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76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원칙

1.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반드시 기도하고 찾고 구하는 마음으로 참답게 묵상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앙망해야만 점차적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2.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진리 실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와 그 의의를 깨닫기를 중시해야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게 된다.

3.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아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이래야 진리의 실제와 실질적 의의를 쉽게 깨닫게 된다.

4.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기를 중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 의해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만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실질과 의의를 깨달을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의 말씀을 귓전에 스치는 바람처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세심히 묵상하고 거듭 기도하면서 봉독하여 하나님 말씀의 내재적 생명을 더듬어야지 대추를 통째로 삼키듯 헛된 일을 하지 말라.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느냐? 어린애처럼 큰소리치다가 일이 닥치면 어리둥절해하지 말라. 날마다 시시각각 영을 훈련하고 매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말라. 영 안이 예민해야 된다.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임하든, 하나님 앞에 오면 길이 있다. 매일 먹고 마셔야 하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 공을 많이 들이고 하나의 세부 사항도 놓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지 않도록 진리를 완벽히 장비(裝備)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7편 말씀>에서 발췌

『너희는 오로지 내 앞에 안정하여 나와 많이 교통하고 교제하기만 하여라. 모르는 부분은 많이 구하고 기도하며 나의 때를 기다려라. 모든 것은 영 안에서 분명히 보아야 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며 치우친 길로 가는 것을 방지하여라. 이래야 네가 먹고 마시는 것이 참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나의 말을 많이 먹고 마시고 묵상하며 나의 말을 실행하기를 중시하고 내 말의 실제를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관건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21편 말씀>에서 발췌

