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제는 진리를 깨닫고서도 실행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 방면은 사람이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의 분별력이 너무나 부족하여 실제 생활 속의 많은 어려움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적합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력(역주: 체험)이 너무 얕고 사람의 소질도 낮고 또한 진리를 깨닫는 정도도 유한하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현실 생활 속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며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을 뿐 하나님을 실제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생활은 생활이어서 마치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여전히 실제 가운데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없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사실 하나님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터득 능력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본래 뜻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고, 모두 개인의 뜻대로, 자신의 이전 종교 관념과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후 변화가 생겨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매우 적으며,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종교의 낡은 규례에 따라 믿으며, 생활과 처세는 완전히 자신의 처세 철학에 따라 실행한다. 다시 말해서, 십중팔구는 다 이러하고, 하나님을 믿은 후에 따로 계획을 세워 새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아주 적으며,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아 대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예수 믿을 때를 놓고 말하면 사람이 처음 믿었든 오래 믿었든, 모두 있는 재간대로 발휘하고 있는 기능을 다 사용하면서 원래의 생활 속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곱 글자만 더한 것일 뿐, 사람의 성품은 오히려 아무런 변화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추호도 증가되지 않았다. 사람의 추구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며, 믿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완전히 봉헌하지도 않으며, 여태껏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순복(역주: 순종)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둥 마는 둥, 수수방관하며 참답게 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흐리멍덩하다가 결국엔 그 상태로 죽는데, 무슨 의의가 있는가? 오늘날 실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복받기만을 구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깨우침을 통해, 개인이 추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이 가장 진실한 것이라면 아무도 너의 그 사랑을 파괴할 수도 없고 가로막을 수도 없다. 이때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인데, 이는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너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 점유되어 더이상 너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의 경력과 너의 대가로 말미암아 또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너에게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생길 수 있는데, 이때면 너는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빛 가운데서 살게 되며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이 목표를 향해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너희 각 사람의 직책이다. 너희는 모두 현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두 마음을 품어서도 안 되며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아서도 안 된다. 너희는 마땅히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마음에 두어야 하고 매사에서 하나님을 위해야 하며, 말하고 일함에 있어서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이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폐단은 입으로만 믿고 실제 생활 속에는 하나님이 아예 없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확실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사람의 실제 생활 속에는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 사람은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적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너무나 적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거듭 시련한다. 이것은 사람이 정결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부득이 사람을 시련하여 모두가 시련 속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천사장의 후손이 되어 갈수록 패괴(역주: 부패, 타락)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부단히 정결케 하는 가운데서 개인의 많은 속셈과 목적을 버리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도 전혀 쓸 수가 없고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도 전혀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정결케 하는데, 정결케 하는 과정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며 이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후에라야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 수 있고, 그래야만 사람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람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이 보기에, 만일 너에게 인식만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고 자신의 인식에만 국한되어 있으면서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최종 목적이고 또한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너는 살아내는 데에 공을 들여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실행에 현실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너에게 만일 도리적 인식만 있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헛수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거기에 실행과 살아냄까지 더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완전하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허다한 인식을 말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평생을 헛되이 살았고 덧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자신을 미워하며, 깨닫기만 하고 여태껏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적이 없었다고 자신을 미워하며, 일생 동안 법석거리며 동분서주하였지만 죽을 때에는 뼈저리게 후회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에야 깨닫게 되고 그때에야 인생의 의의를 알게 되는데, 그러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왜 오늘 이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가? 구태여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생전에 진리를 위해 고생하지 않고, 얻기를 추구하지 않는데, 그래 죽을 때에 유감을 남기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으려 하는가? 사실, 사람은 많은 일에서 조금만 힘을 들여도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지만 언제나 귀신에게 홀려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 못하고 언제나 육체를 위해 뛰어다녔기 때문에 결국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언제나 고뇌가 생기고 곤란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괴롭힘 때문이 아닌가? 육체의 패괴 때문이 아닌가? 너는 입술만 놀리면서 하나님을 속여서는 안 되고, 실제적인 실행이 좀 있어야 하며,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살면서 명리를 다투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