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79 하나님이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을 인식하는 원칙

1. 사람이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진실로 회개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구원을 포기하시지 않는다.

2. 사람이 과오가 있어도 인식하고 회개하며 변화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은 기억하시지 않고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신다.

3.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기간에 그 어떤 사람도 경솔하게 징벌하시지 않고 최대한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4.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와 악인,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혐오하고 저주하신다. 진리를 증오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될 것이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너희에게 지금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기만 하면 이전의 일을 하나님이 기억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마땅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나는 성정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지 더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되고 더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사람이 가치 있는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희망이 있는지의 관건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사람이 설교를 들은 후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네가 후회하기만 하고 일해야 할 때에 또 그렇게 하고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고 도리어 본래보다 더욱 심해진다면 너 같은 사람은 희망이 없으며 반드시 폐기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수록, 자신에 대해 많이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능력이 있게 된다. 네가 자신의 본성에 대해 투철히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수 있으며, 경험을 총결한 후에는 더 이상 이런 일에서 실패하지 않게 된다. 사실, 사람마다 흠이 조금씩 있는데, 단지 추궁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심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며,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몰래 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알고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흠이 있고, 모두가 패괴 성정을 조금 드러내는데, 교만하거나 독선적이라든가, 약간의 과오와 잘못이 있다든가, 약간의 과실이나 작은 패역이 있다든가, 이런 일은 모두 상황에 비추어 용서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패괴된 사람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후에 너는 마땅히 피해야 한다. 사람이 늘 이전의 일에 시달리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두려운 것은 사람이 깨달은 후에도 변화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고 너에게 알려 주어도 계속 한다면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에서 발췌

『이전에 너에 대해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말 또는 혐오하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오늘 네가 변화되면 너에 대한 태도도 따라서 바뀐다. 사람이 늘 두려움을 느끼고 늘 편치 못한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 일을 지금 알았다면 후에 어떤 일이 임할 때 또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지금 사람 안의 본성이라든가, 각 방면의 이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지 않으냐? 어느 정도의 윤곽이 있지 않으냐? 과거에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을 좀 하여 출교되었다. 교회에서도 그를 내버리니 그는 몇 년 동안 방랑하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왔다. 완전히 도망쳐 버리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완전히 도망쳐 버리지 않으면 구원받을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만약 도망치고 믿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끝장날 것이다. 돌이킬 수 있으면 희망이 있는데, 이것은 얻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만들든, 어떻게 사람을 대하든, 어떻게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든, 사람이 언젠가 돌이킬 수 있으면 나는 여기에서 아주 위로받는 느낌이다. 즉,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 그나마 하나님의 위치가 있고 아직 완전히 사람의 이지와 인성을 잃지는 않았고 아직 하나님을 믿으려는 마음이 조금 있으며 낙엽귀근(원문: 認祖歸宗)하려는 마음이 조금 있는 것이다. 누가 달아났든지 만일 이 사람이 다시 돌아오고 마음에 아직도 이 집이 있다면 나도 약간 미련을 두고 또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애석하게 생각한다. 만일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는 마음속에서 특별히 누림을 얻는다. 이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면 마치 이 사람이 나를 잊지 않고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이 사람에게 이런 심리가 있고 이런 심정이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 얼굴을 보면 아주 감동을 받을 것이다. 네가 그 당시에 떠나갔을 때는 틀림없이 아주 소극적이고 정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네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네가 하나님에 대해 아직도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후에 계속 걸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그것은 사람이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사람에 대해 긍휼과 은혜가 있었다. 양 백 마리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그 한 마리를 찾아다닌다는 그 말은 한 가지 기계적인 방법이 아니고 한 가지 규례도 아니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설명하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설명한다. 이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그의 한 방면의 성품과 한 방면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을 1년이나 반년을 떠났든, 혹은 얼마나 연약하든, 얼마나 오해를 했든, 후에 각성하고 인식하여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위로를 받는데 약간 누리는 느낌이 있다. 지금 이런 번화한 세상에서, 사악한 시대에서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시인할 수 있으며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매우 위로받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이다. 네가 키운 자식이 효도하든, 불효하든 부모인 너를 인정하지 않고 달아났다면 너는 어떤 느낌이겠느냐? 너는 마음에서 늘 그 자식을 내려놓지 못하고 언제쯤 돌아올까 늘 생각한다. ‘한번 봤으면, 어쩌다 내게 이런 아들이 있었는데, 내가 귀여워하며 키웠지.’ 늘 이렇게 생각하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사람은 다 이런 심정이다. 지금은 사람의 분량이 작지만, 너의 안에 믿을 마음이 전혀 없고 그가 하나님임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다. 지금 사람의 이 분량을 놓고 보면 큰 문제에서는 훈계하고, 평소에도 좀 단속하고 지키면서 감히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하는데, 언젠가 너희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놓았으면 좋겠다. 너희의 이 분량 같으면 본래는 다른 사람이 너희를 늘 단속하게 하거나 독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자신이 사역을 함에 있어서 여전히 다른 사람이 지키고 단속해야 한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사람에게 부족함이 너무나 많고 분량이 너무나 작다는 것을 증명한다. 진리가 없고 분량이 너무나 작으면 하나님이 위로받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가 없다. 너희에게 어느 정도 심지가 있어야 내가 안심할 수 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해 늘 요구가 있는 사람은 가장 이지 없다>에서 발췌

