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29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 사람을 따르는 것을 분별하는 원칙

1. 사람이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으시게 하는지, 아니면 늘 사람을 앙망하고 사람에게 순종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2. 사람이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부합되는 말씀에 순복하는 것을 선택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말만 듣고 각 방면에서 사람을 수호하고 사람의 통제를 받는지를 보아야 한다.

3. 사람이 하나님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에만 순복하는지, 아니면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 및 악인의 제한과 통제를 받는지를 보아야 한다.

4.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매사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진리에 순복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지위나 영적 도리와 처세 철학에 순복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따라가기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면 너도 따라서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이것을 악령의 역사라고 말하면 너도 따라서 의심하거나 혹은 악령의 역사라고도 말하며, 늘 부화뇌동(원문: 人雲亦雲)하고, 스스로는 조금도 분별할 줄 모르고 주견도 전혀 없다. 이는 입장이 없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칠푼이이다! 늘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는데, 지금은 성령 역사라고 말하지만 또 어느 날 누가 그것을 성령 역사가 아니라 완전히 사람이 한 것이라고 말하면 자신도 꿰뚫어 보지 못해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서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본래는 성령 역사인데 네가 그것을 사람의 사역이라고 한다면, 너는 성령 역사를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분별력이 없는 탓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이 아닌가? 또 어느 날, 멍청이 하나가 뛰쳐나와 “이것은 악령 역사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또다시 다른 사람의 말에 통제받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너를 방해할 때마다 너는 입장이 없게 되는데, 이런 것은 다 너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네가 예배에서 설교만 듣고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열심이 있다고 해서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경력(역주: 체험)과 인식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함에 있어 원칙이 있어야 하며, 성령 역사를 얻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면서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하거나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니까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만약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그에게 물어보아야 해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

이전에 사람을 따랐든,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했든, 이 단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이 단계 역사를 경력한 기초에서 또 사람을 따른다면, 너는 용서받을 수 없고, 너의 결말은 바울의 결말과 같게 된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7.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적인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 외에 모든 것은 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고,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안 된다. 절대적으로 청종하고,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말라. 옳든 그르든 너와 무관하니 절대적으로 순복하기만 하라.

8.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사람을 높이거나 우러러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첫 순위에 두고, 자신이 우러러보는 사람을 두 번째 순위에 두고, 자신을 세 번째 순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에 어떤 사람의 자리도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이 숭배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거나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국도시대 하나님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에서 발췌

『입으로만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자신이 믿는 이가 도대체 하나님인지 아니면 사탄인지를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이 좋겠다. 만일 너 자신이 믿는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우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일 너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믿는지 모른다면 자신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믿는다고 말하지 말라. 그 말을 나는 이미 싫증나게 들었고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너희가 믿는 것은 모두 너희 마음속의 우상이고 모두 너희들 가운데 있는 불량배들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들으면 머리를 흔들고 사망의 말을 들으면 온 얼굴에 웃음을 띠는 그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자손들이고 모두 도태될 대상들이다. 교회에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나타날 때면 그들은 기어코 사탄의 편에 선다. 그들을 사탄의 심부름꾼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또 너무 억울하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분별력이 없다고 말해도 그들은 매번 언제나 비진리의 편에 서고 중요한 시기에 한 번도 진리의 편에 서지 않고 한 번도 진리를 위해 일어나서 변론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말로 분별력이 없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기어코 사탄의 편에 서는가? 무엇 때문에 여태껏 진리를 위해 공평하고 합리적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가? 정말로 그들이 일시적으로 흐리멍덩하여 초래된 것인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진리의 편에 설 수 없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죄악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설명하지 않는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사탄의 후계자임을 설명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늘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과 똑같은 말을 하는가? 그들의 일언일행과 표정이 곧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혐오하는 사람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들이 사탄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은 곧 사탄이 자기를 위해 일생 동안 분투하는 이 작은 귀신들을 아주 사랑하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뻔한 사실이 아닌가? 네가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안중에 두지도 않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비치기만 해도 즉시 따르는가? 이것은 무슨 문제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발췌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심판도 좋아하지 않으며, 세력과 돈을 좋아하는데, 이러한 사람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세상에서 세력이 있는 그런 교파를 찾고, 전적으로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만 찾으며,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반신반의하고 온 몸과 마음을 쏟지 못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화비한다는 글귀를 말하지만, 눈은 오히려 대단한 목사와 강사를 주시하고 있고,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의 마음속은 명리와 영예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이토록 작디작은 이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고, 눈에 차지도 않는 이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진토와 거름 더미에 있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만약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라면, 하늘땅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배꼽 잡고 웃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택하여 온전케 한다면, 저 큰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 성분이 뒤섞여 있는데,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그야말로 이치로 이해시킬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단지 지위, 명망, 세력을 중요시하고 큰 단체와 파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인솔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눈에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본래부터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배치되는 배반자들이다.

