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53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길을 선택하는 원칙

1.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된 베드로가 걸은 길을 선택해 걸어야지 절대로 바울의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2.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지 절대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3.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만 따라야 하며, 하나님을 위해 효력을 할지언정 세상의 사악한 조류 속에서 비굴하게 살면서 더러운 귀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정확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사람됨에 있어서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살아야지 절대로 사탄의 철학과 황당무계한 논리로 살아서는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베드로와 바울의 실질적인 차이에서 너는 무릇 생명을 추구하지 않으면 다 헛수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피조된 사람인 이상 너의 창조주께 순복해야 한다. 그 까닭은 네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만큼, 거룩해지기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너는 피조물인 만큼, 자신의 본분을 잘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너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교조적인 것으로 너를 억압하는 것도 아니라, 네가 본분을 하는 길이다. 이것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자 해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가 베드로와 바울의 실질을 대조해 보면 너는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이 걸은 길에서 하나는 온전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도태되는 길이다. 그들 두 사람은 두 갈래의 길을 대표한다. 비록 그 두 사람 다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다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었으며, 다 주 예수의 부탁을 받았지만, 그 두 사람에게서 맺은 열매는 전혀 달랐다. 한 사람은 진실한 성과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진실한 성과가 없었다. 너는 그 두 사람의 실질과 그들이 한 사역에서, 그리고 겉으로 표현된 것과 마지막의 결말에서 너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해 걸어야 하는지 마땅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정확한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고, 얻는 것이 성정의 변화라면, 네가 가는 길은 정확한 길이다. 네가 육체의 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관념 속의 진리를 실행하며, 성정의 변화는 전혀 없고, 육신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순복하지 않으며, 또한 막연한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네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가는 길이 실패의 길이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다 네가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 즉,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너희가 지금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베드로처럼 생명을 추구하고 자신을 알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베드로의 길이 아니다. 지금 대다수 사람들은 다 이런 정형이다. ‘복을 받기 위해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화비해야 한다! 복을 받기 위해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복을 받기 위해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복을 받기 위해 나는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하고 나의 본분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복을 받으려는 속셈의 지배를 받은 것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상을 받기 위해, 면류관을 얻기 위해 비로소 하나님을 위하여 화비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속에 진리가 없다. 틀림없이 글귀 도리만 조금 알고는 가는 곳마다 자랑할 것인데, 바로 바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계속 사역만 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마치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욱 충성함을 증명하고, 많이 할수록 틀림없이 하나님이 만족해하고, 많이 할수록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고 확실히 하나님 집에서 복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는 만일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전도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고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게다가 하나님이 부탁한 본분을 잘 완성하면, 하나님이 최고로 축복해 주는 사람이고 가장 많이 복받는 사람이며 틀림없이 면류관을 얻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은 이런 사상의 지배하에 사역하며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길을 갈 때 당시에 틀린다고 여기지 않고 정확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었고 성정 변화는 더욱 없었다. 그는 너무 자신을 믿었기에 그렇게 가면 착오가 조금도 없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믿음 가득, 자신감 가득 걸어갔지만, 최종에 가서도 철저히 깨닫지 못하였다. 심지어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여겼다. 이렇게 계속 마지막까지 갔다…… 바울의 길에는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없었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 없었다. 바울은 자신의 본성을 해부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놈인지를 전혀 몰랐고, 그저 자신이 예수를 핍박한 괴수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이 조금도 없었는데, 사역을 다 하고 난 뒤에 자신이 그리스도이고 상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바울이 사역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한 단계 효력을 한 것이다. 바울 자신은 비록 성령의 계시를 조금 받았지만 진리와 생명이 전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 왜 베드로의 길을 온전케 되는 길이라고 하느냐? 그것은 그가 실행한 것이 바로 생명을 매우 중시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며 자신을 알기를 중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는 가운데서 자신에 대해 인식이 있었고, 사람의 패괴 정형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야 가장 가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어떻게 하나님께 보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어느 정도 얻었고, 하나님이 요구한 실제를 갖추었다. 베드로가 시련 속에서 한 말에서 그가 확실히 하나님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깨달았기에 가면 갈수록 길이 더 환해졌고, 점점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었다. 그에게 만약 이런 진리가 없었다면, 그가 간 그 길도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살아내려고 추구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며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고,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었으며,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런 심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대로 해냈다. 이것이 마지막에 베드로와 바울에게 서로 다른 결말이 있게 된 근원이다. 성령이 베드로에게 한 역사는 온전케 하는 것이었고, 바울에게 한 역사는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관점과 그들의 본성이 전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런 역사를 자신에게 구체화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공급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의 역사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만 공급해 주었고,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동안 성령 역사를 경력하였어도 변화는 미미했고, 여전히 타고난 모습 그대로였으며, 여전히 과거의 바울이었다. 바울은 단지 그 동안 사역하면서 겪은 어려움 속에서 ‘사역’하는 법을 배웠고 인내를 배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옛 성정, 즉 강한 승부욕과 이익만 꾀하는 본성은 그의 몸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역하였어도 자신의 패괴 성정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옛 성정도 벗어 버리지 못하였다. 그런 옛 성정은 그의 사역에서도 여전히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바울에게는 사역의 경험만 좀 더해졌을 뿐인데, 그 얼마 되지 않은 경험은 바울을 변화시킬 수 없었고, 그의 생존 관점과 추구하는 의의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바울은 비록 그리스도를 위해 오랫동안 사역하였고, 주 예수를 핍박하던 시기의 행위는 재현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신을 헌신하기 위해 사역한 것이 아니라 장래의 귀숙을 위해 마지못해 사역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 그리스도에게 순복한 것이 아니라 핍박했던 사람이고, 본래부터 그리스도를 고의로 대적한 패역자이며, 본래부터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여전히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괴팍한 성미에 따라 독단전행하면서 성령의 뜻은 조금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은 그리스도와 적대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진리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 즉 성령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대적한 이런 사람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그가 한 사역이나 그가 얼마만큼 바쳤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역사를 인식했는지, 진리를 실행하였는지,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여 정해진다. 베드로도 예수를 따르면서 비록 본연(원문: 天然)의 것을 드러낸 적이 있었지만, 본성에 따라 말하면, 그는 처음부터 성령께 순복하고 그리스도를 추구하려고 소망했던 사람이고, 성령께 단순하게 순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진심(원문: 存心)으로 진리에 순복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7.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적인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 외에 모든 것은 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고,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안 된다. 절대적으로 청종하고,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말라. 옳든 그르든 너와 무관하니 절대적으로 순복하기만 하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국도시대 하나님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에서 발췌

