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46 설 명절과 풍속을 대하는 원칙

1. 전통적인 풍속은 다 사탄이 사람을 희롱하는 수작이지 결코 하나님의 명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설 명절과 풍속을 혐오하신다.

2.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패괴된 인류의 풍속에 신경 써서는 안 되고 마땅히 긍정적인 것을 제창하고 진리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

3. 설명절을 쇨 때 적당히 즐겁게 보내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본분을 함에 있어서의 본연의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다.

4. 각지에서 본분을 할 때 서로 다른 풍속 습관에 대해 배우고 순리에 맡기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거기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그런 미신 활동을 가장 증오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그런 미신 활동을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고 여기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였다. 젊은이들이 치르는 결혼식이나 혼수품, 그 무슨 납채 예물이나 술잔치와 같은 이런 혼사의 표현 방식, 전해 내려온 옛말,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모든 무의미한 미신 활동은 더욱 하나님을 혐오케 한다. 예배일(유대인이 지키던 안식일)도 하나님을 혐오케 하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인정이나 세속적인 교제는 더욱 하나님께 혐오 받고 버림받는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설’, ‘성탄절’도 결코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명절’ 기간에 차려 놓는 감상품(주련, 설떡, 폭죽, 초롱, 성탄 예물, 즐거운 성탄 모임, 성찬)은 모두 사람 마음속의 우상이 아닌가? ‘안식일’의 떡, 포도주, ‘세마포 옷’ 이런 것은 더욱 우상이다. 중국에서 떠도는 갖가지 전통 명절 ‘이월이’, ‘단오절’, ‘추석’, ‘납팔’, ‘양력설’처럼 교계의 ‘부활절’, ‘세례기념일’, ‘예수탄생일’ 등등 이런 아무런 근거도 없는 명절은 모두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인데,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와는 전혀 맞지 않고, 다 사람의 풍부한 상상이다. 사람의 ‘교묘한 구상’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는데, 약간의 허점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사탄이 사람을 희롱하는 속임수이다. 사탄이 군거하는 곳일수록, 오래되고 낙후된 곳일수록 봉건적인 낡은 풍습이 더욱 심각한데,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람을 단단히 묶어 전혀 활동할 여지도 없게 한다. 마치 교계의 많은 명절은 독창적인 것 같고, 마치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 같지만, 모두 사탄이 사람을 결박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무형의 밧줄이고 사탄의 궤계임을 어찌 알겠는가? 사실, 하나님의 한 단계 사역이 끝난 후, 일찍이 그의 그 당시에 사용했던 도구와 그 당시의 ‘풍격’을 없애어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경건한 신도’들은 여전히 형상이 있는 그 물질적인 것을 경배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연구하지 않는다. 마치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 가득한 것 같지만, 사람이 일찍 하나님을 문밖으로 내쫓고 ‘사탄’을 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예수 초상화’, ‘십자가’, ‘마리아’에서 ‘예수의 세례’, ‘예수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모두 그것들을 ‘천주’로 여겨 경배할 뿐만 아니라 또 말끝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외치는데,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오늘에 이르러 사람들 가운데서 전해 내려온 이와 유사한 많은 논법과 행실들은 하나님을 혐오케 하였고, 하나님의 앞길을 엄중히 가로막았고, 사람의 진입에도 더욱 막대한 손해를 주었다. ……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데는 그래도 먼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의 이런 심히 중독된 것들을 돌려세워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사상 도덕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선, 모두가 그런 종교 의식과 종교 활동, 연월과 절기는 다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고서 이런 봉건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람의 농후한 미신 색채를 다 모조리 없애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진입에 포함된다. 너희는 모두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세속에서 이끌어 내고 또 무엇 때문에 사람을 규례에서 이끌어 내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가 진입할 대문이다. 비록 너희의 영적 경력(역주: 체험)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이런 것이 가장 심하게 너희의 진입을 가로막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사람을 가로막는다. 이런 것이 ‘그물’이 되어 사람을 모두 그중에 독점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3)>에서 발췌

