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39 죽음을 대하는 원칙

1. 사람의 생사존망은 다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고 다 하나님의 안배와 명정이 있으므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2. 사람의 육체와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하고 절대 자신에게 속하지 않기에 마땅히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하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한다.

3.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며 각 사람에 대한 안배는 다 공평하기에 꿰뚫어 볼 수 없는 일에 대해 논단하지 말아야 한다.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루라도 살도록 허락하시면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며,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시면 기꺼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고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온 인류 중에, 전능자의 눈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은 자가 누구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누구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더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이더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외쳤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강자가 되고 싶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였지만, 죽음의 날이 살며시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에 떨어지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고 통곡하였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넘어졌고, 시험 속에서 사로잡혀 갔는지 모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1편 말씀>에서 발췌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가 존재한 후부터 하나님은 계속 그렇게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실질이 곧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쉽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다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줄 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했는가? “당신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지만 모두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모두 공의가 그 속에 있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로운 행사로 말미암아 찬미하지 않으리이까?”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지 않은 것은 인류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보게 하려는 것임을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정도에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멸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는 다 공의롭다. 비록 사람이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함부로 논단해서는 안 되고 부당한 것처럼 보이거나 관념이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가장 이지 없는 행실이다. ……네가 보아라, 베드로는 어떤 일에 대해 추측할 수 없으면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고 확신했다. 사람은 전부를 측량할 수는 없으며, 추측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육체는 반드시 다 썩는 것이지만, 사람 안이 정결케 되고 사탄에게 속하는 육체적인 것들이 없어지면 땅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네가 아직 꿰뚫어 볼 수 없다. 너희가 지금 경력(역주: 체험)하는 것은 바로 땅에서 하루를 살면 그 하루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천년국도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에서 발췌

『베드로가 온전케 된 후, 즉 그가 삶을 마감할 즈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의 수명이 몇 년 더 연장될 수 있다면 당신을 더 순수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싶나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도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지금 당신의 때가 되었나이다. 바로 저에게 예비하신 때가 되었나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고 이 증거를 하리이다. 저의 사랑이 당신의 요구를 만족케 하고 저의 사랑이 더 순결해지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어 저는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느끼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만족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칠 수 있고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어 제 마음은 더없이 기쁨과 위안을 느끼나이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사랑스러우시니이다. 이후에 저를 계속 살아가게 하신다면 더욱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살아 있기만 하면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더 깊이 당신을 사랑하기 원하나이다. 저는 불의와 죄로 인해 당신의 심판, 형벌, 시련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저의 복이나이다. 이는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리이다. 저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기 원하나이다. 그로 인해 제가 더욱 의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지금 사는 것이 더욱 의의 있다고 늘 느끼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연고로 십자가에 오르기 때문이니이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의의 있나이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적기에 그리 만족하는 편은 아니니이다. 저는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완전히 만족케 할 수는 없고, 당신께 보답한 것이 너무나 적고, 살아 있는 동안 당신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지 못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더욱 빚졌다고 느껴지니이다. 이 한순간으로써 저의 모든 과실과 당신께 보답하지 못한 모든 사랑을 메울 뿐이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네가 전력을 다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보좌 위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설령 그때가 바로 네가 죽는 시각이라고 해도 너는 눈을 감을 때에 웃음소리를 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본분을 해야 한다. 전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너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위해 너의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배대로 해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원망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41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사람의 일생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의 심지(心志)가 아니라면 누가 또 이 공허한 인간 세상에서 헛되이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총망히 왔다가 총망히 가는데, 만일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지 않는다면 헛사는 것이 아닌가? 만일 네가 한 것이 설사 하나님이 보기에 언급할 가치도 없을지라도 너는 죽을 때면 기쁨과 위안의 웃음을 지을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9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어떻게 죽음을 대해야 하는지, 먼저 사람의 생사존망이 다 하나님의 장악과 주재 가운데 있고 하나님께서 어느 부류의 사람을 죽게 하시고 어느 부류의 사람을 살게 하시는지는 다 하나님의 안배와 명정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공의롭습니다. 사람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겠습니까? 이것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이지입니까? ……사람의 생사존망은 다 하나님께서 명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순교하고, 어떤 사람들은 수감되고, 어떤 사람들은 의외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사실 다 하나님의 안배가 있고 다 특별한 의의가 있으며,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기신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각 부류 사람에 대해 다 안배가 있으십니다. 어떤 사람이든 다 자신의 배역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거나 징벌받는 배역을 맡았는데, 그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으며, 사람이 추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탄의 희생품이 되어 도태된 것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배역을 맡았는데, 유다나 적그리스도 부류와 같은 사람이며 징벌받을 대상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였는데, 긍정적인 배역이며 온전케 되는 사람에 속합니다. 이 사람들은 비록 많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의 고통을 받고 각종 시련과 연단이 닥쳤지만 온전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각 사람에 대한 안배는 다 공평한 것인데, 전적으로 다 사람의 본성 실질에 근거해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죽었다 하여 꼭 나쁜 일은 아니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여 꼭 좋은 일은 아닙니다. 누가 꿰뚫어 볼 수 있겠습니까?』

<총집 (1)ㆍ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해야만 끝까지 따를 수 있다>에서 발췌

『간증을 잘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어떻게 죽음을 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천 년 이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을 속박하고 결박해 왔습니다. 사람은 모두 죽음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큰 치명상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해 만일 분명히 인식하면 다른 문제도 쉽게 해결됩니다. 간증을 잘할 수 있는지의 관건은 어떻게 죽음을 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완전히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죽음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적합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든 죽든 자신의 선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을 주재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루를 살게 하셔도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헌신할 것을 원하신다면 우리는 마땅히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해야 하며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힐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이렇게 죽음을 대한다면 우리는 죽음의 문제에서 너무 큰 통제를 받지 않을 것이며 간증을 함에 있어서도 많이 수월해질 것입니다. 비록 사람이 모두 아주 연약하고 육체를 헤아리며 죽기 싫어하지만 만일 참으로 죽음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하나의 적합한 태도가 있다면 우리의 정형도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죽음의 시련이 정말로 임할 때 우리는 헌신하여 하나님께 순복하는 기도를 할 수 있고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으며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기 위해 지금부터 마땅히 이 방면의 진리를 장비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투철한 인식이 있는 것도 가장 중요한 고리입니다. 각종 재난이 임할 때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의 위협을 형성할 수 있기에 만일 이 방면에서 고비를 넘길 수 없다면 간증이 있다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죽기까지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만 이 고비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든 살든 다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으며 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육체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맞추어 놓으신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절대로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는데,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주권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자신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살든 죽든 하나님께 맡겨야 옳은 것입니다. 사실, 죽든 살든 다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를 없애려고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것이 필요하시면 여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기려 하시면 누구도 우리를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는 것이 아주 관건입니다. 사람이 몸부림쳐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탄에게 간청하여 도움을 바라면 더 빨리 죽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대해 꿰뚫어 보고 해탈을 받고 내려놓을 수 있으면 간증을 함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좌담 기록ㆍ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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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게시(揭示): 쉽게 알 수 없는 것의 본질을 천명함.

④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