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59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원칙

1.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베드로의 길을 걸어야 한다.

2.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아도 다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충성해야 하고 딴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3. 반드시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여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장벽과 관념 그리고 사탄의 성정을 해결해야 하며 성실한 사람이 되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반드시 온갖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고 생명 성정의 변화를 중요시하여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고 하나님과 합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라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하는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한다. 욥에게서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로소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너희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예수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 것처럼 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하나님의 신임을 얻기 어렵고, 최종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너에게 임할 수밖에 없다. 혹시 네가 지금 하나님을 섬기면서 늘 하나님을 기만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너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쨌든 네가 하나님을 기만하면 너에게는 무정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 정상 궤도에 이제 갓 진입한 때를 빌어 먼저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지 마음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너의 마음이 늘 하나님께로 향하고 예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가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하여 하나님 뜻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네가 정말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하나님 뜻에 맞게 섬기려면 하나님을 믿던 지난날의 관점을 바꾸고 하나님을 섬기던 지난날의 옛 행실을 바꾸어 너의 내면에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부분이 더 많아지게 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너는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소위 성실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서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실이란 일하고 말할 때,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효력자가 되어 묵묵히 부지런하게,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이 없이 공헌하기만을 원한다면, 나는 너를 충성된 성도라고 한다. 그것은 네가 보수를 따지지 않고 다만 성실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네가 허심탄회하기를 원한다면, 너의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려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다면, 네가 성실하여 하나님을 흡족케 할 줄만 알고, 자신을 위해 생각하거나 무엇을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사람들이 바로 광명 속에서 윤택해지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존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너의 생명 실제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所是)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인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표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모두 사람에게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베드로의 그 풍격이 있게 되면, 그때는 너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성실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모두가 침륜과 멸망의 자식들이며, 사탄에게 속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택하는 자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만약 네가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 영의 감찰을 받을 수 없다면,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너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성정 변화를 중요시해야만 온전케 되는 길로 갈 수 있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원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순복해야지 그 어떤 원망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역을 제멋대로 논단하거나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데에 있어 최소한 갖춰야 할 조건이다.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조건은 매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놓는 것이다. 너의 속마음이 바르기 때문에, 네가 행한 것이 옳든 그르든 용기 있게 내놓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형제자매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며 담대히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속마음, 하나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이 살피도록 해야 한다. 만일 네가 이렇게 실행하고 진입한다면 생명의 진보가 빠를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하는 것은 주요하게 너에게 실제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네가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 앞에 순복할 수 있는지, 심지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는지에 관련된다. 네가 정말로 이 순복으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하였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설명한다.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고, 그의 앞에서 원망이 조금도 없으며, 논단하지 않고 훼방하지 않으며, 관념이 없고 다른 속셈이 없으면,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얕잡아 보는 보통 사람 앞에 순복하고, 게다가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고 관념이 조금도 없으면, 이것은 진실한 간증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하는 실제는 네가 하나님이 한 말씀에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한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실제의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자신의 패괴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게 얻어지라는 것이다. 이런 말씀에 네가 정복되어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순복하게 되면,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끝마친다. 네가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관념이 없다면, 즉 그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네가 한 그 간증은 잘한 것이다. 만약 어느 날 네가 실제의 하나님에 대해 완전한 인식이 있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게 되었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것이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너에게 있어 곧 시련이다. 만약 너의 관념에 부합된다면 네가 고통받을 필요가 없고 연단받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매우 실제적이고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기에 네가 관념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에게 있어서 하나의 시련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실제’로 인해 모든 사람이 다 시련 속에 처해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실제적이고 초자연적이지 않다. 실제적인 말씀, 실제적으로 발한 음성을 네가 투철히 인식하고 관념이 조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실제적일수록 네가 더욱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얻으려는 한 무리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실제를 아는 사람이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제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생명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너에게 전개되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대로 행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네가 연단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의혹이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네가 여전히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전에 너에게 왕이 되어 권력을 잡으라고 하였을 때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너에게 공개하였을 때 네가 하나님을 추구했었는데, 지금 하나님이 모습을 감추어 네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너에게 고난이 임하니, 이때에는 네가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였는가? 그러므로 언제든 너는 생명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을 진실한 믿음이라고 하는데, 가장 진실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이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심지를 세워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오늘 너에게 연단이 임하여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니 네가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었는데, 이것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하는가? 