『나는 너희가 삶 속에서 진리와 무관한 일을 하는 것을 매우 많이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진리의 종이 되고 사악하고 추한 것의 노예가 되지 말며, 진리를 짓밟지 말고 하나님의 집 어디든 더럽히지 말라고 특별히 요구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무엇이 진리와 무관한 일인지를 더욱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주로 본분을 하는 것과 무관한 것, 생명 진입과 무관한 것,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무관한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개괄하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생명을 추구하고 본분을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무관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모든 일입니다. 이런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인데, 사람을 얽매는 동시에 사람의 생명 진입을 지체하는 사소한 일이며, 바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버리고 벗어 버려야 할 짐입니다. 만약 사람이 이런 일을 너무 많이 한다면 사람의 생명 진보에 영향을 주고 본분을 하는 데에 지장을 줄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진리와 무관한 이런 일을 벗어 버리지 않는다면 사람의 생명을 망칠 것이고 사람의 앞길을 망칠 것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이런 일에는 바로 사람의 생명에 해로운 세속적 짐, 자신의 취향, 육체적 누림, 풍속 습관, 조상의 유전, 때 이른 결혼, 아들딸을 낳아 기르는 것, 그리고 사람의 처세 철학, 종교적인 규례, 또한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기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불필요한 일에 신경 쓰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은 비록 정당한 것이지만 너무 많이 신경 써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다 진리와 무관한 일이며 사람의 생명 추구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무관한 이런 일은 비록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 위험이 극심합니다. 이런 일에 시달리면 만성 자살과 같아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우매한 사람이 스스로 그물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생명을 중요시하고 진리를 중요시한다면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의의 없는 일과 사람의 생명 진보를 지체하고 영향을 주는 일을 포기할 수 있고, 본분을 하는 것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 속하고, 사람의 생명에 유익이 되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총명한 사람의 행동입니다. 잠시적으로 고통받아도 생명 성장에 유리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으면 그것은 상책입니다.』

<좌담 기록ㆍ‘진리와 무관한 일’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사탄에게 속하는 인류가 좋아하는 일부 일은 죄의 낙에 속하고 의의가 전혀 없으며, 게다가 아주 무료하고 아주 비천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당신은 아직도 좋아합니까? 당신은 버렸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마치 세상의 밸런타인데이와 같은데 그게 무슨 명절입니까? 그리고 귀신 명절도 있는데 그게 무슨 명절입니까? 이런 명절을 당신은 아직도 보냅니까? 이방인의 그런 명절은 진리에 전혀 부합되지 않고 그저 사람을 점점 패괴시킬 뿐입니다. 만일 사람이 포기하지 못한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음을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합니까? 포기했습니까? 이런 일에 대해 속으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이런 것을 포기할 수 있고, 세상의 조류를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기만 추구합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그 모든 사물을 우리는 싫어하고 멀리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물을 보면 역겹고 혐오스럽고 징그럽고 무의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모든 이방인, 특히 겉모양이 번지르르한 그 사람들은 다 이런 것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살면서 아주 누림 있다고 여기며 아주 유행적이고 아주 고상하고 아주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여러분들이 말해 보세요,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렇게 ‘고상’한 사람, 그렇게 지위가 높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왜 그런 추잡한 일을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은 그들의 영혼이 너무나 더럽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렇죠? 보세요, 세상 사람은 명절에 따라 그에 맞는 꽃을 선물하는데, 그런 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의의 있습니까? 조금도 의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까? 역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럼 우리는 한 가지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의 생활 방식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활 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있는 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성 생활이 충족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의 생활에 대해 흥미가 없지만 새로운 삶도 없어 사는 것이 아주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이 진리를 얼마간 깨닫는다면 어떤 일을 해야 의의 있는지를 알게 되고 의의 있는 일을 좀 선택하여 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사람이 단조롭지 않게 살도록 하고 충족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도록 하는 일, 마치 진리를 교통한다든가, 노래하여 하나님을 찬미한다든가, 얼마의 의의 있는 활동을 한다든가, 정당한 소일거리와 같은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사는 것이 아주 즐겁고 이방인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오직 삶 속에서 무릇 진리와 관련되는 일에서 모두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의 모양입니다. 사람에게 구원받은 사람의 모양이 있으면, 즉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으면,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는 생활이 있으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진실한 기쁨과 누림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써 기쁨과 누림을 얻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으로써 마음속에 진실한 누림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 속에서 살면서 죄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고 더 충족합니다. 죄의 낙은 겉면의 낙이며, 마음 깊은 곳은 공허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면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으면 이 누림은 마음 깊은 곳의 것이며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사람의 모양이 있으며 사람의 정신 상태가 새롭게 달라지고 사람의 얼굴에 빛이 있으며 점점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됩니다. 사람의 모양은 무엇으로 살아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리를 깨닫고 마음 깊은 곳이 충족되고 위로가 있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다면 마음속에 참으로 희락과 평안이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희락과 평안이 있으면 당신의 얼굴에 진정한 형상이 나타날 것이고 당신의 생명 성정도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때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당신의 얼굴이 매우 정상이고 사람의 모양이 있으며, 당신의 얼굴 상태도 좋아 보이고 얼굴색도 좋아 보이며 표정도 정직해 보이는데, 볼수록 사람이 성결해 보입니다.』