『베드로는……말하였다. “제가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살고 있어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나이다. 저는 당신의 저주 속에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사탄의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나이다.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저의 마음은 대단히 기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은 공의롭고 또한 거룩한데, 그것은 저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더욱이 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나이다. 저는 한평생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지언정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는 한시도 살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고통받아 당신께 정결케 되기를 원하고, 사탄에게 이용당하거나 우롱당하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피조물로서 당신께 쓰임받고 점유되어야 하며, 심판과 형벌도 받고 저주까지도 받아야 하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축복하려고 하실 때, 저의 마음은 그로 인해 기쁘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나이다. 당신은 조물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이오니 당신을 배반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서는 안 되고, 사탄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되나이다. 당연히 당신을 위해 우마가 되어야지 사탄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나이다. 차라리 당신의 형벌 속에서 살면서 육체적인 복락이 없을지언정, 당신의 은혜를 잃었을지라도, 저는 여전히 그것을 누림으로 여기겠나이다. 비록 당신의 은혜가 저를 따르지 않지만,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누림으로 여기오리이다. 이것은 당신의 가장 좋은 축복이고, 가장 큰 은혜로소이다. 비록 당신이 저에 대해 언제나 위엄과 진노이시오나 저는 여전히 당신을 떠날 수 없고 여전히 더 사랑하리이다. 저는 차라리 당신의 집에서 살면서 당신께 저주받고, 형벌받고, 타격받더라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고, 육체만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바쁘게 보내고도 싶지 않으며, 더욱이 육체를 위해 살아가기도 원치 않나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사랑은 순결한 사랑이다. 이것은 온전케 되는 경력이고, 온전케 되는 최고의 경지인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인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귀하게 여긴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귀한 점이다. 베드로는 말했다. “사탄이 내게 물질적인 누림을 주어도 나는 결코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임하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누림과 축복으로 여기노라.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계속 그것의 통제를 받고 그것에게 장악될 것이노라. 그러면, 나는 영원히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없노라. 이는 내가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고, 내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까닭이노라. 설령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아 내가 위로를 잃고 속이 불타는 듯하여 평안과 기쁨이 없고 늘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어 이것을 기쁨으로 여기노라. 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노라. 비록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무정한 형벌, 심판, 저주, 채찍으로 바뀌었으나 나는 여전히 이런 것을 누림으로 여기노라. 이는 이런 것이 나를 더욱 정결케 하고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순결하게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으며,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을 위해 효력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노라. 언젠가 내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고, 내 모든 것과 모든 힘을 조금도 남겨 놓지 않고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으면, 그때는 매우 흡족할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구원했으니 일생 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노라. 내가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인데,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보살피거나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을 것이고, 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기회도 없고 살아낼 수도 없을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떠나지 않아야만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과 공의로운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위엄 있는 심판이 있어 지극히 큰 보호를 받게 되었고 빛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노라. 내가 정결케 되고 사탄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은 금생의 가장 큰 복이노라.” 이것은 베드로가 경력한 최고의 경지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너희 이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도 다 그들의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의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것들은 무엇을 누리고 있는가? 그것들은 단지 조상의 유산과 ‘민족의 기개’만 누릴 뿐인데, 어찌 인간미가 조금이라도 있겠는가! 너희 이 사람들의 옷차림과 언행도 다 그것들과 다르다. 최종에 너희는 더러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는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날마다 주는 공급을 얻을 수 있다. 너희는 늘 신중해야 한다. 비록 더러운 땅에서 살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어 크나큰 보호를 받았다. 이 황토 땅에서 너희 이 사람들만 택하였는데, 너희들이 가장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너는 피조물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의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면 의관을 갖춘 짐승이 된 것이 아닌가? 네가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모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네가 지금 이런 조그만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히 마음속으로 기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옳은 것이다. 욥처럼, 베드로처럼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서 마귀 옷을 입고 마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마귀 밑에서 일하면서 충성을 다하며, 그것에게 짓밟혀 온몸에 더러움이 배었다. 