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카테고리 선택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낭송]
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대표적인 말씀 (발췌문) [낭송]

34. 유구한 ‘민족 전통’, ‘정신 풍모’는 사람의 순결하고 어린 마음에 너무 일찍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씌웠고, ‘인성’이 전혀 없이 사람의 영혼을 공격하고 있는데, 마치 인정사정없는 듯하다. 이 마귀들의 수단은 극히 잔인한데, 마치 ‘교육’과 ‘양육’이 사람을 살해하는 마귀의 ‘전통’ 수단이 된 것 같다. 그것은 그것의 ‘깊은 가르침’을 빌어 자기의 추악한 영혼을 전부 덮어 감추고, 양가죽을 쓰고 사람의 신임을 사취한 후 사람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사람을 전부 삼키려고 시도한다. 가련한 인류가 어찌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이 마귀굴이고, 자기를 양육한 자가 뜻밖에 자기를 해치는 원수임을 알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전혀 각성하지 못하고, 실컷 먹고 마신 다음 ‘키워 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사람이 이럴 수가! 아직도 자기를 양육해 준 ‘국왕’이 바로 자기의 원수임을 모르고 있다. 땅 위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널려 있고, 마귀는 미친 듯이 좋아하며 ‘음부’에서 계속 사람의 육체를 삼키고 있으며, 사람의 시체를 자신과 함께 순장시키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온전하지 않은 일부분 사람들까지 전부 다 삼키려고 망상한다. 그러나 사람은 늘 깨닫지 못하고, 마귀를 원수처럼 대한 적이 없으며, 성의를 다해 그것을 섬기고 있다. 이와 같이 타락된 민족이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그들 가운데서 그의 모든 구원 사역을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겠는가? 이미 음부에 떨어진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요구에 닿을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35. 하나님이 인류의 사역을 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얼마인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왔고, 사람이 살고 있는 생지옥에 내려와 사람과 함께 나날을 보내면서도 지금까지 인간 세상의 초라함을 원망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사람의 패역을 책망하지 않았으며, 크나큰 치욕을 참으며 자신이 친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 지옥에 속할 수 있겠는가? 어찌 지옥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위해, 전 인류가 빨리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치욕과 억울함을 참고 땅에 와서 친히 ‘지옥’, ‘음부’에 들어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가? 무슨 이유로 또 하나님을 원망하는가? 무슨 낯으로 또 하나님을 만나겠는가?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러운 음란한 곳에 왔어도 억울함을 전혀 하소연하지 않고,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사람의 학대를 받고 있으며, 사람의 기만과 억압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무리한 요구에 반항한 적이 없고,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를 제기한 적이 없으며,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이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람을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 곧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하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단계가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닌가?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지만, 하나님이 하는 어느 단계가 사람의 운명을 위한 것이 아닌가? 어느 단계가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가? 어느 단계가 사람이 이 고난스럽고도 칠흑 같은 흑암 세력의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어느 단계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누가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는가? 누가 하나님의 그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겠는가? 하나님의 불같이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에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음이고, 돌아온 것은 냉혹하고 무정한 눈길이며, 돌아온 것은 사람의 한번 또 한번의 훈계이고 한번 또 한번의 욕설이며, 돌아온 것은 풍자와 조소, 조롱, 폄하이고, 돌아온 것은 사람의 비웃음이며, 돌아온 것은 사람의 짓밟음과 사람의 저버림이고, 돌아온 것은 사람의 오해, 원망, 멀리함, 피함이며, 돌아온 것은 전부 기만이고, 돌아온 것은 전부 타격이며, 돌아온 것은 전부 쓴 열매이다. 따스한 말씀이 뜻밖에도 ‘매서운 눈초리와 만인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머리 숙여 어린아이의 소가 되는’ 고통을 참는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별을 대한 적이 얼마였고, 달을 이고 별을 진 적이 얼마였던가!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보다 천배가 넘는 고통을 참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을 참고, 사람의 ‘훈계’와 ‘질책’을 참으며 전전반측했다. 하나님의 ‘비미은장’으로 바꿔 온 것은 뜻밖에도 사람의 경시와 사람의 불공평한 견해와 대우이며, 하나님의 침묵과 인내와 포용으로 바꿔 온 것은 뜻밖에도 사람의 탐욕스러운 눈길인데, 조금도 사정없이 하나님을 발로 짓밟아 죽이려고 꾀하고, 하나님을 땅 틈에 밟아 넣으려고 꾀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어쩌다 ‘이렇게 총명할’ 줄이야! 