『일부 사람들은 과오가 좀 있으면 ‘하나님께 격살당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온 것은 사람을 격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 잘못이 없겠느냐? 만일 모두 격살한다면 구원이라 하겠느냐? 사람의 어떤 과오는 고의적이고 어떤 과오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면 변화될 수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너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격살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이렇게 구원하겠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자신도 어쩔 수 없든 또는 패역 본성이 나왔든, 기억하여라. 일이 지난 후에 빨리 각성하여라! 어떤 상황이 오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므로 그는 구원할 사람을 마음대로 격살할 리가 없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될 수 있든지, 설사 하나님이 마지막에 너를 격살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는 것은 확실히 공의로운데, 때가 되면 그래도 네가 알도록 할 것이다. 현재 너의 임무는 오로지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본분을 하여라. 이러면 틀림이 없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확실히 공의로운 것이다. 이것을 너는 의심해서는 안 되고 근심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공의를 설사 지금 네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진심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정부 관원이나 마왕과 같지 않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자세히 되새겨 본다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한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

이전의 일은 청산할 테니 장래로 과거를 대체하여라. 하나님의 도량은 끝없이 넓다고 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원칙이 있는 것이다. 네가 최후에 아무리 큰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청산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다 원칙이 있다. 이전에 이러한 행정이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기 전에 어떤 죄를 범했든지 먼저 들어오게 하고, 들어온 다음 또 범하는 자는 어떻게 처리하고, 또 재범하는 자는 출교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언제나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해 준다. 여기에서 이 사역이 정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최후 이 단계에도 네가 여전히 사함받을 수 없는 일부 죄를 범한다면 정말로 구할 수 없고 변화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하는 데는 과정이 있다. 즉,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이 부단히 유로(역주: 흘러나옴)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유로했을지라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거나 중간에 많은 과오가 있고 하나님을 대적한 적도 있었을지라도,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거나 원망했거나 저촉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언젠가 변화될 수 있는지만 본다. 성경에 그런 예가 하나 있는데, 탕자가 돌아온 이야기이다. 왜 그런 비유를 하였겠는가? 바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사람에게 변화될 기회도 준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해 주고 사람의 연약을 잘 알고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이 좌절당할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사람이 어릴 때에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어릴 때 체질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튼튼해도 걸음마를 배울 때에 엎어질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으며 부딪칠 때도 있고 걸릴 때도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하나님도 그렇게 각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각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알고 있고 각 사람의 필요도 알고 있으며 더욱이 각 사람이 성정 변화 이 진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날 것인지, 어떤 연약함이 있을 것인지, 어떤 실패가 있을 것인지도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한다고 말한다. 네가 어떻게 연약하든지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성정 변화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 우리에게 성정 변화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무엇이 성정 변화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징벌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것이 아니고 각 부류 사람의 귀숙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라 최후 한 단계 사역을 다 한 후에야 상선벌악의 사역을 하고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것이다.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확실히 구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구원받은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최대한 다 구원해 내고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성정이 변화될 수 없는 자,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할 수 없는 자는 모두 징벌받을 대상이다. 이 단계 말씀의 사역은 모든 사람이 깨닫지 못한 도와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놓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게 하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조건이 있게 하여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은 다만 말씀으로 역사할 뿐 사람이 좀 거역한다 하여 결코 사람을 징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는 구원 사역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 패역이 있다 하여 사람을 징벌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고 징벌받고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의 심판으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패역과 대적을 드러낼 것이고,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 때문에 그 사람들을 일일이 징벌하지 않고, 극도로 패괴된 구할 수 없는 그 사람들만 내버려 그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주며, 일부 사람은 그 육체를 없애 버린다. 그 외의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따르면서 훈계와 책망을 경력(역주: 체험)하게 된다. 만일 따르는 기간에 거듭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한 갈수록 타락해진다면,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를 이미 잃은 것이다. 말씀의 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구원함에 있어 모두 최대한 관대해 준다. 즉, 사람을 최대한 관용해 주는 것이다. 사람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기만 하면, 사람이 회개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한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격살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고 되도록 구원하려고 하였다. 