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47 전통문화 관념을 대하는 원칙

1. 전통문화는 대부분 사탄 악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와 적대되는 사탄의 독이 흐르고 있으며, 부정적인 것에 속한다.

2. 전통문화는 사람을 결박하고 속박하는 무형의 멍에이며,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을 통제하고 사람을 삼키는 사탄 마왕의 도구이다.

3. 전통문화는 인류를 점점 패괴시키고 타락되게 하고 부패시키며 하나님과 갈수록 멀어지게 하여 사람을 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하였다.

4.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해 전통문화의 실질을 해부하고 분별하면 그 패괴되고 반동적인 것을 완전히 간파하고 그것을 혐오하고 단절할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수천 년 동안 패괴된 중화 민족이 오늘날까지 존류하면서 각종 병독이 부단히 발전하여 온역처럼 도처로 만연된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 몸의 병균이 얼마나 많은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엄밀하게 봉쇄된 이런 병원체의 곳에서 하나님이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의 성격, 사람의 생활 습관, 사람의 품행, 사람의 모든 삶 속의 표현 및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황폐하기 그지없으며 나아가 사람의 지식과 문화까지 모두 하나님에게 죽을 죄로 정해졌다. 더군다나 사람이 가정 및 사회에서 배워온 여러 가지 경험, 이런 것도 다 하나님의 안중에서 판결을 선고받았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먹는 병독이 너무나 많고 사람들이 모두 습관이 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6)>에서 발췌

『특히 중국 사람에게 ‘성인’으로 높이 받들린 공자의 말은 대부분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그리고 불교나 도교의 명언, 저명한 인물이 늘 말하는 그런 전형적인 말은 모두 사탄의 철학과 사탄 본성의 개괄이자 사탄 본성의 가장 좋은 설명이고 해석이다. 인류의 심령에 주입시킨 그런 독소는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조금도 없다. 이런 허튼소리가 바로 하나님 말씀과 서로 적대되는 것인데,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사람을 해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오는 것임을 완전히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으로부터 그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및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사탄은 국가 정부 및 유명 인사나 위인의 교육과 영향으로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그들의 허튼소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고 본성이 되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이 말은 사탄의 명언인데, 이미 모든 사람의 안에 침투되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그리고 일부 처세 철학의 말도 이와 같다. 사탄은 각국의 그 무슨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사람을 교육하여 인류를 치명적인 재난의 망망대해에 빠지게 하며, 마지막에는 사탄을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여 하나님에 의해 훼멸되게 한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몇천 년 동안의 ‘민족 기개’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겨 놓은 해독과 봉건사상은 사람을 모두 아무런 자유도 없이 속박하여 사람에게 패기가 없게 하였고, 의지력이 없게 하였으며, 향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후퇴하게 하였고, 노예근성이 아주 강하게 하였다. 이런 등등의 객관적인 요소들이 사람의 사상적 풍모와 자신의 꿈, 도덕, 성정에 지워 버릴 수 없는 더러운 추한 몰골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사람이 모두 테러리즘 암흑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고, 아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안분하면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즉, 자녀를 낳아 기른다든가, 힘을 내고 땀을 흘리며 일한다든가, 편안하고 원만한 가정이 있기를 몽상한다든가, 부부가 사랑하고 자녀가 효도하고 노년을 즐겁게 지낸다든가, 자기의 일생을 편안히 보낸다든가…… 몇십 년, 몇천 년, 몇만 년 심지어 현재까지도 사람은 여전히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어두운 천지간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서로 명리를 다투고 서로 암투를 벌일 뿐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역사를 아랑곳한 적이 있는가? 흑암 권세에 점유된 사람의 이 모든 부분들은 이미 본성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전개하려면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오늘 부탁에 대해 사람은 더욱더 아랑곳할 마음이 없다. 어떻든지 나는 사람이 내가 한 이런 말들을 개의치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말한 것은 몇천 년의 역사(歷史)이니, ‘역사’라고 하면 사실이고 또한 모두 다 알고 있는 ‘추문’인데, 구태여 사실을 어기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3)>에서 발췌

