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121 밀과 가라지를 분별하는 원칙

1.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진실로 순복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2. 사람이 하나님과 진실한 기도와 교제가 있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성령의 역사를 얻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3.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형제자매들과 동심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4. 사람이 진실로 본분을 하는지, 본분을 함에 있어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선행이 있는지, 하나님께 충성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시련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충정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그의 육체에 불리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보는 견해가 바뀌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는 모두 최종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인데, 모두 복만 받으려 하고 하나님께 화비하기 위해 자신을 이바지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에 모두 ‘쫓겨날’ 것인데,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은 모두 분량(원문: 工程)의 검증을 이겨 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조만간에 모두 쫓겨날 것이지만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남게 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인지는 분량(원문: 工程)의 검증을 통해, 즉 시련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함부로 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은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과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사역은 하지도 않는다. 참 믿음인지 아니면 거짓 믿음인지는 모두 사실로 검증한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밀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밀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최종에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남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어떤 사람도 섭섭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바울이 한 사역은 모두 사람 앞에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도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을 사람은 보지 못한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가 한 사역과 그는 확실히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래도 바울이 좋다고 여기고 그래도 바울이 한 사역이 크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뭇 교회에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경력(역주: 체험)만 중시하였는데, 가끔씩 사역하였어도 사람을 많이 얻지 못하였고 몇 통 안 되는 서신마저도 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누가 또 알겠는가? 바울은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사역만 하였는데, 할 사역이 있기만 하면 가서 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면 면류관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사역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킬 것인지는 추구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케 하지 못하면 평안을 느끼지 못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하면 통회하곤 했다. 그 후, 베드로는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일상생활의 자그마한 일에서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옛 성정에 대해 대충 넘어가지 않고 늘 진리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였다. 바울이 추구한 것은 외적인 명예와 지위였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을 뿐, 생명 진입에 깊이 들어가려고 추구한 것이 아니다. 그가 중요시한 것은 도리이지 실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하나님은 왜 그를 기억하지 않으십니까?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도 얼마 하지 않았고 교회에 공헌한 것도 그리 크지 않은데, 하나님은 왜 그를 온전케 하셨습니까?”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간증이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어떠하였는가? 너는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한 정도가 얼마 되는지 아는가? 바울이 사역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베드로가 사역한 것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베드로가 한 사역은 비록 적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너는 아는가? 바울이 한 사역은 교회에 공급하고, 교회를 부축하는 것에 속한다. 베드로가 경력한 것은 생명 성정의 변화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가 그 두 사람이 실질상에서 어떤 구별이 있는지 알게 되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는 사람인지 보게 될 것이다. 그 두 사람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었고, 하나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성정 변화가 있었고, 한 사람은 성정의 변화가 없었다.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였고 또한 거대한 형상이 있었으며, 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을 섬겼고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한 사람은 거룩하기를 추구하였고 한 사람은 추구하지 않았는데, 비록 더럽지는 않았지만 순결한 사랑은 없었다. 한 사람은 진정한 인성이 있었고, 한 사람은 진정한 인성이 없었다. 한 사람은 피조물의 이지가 있었고, 한 사람은 피조물의 이지가 없었다. 이것이 바울과 베드로가 실질상에서 구별되는 점이다. 베드로가 걸은 길은 성공의 길이다. 즉, 정상 인성을 회복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회복하는 길이다. 베드로는 성공한 모든 사람의 대표이다. 바울이 걸은 길은 실패의 길이다. 바울은 겉면에서 순복하고 화비는 하였으나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모든 사람의 대표이다. 바울은 진리가 없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였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복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생활의 궁핍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한 것이 아닌가? 형벌과 심판이든, 환난이든 죽기까지 순복하는 데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성분이다. 사람이 이 정도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합격된 피조물이다. 이것은 조물주의 마음을 최고로 흡족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은 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너는 피조물의 본분을 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만 중요시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조물주에 대해 모르고 인식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조물주에게 순복하지도 않고 조물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조물주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릴 때 영이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지고, 내면의 힘이 또한 아주 커서 버리지 못할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너에게 이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이고,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우리는 참으로 당신께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저는 당신의 영광으로 인하여 긍지를 느끼며 당신의 자민이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당신의 뜻이 통행되도록 저는 완전히 당신을 위해 화비하고 바치기를 원하고, 저의 일생과 필생의 정력을 모두 당신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할 때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진실한 순복이 있게 된다. 너에게 이러한 경력이 있었는가? 사람이 늘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게 되면 특별히 삼가 드리는 기도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영광받으시는 날을 보기 원하고, 당신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사탄을 위해, 육체를 위해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높여주신 것입니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지고,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안 된다고 느껴지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죽어도 달갑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런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안에는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힘이 생기는데, 너는 그것이 어디에서 온 힘인지도 모르며, 안에는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 더욱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은 사랑할 만한 하나님임을 느끼게 된다. 그때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무릇 이러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다. 늘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생명이 변화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완전히 얻으려는 심지(心志)를 세울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비교적 강하고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가정, 세상, 얽매임, 앞날을 모두 깨끗이 잊어버리며, 일생의 정력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기 원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너희들 가운데 대다수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경력이 있었는데, 다만 깊고 얕은 정도가 다를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기도를 몇 마디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의 교통을 들었을 뿐인데, 안에 힘이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네 안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음을 설명한다. 안에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교통을 듣기만 하여도 격려를 받는다. 만약 사람을 격려하는 말을 듣고서도 마음속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의 안에 성령 역사가 없음을 증명한다. 그가 속으로 간절히 사모하지 않으면 그에게 심지가 없고 성령도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만일 하나님의 감동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반응이 있으며, 만약 하나님의 감동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접촉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무관하며 그는 깨우침을 받을 수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반응이 없는 사람은 모두 감동이 없는 사람, 즉 성령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무릇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감동이 있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치욕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언행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더 사악하며, 전형적인 악마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있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하며,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성향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성도의 품위에 부합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선택이 있다. 그는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뚜렷한 패역과 대적이 아닌가? 사람이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어도 하나님에 대해 조그마한 인식도 없으면 그런 사람은 불신파이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가장 복이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대상은 모두 하나님 말씀을 추구하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길수록 하나님의 영은 더욱 너에게 역사한다. 하나님 말씀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 무릇 하나님이 한 일이라면 너는 귀중하게 여기라. 하나님의 깨우침을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함께함을 귀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실제와 너의 생명 공급이 되는 것을 귀중히 여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잘 맞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역사를 귀중히 여기면, 즉 너에게 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귀중히 여기면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여 너의 모든 것이 더욱 많아지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에서 발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도 기꺼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진리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교활하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모두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람이다. 교회에서 분쟁하는 사람은 사탄의 심부름꾼이고 사탄의 화신이다. 이런 사람은 너무나 악독하다. 분별력이 없고 진리의 편에 설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심보가 바르지 못하고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더욱 전형적인 사탄의 대표이고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도 물론 도태될 대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발췌

