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38 질병을 대하는 원칙

1. 인류가 사탄에게 심히 패괴되어 구원에 이르기 전에는 질병에 걸리는 것이 사실 정상이므로 정확히 대해야지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2. 질병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것인데, 사람이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께 순복하는지를 보신다.

3. 사람에게 큰 질병이 임하는 것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에게 어떤 과오가 있는지를 성찰하고 하나님께 과오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4. 한사코 규례만 지키지 말고 사람의 분량과 터득에 근거해 치료를 선택하거나 믿음에 의지해도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사람 일생의 생로병사 이런 고통은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이런 것이 있는가? 사람을 금방 만들었을 때 사람에게 이런 것이 있었는가? 없었지? 그럼 이런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탄이 유혹한 후, 사람의 육체가 타락된 후 이런 것이 있게 되었다. 육체의 고통, 육체의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패괴시킨 후부터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후에 점점 타락되었고 사람의 질병도 점점 심해졌으며, 사람의 고통이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 인간 세상의 비참함, 인간 세상의 생존불가를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대해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패괴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는 의의>에서 발췌

『너에게 알린다. 이후부터 너희에게 다시는 육체의 병이 없다. 만일 또 불편한 데가 있다면 절대로 급히 겉면에서 원인을 찾지 말고 내 앞에 와서 나의 뜻을 구해야 한다. 기억했는가? 이것은 나의 약속이다. 이후부터는 완전히 육체에서 나와 영계에 들어간다. 즉, 더는 너희의 육신을 귀찮게 하는 병이 없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60편 말씀>에서 발췌

『만유의 머리, 전능한 하나님이 보좌 위에서 왕권을 잡고 우주와 만유를 주관하며 지금 온 땅에서 우리를 인솔하고 있다. 시시로 그와 가까이하고 안정하여 그의 앞에 와서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 수시로 배울 공과가 있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는가?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믿음이 부족하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 진실한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1 질병 고통이 임하면 어떻게 경력(역주: 체험)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고 하나님 뜻을 구하고 더듬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과오가 있는지, 어떤 패괴가 해결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육체는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고통받고 단련되어야만 사람이 방탕하지 않고 시시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마음이 괴로우면 늘 기도하면서 자신이 일을 잘못하지 않았는지,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거스렸는지를 성찰하여라. 이는 사람에 대해 유익하다. 사람에게 큰 고통과 시련이 임하는 것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2 사람에게 병이 있든, 병이 없든 모두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있다. 사람은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뜻을 모르면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모른다. 자신이 우매하여 초래된 것이라고 여기는데,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그 속에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큰 고통이 임하여 너를 죽기보다 못하게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성령이 사람의 삶을 동반하면서 사람을 깨우쳐 주기만 하고 빛 비춰 주기만 하는가? 하나님은 또 사람을 시련하고 연단하려 한다. 사람은 많은 고통을 받아야 정결함을 받을 수 있고 생명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3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시련하는가? 바로 고통받게 하는 것으로 사람을 연단한다. 시련을 받는 것이 곧 고통받는 것이다. 시련이 임하면 고통이 따른다. 시련이 없으면 어디 가서 고통받겠는가? 사람이 고통받지 않으면 또 어찌 변화될 수 있으랴! 시련을 받으면 당연히 고통받을 것이고 성령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너무 깊이 패괴되어 고통받지 않으면 분수를 모르고 고통받지 않으면 마음에 하나님도 없다. 패괴 성정을 해결하는 것은 진리를 교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시련과 고통을 통해 사람을 연단해야 한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596 질병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리든지 먼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까? 먼저, 병에 걸린 것도 정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병에 걸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라고 여기지 마세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여러 가지 잡곡을 먹어도 여러 가지 병에 걸리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닙니까? 이것은 자연법칙입니다. 어떤 병은 자연법칙에 속하고 어떤 병은 징계에 속합니다. 그 외, 어떤 병은 연단이고 심판과 형벌입니다. 하나면 하나고 둘이면 둘입니다. 잘 구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잘 구분하지 못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럼 제가 당신에게 한 가지 원칙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병에 걸리면 통제받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으려면 잘 믿고, 진리를 추구하려면 잘 추구하세요. 어떤 본분을 할 수 있으면 그 본분을 하고 본분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원망을 하지 마세요. 이렇게 실행하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하나의 간증을 해야 합니다. 즉, 이 사람이 병에 걸려도 계속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최소한 갖추어야 할 양심과 이지입니다. 통제받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힘이 있는 만큼 쓰세요. 이렇게 실행할 줄 압니까? 잘 분별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잘 분별하지 못하면 계속 하나님을 믿으면서 원망하지 말고 있는 힘껏 본분을 하세요.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체하지 않고 연단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세요. 당신이 한평생 앓아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할 심지가 있으며 한평생 앓아도 마지막까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고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간증이 아닙니까? 이렇게 실행하면 됩니다. ‘이 병이 무엇일까? 징계일까? 저주일까? 형벌일까? 이런 것을 잘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안 믿어.’라고 늘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잘 견지하여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원망이 없는 것인데, 원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상면의 설교 교통에 근거함

