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37 자연 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재앙을 대하는 원칙

1. 어떤 자연 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든지 반드시 하나님이 공의롭고 전능하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다 진리가 있고 의의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패괴된 인류는 다 사탄의 본성과 큰 붉은 용의 독소가 있기에 반드시 심판과 형벌을 받아야만 정결함을 받을 수 있다. 마땅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야 한다.

3. 재난과 시련 속에서 마땅히 욥의 믿음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저버리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한다.

4. 마귀 사탄을 동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와 가족을 없애실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지금 이 시대에서 온전케 되어야지, 이후에는 온전케 될 기회가 없다. 하나님은 지금 확실히 너희를 온전케 하려고 하는데,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어떤 시련이 임하든지,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재앙이 임하든지 어쨌든 하나님은 너희를 온전케 하려 한다. 이것은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각기 기능을 다함에 관하여>에서 발췌

『욥이 시련을 겪은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있지 않은가? 있다! 어디에 있는가? 분명히 말할 수 없겠지? 네가 설사 의인이라 해도 하나님은 너를 시련하여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게 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기에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대한다. 의인이 견딜 수 있다 하여 시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의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너를 시련할 권리가 있다. 이는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이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장 이지(理智)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도 있고 스스로 그런 일을 처리할 권리도 있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은 공의로운 것이다. 공의란 결코 공평하고 합리하여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일을 얼마 처리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주고 네가 일을 얼마 하면 그만큼의 돈을 주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너는 분업 협조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고 지불한 것만큼 얻는 것이 공의라고 여긴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한 다음 하나님이 그를 멸한다 해도 하나님은 공의롭다. 왜 공의롭다고 하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도 공의롭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말하겠는가? 공의는 이런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면 공의롭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주 쉽다. 만일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공의롭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만일 그때 욥을 멸하였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누가 말한다 해도 억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려 한다면 사람이 패괴되었든 패괴되지 않았든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 이치를 분명하게 말해 줘야 하는가? 무엇에 근거해 사람을 멸한다고 설명해야 하는가? 필요 없겠지? 사람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해 쓸모 있으면 멸하지 않고 쓸모 없으면 멸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패괴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다 적합하고 다 그의 안배가 있다. 그의 눈에 거슬려서 간증을 다 한 다음 쓸모없다고 너를 멸한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닌가? 공의이다. 공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비록 네가 지금 사실적으로 알기는 어렵겠지만 도리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가? 사탄을 남겨두면?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 어떻게 공의로운가? 하나님의 실질이 곧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쉽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다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줄 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했는가? “당신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지만 모두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모두 공의가 그 속에 있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로운 행사로 말미암아 찬미하지 않으리이까?”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지 않은 것은 인류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보게 하려는 것임을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최종에 이르러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정도에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멸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음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는 다 공의롭다. 비록 사람이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함부로 논단해서는 안 되고 부당한 것처럼 보이거나 관념이 있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가장 이지 없는 행실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너희가 비록 온갖 고통과 시달림을 겪었지만 받은 고통은 욥과 같은 시련이 아니라 사람의 거역과 대적으로 인해, 또 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인해 받아들인 심판과 형벌인데, 공의로운 심판, 형벌과 저주이다. 하지만 욥은 본래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지극히 큰 사랑을 받은 의인이었다. 그는 본래 악을 행하지 않았고 여호와를 대적하지도 않았으며 충심으로 여호와 앞에서 충성을 다하였다. 그는 의로 인해 시련을 받게 되었고, 여호와의 충실한 종인 것으로 인해 불 같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오늘의 사람은 더러움과 불의로 인해 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록 받은 고통이 욥처럼 소와 양, 가산, 종, 아들딸, 친척과 친구들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받은 것은 오히려 불 같은 연단과 불사름이다. 또한 욥보다 더 중한 것은 이런 시련을 사람의 연약 때문에 경감하거나 옮겨간 것이 아니라 줄곧 사람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징벌, 심판, 저주이고 무정한 불사름이며 더욱이 사람이 당연히 얻어야 할 ‘기업’이고 사람이 당연히 얻어야 할 분깃이며 나의 공의로운 성품이 발표한 부분이다. 이것은 공개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얻은 것은 이미 오늘 받는 고통보다 더 큰 것이다. 너희가 받은 고통은 단지 우매한 탓에 겪은 좌절이고, 너희가 얻은 것은 오히려 너희가 받은 고통의 백배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복’에 대하여 너희들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이 단계 사역에서는 우리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 단계 사역이 이전의 그 어느 단계의 사역과도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실족할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인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믿음으로 되고 말씀이 사랑으로 되며 말씀이 생명으로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많은 연단을 겪고 욥보다 큰 믿음을 구비하려면 크나큰 고통과 온갖 시달림을 받아야 하고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모두 죽기까지 순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크나큰 믿음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8)>에서 발췌