만일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을 여지가 없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징벌하지 않는 까닭은 구원할 만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인도할 뿐이지 형벌의 채찍으로 격살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그 시간 속에서도 너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시간을 단 하루도 늦추지 않고, 한 달도 늦추지 않으며, 어느 날에 이르러 말씀해야 하면 곧바로 말씀한다. 만약 몇 개월 정도의 시간만큼 더 지연시킨다면 어떤 사람들은 점차 물러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정형에 따라 사역하면서 전혀 지연시키거나 지체시키지 않으며 각 사람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이상, 끝까지 책임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떠나려고 했을 때, 성령이 특별히 감동시키고 만류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만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말 너무나 사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일부 물러간 사람들을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되면 그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 그런 사람을 철저히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오늘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경영 계획을 이 정도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를 사랑하기에 인류를 구원하는데, 사랑에 이끌려 사랑의 전제하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도성육신하여 크나큰 굴욕을 다 당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 말씀의 구절구절에는 권면과 위로가 있고, 격려와 포용, 인내가 있고, 더욱이 심판과 형벌이 있으며, 저주와 공개적인 폭로가 있고, 아름다운 약속이 있다…… 그 방식이 어떠하든 다 사랑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의 실질이다. 그렇지 않으냐? 지금 너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지만 별로 깊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다. 앞으로 너희가 3년에서 5년을 더 경력하면 이 사랑이 너무나 깊고 너무나 커서 사람의 말로 형용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겠느냐? 설사 네가 목숨을 바칠지라도 보답하지 못한다. 너희가 3년에서 5년을 더 경력한 후 너희 지금의 표현과 지금의 성정을 회상해 보면 매우 후회하게 될 것이고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다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짝 따르는 걸까? 다수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열의가 있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역사가 시간 면에서 아주 정밀하지 않으냐? 고리에 고리가 맞물려 조금도 지체되지 않는데, 그가 지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여전히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희생되기를 원치 않고 한 영혼이라도 잃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람 자신은 자신의 운명을 결코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에서 누가 너를 가장 사랑하겠느냐? 너도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명을 아낄 줄도 모르고 귀중히 여길 줄도 모른다. 그래도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데, 오로지 하나님만이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사람은 아마 아직 몸소 느끼지 못하여 스스로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너는 앞으로 서서히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만약 도성육신 하나님이 이렇게 대면하여 역사하거나 인솔하지 않고 늘 사람과 함께 지내지 않고 사람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좌담 기록ㆍ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한 목적은 바로 그가 온전케 하려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한가한 시간에는 그 악인들을 도태시킨다. 알아야 할 것은 그가 그 악인들 때문에 이렇게 큰 사역을 할 리가 없고, 반대로 그에게 온전케 될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그가 한 사역, 그가 한 말씀, 그가 열어놓은 심오한 비밀,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 이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는 악인들 때문에 도성육신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악인들 때문에 크게 노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진리를 말하고 진입을 말한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도성육신하였고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그의 약속과 축복을 베풀었다. 그가 말한 진리, 말한 진입, 논한 인성 생활은 악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악인을 피해 말씀하고 모든 진리를 온전케 될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러나 사역의 필요로 인해 그는 잠시 악인이 그의 풍부함을 조금 누리도록 한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않는 자, 그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는 다 악인이다. 그들은 다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들이고 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람들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만일 사람의 본성이 아주 나쁘고 악인이라면,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기에 성령이 그런 사람에게 역사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폐렴에 걸렸다면 치료할 수 있지만, 폐암에 걸렸다면 그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사람의 어떤 과오는 용서할 만한 것이고 어떤 과오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겠습니까? 이 과오가 생긴 배경과 당신이 도대체 깨달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알면서 일부러 범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 한 것이라면 한 뒤에 책망하고 훈계해야 합니다. 당신이 진리를 깨달은 후 변화되면 용서합니다. 훈계와 책망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거듭 범한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심에 역시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사역은 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과오가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하지만 경중 정도가 다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과오를 범하고 투철히 인식한 후 변화되어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번 뱀에게 물리면 3년 동안 풀밭에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는 하지 않고, 나중에는 이런 일에서 과오가 없게 됩니다. 이런 일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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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⑤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