『사람이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당신이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당신에게 임하게 된 것인데,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면 ‘설마 이 병이 나의 패역으로 인해 임한 하나님의 징계란 말인가? 아마 자연법칙일 수도 있고 내가 생활 방면에 부주의해 초래된 병이겠지?’라고 의심하며 속으로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알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실행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징계로 하여 걸린 병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병은 해결됩니다. 만일 당신이 그 병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믿지 않고 자연법칙이라고 믿고 자신이 음식에 부주의하고 불규칙적으로 생활하여 초래된 것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것이고 의사에게 진찰받고 약을 먹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입니다. 어느 날 질병이 없어졌지만 생명 방면에서 당신은 온전케 되는 기회를 한 번 잃었습니다. 당신은 그 한 번의 진실한 경력을 잃었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얻지 못했으며 더욱이 시련을 겪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한 차례 질병의 시련 속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간증도 없습니다. 시련 속에서 간증을 굳게 서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더듬고 그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임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밖에, 당신이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일이 임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믿을 것입니다. ‘배경이 어떠하든지 나는 하나님께 순복할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이며 간증을 굳게 설 것이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이 믿음이 있다면 알아볼 필요도 없이 직접 간증을 굳게 서고 직접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며 진리를 실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설교 교통 (3)ㆍ패괴된 인류가 구원받는 진실한 과정>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떻게 질병을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 은혜시대에 사람이 병에 걸리든 화를 입든 다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늘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시고 화를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국도시대(역주: 왕국시대)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여 패괴를 벗어 버리게 하시기 위해 늘 질병과 고통으로 사람을 연단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줄 알아야 하고 자신에게 어떤 패괴 유로(역주: 흘러나옴)나 하나님을 노엽게 한 부분이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패역한 부분을 알지 못한다면 질병과 고통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공과를 반드시 잘 배워야 합니다. 일정한 효과에 도달해야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국도시대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임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어떤 방면의 공과를 배워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앓는 기간에 약을 먹고 치료를 해도 됩니다. 이것은 정당한 것이며, 자신의 선택과 이해 문제입니다. 하나님 집에는 규례가 없습니다.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진찰받아도 되고 약을 먹어도 되며 더욱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에 의지해도 됩니다. 어떤 병은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에서 온 것인데, 이런 병의 호전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질병이 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배워야 하며, 공과를 잘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치료해도 된다는 원칙을 잊지 마세요.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잘못입니다.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함: 경력이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질병과 환난이 임하면 사람의 패괴 본성이 가장 쉽게 드러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오랜 병에 효자 없다”, “사람은 오랫동안 같이 지내봐야 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라는 것은 사람에게 진실한 효성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사람이 오래 앓으면 자식의 진실한 효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오랫동안 같이 지내봐야 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처음 며칠은 줄곧 기도하고 믿음이 충만하지만 병이 낫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치료해 주시지 않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저를 치료해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의 뜻은 바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때는 사람의 믿음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만일 또 한동안 지난 후에도 여전히 치료해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것입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사람을 아주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작습니다! 만일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게 하셔도 우리가 하나님께 말대꾸하면서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앓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죽는다 해도 원망이 있어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질병의 고통스러운 연단은 사람에게 너무 유익한 점이 있고 많은 공과를 배울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진리에 진입하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시련이 임할 때 사람에게 성정 변화가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추구와 실행 원칙”에 관한 보충 설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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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