사람이 업신여기는, 사람이 깔보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에 꾹 눌러놓고 자기를 높이 내세우는데, 마치 ‘산을 차지하여 왕 노릇을 하려는’ 듯하고, 마치 ‘대권을 독점하고’ ‘수렴청정’하여 하나님으로 온순하게 고분고분 ‘배후 감독’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반항하지 못하게 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으로 ‘마지막 황제의 배역’으로 분장시켜 ‘꼭두각시’ 역을 맡게 하고 조금도 자유가 없게 하려는 듯하다. 사람의 행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또 어찌 계속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할 자격이 있겠는가?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하겠는가? 또 어찌 계속 하나님께 사람의 연약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의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너그러움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어찌 하나님의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였고,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뜨렸다.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기쁨을 가득 안고 인간 세상에 왔는데, 사람이 조그마한 따스함이라도 베풀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아직도 사람의 위로를 얻을 수 없었으며, 돌아온 것은 더욱 심한 타격과 괴롭힘뿐이었다. 사람은 마음이 너무나 탐욕스럽고 욕망이 너무나 커서 늘 욕심이 한도 끝도 없고, 방해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는데, 하나님에게 조금의 자유도 용납한 적이 없고, 하나님에게 조금의 발언권도 준 적이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잠자코 참으면서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조종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36.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고통을 얼마나 많이 참았고, 사람의 타격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렀어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요구를 늦추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연구’하고 있으며, 그를 관용하지 않고, 그를 ‘지도’하고 ‘질책’하고 ‘징계’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하나님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까 봐 매우 걱정하고, 또 하나님이 땅에서 막무가내로 하고 제멋대로 하여 일을 성사시키지 못할까 봐 매우 걱정하는 듯하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이런 태도를 가지는데, 어찌 하나님을 상심케 하지 않겠는가? ‘성육신한 것’만 해도 이미 크나큰 고통을 참고 이미 크나큰 치욕을 참은 것인데, 거기에 하나님으로 사람의 가르침을 받게 한단 말인가? 인간 세상에서 자유가 전혀 없어 마치 음부에 앉아 있는 듯하고, 또 조금도 반항하지 못하고 사람의 ‘해부’를 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 치욕스러운 일이 아닌가? ‘예수’가 정상 사람의 가정에 온 것은 이미 크나큰 억울함을 참은 것인데, 먼지 세상에 와서 지극히 낮추어 극히 평범한 육신을 취한 것은 더욱 크나큰 치욕이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미소한 사람이 된 것은 고통받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 자신을 위해 생각한 것이 몇 차례나 되는가? 그는 유대 족속에게 버림받고, 죽임당하고, 사람에게 풍자와 조롱을 받았지만, 전혀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고 땅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몇천 년의 비극이 또다시 유대와 유사한 족속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사람은 모두 같은 죄를 짓지 않는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겠는가? 하나님을 대적한 후에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역시 사람이 아닌가? 왜 사람은 언제나 정의를 향하지 않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가? 왜 사람은 하나님이 한 것에 언제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가? 사람의 공의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공평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대표하겠는가? 사람의 ‘정의감’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기뻐하는 것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사람은 모두 진주를 어둠 속에 던지고, 언제나 흑백을 혼동하며 정의와 진리를 억누르고, 불공평과 불의를 공중에 높이 쳐들며, 광명을 몰아내면서 흑암 속에서 향락을 즐긴다. 진리와 정의를 찾는 사람이 오히려 빛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발아래에 밟고 자기를 높이 떠받든다. 사람은 모두 도적 떼와 같은데, 무슨 이지가 있겠는가? 누가 시비를 분명히 가릴 수 있겠는가? 누가 정의를 지킬 수 있겠는가? 누가 기꺼이 진리를 위해 고난받으려고 하겠는가? 모두 극악무도하다!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미친 듯이 외치는데, 모두 개와 닭 같은 것들이다. 작당하고 독립왕국을 세우며, 주위를 방해하여 계속 떠들썩하게 하고, 눈을 감고 미친 듯이 계속 짖어 대는데, 닭도 울고 개도 짖으며 난장판을 이루어 ‘매우 시끌벅적하다’. ‘원칙과 주관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모두 그 조상의 ‘뛰어난 명성’을 높이 받들고 있다. 이 개와 닭 같은 것들은 일찍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은 모두 개와 닭 같아 남이 말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라고 말씀한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을 오늘날까지 ‘기세 드높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사역이 어떠하든, 정의가 있든 없든, 하나님이 발붙일 곳이 있든 없든, 내일이 어떠하든, 자신이 비천하든, 자신이 더럽든, 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일을 위해 걱정하지 않았다. 