신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초자연적인 행동이 없고, 정상 사람의 생장 법칙에 어긋나는 것도 없다. 예수가 미리 자신의 신분을 알고, 또 세례받기 전에 곳곳에서 크게 역사하고 모든 정상 사람과 다르게 비범함을 보였다면, 요한이 사역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전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것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되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하나의 근원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모두 세례받은 후에 한 사역인데, 3년 동안의 사역을 가리킨다. 성경에 그가 세례받기 전에 어떤 사역을 하였는지가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가 세례받기 전에는 이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보통 사람이었고, 보통 사람을 대표할 뿐이었다. 그가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 사람과 완전히 같아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29세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예수는 자신이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하러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그 자신도 몰랐던 것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열두 살 때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리아가 그를 찾으니, 그가 “모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어린아이처럼 한 마디 하였을 뿐이다. 물론, 그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특수함은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유치한 아동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을 따름이다. 비록 겉모습으로 보기에 그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실질은 특별하였고 남달랐다. 진정 그의 몸에서 성령이 역사함을 느끼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느끼게 된 것은 그래도 세례받은 후였다. 33세 되던 그 해에 그는 비로소 성령이 그에게서 십자가의 사역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되었다. 32세 때에는 내막을 조금 알고 있었다. 이는 <마태복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거나 태어나자마자 완전히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된 시간이 있었다. 성령은 그에게서 모두 점차적으로 역사하였고, 과정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며, 도성육신한 인자임을 알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이전에는 그가 역사하지 않았는가? 왜 예수가 제자들에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알려 준 다음에야 고민하고 슬퍼하고 또 그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는가? 왜 요한이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푼 후에야 예수가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깨닫게 되었는가? 이 모든 것은 곧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가 깨달을 수 있고 또 할 수 있기까지는 모두 과정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어서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과 전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모두 단계 단계 이어져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길을 닦는 자가 없다면 뒤에 오는 이도 없고, 뒤에 오는 이가 있는 이상 길을 닦는 자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역은 바로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전해져 온 것이다. 한 단계가 한 단계를 이은 것인데, 만약 길을 개척하는 자가 없다면 사역을 전개할 수 없고, 하나님이 앞으로 역사해 나갈 수가 없다. 어느 단계도 엇나가지 않고, 모두 순서에 따라 이어지면서 형성된 하나의 흐름이고 한 분의 영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이어 가는 사람이든 결코 하는 일로 그들의 신분을 결정할 수는 없다. 네가 보기에 그렇지 않은가? 요한은 길을 개척한 자이고, 예수는 이은 분이다. 그렇다고 예수의 신분이 요한의 신분보다 낮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가 예수 전에 역사하였지만, 그렇다고 너는 여호와가 예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길을 닦거나 잇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 역사하는 실질과 대표하는 신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이 맞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려는 이상, 그는 반드시 길을 닦는 사람을 일으켜 역사한다. 요한은 처음에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전도하였다. 처음에 요한이 이 *도를 가르쳤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만일 말을 한 순서에 따른다면 요한이 천국의 복음을 먼저 말하였고, 예수가 후에 한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따르면 요한이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니 당연히 요한이 예수보다 커야 한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길을 개척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였을 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사람이니 예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도 다 성령이 수호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가 길을 이끌었다. 여호와의 역사는 구약 전체 시대를 대표하였고, 이스라엘에서 한 전체 사역을 대표하였다. 모세는 땅에서 조금 수호했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에는 여호와가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여 모세를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를 일으켜 그 사람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다. 모세도 율법을 정하기는 하였지만 그 율법은 여호와 자신이 반포하여 모세에게 말하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약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하였는데, 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인가? 그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아니며,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그에게 지시하여 하게 한 것이다. 그는 다만 쓰임받은 사람에 속할 따름이다. 예수가 왔을 때에 요한은 이미 길을 닦는 사역을 하였고,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성령은 처음에 그렇게 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오자마자 바로 그 자신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한 사역은 모세가 말하고 사역한 것과는 매우 큰 구별이 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였지만, 왜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도 하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 자신인가? 누구도 감히 당시에 예수가 한 사역을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였고, 완전히 사람의 뜻에서 온 것이라고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으며, 누구도 감히 그것이 완전히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였다. 