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22 글귀 도리를 분별하는 원칙

1. 글귀 도리는 전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람의 분석과 해석에서 온 것이지 진실한 경력과 인식이 아니며,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뜻한다.

2. 도리는 사람의 두뇌 사유에서 온 것이지 성령의 깨우침이 아니고 진실한 경력도 아니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사람에게 유익한 점을 얻게 할 수 없다.

3. 글귀 도리는 전부 규례와 겉면의 행실이지 실행 원칙과 길이 없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통제받게 하고 해방받지 못하게 한다.

4. 글귀 도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소질과 은사를 앙모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해 오히려 인식이 조금도 없게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어떤 사람들이 사역하고 설교할 때,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지만 전부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으로 하고 실질적인 것은 전혀 없다.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마치 국문학을 가르치는 것처럼 한 조목씩, 한 방면씩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면 다들 또 분위기에 맞춰 치켜 주며 “와, 저 사람은 실제가 있고, 설교도 꼼꼼하게 참 잘하네.”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설교를 마치면 그것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전부 그릇된 논리만 말하는 것인데, 겉으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고 매우 진리에 부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세하게 분별해 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은 전부 글귀 도리이고 전부 그릇된 논리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의 상상과 관념이 있고 또한 하나님을 규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설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섬김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네가 만일 하나님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참으로 깨달으려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너는 ‘내가 글자 표면에서 다 해석할 줄 알고 다른 사람도 듣고는 다 좋다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이러면 내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어.’라고 여기지 마라.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과는 다르다. 만일 하나님 말씀에서 빛 비춤을 조금 얻고 또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진정한 함의를 더듬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의의가 무엇인지, 최종에 도달할 효과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다 투철하게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하나님 말씀을 글자 표면에서 그럴듯하게 멋있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에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과 사유이니 쓸데없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바탕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서 실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실제가 있다는 것은 네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너의 자연적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되어야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고, 너에게 참으로 인식과 실제 분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의 검증을 이겨 낼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되는 모습을 살아낼 수 있으며,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어야 진정한 실제라고 할 수 있고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에서 발췌

『진리에 대해 경력(역주: 체험)이 없으면서도 설교하려고 한다면, 네가 아무리 설명해도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아무리 해 봤자 글귀이다. 너는 깨우침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도리적으로 깨달은 것이지 실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들어도 실제적인 것을 더듬을 수 없고, 당시에 들을 때는 아주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지나고 나면 전부 잊어버린다. 실제 정형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고, 그런 것은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수 없으며, 더더욱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담 기록ㆍ진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너는 아는가?>에서 발췌

『네가 경력한 후에는 자신이 경력한 일에 대해 자신에게 있게 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또한 너는 어떤 사람들의 인식이 진실하고 실제적인지, 어떤 사람들의 인식이 도리적이고 무가치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말하는 인식이 진리에 부합되는지는 너에게 실제 경력이 있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너의 경력 가운데 진리가 있으면 너의 인식은 실제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너의 경력으로 너는 또 분별력이 더해질 것이고, 식견이 더해질 것이며, 너의 인식이 더 높아질 것이고, 너의 사람됨의 지혜와 상식이 늘어날 것이다. 진리가 없는 사람이 말하는 인식은 아무리 높아도 도리이다. 그런 사람은 육체적인 일에서는 아주 지혜로울지 모르지만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분별이 없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일에 대한 경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영적인 일에서 꽉 막힌 사람, 즉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네가 어떤 방면의 인식을 말하든지 너의 소시이기만 하면, 그것은 네가 직접 경력한 것이고, 참으로 인식한 것이다. 전적으로 도리만 말하는 그 사람들, 즉 진리도 없고 실제도 없는 그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들의 소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의 도리도 그들이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 낸 것이고, 그들의 머리로 심사숙고한 후에야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저 도리이고 사람이 상상해 낸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무엇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에 모두 적지 않은 공을 들였지만 후에는 인식만 있을 뿐 실제의 길을 말하지 못하는가? 너는 인식이 있으면 바로 진리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견해가 아닌가? 네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어도 그중에 실제의 길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 사람을 해치는 행실이다! 이론이 높을수록 더욱 실제가 없기에 더욱 사람을 실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지 못하며, 이론이 높을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최고의 이론을 보배로 간주하지 말라. 그런 것들은 화근이고, 쓸모가 없다! 혹시 어떤 사람은 최고의 이론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중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그 본인이 아직 경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행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기에 사람을 모두 잘못된 길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최소한 너는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사람이 진입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헌신했다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늘 비현실적인 큰소리를 치지 말고, 적합하지 않은 많은 행위로 다른 사람을 속박하여 너에게 순복하게 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효과가 없기에 사람을 이끌수록 더욱 흐리멍덩하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이끌다가 많은 규례를 만들어 내어 사람으로 너를 혐오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부족한 면인데, 정말로 사람을 난감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제를 많이 말하여라>에서 발췌