『무릇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도성육신 하나님의 진리에 순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모두 도태되고 훼멸될 대상이다. 볼 수 있는 하나님을 입으로 시인하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도 먹고 마시지만, 볼 수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후에 더더욱 훼멸될 대상이다. 그 사람들은 다 사역이 끝난 후, 안식 중에 남아 있을 수 없고, 그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도 안식 중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마귀 부류에 속한 사람은 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의 실질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뜻이 전혀 없는데, 이 부류 사람들은 모두 훼멸될 대상이다. 너에게 진리가 있는지, 네가 하나님을 대적했는지의 여부는 너의 실질에 근거하는 것이지, 사람의 외모나 우발적인 언행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이 훼멸되는지는 다 그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고, 그들이 행한 일과 진리를 추구하면서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실질에 근거하여 확정되는 것이다. 똑같이 사역하는 사람이고, 또한 똑같이 많은 사역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성의 실질이 선하고 진리가 있는 자라면 살아남을 대상이고, 인성의 실질이 악하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라면 바로 멸망될 대상이다. ……무릇 믿지 않는 자와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들은 다 마귀이다! 지금, 추구하지 않는 사람과 추구하는 사람은 두 부류의 사람인데, 귀숙이 다른 두 부류의 사람이다. 진리를 알고 실행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할 사람에 속하고, 참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마귀이고 원수이며, 천사장의 후예이고 멸망될 대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내는 것인데, 그러면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한 것이다. 섬기는 과정에 생기는 사람의 폐단은 점차적으로 경력하는 중에서, 심판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점점 적어지므로 결코 사람의 본분을 가로막거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중지하거나 뒤로 물러서고 사양한다면, 이런 사람은 가장 나약한 사람이다. 만일 사람이 섬기는 중에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해 내지 못하고, 본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런 사람은 바로 소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고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사람을 또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은 물건이 아닌가? ……사람이 자기의 본분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자기의 본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 변화를 얻고, 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네가 자신의 본분을 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또한 네가 표현하는 것도 더욱 실제적이 된다. 그러나 건성으로 본분을 할 뿐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역시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변화되지 못한,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의 행동에는 뒤섞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드러내는 것은 온통 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만일 네가 진리의 도를 찾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면, 너는 늘 광명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효력자가 되어 묵묵히 부지런하게,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이 없이 공헌하기만을 원한다면, 나는 너를 충성된 성도라고 한다. 그것은 네가 보수를 따지지 않고 다만 성실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네가 허심탄회하기를 원한다면, 너의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려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다면, 네가 성실하여 하나님을 흡족케 할 줄만 알고, 자신을 위해 생각하거나 무엇을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사람들이 바로 광명 속에서 윤택해지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존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너는 너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진정한 충성심이 있는지,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은 흔적이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인 순복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너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너에게는 아직도 패역, 기만, 탐심, 원망이 있다. 그것은 너의 마음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광명 속에서 살지 못하였다. 한 사람의 운명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의 관건은 그 사람에게 성실하고도 뜨거운(원문: 鮮紅) 마음이 있는지에 달렸고, 순결한 영혼이 있는지에 달렸다. 네가 매우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마음이 매우 악독한 사람이고 더러운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의 운명에 대한 기록은 틀림없이 징벌받는 곳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이 매우 성실하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진리에 부합되는 일을 할 줄 모르고, 솔직한 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그럼에도 너는 여전히 하나님이 너에게 상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너는 또 하나님이 너를 눈동자처럼 여겨 주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 아닌가? 네가 범사에서 하나님을 기만하는데,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 또 너같이 버릇이 나쁜 사람을 용납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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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②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③교회에 공급: 형제자매들을 양육.

④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⑤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⑥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⑦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