이전에 욥의 이야기를 여러 번 보았는데, 지금 너는 잊었는가? 믿음 안에 있어야 진실한 사랑이 생길 수 있다. 네가 연단을 받으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실제 경력(역주: 체험) 중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믿음으로 자신의 육체를 배반하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다. 네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무엇이나 다 구비해야 하는데, 즉 고통받으려는 심지, 믿음, 인내, 순복 등을 구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줄 알고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을 온전케 하려면 쉽지 않다. 매번 연단이 임할 때마다 너의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네가 분주히 뛰어다니기만 해도 안 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기만 해도 안 된다. 많은 것들을 구비해야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난이 닥칠 때, 네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이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차라리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임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우선 너는 이런 고난을 받으려는 심지와 진실한 믿음을 갖춰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려는 심지를 갖춰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하고, 또한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며, 이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자신을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너는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온전케 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베드로는 생명을 추구할 때,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기를 중요시하였고, 성정이 변화되기를 중요시하였으며,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였다. 최후에 그는 ‘사람은 살면서 마땅히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만약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 하신다 해도 나는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추호도 원망이 없고 나의 일생에 만족한다.’라고 여겼다. 베드로가 이런 인식이 있고 이런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돼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한다. 어느 정도로 깊이 경력하여 완전히 자신을 알고 난 후에야 하나님을 알아가는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간 길은 생명의 길이고 온전케 되는 길인데, 그의 구체적 실행은 주로 이 방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왜 베드로의 길을 온전케 되는 길이라고 하느냐? 그것은 그가 실행한 것이 바로 생명을 매우 중시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며 자신을 알기를 중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에 대해 인식이 있었고, 사람의 패괴 정형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야 가장 가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어떻게 하나님께 보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어느 정도 얻었고, 하나님이 요구한 실제를 갖추었다. 베드로가 시련 속에서 한 말에서 그가 확실히 하나님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깨달았기에 가면 갈수록 길이 더 환해졌고, 점점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었다. 그에게 만약 이런 진리가 없었다면, 그가 간 그 길도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은 마음으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고통을 받으면 사람의 생명에 유익한 점이 있고, 하나님 앞에 더 안정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시련을 여러 번 겪었다.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연단을 백 번은 겪어야 하고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을 발하게 할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없다. 안에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겉에서 떠돌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보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이 너무 많아 어려움이 많이 닥치면 이겨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제적인 정형을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더욱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일생 동안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고통스러운 고난을 많이 겪었다. 그런 연단은 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데의 토대로 되었고, 그의 일생 중 가장 의의 있는 경력으로 되었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방면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방면은 그가 받은 연단과 고통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 고초는 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의 길잡이로 되었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들로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만일 연단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사랑에는 천연적인 것이 가득하고 사람의 취향이 가득하다. 그런 사랑은 사탄의 뜻이 가득하여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가 있다 해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마치 사람의 뜻이 조금도 없고 다 하나님을 위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져오면 모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사람이 설사 모든 진리를 투철하게 깨닫고 인식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징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연단을 받기 전에 많은 진리를 깨닫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런 진리를 다 실행해 낼 수는 없다. 사람이 연단 가운데 있을 때에야 이런 진리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고 이런 진리에 내포된 뜻을 참으로 체득할 수 있다. 이때 사람이 다시 이런 진리를 실행하면 정확할 것이고 하나님 뜻에도 부합될 것이다. 이때의 실행에는 자신의 뜻과 사람의 천성적인 것이 적고 사람의 정감도 적다. 이때의 실행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 진리는 사람이 입으로 인식하고 마음으로 원하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깨닫게 되면 효과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연단 가운데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사람의 사랑이 순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베드로가 수백 번의 시련을 겪은 것은 헛수고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지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베드로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환해졌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했다.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말씀이든지 무릇 자신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새겨 두고 늘 묵상하며 터득하였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요구한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 완전히 효과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가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육체의 본성, 즉 그의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한 후에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그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이런 진리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너희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모든 일에서 경력할 줄 알아야 하고, 임하는 일에서 모두 깨우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한 가지 일이 임할 때마다 좋은 일에서든 나쁜 일에서든 유익을 얻어야지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문제를 보아야지, 사람의 각도에 서서 분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경력의 편차이다). 만일 이 방법에 따라 경력한다면 너의 마음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부담에 점유되고, 시시로 하나님의 얼굴빛 속에서 살게 될 것이며, 실행할 때 쉽게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큰 전망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후에는 사람의 옛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또한 생명이 부단히 자라고 진리 속으로 점차 깊이 진입하고 세상을 혐오할 수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특히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거기에 분명한 인식까지 더해지며, 진리에 따라 살기 원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자신의 두뇌 사유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의 독선적인 것과 교만한 것, 자대(自大)하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며, 말을 분수 있게 하고, 일이 닥치면 분별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복이 있다. 한 차례의 형벌과 심판을 거쳐도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지 않을뿐더러 형벌과 심판에 대해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나지 못하고, 형벌과 심판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평안 희락과 떡으로만 사는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잠시적인 육체의 누림도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다 온전케 된 사람이 소유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

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⑤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