『시련을 경력(역주: 체험)하는 중에 사람이 연약하든, 내면이 소극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 실행할 길에 대해 별로 명확하지 못하든, 그런 것은 다 정상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소유한 것들은 다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분도 역시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하든지 그는 그렇게 인정하였다. 네가 경력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가 그렇게 하여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고 또한 사람의 심지이다. 그는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게 하는데,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너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육안에 보이지 않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버리지 못할 때에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깨닫지 못할 때에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이 입장을 확고히 하고 이 간증을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

……고난이 닥칠 때, 네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이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차라리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임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사탄이 누구인가, 마귀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대적파들이 아니던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 사람들이 아니던가? 입으로는 믿지만 진리가 없는 그 사람들이 아니던가? 복받기만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아니던가? 오늘날에도 네가 이 마귀들과 손을 잡고, 이 마귀들에게 양심으로 대하고, 사랑을 준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닌가? 마귀와 야합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오늘까지 왔어도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만 논하고 긍휼만 논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할 수 없다면, 이 부류 사람의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무릇 육신에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 양심과 사랑을 논하는데, 너에게 정의감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사람인데도 너는 오히려 그와 합하고, 여전히 그에게 사랑을 주거나 사적인 정으로 대하는데, 그러면 네가 거역하는 것이 아닌가? 고의로 대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도대체 진리가 있기는 한 것인가? 원수에 대해 양심을 논하고, 또 마귀와 사랑을 논하고, 또 사탄과 긍휼을 논하는데, 이는 모두 고의적으로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하나님의 징벌이 참으로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확실히 현실적인 문제인데, 우리가 급히 직면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정을 거스른 적이 있다면 정말로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일단 징벌이 임할 때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도 한 가지 진리이므로 반드시 장비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잊혀진 진리인데, 지금 당장 쓰일 것입니다. 만일 정말 장비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멸망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복을 받는 진리만 장비하지 말고, 징벌받으면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할 것인지의 진리도 좀 장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현명한 사람입니다.