『진리를 얻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데서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는 것이지 글자 표면에서 좀 깨닫거나 해석한다 해서 진리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글자 표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성령이 깨우칠 필요가 있겠느냐? 그저 일정한 언어 지식만 구비하면 된다. 그러면 언어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두뇌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로 성령의 깨우침을 통해야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진리를 얻는 과정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도리만 알면 소용없으며 생명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의 글귀만 아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 말씀에서 천명한 그런 실질적인 것만이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디마디에 다 진리가 있지만 사람이 꼭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너희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였는데, 이 말씀 속에 진리가 있으며,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너희는 사람의 본분을 잘해야 한다.”라는 이런 말씀 속에는 더욱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마다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 있고, 한 마디 진리마다 많은 말을 해야만 안의 실질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정도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리를 깨달은 것에 속한다. 네가 글자 표면의 뜻만 알고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도리를 과시하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의도,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떤 효과에 도달하려고 하는지, 말씀하여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온전케 하려고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가 알지 못했으면, 네가 여전히 진리를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셔야 했는지, 왜 그런 말투로 말씀하셨고 어휘마다 그렇게 간절한지, 왜 그런 어휘를 사용했는지를 너는 아느냐? 네가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였고, 하나님이 말씀을 한 배경을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네가 깨닫지 못했는데, 어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마디마디에서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다음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서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네가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인솔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생명을 추구함에 있어 반드시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근본적인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생명이 없고 진리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진리를 찾겠느냐?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느냐? 세상에서 출판된 책은 다 마귀 사탄의 이론이 아니냐? 어디 조금이라도 진리를 논할 만한 것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닫는 진리에는 주로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을 알고, 각 방면의 진리를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삶의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 말씀 안에 있기에 진리에 진입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가 없다. 도달하게 되는 가장 주된 효과는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한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진리를 깨달은 것인데,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실제에 대해 인식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 말씀에서 본 것이다. 너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서만 깨우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 말씀을 많이 장비(裝備)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한다. 할 줄 모르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고, 깨닫지 못하는 문제나 어려운 것들은 다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공급이 되게 하고, 실제적인 어려움과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네 삶에서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만일 하나님 말씀에서 빛 비춤을 조금 얻고 또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진정한 함의를 더듬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의의가 무엇인지, 최종에 도달할 효과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다 투철하게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하나님 말씀을 글자 표면에서 그럴듯하게 멋있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에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과 사유이니 쓸데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관건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마디 말씀을 할 때마다 그저 대체적인 말씀만 하고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속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도 틀림없이 하나님 말씀에 명시한 것이 있는데, 아마 다른 방식으로 말씀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하는 방식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은 특히 심오하여 사람의 사유 방식으로는 측량하기 어렵다. 각 방면의 진리에서 사람이 노력만 들이면 모두 완전한 뜻을 찾아낼 수 있다.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경력(역주: 체험)하는 가운데서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어 구체적인 정형을 깨닫게 하면, 완전히 보완되는 것이다. 한 방면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는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성령의 깨우침을 받는 것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함의를 깨닫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주로 이 두 방면으로부터 효과에 도달한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도 그 많은 말씀을 글귀로만 깨달을 뿐, 실제 경력으로 체험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아니라 죽은 글귀이다. 네가 죽은 글귀만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실제 경력으로 경력한다면 그때에야 하나님 말씀 속의 영적인 뜻이 너에게 열리게 된다. 오직 경력으로만 진리의 영적인 뜻을 많이 더듬을 수 있고, 오직 경력으로만 하나님 말씀의 심오한 뜻을 풀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명확해도 네게는 텅 빈 글귀 도리가 되고 너의 종교적인 규례가 된다. 이것은 바로 바리새인이 행하던 것이 아니냐?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 경력하기를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있어서는 실제이다. 만일 실행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는 마치 셋째 하늘의 전설과 같을 것이다. 사실상,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은 바로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께 얻어지는 과정이다. 분명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고 깨달으며 체험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실제이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영생만 얻으려 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려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모두 미련한 사람이다. 마치 사람이 잔치에 참석하여 잔치 자리에 무슨 맛있는 것들이 있는지를 보고는 마음속에 기억만 할 뿐 직접 맛보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미련한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 말씀을 참으로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할 때에 도달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도달하는 것이다”라는 이 말을 너는 깨달아야 한다. 네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면 기껏해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절반만 맞고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네가 진리를 모르고 있을 때에는 아직 네가 그 진리를 경력하지 못했을 때인데, 말씀을 들을 때에는 깨달았다고 느껴져도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므로 진리의 글귀는 구비하였으나 진리의 참뜻은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네가 진리의 겉면을 알고 있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것과 같지 않고, 진리를 인식한 것과 같지 않다. 진리의 참뜻은 모두 경력하는 중에서 얻는다. 그러므로 진리를 경력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경력하는 중에서만 진리의 은밀한 부분을 찾을 수 있으며, 깊이 경력해야만 진리에 내포된 뜻을 포착할 수 있고 진리의 실질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깨달았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하나님 말씀에서 다방면으로 고찰하고 묵상하며 어느 한 방면의 진리의 말씀을 종합하여 세심히 읽으면 그 방면의 진리를 투철하게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 말씀에서 아주 분명히 말씀하여 비교적 투철하게 깨닫기 쉽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 말씀에서 직접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하나님 말씀의 깊은 함의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야 합니다. 모든 중요한 문제에서 하나님 말씀이 이미 명확히 설명했으므로 사람은 직접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우 자질구레한 일도 사실 모두 하나님 말씀 속에 포함되어 있고 원칙상에서 이미 설명하였습니다. 터득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의 원칙을 주어 실행하게 하시고 어떤 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게 하시거나 하나의 목표를 주어 도달하게 하시는 것을 늘 보게 됩니다. 구체적인 일에서는 하나님이 비록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원칙상에서는 이미 명백하게 밝히셨기에 하나님이 자세하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깨닫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죽은 규례의 조목들을 주어 굳게 지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의 성정 변화에 아무 유익한 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효과에 도달하게 되든지, 그 효과는 사람에게 그런 행실을 굳게 지키도록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많은 구체적인 일에서 하나님은 그저 사람에게 하나의 원칙을 주시거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목표를 깨닫게 하실 뿐입니다.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실행해야 진리에 부합되고 원칙을 어기지 않는지를 알 것입니다. 예컨대, 불신자 남편이 본분을 하는 것을 가로막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비록 이혼해도 된다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에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복하며 하나님의 복음 확장 사역을 위해 자신의 한 몫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전혀 강요하시지 않고 그저 스스로 선택하게 하실 뿐입니다. 이리하여 어떤 사람은 진리를 선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비진리의 길을 선택하여 나중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사람에게 정상적인 사유와 이지가 있기에 무슨 일이든 다 하나님께서 명확하고 상세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매 구절에서, 하나님 말씀의 어투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서, 하나님 역사가 도달할 효과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세상을 버려야 합니까, 버리지 말아야 합니까?” 그럼 말해 보세요, 세상은 사람이 진리와 생명을 추구하고 본분을 하는 데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됩니까? 세상에 얽매이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가장 간단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만일 꿰뚫어 보지 못하면 정말 어리석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일에서는 끝이 없고 한도가 없으며, 효과가 좋을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버려도 따르지 못하는데 계속 세상을 탐낸다면 더욱 끝장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무릇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 실행해야 할 것, 진입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은 다 이미 명문화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는데, 나머지는 사람이 정확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불필요한 규례적인 문제를 버려야 하는지, 교회에서 순수하고 올바르게 터득하는 사람은 여러 번 교통하면 완전히 투철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경력하면 다 정확하게 편차가 없이 실행하는 데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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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