『유구한 ‘민족전통’ ‘정신풍모’는 너무 일찍 사람의 순결하고 어린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 씌웠으며, 조금의 ‘인성’도 없이 사람의 영혼을 공격하고 있는데, 마치 인정사정없는 듯하다. 이 마귀들의 수단은 극히 잔인하여 마치 ‘교육’과 ‘양육’이 사람을 살해하는 마귀의 ‘전통’적인 수단이 된 듯하다. 그것의 ‘깊은 가르침’을 빌어 자기의 추악한 영혼을 전부 덮어 감추고, 양가죽을 쓰고 사람의 신임을 사취한 후 사람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사람을 전부 삼키려고 시도한다. 가련한 인류가 어찌 나서 자란 곳이 마귀굴이고, 자기를 양육한 자가 뜻밖에 자기를 해치는 원수임을 알랴? 하지만 사람은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실컷 먹고 마신 다음 ‘부모의 키워 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사람은 이렇게 할 줄밖에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원수가 바로 자기를 양육한 ‘국왕’임을 모르고 있다. 땅 위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널려 있고, 마귀는 미친 듯이 즐기면서 ‘음부’에서 계속 사람의 육체를 삼키고 있으며, 사람의 시체를 그것과 함께 순장하고 마지막으로 남을 일부분의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전부 다 삼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깨닫지 못하고, 마귀를 원수처럼 대한 적이 없으며, 성의를 다해 그것을 섬기고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9)>에서 발췌

『위로부터 아래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면서 하나님과 맞서서 대항한다. 그 무슨 ‘오랜 문화 유산’, 귀중한 ‘고대 문화 지식’, ‘도교 학설, 유교 학설’, ‘공자 경전, 봉건 예의’가 사람을 다 지옥 속으로 이끌어 들어갔다. 현대의 선진적인 과학기술과 발달된 공업, 농업, 상업은 오히려 그림자도 없고, 다만 고대 ‘원숭이’가 가져온 봉건 예의를 강조하여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고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고 있으며, 사람을 지금까지 괴롭히고 있고 또한 전부 삼켜 버리려고 한다. 봉건 예교의 가르침과 고대 문화 지식의 유전은 일찍이 사람을 다 전염시켜 크고 작은 마귀가 되게 하였는데, 하나님을 달갑게 대접하는 사람이 얼마 안 되고, 하나님의 오심을 즐겁게 영접하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사람은 모두 얼굴에 살기가 가득하고 도처에 살기충천하여 하나님을 육지에서 몰아내려고 시도하며, 칼을 손에 쥐고 진을 치고서 하나님을 ‘멸절’시키려고 한다. 언제나 하나님이 없다고 사람을 가르치는 마귀의 땅에는 우상이 가득하며, 종이를 태우고 향을 피우는 메스꺼운 냄새가 온 하늘에 풍기고 있는데, 그야말로 사람으로 숨이 막히게 한다. 마치 독사가 뒹굴 때 일으키는 썩은 흙냄새와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참지 못하고 구토 설사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악귀의 ‘독경’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데, 소리는 마치 요원한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하여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치게 한다. 땅 위에 온갖 색상으로 우상을 잔뜩 진열하여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어도 마왕은 오히려 독살스레 웃어대고 있는데, 마치 흉계가 이미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마귀가 이미 사람을 패괴시켜 혼수 상태에 빠지게 하고 기가 죽게 했다는 것도 모른다. 마귀는 하나님의 전부를 한순간에 훼손시키려고 하고, 하나님을 재차 모욕하고 암살하려고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고 방해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그것과 ‘동등한 지위’가 되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땅에서 인간의 사역에 ‘손대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그것의 추악한 몰골을 폭로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그것의 사역을 망쳐 버리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이 마귀들이 격분하여 제정신이 아닌데, 어찌 하나님이 땅에서 그것의 조정의 기강을 다스리는 것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어찌 패배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추악한 몰골은 정체가 드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하는데, 실로 언급하기 어렵다. 이는 그것의 본질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7)>에서 발췌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성정은 나날이 악랄해져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거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아무도 없고, 더욱이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진흙탕에서 자신의 육체를 진탕 패괴시키고 있다. 흑암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은 설령 진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실행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이 이미 나타났음을 보았다 하더라도 찾으려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타락된 인류에게 구원할 여지가 어디 조금이라도 있는가? 이렇게 부패한 인류가 어떻게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 역사(歷史)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하여 마치 좀 먹지 않는 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생활하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봉건사상은 이미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였고, 사람은 다 질식하여 전혀 반항할 힘도 없고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해가 바뀌고 날이 지나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마치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생활하며, 지옥과 함께 망해도 좋다는 듯이 마지막 날의 도래를 기다리는데, 마치 사람이 바라는 마지막 날이 곧 사람이 ‘편히 누리는’ 날인 것 같다. 봉건 예교가 사람의 생활을 ‘저승’으로 이끌어 감으로 인해 사람은 더욱더 반항할 힘이 없게 되었으며, 갖가지 압박으로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저승으로 떨어지게 되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사람은 하나님과 이미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어 대면할 때에도 여전히 미처 피하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혼자 고립시키는데, 마치 하나님을 안 적이 없고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대 문화 지식은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몰래 훔쳐 가 마왕과 그 마왕의 자손들에게 넘겨주었고, ‘사서오경’은 사람의 사상 관념을 또 다른 하나의 패역한 시대로 끌어가 사람으로 ‘서경’의 저자를 더욱 숭배하게 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한층 더 심해지게 하였다. 부지중에 마왕은 사람 마음속의 하나님을 무정하게 내쫓고 자기가 오히려 득의양양하게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였다. 그때부터 사람은 추악한 영혼이 있게 되었고, 마왕의 몰골도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원한이 이미 가슴에 꽉 찼다. 마왕의 악독이 하루하루 사람 안에 퍼져 사람을 전부 삼켜 버렸으며, 사람은 더 이상 약간의 자유도 없었고, 마왕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어 곧바로 붙잡혀 그것에게 항복하고 귀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7)>에서 발췌

