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81 베드로의 길을 가는 원칙

1.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길, 즉 참으로 자신을 알고 성정이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길을 가야 한다.

2.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중시해야 한다. 매사에 진리를 실행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 반드시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자신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여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4.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인식해야 하며, 최종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베드로의 길을 가는 것을 개괄해 말하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는 것이고 또한 진실로 자신을 알고 성정 변화에 도달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오직 베드로의 길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지, 어떤 실행 방법이 있는지,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할 바이다. 우선, 자신의 속셈과 부당한 추구, 심지어 가정 및 육체의 모든 것까지 전부 다 내려놓아야 하고 온 몸과 마음을 다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몰두하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와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매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실행 방법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만난 후, 그렇게 실행했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실행해야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 말씀 속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도리 알기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기를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 그리고 사람에게 참으로 부족한 점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도달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정확하게 실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함에 있어서 가장 훌륭하게 협력한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가운데서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이라면 자신에게 엄격히 맞추어 보고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더듬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다. 그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실질과 본성도 인식하였고, 사람의 여러 가지 부족한 면도 인식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한 방면으로는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발표된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이 역사하는 뜻,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서, 이런 말씀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고,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처럼 이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에게서 오히려 이 몇 가지 방면의 효과에 도달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귀한 것이다. 베드로가 수백 번의 시련을 겪은 것은 헛수고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지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베드로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환해졌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했다.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말씀이든지 무릇 자신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새겨 두고 늘 묵상하며 터득하였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후 마음에 두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매우 중시하였음을 설명한다. 나중에 확실히 효과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 말씀을 자유자재로 적용하여 실행하면서 진리를 정확히 실행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정확히 행할 수 있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자신의 주장과 상상을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였다. 베드로의 섬김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은 주로 이런 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요구한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 완전히 효과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가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육체의 본성, 즉 그의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한 후에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그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이런 진리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진리를 추구한 길이고 온전케 된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표된 진리가 그의 생명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리를 얻은 사람이 된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베드로와 바울의 실질적인 차이에서 너는 무릇 생명을 추구하지 않으면 다 헛수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피조된 사람인 이상 너의 창조주께 순복해야 한다. 그 까닭은 네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만큼, 거룩해지기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고, 얻는 것이 성정의 변화라면, 네가 가는 길은 정확한 길이다. 네가 육체의 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관념 속의 진리를 실행하며, 성정의 변화는 전혀 없고, 육신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순복하지 않으며, 또한 막연한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네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가는 길이 실패의 길이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다 네가 추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 즉,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베드로는 예수를 수년간 따르면서 예수에게서 사람에게 아직 없는 많은 것을 보았다. 1년을 따른 후, 열두 제자 중에서 그는 예수의 수제자로 선택되었다(물론, 이것은 단지 예수의 마음속 일이니 사람은 아예 알아채지 못했다). 생활 속에서 예수의 일거일동은 모두 그에게 표본이 되었다. 특히 예수가 말한 도는 모두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예수에 대해 몹시 헤아리고 충성하였으며 그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각방으로 다니는 예수의 충실한 동반자로 되었다.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온유한 말씀, 예수의 의ㆍ식ㆍ주ㆍ행은 다 그의 안중에 두었다. 그는 곳곳에서 예수를 본받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전의 모든 낡은 것들을 벗어 버리고 예수의 일언일행을 본받았다. 그때에야 그는 천지 만물이 다 전능자의 손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코 자신의 선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모든 소시를 받아들여 본보기로 하였다. 그의 생활 속에서 보다시피, 예수는 자신이 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시킨 것이다. 서로 다른 일에서도 예수의 소시를 볼 수 있었기에 예수의 모든 것은 다 그가 본받을 대상이 되었다. 그의 경력 중에서 더욱 예수의 사랑스러움을 느꼈는데,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전에 천우(天宇) 사이에 계시는 전능자를 찾은 적이 있다. 천지 만물의 기묘함을 보고서야 나는 전능자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진실한 사랑이 있은 적이 없었고 나의 눈에 전능자의 사랑스러움이 보인 적이 없었다. 오늘날, 내가 전능자의 눈에 들어서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에게서 어찌 만물을 만드신 것만으로 사람에게 사랑받으실 뿐이겠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그분의 무궁무진한 사랑스러운 부분을 찾았는데, 어찌 오늘의 이 경지에 제한될 뿐이겠는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베드로에게서도 사람에게 사랑받는 성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는 예수에게 아주 순복하였다. 물론 그도 적지 않은 좌절을 겪었다. 예수가 그를 이끌고 각처에서 전도할 때 그는 줄곧 겸손하게 예수의 설교를 들었고, 수년간 따랐다 하여 교만한 적이 없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인생에 관하여>에서 발췌