너는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 않고 지위가 혁혁한 그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며,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그리스도를 좋아하지 않고 세상과 야합하는 그 음탕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너는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비웃기만 하면서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사는 그 시체들을 탄복한다.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그 적그리스도의 품속에 안기기를 원한다. 비록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은 육체, 글귀, 통제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을 향하고 있는데, 그들의 명예와 사탄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모든 지위를 향하고 있고, 그들의 세력과 권세를 향하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한다. 네가 오늘까지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부득이한 것이다. 너의 마음에 하나하나의 높고 큰 형상이 영원히 우뚝 솟아 있어, 너는 그들의 일언일행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그 말과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그 두손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영원히 지고지상한 자이고, 영원히 영웅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너의 마음속에서 그는 영원히 비천한 자이고, 영원히 경외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너무나 평범하고, 그의 권세는 너무나 작으며, 그가 너무나 높지도 크지도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에서 발췌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살아내려고 추구했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고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며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고,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었으며,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런 심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대로 해냈다…… 베드로도 예수를 따르면서 비록 본연(원문: 天然)의 것을 드러낸 적이 있었지만, 본성에 따라 말하면, 그는 처음부터 성령께 순복하고 그리스도를 추구하려고 소망했던 사람이고, 성령께 단순하게 순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진심(원문: 存心)으로 진리에 순복하였다.

…………

바울은 자신의 실질과 패괴를 인식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패역은 더욱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전에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비열한 행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절실히 뉘우치지도 않았으며, 그저 해석만 조금 하였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면이 없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랑과 경외가 충만한 사람이 아니고, 진리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며,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을 찾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단지 교활하게 변명하는 것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나 진리가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와 상반되거나 적대되는 사람 혹은 진리를 시기하고 질투하였으며, 위대한 형상이 있고 박학다식한 수재들을 좋아하였다. 그는 진리만 사랑하며 참 도를 찾는 궁핍한 사람들과 왕래하기를 싫어하였고, 도리만 말하고 지식이 풍부한 교계 조직의 상위층 인물들과 접촉하기 좋아하였다. 그가 좋아한 것은 성령의 새 역사가 아니고, 성령의 새로운 역사 동태를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일반적인 진리보다 높은 규례와 도리를 좋아한 것이다. 그의 선천적인 본질과 그가 추구한 모든 것을 놓고 말하자면,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받을 자격이 전혀 없고, 하나님 집의 충실한 종이라고 칭함 받을 자격은 더욱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또 어떻게 실행합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는 것이고, 진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 속에서 생명 경력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모든 본분을 잘 하면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앞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중대한 문제가 임한 전환점에서는 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사람의 모든 도리의 미혹을 경계하고 사람의 속박을 털끝만치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면 순복하고 따르지만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면 단호히 거절한다. 인솔자나 일꾼이 전달한 것이 하나님의 안배와 서로 저촉될 때면 나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것에 순복하고 사람의 것을 거절한다. 만약 하나님의 안배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된다면 나는 순종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따르는 것은 바로 그가 숭배하는 일꾼이나 인솔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위치가 얼마 없고 그저 하나님을 따른다는 간판만 내걸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모든 행위는 다 사람을 모방하고 사람을 본받는 것입니다. 특히 중대한 일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운명을 주재하게 합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서도 분별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이 도리가 있기만 하면, 진리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그는 다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따르는 표현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는 원칙이 없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진리가 없습니다. 누가 말한 것이 도리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순종합니다. 만약 그의 우상이 일단 잘못된 길을 간다면 그도 끝까지 뒤따르려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우상을 정죄한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관념이 생길 수 있고 우상을 꼭 부둥켜안고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유는 누가 우리를 관할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관원이라 해도 실제 일을 관장하는 사람보다 실권이 없다는 격인데, 이것은 순전히 어리석은 자의 논리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멍청합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따르는 것과 사람을 따르는 것에 대한 분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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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