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61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기초에서 성령 역사를 얻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진리를 추구하기를 실행해야 효과를 보게 된다.

2. 반드시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고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받아들여야 하며,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하고 바짝 따라야 한다.

3.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 하고, 전력을 다해 본분을 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4. 반드시 베드로의 길을 걸어야 하며,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지 절대로 거짓 인솔자나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 만일 이것을 하지 못하면, 믿고 안 믿고는 논할 수도 없다. 네가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지금까지 하나님께 순복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으로 너에게 순복하여 너의 관념대로 하라고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고 불신파이다. 이런 사람이 사람들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하나님의 그런 역사와 말씀에 어떻게 순복할 수 있겠는가? ……

성령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한 모든 사람들이 다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산물이 아니며, 성정 변화는 모든 사람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데는 반드시 실제와 살아냄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 순복한다 해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이 아니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인 것에만 ‘순복’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은 본래 같은 뜻이다. 만일 하나님께만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는 순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순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만일 진심으로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아첨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순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얻는 것이 좀 있고 또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 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새로운 역사 가운데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칭찬받는 사람이고 온전케 되는 사람이며 성정이 변화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단계마다 높아져 가며,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고 한 걸음에 한 계단씩 더 높이 나아간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만약 따라가지 못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것이고, 만약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역을 한다. 특히 사람을 온전케 하려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더 빠르게 더 새로운 사역을 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순복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어렵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어느 한 단계 사역도 영원불변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고 시종일관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한다. 그의 사역은 단계마다 더 실제적이며, 사역할수록 사람의 실제적인 요구에 부합된다. 사람은 오직 이러한 역사를 경력해야만 최종의 성정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므로 하나님의 사역 또한 갈수록 높아지는데, 이래야 사람이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여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이끌어 더 높고 더 실제적인 경지에 진입하고 하나님을 믿는 최고의 영역에 진입하게 하여 최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본성이 패역하고 고의로 대적하는 사람들은 빠르고 맹렬한 이 단계 역사에 의해 다 도태될 것이고, 오로지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기꺼이 ‘낮추려는’ 사람만이 길 끝까지 갈 수 있다. 이러한 역사에서 너희는 모두 순복하기를 배우고 관념을 내려놓기를 배워야 하며 걸음걸음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만약 덤벙거린다면 반드시 성령에게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역사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만약 이 기간의 역사에 네가 잘 순복했어도 다음 기간의 역사에 잘 순복하지 못하거나 혹은 순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이 단계로 나아갈 때 네가 따랐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에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야말로 성령께 순복하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시종일관 순복해야지, 기분이 좋으면 순복하고 기분이 나쁘면 순복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순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새로운 역사를 교통해도 네가 따라오지 못하고 이전의 그 논법을 지킨다면, 너의 생명이 진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성령은 내가 말하는 대로 역사하므로, 너희가 내 말대로 행하면 성령은 너희에게 역사한다. 나는 새로운 빛을 내보내어 너희로 보게 하고, 너희 모두를 현시(現時)의 빛 속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으로 들어가면 성령은 즉시 네게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며 “저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지금 길이 없고 메마르며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경력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이 가장 관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만일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여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면, 너는 성령께 쓰임받을 기회와 자격이 있게 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게 되며, 더욱이 성령이 너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기회도 얻게 된다.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때, 적극적인 방면에서는 네가 더 깊이 진입하여 더 높은 깨달음이 있게 되고,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네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자신의 결함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게 되며, 또한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것은 네가 옳은 사람임을 설명한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된 전제에서 네가 성령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네가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