모든 이익과 모든 보배를 전부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고, 하나님께 던진 것은 다만 먹다 남은 음식인데, 얼마나 흉악하고 잔인한 인류인가! 하나님께 조그마한 체면도 남겨 두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훔쳐 먹은 다음, 하나님을 뒤에 멀리멀리 버려두고 더 이상 그의 존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또한 발로 하나님을 밟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고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또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받들고’ 하나님의 얼굴을 앙망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혀 겸양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아 하나님의 ‘불의’를 ‘심판’하고 있으며, 입으로 “하나님께 빚졌어요.”라고 말하고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고, 하나님을 ‘관용’하면서도 하나님을 압제하고 있고 또한 입으로는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요.”라고 말하고 있으며, 손으로 하나님의 물건을 쥐고 있고 입으로 하나님이 주는 음식을 씹고 있지만 눈으로는 냉혹하고 무정하게 하나님을 주시하고 있는데, 마치 통째로 삼키려는 듯하다. 진리를 보고는 기어이 ‘사탄의 궤계’라고 우기고, ‘정의’를 보고는 억지로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바꾸며, ‘사람의 행위’를 보고는 기어이 ‘하나님의 소시(所是)’라고 우기려고 하며, ‘사람의 타고난 자질’을 보고는 기어이 ‘진리’라고 우기며,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는 기어이 ‘오만 자대(自大)’, ‘교만 독선’이라고 우기며, ‘하나님’을 보고는 기어이 그에게 ‘사람’이란 라벨을 붙여 그를 억지로 끌어다가 사탄과 한 패거리인 ‘피조물의 자리’에 놓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람의 글’이라고 말하며, ‘영이 육신에 실제화되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탄의 후예’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비미은장(卑微隱藏)하였음’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사탄이 수치당하고 하나님은 이미 이겼다.”라고 말한다. 이런 폐물들! ‘집 지키는 개’의 기능보다도 떨어지다니! 흑백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흑백을 전도한다. 사람의 세력과 포위 공격이 어찌 하나님에게 해를 보는 날이 있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한 후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심지어 하나님을 사지에 몰아넣고도 하나님이 얼굴을 전혀 내밀지 못하게 하는데, 어디 공의가 조금이라도 있는가? 어디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곁에 앉아 하나님을 자기의 무릎 아래에 눌러 자기에게 용서를 빌게 하고, 자기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게 하고, 자기의 모든 배치에 복종하게 하며, 하나님으로 자기의 눈치를 보며 일 처리하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발대발하며 호통을 친다. 흑백을 전도하는 이런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어찌 하나님을 슬퍼하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하나님을 염려하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왜 하나님이 이번의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마치 천지개벽의 사역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가? 사람의 행위가 어찌 그렇게 ‘풍부’한지, ‘아무리 솟아 흘러도 마르지 않는’ ‘생수의 원천’이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있는데, 사람의 그 ‘생수의 원천’은 또한 조금도 거리낌 없이 하나님과 ‘겨루고’ 있어 양립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또 기탄없이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고, 사람도 ‘몸을 돌보지 않고’ 그것과 협력하고 있는데,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하나님을 쌀쌀하게 한쪽에 내버려 두고, 사람이 주의하지 않는 곳에 멀리 두는데, 하나님이 사람의 주목을 끌까 봐 매우 두려워하고, 또한 하나님의 생수의 원천이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켜 사람을 얻을까 봐 매우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사를 오랫동안 겪은 후에 또 하나님과 암투를 벌이기 시작하는데,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그가 ‘비판하고 투쟁할’ 대상으로 여긴다. 마치 하나님이 그의 눈의 들보가 되기라도 한 듯이 손으로 확 잡아 불 속에 던져 철저히 연단하지 못해 한스러워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고 배를 끌어안고 크게 웃어 대며, 기뻐 날뛰면서 하나님도 연단 속에 빠졌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불결한 불순물을 깡그리 태워 버리겠다고 말한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이 인정과 도리에 맞는 것이고, ‘하늘’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법인 듯하다. 사람의 이런 포악한 행위는 고의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한 듯하다. 사람은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 보이고, 또 그 추악하고 더러운 영혼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가련한 거지 꼴도 드러내 보이며, 도처에서 횡행한 후에 또 가련한 꼴로 가장하여 하늘의 용서를 간구하면서 매우 가련한 발바리 꼴을 드러낸다. 