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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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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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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1. 오랫동안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인데,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교(邪敎)이고 이교(異敎)라고 하며, 설사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을 기초로 한 책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고, 성경을 먹고 마셔야 하며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은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라고 한다. 성경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 것은 성경을 믿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낫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낫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여기는데, 성경이 없어진다면 생명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높이 보고, 심지어 성경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 본다. 성령의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함께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일단 그 성경책을 잃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이나 문구를 잃으면 마치 사람이 생명을 잃는 줄로 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부터 성경을 보고 외우기 시작하는데, 성경을 잘 외우는 사람일수록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크다는 것을 더 잘 증명하고, 성경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 훌륭한 형제자매라고 본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이나 사람의 믿음을 다 성경에 대한 이해 정도에 근거하여 가늠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덮어놓고 성경 구절을 열 수 있는 실마리만 수집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추구한 적이 없고, 지금까지 힘들게 성경만 연구하고 조사하고 있을 뿐, 성경 밖에서 성령의 더 새로운 역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아무도 성경을 떠나지 못했으며, 아무도 성경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은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면서 많은 해석을 하였고,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에 많은 차이를 보여 끊임없이 논쟁하다 보니 오늘날의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형성되었다. 사람은 모두 성경에서 고차원적인 해석이나 더 깊은 심오한 비밀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성경을 탐구하려고 하는데, 성경에서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했던 배경, 혹은 예수가 유대에서 역사했던 배경, 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심오한 비밀을 찾아내려고 한다. 사람이 성경을 보는 시각은 모두 ‘수수께끼’이고 모두 ‘신뢰’이며, 성경의 내막과 실질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성경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성경에 더욱더 ‘빠져들고’, 더욱더 ‘신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성경에서 말세 사역의 예언을 찾아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말세에 어떤 사역을 하는지, 말세에는 모두 어떤 징조들이 있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성경을 숭상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렬해졌고, 말세가 될수록 더욱 성경의 예언을 맹신하고 있는데, 말세에 관한 예언에 대해서는 특히 더 심하다. 사람이 그렇게 성경을 맹신하고 그렇게 신뢰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마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오직 성경에서만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오직 성경에서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으며,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 역사의 심오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으며,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의 모든 것과 모든 사역이 다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으며, 성경 외의 책이나 사람은 다 그렇지 못하다. 성경은 하늘의 사역을 땅에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은 시대를 시작할 수 있고 시대를 끝마칠 수도 있다’라는 관념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러한 관념이 있다 보니 성령의 역사를 찾으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성경이 지난날에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든,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사람은 별도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발자취는 다 성경에 ‘통제’되었다. 그러므로 최신 사역을 확장하는 것은 정말 설상가상에 첩첩산중이다. 이것은 다 성경의 유명한 장절과 문구, 많은 예언으로 초래된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서 우상이 되었고, 사람의 머리에서 ‘수수께끼’가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성경 밖에서 별도로 사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고, 성경을 떠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어 하며, 최종 사역에서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믿을 수 없어 한다. 이런 사실은 사람이 생각하기 어렵고, 믿을 수도 없거니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고,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이 확장되는 데에 난관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2. 역대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은혜시대 전부터 성경을 보았는데, 그때는 구약만 있었고 신약은 없었다. 구약 성경이 있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모세는 여호와가 다 이끌어 준 다음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 등을 쓰게 된 것인데, 여호와가 그 당시에 했던 사역을 회상하며 기록하였다. 성경은 한 부의 역사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선지자의 예언도 어느 정도 있다.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은 당연히 역사(歷史)가 아니다. 성경은 몇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단지 예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가 했던 사역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바울이 쓴 서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는 성경에 몇 부분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은 <창세기>,<출애굽기> …그리고 그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말라기>로 구약 성경의 전체를 끝맺고 있다. 곧, 여호와가 이끌었던 율법시대의 사역이 기록된 것이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는 구약 율법시대의 전체 사역에 대한 종합적인 기록이다. 곧,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이끌어 주었던 사람들이 그 당시에 체험했던 일들이 다 구약에 기록된 것이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자신을 위해 예언을 하게 하였는데, 각 나라, 각 족속에게 효유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사역을 예언하게 하였다. 여호와가 일으킨 사람들은 다 여호와가 부어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계시를 받아 예언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들이 했던 사역도 여호와의 음성을 발표한 것이고, 여호와를 대신해 예언 사역을 한 것이다. 여호와가 역사할 당시에는 오로지 영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지 성육신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자신의 사역을 하였는데, 그들에게 묵시를 주어 이스라엘 모든 족속에게 알리게 하였다. 그 사람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그들에게 효유한 말씀을 다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공해 주었다. 여호와가 그 사람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이후에 할 사역이나 그 당시에 아직 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하여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기묘와 지혜를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했던 말이거나 그들이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은 다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다 마친 후에 기록한 것인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완전히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이다. 선지자들이 했던 말들, 곧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 그들이 했던 말은 땅에서 행할 다른 사역을 예언한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그 선지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3. 