경력 중에서 보다시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의 영적 생활과 사람의 생명이 자라나는 문제에 관련된다. 만일 너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다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에 도달할 것이다. 네가 부담을 갖고 하나님 앞에 왔기에 늘 자신에게 부족함이 너무 많고 진리를 많이 알아야 하며 실제를 많이 경력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낀다. 이런 일을 늘 마음에 두고 있어 마치 너를 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내리누르는 듯한데, 너는 이로 인해 마음이 무겁다(그러나 소극적인 정형은 아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그의 부담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무거움으로 인해, 다시 말해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치른 대가와 받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바꿔 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마음대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는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사람에게 더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면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오로지 형제자매들이 모두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하늘 뜻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고 하나님 집의 거룩한 종이 되어 하나님이 베풀어 준 끝없는 약속을 누리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일찍 안식을 누리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좌우명이며, 이 말을 사람의 진입의 이정표와 행동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심지(心志)이다.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도록, 육신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다.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사람들이 그를 환송하여 일찍 천부께로 돌아가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다해야 할 책임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

『베드로의 길을 가는 것을 개괄해 말하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는 것이고 또한 진실로 자신을 알고 성정 변화에 도달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오직 베드로의 길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지, 어떤 실행 방법이 있는지,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할 바이다. 우선, 자신의 속셈과 부당한 추구, 심지어 가정 및 육체의 모든 것까지 전부 다 내려놓아야 하고 온 몸과 마음을 다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몰두하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와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매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실행 방법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만난 후, 그렇게 실행했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실행해야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 말씀 속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도리 알기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기를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 그리고 사람에게 참으로 부족한 점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도달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정확하게 실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 역사를 경력함에 있어서 가장 훌륭하게 협력한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가운데서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이라면 자신에게 엄격히 맞추어 보고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더듬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다. 그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실질과 본성도 인식하였고, 사람의 여러 가지 부족한 면도 인식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한 방면으로는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발표된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이 역사하는 뜻,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서, 이런 말씀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고,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지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베드로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환해졌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했다.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말씀이든지 무릇 자신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새겨 두고 늘 묵상하며 터득하였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후 마음에 두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매우 중시하였음을 설명한다. 나중에 확실히 효과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 말씀을 자유자재로 적용하여 실행하면서 진리를 정확히 실행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정확히 행할 수 있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자신의 주장과 상상을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였다. 베드로의 섬김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은 주로 이런 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요구한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 완전히 효과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가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육체의 본성, 즉 그의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한 후에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그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이런 진리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진리를 추구한 길이고 온전케 된 길이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면서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하거나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니까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만약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그에게 물어보아야 해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느냐? ……

이전에 사람을 따랐든,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했든, 이 단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이 단계 역사를 경력한 기초에서 또 사람을 따른다면, 너는 용서받을 수 없고, 너의 결말은 바울의 결말과 같게 된다. 내가 처음에 바울의 예를 들고 베드로의 예를 들어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것은 두 갈래 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베드로의 길을 가지 않으면 바울의 길을 가게 된다. 이 두 갈래 길밖에 없다. 네가 아래에서 따르는 자든 아니면 인솔자든 다 마찬가지이다. 네가 베드로의 길을 가지 못하면 바울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인데, 갈 수 있는 다른 세 번째 길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진리 깨닫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모두 바울과 같은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깨닫기를 추구하지 않고, 단지 약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과 도리에 정통하는 것만 구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아래에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에 대해 간결하게 교통하겠습니다.