사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행동을 취하고, 또 언제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고 즉흥적으로 얼버무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신분과 비교하지도 않으며 말없이 하나님께 저항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하나님이 그를 억울하게 한 듯하고, 마치 본래 그를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 하는 듯하며, 마치 하늘이 보는 눈이 없어 고의로 그를 괴롭힌 듯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늘 몰래 잔인한 수단을 쓰고 하나님에 대한 요구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거일동을 호시탐탐하고 성난 눈으로 주시하고 있으며,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고는 전혀 여기지 않고 언젠가 하나님이 짙은 안개를 거두고 사실을 분명히 밝힌 다음 자기를 ‘호랑이 아가리’에서 구출하여 자기를 위해 신원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자신이 계속 역대 이래의 많은 사람들이 맡았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을 맡고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사람이 어찌 사람이 한 것이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사람이 터득한 것이 일찍이 대해에 잠겨 버렸음을 알 수 있겠는가?

누가 진리를 터득한 적이 있는가? 누가 하나님의 오심을 기쁘게 맞이한 적이 있는가? 누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쁘게 바란 적이 있는가? 사람의 행위가 일찍이 부패하여 하나님의 전을 원래 모습이 전혀 없게 오염시켰지만, 사람은 여전히 자기의 사역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았는데, 마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이미 본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뀔 수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을지언정 자기의 ‘언행이 더 이상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 올 자격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37. 나는 사람과 함께 그토록 많은 밤낮을 보내면서 사람과 함께 인간 세상에 거주했으나 사람에게 많은 요구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다만 사람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 뿐이고, 다만 사람을 인도하면서 인류의 운명을 위해 무시부재(無時不在)로 안배하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다. 누가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누가 천지 사이를 오간 적이 있는가? 나는 더 이상 사람과 함께 사람의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너무나 ‘노티 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내가 베푼 연회상에서 게걸스레 먹을 줄만 알 뿐, 그 외의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무슨 다른 사물에 대해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너무나 인색하며, 인간 세상은 너무나 떠들썩하고, 너무나 처량하며, 또 너무나 위험하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날에 얻을 승리의 아름다운 열매를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지 않으며,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복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결코 나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인류에게 억지로 웃는 얼굴을 강요해야 하겠는가? 인간 세상의 구석구석 어디에도 따뜻한 곳은 없고, 인간 세상의 산과 물에는 봄기운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물속의 것들처럼 따스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과 같고, 흐르는 혈액까지도 모두 얼어붙은 얼음과 같아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데, 따스함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 이유도 없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만사태평이고, 아무도 후회한 적이 없다. 잔혹한 폭군이 또 두 번째로 인자를 ‘생포’하여 사형장으로 압송해 총살함으로 그것의 마음속에 맺힌 원한을 풀려고 하는데, 이런 위험한 곳에 내가 남아 있는 것이 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내가 남아 있는다면 사람에게 가져다주게 되는 것은 오직 전쟁과 총칼, 끝없는 후환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싸움뿐이지 화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말일은 필연코 전쟁으로 가득하고, 인류의 귀착지는 필연코 총칼 싸움에서 무너질 것이다. 나는 사람과 이 전쟁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기’ 싫고, 사람을 동반하면서 피를 흘려 희생하기 싫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사람에게 버려져 ‘기운이 없고’, 인류의 전쟁을 살펴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 실컷 싸우게 하고, 나는 안식하고 편안히 잠자려고 한다. 마귀에게 인류의 말일을 함께하라고 하자! 누가 나의 마음을 알겠는가? 사람이 모두 나를 환영하지 않고 나를 기다린 적도 없기에, 나는 사람과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인류의 처소를 인류에게 베풀어 주고, 나의 모든 풍부함을 다 인간 세상에 남기고, 나의 생명을 인간 세상에 뿌리고, 내 생명의 씨앗을 사람의 마음 밭에 심어 사람에게 영구한 추억을 남기고, 나의 모든 사랑을 다 인류에게 남겨 주고,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사람에게 베풀어 주어 우리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랑의 선물이 되게 한다. 우리가 영원히 서로 사랑하고, 우리의 지난날을 우리가 서로에게 주는 고급 선물이 되게 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인류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또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나는 이미 사람에게 생명의 모든 것을 남기고, 인류를 위해 묵묵히 ‘사랑의 아름다운 땅’을 부지런히 갈면서 지금까지 사람에게 그 어떤 합리적인 요구도 제기한 적이 없이 그저 인류의 안배에 순복하고 있고, 인류에게 더 아름다운 내일을 창조해 주고 있을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10)>에서 발췌

