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36 앞날과 운명을 대하는 원칙

1.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으며,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다 공의롭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해야 한다.

3. 전망과 운명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복을 받든지 화를 입든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이다.

4. 설사 전망과 운명이 없다 해도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하고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양심과 이지이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하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그것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만든 천지 만물이 다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 별을 창조한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물과 식물을 창조한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사람을 위한 것인데, 등등 이런 것은 다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어떻게 형벌하고 심판하든 그것은 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설령 사람의 육체적 소망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은 또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귀숙이 모두 조물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명정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류가 존재한 후부터 하나님은 계속 그렇게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이 우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적을 지휘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나는 우리가 가장 간단한 길을 찾아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바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는 것인데, 네가 참으로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으면 온전케 된 것이다. 이것은 홀가분하고 유쾌한 일이 아닌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렇게 많이 고려하지 말라. 전망과 운명이 너 자신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가? 네가 늘 벗어나 세상의 길을 걸으려 하는데 왜 언제나 걸어 나갈 수 없는가? 왜 네가 갈림길에서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최종에 또 이 길을 선택하였는가? 네가 오랫동안 유랑하다가 왜 오늘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또 이 집으로 발을 들여놓았는가? 이것이 너 자신의 일인가? 이 도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믿어지지 않으면 나의 이런 말을 들어보아라. 가령 네가 여기에서 나가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하는지, 성령이 어떻게 너를 감동시켜 체험하게 하는지를 보아라. 솔직히 말해서, 설사 화를 입는다 해도 이 흐름 속에서 입게 할 것이다. 똑같이 고통받는 것이라 해도 오늘은 이 흐름 속에서 고통받게 하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게 한다. 너는 분명히 보았는가? 네가 또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이것은 다 하나님의 행정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한 것이 의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가? 오늘날,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쉽게 노를 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의 계획을 교란시키려 한다면 개었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는 것 같이 하나님은 즉시 표정을 바꾼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그래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여 하나님이 너를 만들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7)>에서 발췌

『너 같은 피조물이 무슨 근거로 하나님에게 요구하는가? 사람은 하나님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장 이지(理智)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도 있고 스스로 그런 일을 처리할 권리도 있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은 공의로운 것이다. 공의란 결코 공평하고 합리하여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일을 얼마 처리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주고 네가 일을 얼마 하면 그만큼의 돈을 주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너는 분업 협조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고 지불한 것만큼 얻는 것이 공의라고 여긴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한 다음 하나님이 그를 멸한다 해도 하나님은 공의롭다. 왜 공의롭다고 하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도 공의롭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말하겠는가? 공의는 이런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면 공의롭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주 쉽다. 만일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공의롭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만일 그때 욥을 멸하였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누가 말한다 해도 억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려 한다면 사람이 패괴되었든 패괴되지 않았든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 이치를 분명하게 말해 줘야 하는가? 무엇에 근거해 사람을 멸한다고 설명해야 하는가? 필요 없겠지? 사람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해 쓸모 있으면 멸하지 않고 쓸모 없으면 멸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패괴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다 적합하고 다 그의 안배가 있다. 그의 눈에 거슬려서 간증을 다 한 다음 쓸모없다고 너를 멸한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닌가? 공의이다. 공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비록 네가 지금 사실적으로 알기는 어렵겠지만 도리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가? 사탄을 남겨두면?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 어떻게 공의로운가? 하나님의 실질이 곧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쉽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다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줄 때 베드로가 어떻게 말했는가? “당신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지만 모두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모두 공의가 그 속에 있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로운 행사로 말미암아 찬미하지 않으리이까?”』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발췌

『어떤 상황이 오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므로 그는 구원할 사람을 마음대로 격살할 리가 없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될 수 있든지, 설사 하나님이 마지막에 너를 격살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는 것은 확실히 공의로운데, 때가 되면 그래도 네가 알도록 할 것이다. 현재 너의 임무는 오로지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본분을 하여라. 이러면 틀림이 없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확실히 공의로운 것이다. 이것을 너는 의심해서는 안 되고 근심할 필요도 없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피조된 사람인 이상 너의 창조주께 순복해야 한다. 그 까닭은 네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만큼, 거룩해지기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너는 피조물인 만큼, 자신의 본분을 잘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너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교조적인 것으로 너를 억압하는 것도 아니라, 네가 본분을 하는 길이다. 이것은 의를 행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자 해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피조물로서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없이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정확한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고, 얻는 것이 성정의 변화라면, 네가 가는 길은 정확한 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해도 내가 칭찬하지 않고 마지막에 너를 사탄의 손에 내버리겠다고 알려 주었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하나님, 천지 만물 가운데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저의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역주: 권세)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비록 육체가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설령 제가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죽게 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제가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라고 기도하였다.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비록 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받아 사람에게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보게 할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낙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라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하는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한다. 욥에게서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로소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지금 참으로 자신의 실질을 알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다면, 또 어떤 전망이나 소망을 추구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나는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다 나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 더러움을 떨쳐 버리고 사탄의 권세를 벗어나 사탄의 권세하에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인식해야 할 바이다. 물론 너에게는 이렇게 요구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저 정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 안에 순복할 심지(心志)가 있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게 하는데, 이러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만약 너에게 정말 양심이 있다면 너는 부담과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정복되든 온전케 되든 나는 이 단계의 증거를 잘해야 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철저히 정복되어 후에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며 자신을 완전히 바쳐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책임이고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다. 사람은 마땅히 이 부담이 있어야 하고 이 부탁을 완성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3)>에서 발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지기(知己)여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하나님에게 일편단심이어야 한다. 사람 뒤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앞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담만을 헤아려야 한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지기이다. 하나님의 지기가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중대한 부탁과 하나님의 부담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할 수 있고 전망과 득실을 따지지 않는데, 설사 아무런 전망도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지기라고 한다. 하나님의 지기는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비록 육체가 힘들고 연약할지라도 고통을 참고 애지중지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더 많은 부담을 이런 사람에게 더해 주며, 하나님이 하려는 일을 이런 사람을 통해 발표해 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뜻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직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왕이 되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네가 진정 하나님의 지기가 될 때는 곧 네가 하나님과 함께 왕이 되어 권력을 잡을 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네가 전력을 다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보좌 위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설령 그때가 바로 네가 죽는 시각이라고 해도 너는 눈을 감을 때에 웃음소리를 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본분을 해야 한다. 전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너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위해 너의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배대로 해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원망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41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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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②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⑤게시(揭示): 쉽게 알 수 없는 것의 본질을 천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