창세는 인류가 있기 전의 역사이지만, <창세기>는 인류가 생겨난 후에야 있게 된 책으로, 모세가 율법시대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오늘날, 너희가 너희에게 발생한 일과 같은 것을 기록하여 후대들이 볼 수 있게 제공해 준다면, 그들에게는 너희가 기록한 것이 이미 지나간 시대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그저 역사로 볼 수밖에 없다.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이고, 신약에 기록된 것은 은혜시대에 예수가 했던 사역이다. 그런 기록들은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사역들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다.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역사에 대한 실제 기록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한 권의 역사책이다. 신약은 은혜시대 사역의 산물이지만, 새로운 사역이 시작될 때 그 서적들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역시 한 권의 역사책이다. 물론 신약의 내용이 구약보다 체계적이지 못하고 구약에 기록된 일보다도 많지 않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4. 성경은 도대체 무슨 책일까? 구약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했던 사역에 관한 것이다. 즉, 구약 성경은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에서 세상을 창조한 사역까지를 기록한 책인데, 여호와가 했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최종에는 <말라기>로 여호와의 사역을 끝맺는 기록 책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했던 두 가지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하나는 창세 사역이고 하나는 율법을 반포한 사역이다. 그 사역들은 모두 여호와가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하는 사역인데, 전체 사역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가 했던 사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대부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5.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道)를 어떻게 준행하였는지를 알려면 구약 성경을 보아야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알고 싶다면 신약 성경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말세에 하는 사역은 어떻게 보는가? 오늘날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역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고 성경에 아무도 미리 ‘기록’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였고, 그 밖에 중국에서 또 선민들을 택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함으로 땅에서 하는 자신의 사역을 지속하고 있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가 본 적이 없는 길이고, 또한 아무도 보지 못했던 도(道)이며, 지금까지 한 적이 없는 사역이다. 즉,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그러므로 행한 적이 없는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지금이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밖에서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함으로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를 벗어났고 선지자의 예언도 초월했는데, 이것이 예언 이외의 참신한 사역이고, 이스라엘 밖에서의 더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사역임을 모르고 있다. 이런 사역이 어떻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될 수 있었겠느냐? 누가 오늘날의 사역을 사전(事前)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어느 누가 일반 상식을 깨는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이 사역을 곰팡이가 핀 그 묵은 책에 기록해 놓을 수 있었겠느냐? 현시점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에,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지금은 왜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왜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왜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이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신구 사역의 대비점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을 보지는 않아도 성경을 분석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성경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새로운 사역에 진입하기 어렵고, 새롭게 변화되기 어렵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6. 더 높은 도가 있는 이상 굳이 낮고 시대에 뒤처진 도를 연구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 이상 굳이 묵어 빠진 역사(歷史)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그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이 너를 배불리지 못하고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역이 아니라 역사(歷史)라는 것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곧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되면,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은 것일지라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가 되고, 아무리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해도 역시 낡은 도가 된다. 낡은 도는 ‘성서’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역사이고, 새로운 도는 ‘성서’에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아도 현실적이다. 이 도는 너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도는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7. 성경은 역사책에 속한다. 네가 구약 성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져다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는 너를 내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며,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틀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만약 현재 네가 신약과 구약을 같이 묶어 먹고 마시며 실행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은 너를 정죄할 것이며, 너 또한 오늘날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자에 속한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 당시 성령이 자신에게서 하는 역사에 따라 유대인들을 이끌었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었다. 예수가 했던 모든 사역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든, 성경에서 길을 찾아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이끈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의 길을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 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예수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율법시대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예수의 사역, 예수의 교훈, 예수의 권병(역주: 권세)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더 새로운 사역만 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예수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초월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 원인은 예수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다 구약에 전혀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했던 사역은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단지 자신의 직분을 하여 예수를 갈급해하며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에, 예수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는 사역은 성경의 근거를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구약의 예언들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구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든, 그것이 자신의 것과 부합되든 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사역만 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예수를 정죄했을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봤을 때는 예수가 아무 근거도 없이 사역하였고, 또 그의 사역은 성경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것은 다 사람의 불찰이 아니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겠느냐? 성경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왜 하나님이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 역사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계명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예수는 왜 와서 안식일은 지키지 않으면서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다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타파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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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②효유(曉喩): 분명하게 알리고 직접 지시함.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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