38.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각 교파와 각 교단을 뒤흔들었고, 종교 각 교단의 원래 질서를 ‘혼란’시켰으며, 하나님의 나타남을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의 심령을 뒤흔들었는데, 누가 앙모하지 않겠는가! 누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갈망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임한 지 여러 해가 되었어도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오늘날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렸는데, 어찌 사람의 마음이 즐겁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사람과 비환이합(悲歡離合): 모이고, 이별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상황을 겪게 됨을 말함.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날 인류와 재회하여 함께 옛정을 나눈다. 하나님은 유대에서 떠난 후에 감감무소식이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였는데, 오늘날 또다시 대면하고 상봉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사람이 어찌 지난날을 회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천 년 전의 오늘, 유대인의 자손 바요나 시몬이 구주 예수를 만났고, 그와 식탁을 함께 하였으며, 수년간 따르면서 예수에 대한 우정이 깊어져 그를 마음으로 사랑했는데, 매우 깊이 주 예수를 사랑했다. 유대의 백성들이 어찌 어둡고 차가운 구유에 강생한, 노랑 머리카락이 난 그 갓난아이가 뜻밖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첫 번째 형상임을 알았겠는가! 사람마다 그를 동류로 여겼지, 그를 특별 취급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어찌 그 평범하고도 보통인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겠는가! 유대인들은 모두 그를 당대의 유대 아들로 여겼지, 아무도 그를 사랑스러운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무턱대고 예수에게 풍부하고 넉넉한 은혜와 평안, 희락을 베풀어 주기만 바라며 요구할 뿐이었고, 그가 백만장자처럼 없는 것이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를 사람이 사랑해야 할 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 시대의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반항과 무리한 요구만 했을 뿐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그를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전혀 반항하지 않았고 계속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묵묵히 사람에게 따스함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고, 더욱이 사람에게 새로운 실행 길도 주어 사람을 율법의 결박에서 이끌어 냈을 뿐이다. 사람은 그를 흠모하고 그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줄 뿐, 전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눈먼 인류가 어찌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으면서 인간 세상에 왔는지 알겠는가! 아무도 그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했고, 아무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몰랐으며, 아무도 그의 고독함을 알지 못했다. 비록 마리아가 그의 ‘생모’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또 어찌 인자한 주 예수의 마음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인자’가 견뎌 낸 말하기 어려운 고통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당대의 사람들이 그에게 토색한 후 그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쌀쌀하게 문전박대하는 바람에 그가 길거리에서 유랑하게 되었는데,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 오랜 세월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나서야 지루하면서도 짧은 고난스러운 33년의 인생을 마치게 되었다. 사람은 예수가 필요할 때는 집으로 청하여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그에게 토색하려고 하고, 그가 사람에게 ‘공헌’한 후에는 즉시 그를 문밖으로 쫓아낸다. 사람은 그가 입으로 공급해 주는 것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고, 그가 베풀어 준 은혜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그를 대적하고 있다. 사람이 계속 자기의 생명이 누가 베풀어 준 것인지를 알지 못한 탓에 결국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람은 그의 살을 먹고, 그가 지어 준 밥을 먹으며, 그가 개척한 길을 가고, 그의 피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그를 저버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의외로 사람은 자기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고 자기와 동류인 종을 ‘천부’로 여기는데, 이것은 고의로 대적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가 왜 십자가에서 죽게 되었는지 너희는 아는가? 그를 먹고, 그를 마시고, 그를 누리면서 그를 가장 가까이한 유다가 팔아먹은 것이 아닌가? 