『너희는 진리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우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도리를 말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공식을 발견할 수 있는지 등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늘 그런 것을 체계화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모두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하게 하고, 똑같은 도리를 말하게 하며, 똑같은 지식이 있게 하고, 똑같은 규례를 지키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목적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더욱 깨닫게 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도리어 사람을 하나님 말씀 진리 밖의 규례로 이끌어 간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구나! 만약 사람에게 참으로 깨닫게 하려면, 너는 실제에 결부시키고 사역에 결부시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네가 만일 공식과 규례로 글자 면에서만 공력을 들인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람을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솔하지 못하며, 더욱이 사람으로 더욱 많이 변화되게 하거나 자신을 알게 할 수 없다.』

<좌담 기록ㆍ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다>에서 발췌

『네가 교회 인솔자라면 교회 형제자매들의 정형을 지적할 때 “당신들이 있는 이곳은 확실히 낙후하네요. 당신들은 확실히 패역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도대체 어떤 방면에서 패역하고 어떤 방면에서 낙후한지, 네가 그 품행, 즉 사람의 패역 정형과 패역 행위에 대해 말하여 그들이 심복구복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을 말하고 예를 들어 문제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그 패역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실행의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네가 단지 “저는 당신들이 있는 이곳에 오기 싫네요. 이곳 사람들은 가장 낙후하고 너무나 패역해요.”라고 말할 뿐이라면 사람들이 들어도 길이 없는데, 네가 어떻게 사람을 이끌겠는가? 너는 실제 정형과 실제 행위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행할 길이 있는 사람이고 실제가 있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7)>에서 발췌

『너희의 인식은 겨우 한동안만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네가 오랫동안 늘 그런 것들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분별해 낼 수 있어 너에게 깊은 것이 없고, 있는 것은 너무 얕다고 말한다. 너는 별수 없이 도리만 말해 사람을 미혹시키게 된다. 네가 늘 그렇게 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너의 방식에 따라, 너의 절차에 따라, 너의 그 형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경력하면서 그런 글귀 도리들을 실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설교하다 보면 나중에는 모두가 너를 본보기로 삼게 된다. 네가 사람을 인솔하면서 도리를 말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사람의 잘못된 것들이 나오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너를 따라가게 될 것인데, 그러면 너는 ‘이제는 권력이 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내 말을 들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사람 안에 있는 이 배반으로 인해 부지중에 하나님을 배척하여 실권을 잃게 하고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종파, 어떤 교파를 형성한다. 각종각파가 어떻게 생겼겠느냐?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이다.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면서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하거나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니까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만약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그에게 물어보아야 해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느냐?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 목자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는 데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냐? 이 부류 사람들이 바로 바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바울이 쓴 편지는 거의 2천년 동안이나 전체 은혜시대를 이어 왔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들을 먹고 마시면서 그의 말을 준칙으로 삼았다. 그 무슨 고통을 받는다든지,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든지, 최후의 의의 면류관이라든지…… 사람은 모두 그가 한 말에 따라, 도리에 근거해 하나님을 믿어 왔다. 사람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깨달을 수 있었느냐? 그때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예수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욱 적었는데, 몇몇 제자들마저도 예수에 대해 진실로 알지 못하였다. 사람이 성경에서 빛을 조금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고, 깨우침이 조금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을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의 진실한 분량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다만 네가 선천적으로 총명하고 타고난 자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네가 길을 가리키지 못하면 여전히 헛일을 하는 것이므로 너는 쓸모없는 폐물이다! 실제 실행의 길을 조금도 말할 수 없는데, 그것은 위장한 것이 아닌가? 자신의 실제 경력을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과를 배우게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가짜가 아닌가? 위조품이 아닌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러한 사람은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 역할만 할 뿐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공헌자’가 아니다. 실제가 없으면 진리가 없고, 실제가 없으면 폐물이며, 실제가 없으면 산송장이고, 실제가 없으면 ‘마르크스ㆍ레닌주의 사상가’이니 참고할 가치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제를 많이 말하여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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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소시(所是): 하나님이 주신 본능의 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