그런 일들은 사람이 분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가 그런 사역을 하고 그런 예언을 한 것도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지만, 직접 그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묵시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때는 사역을 얼마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도, 많은 예언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보기에 별로 높은 도를 가르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해석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요한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이사야나 다윗을 믿는 사람도 없으며,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사람도 없었다. 즉, 다윗하나님, 요한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증거, 그가 담당한 사역과 그가 했던 직분에 근거하여 구분하였다. 이에 근거하면 성경에 기록된 그 큰 인물들인 아브라함, 다윗, 여호수아, 다니엘, 이사야에서 요한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이 한 사역에서 너는 도대체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선지자에 속하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사도에 속하는지 분별해 낼 수 있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지는 그들이 한 사역의 실질과 유형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확정하는 것이다. 이런 것마저도 분명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네가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가 하나님인 것은 그가 그렇게 많은 말씀과 사역을 하였고, 특히 많은 표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과 말을 하였고, 모세도 역시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었는가?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자이다. 그는 왜 하나님이라고 칭함받지 못하고 피조물이라고만 칭함받았는가?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렇게 많은 사역과 말씀을 하셨다고 그분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데, 그럼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하였으니, 그도 마땅히 하나님 자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은 왜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고 요한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시지 않았겠어요? 요한이 예수보다 먼저가 아닌가요? 요한이 한 사역이 큰가요 아니면 예수님이 한 사역이 큰가요? 사람이 보기에 요한이 한 것이 크고 예수님이 한 것이 작은데, 그러면 왜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았겠어요?”라고 반문하여라. 이는 오늘과 같은 문제이다! 당시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때는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그에게 말씀한 것이지 여호와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여호와가 직접 인도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 때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에게는 그 영과 그 소시(所是)가 없기에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와 예수가 한 것은 크게 다르다. 그것은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선지자나 사도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하는 것은 역사의 성질로 분별하면 너는 의문이 들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대 이래, 그 큰 인물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러면 너는 그들을 모두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들이 해석한 것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성경 해석가’이다. 그들에게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찌 일곱 인을 뗄 자격이 있겠는가? “오직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는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온 것은 단지 일곱 인을 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 일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기에 사역을 하면서 겸하여 할 뿐이다. 그 자신이 하는 사역은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는가? 6천년의 사역에 또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새로운 사역을 하러 왔는데, 이 사역을 하면서 이전의 사역을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사람에게 6천년 사역의 실정을 깨닫게 하면 되지, 너무 많은 성경 장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현재의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결코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서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너희 이 대단한 전도자, 설교자, 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영적인 위인들이 어느 지경까지 발전되어 갈지 모른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다 낡아 빠진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들은 보좌에 오르거나 왕이 될 분량을 예비하는 것, 자기를 버리거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 인내하거나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 겸손하거나 사랑하는 이런 것들인데, 이것은 옛 노래를 반복해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두 포장만 바꾸고 내용은 바꾸지 않는 격이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떡을 떼는 것이 아니면 안수 기도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 쫓는 것인데, 또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슨 발전과 앞날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네가 이렇게 이끌어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규례를 고집스레 지키거나 해오던 대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너희는 자신이 한 사역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여기는데, 그래 그것은 다 고대의 그 ‘늙은이들’이 남겨 놓은 유전과 유훈인지 모른단 말인가? 너희의 언행은 다 그 늙은이들의 유언이 아닌가? 모두 그 늙은이들이 임종 전에 남긴 부탁이 아닌가? 너는 너희가 한 것이 역대의 사도와 선지자를 뛰어넘고, 심지어 만유를 초월한다고 여기는가? 이 단계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위트니스 리의 ‘왕이 되어 보좌에 앉기를 추구하는 것’을 숭상하는 너희 사역을 제지시켜 기고만장한 이 사람들의 기세를 꺾어 놓고, 이 단계 사역을 간섭할 수 없게 하였다. 이 단계 사역이 없다면 너희는 갈수록 더 깊이 빠져서 구제 불능이 될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낡아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의 사역이 너희를 끌어왔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어디로 갔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면, 너는 왜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가? 왜 계속 그 낡아 빠진 것들을 지키고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령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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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