징벌받아도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깊은 진리입니다. 먼저 우리가 왜 징벌받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거스르고 행정을 거스렸다면 도대체 징벌받아야 합니까, 받지 말아야 합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징벌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우리가 또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그 밖에,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고 믿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고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이 당신에 대해 감정이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에 대해 감정이 있다면 하나님이 또 어찌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겠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찬미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믿는 분이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도 자연히 공의로운 분이시고,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다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마땅히 공의를 실행해야 하고 자신에 대해 더욱 공평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의를 행하셔야만 우리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며, 우리도 심령 깊은 곳에서 진실한 찬미를 발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만 있다면 우리의 성정을 변화시킬 수가 없으며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도 불리합니다. 이후의 재난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은 바로 우리의 성정을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징벌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도대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달렸습니다. 동시에 또 우리의 성정이 도대체 변화가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있는지도 드러냅니다. 이것은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직접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징벌하신다 해도 어떻게 순복할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시는 것은 이미 시작되었고, 홍수를 위주로 하는 각종 재난도 이미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느낌이 어떻습니까?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감개무량해하고 아주 흥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큰 붉은 용에게 괴롭힘을 받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온갖 핍박과 환난을 받아 집이 있어도 돌아가기 어렵고 전혀 인권이 없으며 자유를 잃고 날마다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던 그날이 끝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시기 시작하는데, 이치에 따르면 경축 대회를 열어 한바탕 축하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잠시 환경이 허락되지 않기에 그냥 둡시다. 우리는 그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큰 공이 이루어짐을 축하할 뿐입니다. 이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별적인 멍청이도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살림살이가 박살날까 두려워하고 자신의 행복한 가정이 방해와 위협을 받을까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이익만을 따집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데, 진짜 불신파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복을 받고 즐거운 날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보아하니 그들은 사탄 마귀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즐기기를 원하며 마귀 사탄에 대해 전혀 역겨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큰 붉은 용이 하루빨리 훼멸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루빨리 나타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가며 안일을 탐내는 진짜 비열한 소인배들입니다. 만일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기필코 큰 붉은 용을 증오할 것이고 그것과 양립할 수 없으며 그것과 절대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큰 붉은 용이 하루라도 존재하는 한 마음이 우울하고 불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재난을 내리시든지, 우리 몸에 얼마 임하든지 오직 큰 붉은 용을 멸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재앙을 받아도 원망이 없고 단호히 간증을 굳게 서서 사탄을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시는 동시에 우리 몸에도 큰 붉은 용의 독소가 있기에 재난이 임하고 형벌을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설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귀)을 멸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해야 합니다. 우리 육체의 집을 없애고 우리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설사 우리가 욥과 같은 시련을 받을지라도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검증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더욱 굳게 간증을 서는 것으로 사탄을 반격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심한 시련 속에 두셔서 한 가닥의 생존 희망도 없게 하신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살든 죽든 하나님께 맡깁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살게 하시면 저는 꼭 살 수 있고,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죽게 하신다 해도 원망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 수 있어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형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큰 붉은 용의 자손이니 바로 형벌받을 대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정결케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하시는 사역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든지 이 간증을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런 것은 바로 대재난이 내릴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현재 마땅히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추구해야 하고 모든 준비를 잘 하여 우리의 약속을 이루어야 합니다.』

<좌담 기록ㆍ모든 재난이 내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서 발췌

『일부 흐리멍덩한 사람들은 이방인이 재난 당하는 것을 보면 동정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또한 뻔뻔스럽게 그들을 위해 재난을 면케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들의 불신자 아내(남편), 아들딸, 친척, 친구에 대해 더욱 동정하며 늘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 하나님께 그들을 구원하고 보호해 달라고 빕니다. 마귀를 동정하고 심각하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런 행위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흐리멍덩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불신자 마귀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할 수 있는데, 참으로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고 조금의 기본적인 진리마저도 구비하지 못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당신의 아비 어미든 아니면 당신의 아내(남편)나 아들딸이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곧 마귀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만약 당신이 마귀에 대해 저주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다면 이미 마귀와 한 편에 서서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만일 재난이 임할 때 각종 재난이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면 당신은 또 어찌하겠습니까? 그래도 간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너무 심한 탓에 마귀를 배반하지 못하고 마귀와 함께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더욱 불쌍히 여길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진리가 없어 징벌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이미 은혜시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 형벌하시고 정복하시며 상선벌악하시는 마지막 시대이므로 매사마다 진리로 행해야 합니다. 일가족과 하나님께서 멸하실 모든 대상을 포함하여 악인과 불신파에 대해 우리는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정의를 향할 수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그들을 제거하여 모든 화근을 면케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됩니다. 마귀를 동정하는 것은 사랑이 있는 것과 다릅니다. 만일 참으로 사랑이 있다면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마귀의 통제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를 동정하는 것은 마귀를 사랑하고 사탄을 사랑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큰 붉은 용의 교만하고 자대하며 교활하고 궤사한 본성입니다.』

<좌담 기록ㆍ마귀를 동정하는 것은 엄중하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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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