『중국 사람의 전통적인 관념에서는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사람은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공자가 교육한 것이다. 만일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불효자인데,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런 것으로 주입된 것이 아닌가? 가정마다 거의 모두 이런 것이 주입되었고 또한 학교에서도 이런 것을 주입시키고 있다. 마땅히 연장자를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해야 한다든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든가 그리고 일부 다른 것들도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말해 보자.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된 후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모든 것보다 중요하다. 만일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쁜 놈이다. 그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식이므로 양심이 없다고 비난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렇게 교육하고 가정에서도 그렇게 교육하고 있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에는 어떠한가? 진리와 하나님 말씀에서는 이런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람에게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은 네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할 수 없는 자,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 하나님이 혐오하는 자는 우리가 마땅히 혐오해야 하고 마땅히 단절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서 요구한 것이다. 만일 우리의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부모는 바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다. 부모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면 하나님도 당연히 부모를 혐오한다. 만일 우리에게 부모를 혐오하라고 하면 우리가 부모를 혐오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욕하면 부모는 확실히 하나님이 혐오하고 저주하는 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너의 부모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로막지 않고, 혹은 어떤 부모는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너는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은혜시대에도 예수님이 “누가 내 형제들이고 누가 내 부모이며 누가 내 자매들이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부모이니라”고 말씀하였다. 은혜시대에서부터 이런 말씀이 있었는데, 지금 하나님이 한 말씀은 더욱 적절하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해야 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이다. 하지만 사람은 흔히 하나님의 이 말씀의 참뜻을 터득하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저주한 사람인데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면 아주 좋고 혹은 그 사람이 너의 부모이고 너의 가족이라면 너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사람과 아주 밀접하게 왕래하고 관계도 아주 가깝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 너는 괴로우며 이 모진 마음을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떠날 수도 없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여기에 너를 속박하고 있는 전통적인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이렇게 한다면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고 심지어 천벌을 받으며 사회의 타기와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더욱 현실적인 것은 바로 자신의 양심이 가책을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너의 이 ‘양심’적 작용이 바로 어려서부터 부모 교육이나 사회 문화의 영향과 전염이 너에게 이런 뿌리와 일종 사상을 심어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마음속으로 네가 마땅히 그들을 미워해야 하고 그들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너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부모가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비록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사상적으로도 그런 사상이 있지만 원래의 생각을 고치지 못하고 실행해 내지 못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너는 아는가? 바로 이런 것이 이미 너를 아주 깊이 아주 단단히 결박하였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런 것으로 너의 사상, 너의 생각, 너의 심령을 결박하여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즉, 이런 것이 이미 너를 점유하여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네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그것이 너의 안에서 효능을 발생시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를 저촉하게 할 것이고 너로 하여금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런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너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무력하게 한동한 발버둥친 다음 타협한다. 어떤 사람은 발버둥치다가 나오고, 어떤 사람은 발버둥치다가 타협하고 ‘그래도 전통적인 관념, 전통적인 도덕 기준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제쳐놓자. 지금 아직도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 사람들을 의지해야 한다.’라고 여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이 사회의 여론이나 비난, 이런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택할지언정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포기하고 사회의 이런 여론이나 전통적인 관념의 속박에 투항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가련하지 않은가?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