팔아먹은 원인은 예수가 작디작은 정상 사람인 ‘선생’에 불과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이 정말 예수가 하늘에 속한 비범한 분임을 알았다면, 또 어찌 그를 숨이 끊어질 때까지 24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잔혹하게 달아 놓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누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탐욕스럽게 하나님을 누릴 줄만 알고 전혀 그를 알려고 하지 않으며, 다만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예수’를 완전히 자기의 지휘에 따르게 하고 예수를 부리려고 하는데, 누가 또 너그러움을 조금 베풀어 머리 둘 곳 없는 ‘인자’를 불쌍히 여겼는가! 누가 또 그와 동심협력하여 함께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할 생각을 하였는가! 누가 그를 걱정하였는가! 누가 그의 어려움을 알아주었는가! 사랑이 전혀 없이 그를 끌어왔다가 또 밀어낸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광명과 자신의 생명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모른 채 다만 이 인간 세상의 고난을 겪은 2천 년 전의 ‘예수’를 또다시 십자가에 달려고 몰래 생각할 뿐이다. 설마 ‘예수’가 그렇게 사람을 혐오케 한단 말인가? 사람은 그가 한 모든 것을 벌써 잊었는가? 오래전부터 쌓인 몇천 년 동안의 원한을 결국 숨김없이 뿜어내려고 한다. 유대인 같은 놈들아! ‘예수’가 언제 너희와 적이 되었길래 그렇게까지 증오하는가? 그가 많이 사역하고 또 많이 말씀했는데, 설마 그것이 모두 너희에게 무익한 것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생명을 값없이 너희에게 베풀어 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너희에게 주었는데, 설마 너희가 아직도 그를 산 채로 삼키려고 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조금도 남김없이 다 너희에게 바쳤고, 세상의 영화, 인간 세상의 따스함, 인간 세상의 애정, 인간 세상의 모든 복락을 누린 적이 없다. 사람은 이미 그에게 너무 각박해졌다. 그는 땅에 있는 모든 풍부함을 누린 적이 없고, 불같이 뜨거운 참된 마음을 전부 사람에게 바치고 이미 자신을 전부 인류에게 헌신하였다. 누가 그에게 따스함을 베푼 적이 있는가? 누가 그를 위로해 준 적이 있는가? 사람은 모든 부담을 다 그에게 안겼고, 모든 불행도 다 그에게 건네주었으며, 인간 세상의 가장 불행한 경험도 강제로 떠맡겼고, 모든 불의를 그에게 덮어씌웠어도 그는 다 묵인하였다. 누구에게 항의를 제기한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 조그마한 보수라도 요구한 적이 있는가? 하지만 누가 그를 체휼한 적이 있는가? 정상 사람으로서 누구에게 낭만적인 어린 시절이 없겠는가? 누구에게 오색찬란한 청춘이 없겠는가? 누구에게 가족의 따스함이 없겠는가? 누가 친척이나 옛 친구에게 사랑과 동정을 받지 않겠는가? 누가 다른 사람에게 존중을 받지 않겠는가? 누구에게 따뜻한 가정이 없겠는가? 누구에게 지기(知己)의 위로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그가 언제 누린 적이 있는가? 누가 그에게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준 적이 있는가? 누가 그에게 털끝만한 위로를 준 적이 있는가? 누가 그에게 인성의 도덕을 조금이라도 준 적이 있는가? 누가 그를 관용한 적이 있는가? 누가 그와 함께 고난의 날을 지낸 적이 있는가? 누가 그와 함께 인생의 고난스러운 생활을 한 적이 있는가? 사람은 지금까지 그에 대한 요구를 느슨하게 한 적이 없고 다만 아무 거리낌 없이 그에게 토색할 뿐인데, 마치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는 반드시 사람의 우마가 되고 사람의 포로가 되어 인류에게 모든 것을 봉헌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그를 하나님이라고 칭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너무나 엄하여 반드시 하나님이 고난받아 죽게 되어야 하나님에 대한 요구를 느슨하게 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에 대한 요구 기준을 낮추지 않을 것인데, 이런 인류가 어찌 하나님을 혐오케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비극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사람의 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말끝마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해부하고 잔혹하게 괴롭혀 죽이는데, 이것은 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비방’이 아닌가? ‘유대인’은 어디에나 다 있고, 오늘날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똑같이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사람의 육안으로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영으로부터 온 육신 중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인간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는가? 어디에 진정한 공의가 있는가? 누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누가 하늘의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어도 사람이 모두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버리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어찌 빛이 흑암을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정정당당한 봉헌 정신이 아닌가? 모두 사람의 광명정대한 진입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다 사람의 진입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너희가 역사와 진입을 다 결합시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잘 맺고,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하여 모든 성의를 다하기만을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역도 그에 따라 끝나게 되는데, 영광 얻는 기세로 끝을 알리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10)>에서 발췌

─────────

①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②하나님의 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③비미은장(卑微隱藏): 낮추고 드러내지 않다.

④비환이합(悲歡離合): 모이고, 이별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상황을 겪게 됨을 말함.

⑤본분: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말세 그리스도의 말씀 (선집) [낭송]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패괴된 사람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종교적인 섬김은 마땅히 없애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 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 ‘실제’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새 시대의 계명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가?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곧 전 우주로 확장될 것을 예언하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알아간 과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너는 살아난 사람인가?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1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2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3부분 <역사와 진입> 열 편에서 발췌한 말씀 · 제4부분 <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1부분 <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2부분 <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1부분 <성경에 관한 논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2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2부분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제3부분 <정복 사역의 내막>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1부분 <정복 사역의 내막>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제2부분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상) 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하) 너는 앞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그 분노의 날을 벗어날 수 없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율법시대의 사역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 너는 전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 (상) 너는 전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 (하)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상)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 (하) 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사람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상)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하)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상)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하) 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상) 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하)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상)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하)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 (상)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 (하)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 (상) 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 (하)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상)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 (하)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아야 한다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 너의 처소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인가? 훈언 3칙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전능자의 탄식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 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9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0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1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2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3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19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0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1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2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3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4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5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6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7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8편 말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제29편 말씀

0검색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