네가 인생의 의의와 참 도를 더듬어 찾지 못하였는데, 한평생을 산들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너희 이 사람들은 바른길을 추구하고 진취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떨쳐 일어나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사람들인데,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2)>에서 발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알고 진리가 있다면 바로 광명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사람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에 근거해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면, 심령 깊은 곳이 평안하고 환하게 느껴지며, 마음속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로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밖에 네가 소유한 진리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오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 즉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고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참으로 인생을 살아내면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는데, 이것이 가장 의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는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사탄이 관할하고 있는 세상에서, 수천 년의 역사(歷史)에서 전 인류 중에 누가 인생을 얻었느냐? 누구도 얻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들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생의 근거, 생존의 근거는 완전히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탄에게서 받아들인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딱 대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류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들인데, 인생이라고는 논할 나위도 없다. 비록 그들이 아름다운 명성이 대대로 전해지고, 훌륭한 명성이 영원히 전해지고, 역사에 길이 남고, 천추에 길이 빛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다 허튼소리이다. 사실, 그들은 일찍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영원히 환생할 수 없다. 어떤 명인의 명언이든 하나님 편에서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후에 다 18층 지옥에서 징벌을 받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의 깊은 곳이 환하고 평안하며 더없이 달콤하여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껴질 것이다. 세상의 과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여 성과가 얼마나 크든지 임종 시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고 여긴다. 마치 아인슈타인, 뉴턴처럼 그들이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공허함을 느낀 것은 바로 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뉴턴, 아인슈타인,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었고 크리스천이었으며 다 천주교의 핍박을 받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며 과학만 연구하다가 확실히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최종까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100% 인정하고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만든 것임을 100% 인정하는 데에만 그쳤으며, 과학 지식만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진리를 얻지 못했고 진정한 인생을 얻지 못했다. 너희가 오늘 가는 것은 그들의 길이 아니다.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구비해야 하는 것인데,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진리를 얻지 못하였다. 지금 하나님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하여 각 방면의 진리를 모두 너희에게 말씀하고 너희에게 진리와 생명의 도를 베풀어 주었는데, 너희가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너무나 우매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를 통해 일을 처리해야 하며 절대로 사람의 말을 곧이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고 절대로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에게 순복해서는 안 되며, 다만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공급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어떤 사람의 통제와 단속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길입니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성공하는 길입니다.

…………

교회의 각급 인솔자 일꾼과 하나님 선민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만일 인솔자 일꾼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에 순복할 수 없고 상면의 사역안배를 거부한다면 사람의 속마음이 틀리고 가는 길도 틀림없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냅니다. 만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정확히 대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과 맞지 않거나 대항한다면 사람의 성정이 좋지 않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은 위험한 신호입니다.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사역안배에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길입니다. 사람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안배에 순종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야심이 있고 교만 자대하며 다른 수단을 부리고 이미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며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섰음을 충분히 드러냅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

하나님 선민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있으며, 무릇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거절하고 대적하며 벗어나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있지 않고 사탄의 독립왕국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 있는지의 문제와 관련되며, 성령 역사가 있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이것은 절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총집 (1)ㆍ하나님의 역사를 끝마치고 키질할 때 각 부류 사람들이 걸은 길을 본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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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④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⑤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⑥독단전행(獨斷專行):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제멋대로 행동함.

⑦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