『베드로에 대해 언급하면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다……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 뜻을 더듬는 것은 더욱 중요시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하였기에 영 안이 시종일관 매우 예민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내 뜻에 맞을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실패의 올무에 들까 봐 몹시 두려워하여, 지난날에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과 결부시키기를 중요시하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는 또 역대 이래 하나님을 사랑한 모든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요시하여 소극적인 방면에서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적극적인 방면에서 더 빨리 성장하여 내 앞에서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바, 그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나의 손에 맡기고, 의식주마저도 자신의 성미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나를 만족케 하는 기초 위에서 나의 풍부함을 누렸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 앞에서 보인 그의 충심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몇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푯대와 모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바가 아니냐? 왜 내가 그렇게 많은 지면을 사용하여 베드로의 행적을 서술하는지 너희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하고, 이것을 마땅히 너희의 일처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케 하지 못하면 평안을 느끼지 못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하면 통회하곤 했다. 그 후, 베드로는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일상생활의 자그마한 일에서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옛 성정에 대해 대충 넘어가지 않고 늘 진리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였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복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형벌,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 환난, 생활의 궁핍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피조물로서 본분을 한 것이 아닌가? 형벌과 심판이든, 환난이든 죽기까지 순복하는 데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성분이다. 사람이 이 정도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합격된 피조물이다. 이것은 조물주의 마음을 최고로 흡족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베드로가 추구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하나님이 준 각종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고 자신이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참으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너무나 패괴되어 가치가 없고,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최후에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소중하구나! 만일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아쉽잖아.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의 있는 일인 것 같아.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살 자격도 없고 인생도 없어.’라고 여겼다. 베드로는 이 정도까지 경력했을 때, 자신의 본성에 대해 비교적 알고 파악하였다. 아마도 사람의 지금 상상에 따르면 그가 말로 밝히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을 추구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의 본성을 더 깊이 아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인식하고 그것을 말로 개괄해 내며 자신의 원래의 옛 생명, 옛 사탄 본성의 생명을 철저히 인식하면, 하나님이 요구한 효과에 도달한 것이다. 만약 이 정도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네가 자신을 알고 생명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허풍 떠는 것이 아니냐? 너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도대체 사람의 기준에 도달하는지, 아직도 사탄의 성분이 얼마나 있는지, 도대체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네가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없는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지(理智)가 있을 수 있겠느냐? 베드로는 생명을 추구할 때,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기를 중요시하였고, 성정이 변화되기를 중요시하였으며,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였다. 최후에 그는 ‘사람은 살면서 마땅히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만약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 하신다 해도 나는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추호도 원망이 없고 나의 일생에 만족한다.’라고 여겼다. 베드로가 이런 인식이 있고 이런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돼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한다. 어느 정도로 깊이 경력하여 완전히 자신을 알고 난 후에야 하나님을 알아가는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간 길은 생명의 길이고 온전케 되는 길인데, 그의 구체적 실행은 주로 이 방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너희가 지금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베드로처럼 생명을 추구하고 자신을 알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베드로의 길이 아니다. ……왜 베드로의 길을 온전케 되는 길이라고 하느냐? 그것은 그가 실행한 것이 바로 생명을 매우 중시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며 자신을 알기를 중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에 대해 인식이 있었고, 사람의 패괴 정형에 대해서도 인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야 가장 가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어떻게 하나님께 보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진리를 어느 정도 얻었고, 하나님이 요구한 실제를 갖추었다. 베드로가 시련 속에서 한 말에서 그가 확실히 하나님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많은 진리를 깨달았기에 걸어갈수록 길이 더 환해졌고, 점점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었다. 그에게 만약 이런 진리가 없었다면, 그가 걸은 그 길도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베드로는 일생 동안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고통스러운 고난을 많이 겪었다. 그런 연단은 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데의 토대로 되었고, 그의 일생 중 가장 의의 있는 경력으로 되었다.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방면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방면은 그가 받은 연단과 고통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 고초는 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의 길잡이로 되었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들로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만일 연단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의 사랑에는 천연적인 것이 가득하고 사람의 취향이 가득하다. 그런 사랑은 사탄의 뜻이 가득하여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심지가 있다 해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마치 사람의 뜻이 조금도 없고 다 하나님을 위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져오면 모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사람이 설사 모든 진리를 투철하게 깨닫고 인식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징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연단을 받기 전에 많은 진리를 깨닫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런 진리를 다 실행해 낼 수는 없다. 사람이 연단 가운데 있을 때에야 이런 진리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고 이런 진리에 내포된 뜻을 참으로 체득할 수 있다. 이때 사람이 다시 이런 진리를 실행하면 정확할 것이고 하나님 뜻에도 부합될 것이다. 이때의 실행에는 자신의 뜻과 사람의 천성적인 것이 적고 사람의 정감도 적다. 이때의 실행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 진리는 사람이 입으로 인식하고 마음으로 원하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깨닫게 되면 효과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연단 가운데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사람의 사랑이 순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열심으로써, 천성적인 것으로써 그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충심으로써, 진리로써 그를 섬기라는 것이다. 이래야만 진정한 사랑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에게 간증이 있게 되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이 한 단계 한 단계 역사에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인식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형벌이 저를 구원했어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저에게 임하여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저를 보호하고 정결케 했어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 수도, 구원을 받을 수도 없어요. 오늘 저는 피조물로서 조물주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누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이라면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공의의 심판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누릴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누려야 하지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는 심판과 형벌도 있고, 더욱이 지극히 큰 사랑도 있어요. 비록 지금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운 좋게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저의 복이지요.”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을 경력하는 사람이 걷는 길이고, 말할 수 있는 인식이다. 이런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사람에 속하고, 베드로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맨 마지막까지 경력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 중에 완전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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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