<설교 교통 (3)ㆍ구원받는 데의 4가지 기준과 구원받는 사람의 진실한 정형>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떻게 설, 명절을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설을 쇠고 명절을 쇠는지에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기회를 빌어 즐겁게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아무 날이나 즐겁게 보내도 다 좋은 일입니다. 설명절은 우리 마음속에 없지만 기쁘게 보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번 설명절을 쇨 때 해야 할 본분이 있으면 본분을 하고, 좀 먹고 마시고 즐겁게 하려는 것도 잘못은 아닙니다. 본연의 일만 지체하지 않으면 됩니다. 만일 마음속으로 설명절을 쇠기 위해 허세를 부리며 낭비하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소비가 너무 많다면 합당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바른 곳에 쓰고 의의 있는 일을 해야 좋은 것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즐겁게 하는 것은 그래도 좋은 것입니다. 설명절을 대함에 있어서 즐거움으로 삼는 것은 완전히 합당합니다. 언젠가 우리에게 자신의 명절―큰 붉은 용이 무너지는 날,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는 날이 오면 그때에 경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명절을 쇠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함: 설명절을 맞아 즐겁게 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본분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설명절을 쇨 때 즐겁게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타지에서 본분을 하는 사람, 사역이 한창 바쁜 사람은 사역을 지체하면서 설명절을 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기에 마땅히 이 일을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추구와 실행 원칙”에 관한 보충 설명>에서 발췌

『“사람의 더 많은 지혜와 윤리 지식도 배워야 한다.” 여기의 ‘윤리’는 주로 사람 간의 일부 이해와 사람의 일부 풍속 습관, 서로 다른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또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바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이런 것이 다 없다면 당신은 사람의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소수민족 중에서 사역한다고 합시다. 소수민족의 일부 풍속 습관은 당신의 것과 다릅니다. 당신이 만일 관념으로 가늠하면서 “패괴됐어! 낙후해! 다 제거해야 해!”라고 말하고 그대로 한다면 이 사역을 할 수가 없고 일을 그르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관용하고 인내해야 하며 논단하지 말고 남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윤리 지식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들의 풍속 습관에 대해서도 당신은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쑥스럽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일부 풍속 습관이 너무 낙후하다고 여기며 따를 줄 모르면 안 됩니다. 당신은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그들이 춤추는데 당신이 거기에 가서도 춤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사역을 하겠습니까? 당신은 따라야 하고 그들과 함께 춤추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당신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당신은 먼저 논단해서는 안 됩니다. 논단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먼저 따르고 그다음 점차적으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거기에 가서 먼저 한바탕 평론하고 그다음 또 한바탕 논단하고 그런 후에 또 그들을 심판하고 형벌한다면 끝인 것입니다. 아무런 사역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해 보세요, 윤리 지식을 모르고 지혜가 없으면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부 처세의 원칙과 규율, 그리고 사람의 지혜, 사람의 더 많은 지혜와 윤리 지식도 배워야 합니다. 조금의 지혜로는 안 되고 사람의 더 많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방면의 지혜가 있어야 우리는 사람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꽤 어렵습니다.』

<설교 교통 (3)ㆍ문제 해답>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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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월이(二月二): 용이 머리를 드는 날이라고 기념하여 돼지머리 고기를 먹고, 이발을 함.

②납팔(臘八): 석가모니가 불도를 이루던 날을 기념하여 죽을 먹음.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