중국의 전통적인 부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현모양처란 바로 자신의 남편과 아들딸을 대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신의 일생을 다 그들을 위해 화비하고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느 여성이나 다 자신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여인이 아니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양심과 도덕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잘 하지 못하거나 자기 기준에 따라 하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기 아들딸과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여기며, 남편의 하루 세끼, 씻고 닦는 가정의 이 모든 것을 특히 잘해야 하고 당연히 이것은 이 사회의 현모양처의 기준이라고 여긴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 만일 너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면 너의 본분과 네가 현모양처가 되고 또 모범적인 어머니가 되거나 표준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 싸움을 할 것이 아닌가? 만일 네가 현모양처가 되려 한다면 너의 본분을 그렇게 100% 시간을 들여 할 수 없다. 혹은 네가 현모양처가 되는 것과 본분을 하는 것이 충돌될 때 너는 어떻게 택하겠는가? 네가 본분을 잘하는 것을 택하고 하나님 집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려면 너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너의 사상에 어떤 파동이 일어나겠는가? 너는 자기 아들딸에게 아주 빚졌다고 여길 것이 아닌가? 너의 이 빚짐과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할 때 잘하지 못하면 너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는가? 너에게 불안함이 없다. 그것은 너의 사상 관점에 이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본분을 잘하지 못했을 때 너에게 가책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양심에 이런 긍정적인 것이 장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장비한 것은 무엇인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고 만일 현모양처가 되지 않으면 착하고 정직한 여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기준이 아닌가? 이 기준이 너를 속박하여 네가 본분을 할 때, 하나님을 믿을 때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한다. 만일 현모양처가 되는 것과 본분을 하는 이 두 가지 일이 충돌될 때 혹은 동시에 진행될 때 너는 억지로 본분을 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얼마의 불안함이 있을 것이고 더욱 많은 가책이 있을 것이다. 본분을 하지 않을 때는 집에서 자신의 아들딸이나 남편에 대해 잘해 주고 설사 자신의 육체가 더 많은 고통을 받더라도 그들에게 더 많이 보상해 줄 것이다.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사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책임과 의무, 우리의 본분을 하였는가? 우리는 가책감이 있는가? 가책감이 없는 것이 아닌가? 혹은 우리가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하여 속일 때 혹은 아예 본분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에게 가책감이 있는가? 참소가 있는가? 참소가 전혀 없다. 이것은 사람의 패괴된 성정 안에, 인성 안에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나하나가 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것, 심지어 우리가 스스로 이미 여긴 긍정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 안에 끼워 넣었고 정상 인성 안에 끼워 넣었으며 긍정적인 사물 안에 끼워 넣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들이다. 네가 말해 보아라,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한 진리와 차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사상 관점에서 우리의 행실, 우리가 받은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깊이 찾아내고 깊이 해부할 가치가 있다. 어떤 것들은 사회 환경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들은 가정에서 온 것이며 어떤 것들은 학교에서 온 것이고 어떤 것들은 책에서 온 것이며 또 어떤 것들은 우리의 상상 관념에서 온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가장 두려운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언행을 속박하고 통제하고 있으며 우리의 사상을 통제하고 있고 일하는 동기, 속셈, 목표까지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영원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할 수 없다. 너의 안에 자신의 사상 관점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여 원래대로 실행할 수 없다. 너는 틀림없이 자기 마음속에서 다시 가공한 다음 실행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하면 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사람의 것을 좀 뒤섞고 하나님의 것을 좀 뒤섞고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됐어, 진리를 실행했어, 깨달았어, 무엇이든 다 있어.’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의 정형이 가련하지 않은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이런 것은 짧은 한마디로 투철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삶 속에는 더욱 많은 것이 있다. 마치 우리가 이전에 총결해 낸 그런 100가지 독소와 같은데, 사람마다 이미 보았다. 네가 글귀는 깨달았지만 너에게 어떻게 대조하였는가? 너의 실행은 무엇인가? 이런 방면의 독소에 너도 한 몫 있는 것이 아닌가? 너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네가 일처리할 때에도 이런 원칙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너 자신의 경력(역주: 체험)에서 찾아내고 대조해야 한다.』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자신 안의 깊이 뿌리박힌 사상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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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③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⑤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