1.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는데, 이 원칙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에게 심판을 시행하시는 가운데서 진리를 발표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진실로 자신을 알고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도달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더욱더 자신의 패괴된 진면목과 본성 실질을 볼 수도 없습니다. 보다시피,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은 바로 더욱 실제적이고 더욱 효과적인 심판과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와 어긋난다면 사람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전부 공담이고 실제가 전혀 없으며, 마치 종교 인사들이 성경 지식을 알기를 추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대해 전혀 의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 진입은 주로 하나님 말씀 진리 방면의 실행과 진입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가운데서 경력하고 진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할수록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에 대해 더욱 분명히, 더욱 투철히 보게 됩니다. 따라서 생기는 것은 바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증오하며 사탄 악령과 적그리스도 악마를 더욱 증오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진실한 회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도달한 효과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추호도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만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기초와 경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추구하는 조건은 반드시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이 근본입니다. 성령 역사가 없는 자는 다 불신파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을 편파적으로 대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성령 역사가 있게 되는데,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은 영원히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으면 사람은 영원히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 진리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전부 성령 역사로 도달한 효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양육하고 공급하든지 만일 성령 역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전부 공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역사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음에 있어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킵니다.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는지의 관건은 사람이 어떻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사람의 속마음, 사람의 성정,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장악하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대하는가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다면 진리를 좀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데, 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행하면 틀림없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틀림없이 늘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실행할 것입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서 더욱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쉽게 성령 역사를 얻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그가 하는 본분이 항상 도전에 직면하고 닥치는 어려움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깨닫도록 추진합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본분을 하는 우월성인데, 성령 역사를 얻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 매우 유리합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비록 어떤 때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또 진리에 어긋나고 육체의 취향에 따라 일을 처리합니다. 이때 사람이 책망과 훈계, 격타와 징계가 임하면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책망과 훈계, 징계를 받아들인다면 진실한 회개가 생길 수 있고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며 육체를 배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지는 주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인솔자 일꾼이 교통한 진리에 대해 진실로 받아들이고 순복할 수 있는지, 과오가 있거나 패괴를 유로(역주: 흘러나옴)할 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하며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책망과 훈계, 징계와 격타 혹은 징벌이 임해도 여전히 반항하고 자신을 반성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3. 진리를 추구하는 범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 속에 있어야 하고,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지 절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범위는 물론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하시기 시작해서부터 전 우주를 향해 음성을 발하신 후의 모든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핵심 부분입니다. 이 일부분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깨닫고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입니다. 하나님 선민이 정결케 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것은 주로 이런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에 포함된 진리는 아주 많아 충분히 하나님 선민이 구원받고 온전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주로 이런 말씀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의 근거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의 모든 말씀에서만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인식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에 대해 반드시 받아들이고 순복한 다음 경력하고 실행해야 진실한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관념 상상으로 생긴 인식은 진실한 인식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두뇌 사유에서 생긴 것이지, 사람의 경력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고 실행하는 가운데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어 생긴 인식이야말로 진리를 깨달은 효과이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속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지 않고 하나님의 매 마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경력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마다, 하나하나의 진리마다 진실한 인식이 있으려면 우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관념 및 사람의 상상과 취향에 부합되는지를 막론하고 모두 받아들이고 순복한 다음 경력하고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경력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서는 더욱 안 됩니다. 무릇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무릇 진리에 속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발표에서 오고 진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추구해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인생의 모든 비밀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경력과 실행이 만일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즉 참 도에서 벗어나면 전혀 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4.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길로 치우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세워 하나님 선민을 인솔하게 하신 것은 의의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지 못하고 순복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직접 진리를 깨닫는 기관이 없고 사람 자신의 두뇌로는 사탄 본성과 각종 사탄 세력의 미혹, 방해,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어야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를 얻으려면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바짝 따르고 순복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성령 역사를 얻는 선결 조건입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도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당신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성령 역사를 얻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행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할 수 있지만 오히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상식은 바로 절대 적그리스도, 악인, 악령을 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침륜과 멸망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약 4가지 분별을 구비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수시로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는지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

5.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한 효과는 점차 하나님을 알고 성정이 변화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검증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진실한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만일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는 바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오직 하나님을 알아야만 사람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사람의 모든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며 인생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해야만 한결같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백절불굴하고 한평생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도 역시 이러합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인생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이 다 해결되고 동시에 인생의 모든 비밀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과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효과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 지혜와 전능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서 발표되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을수록 자연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주재하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 및 하나님의 실질에 대해 점차적으로 진실한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도리만 아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주관이 없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시련,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생겨난 진실한 인식입니다. 물론 역시 온갖 고통을 받고 심지어 죽음의 시련을 통해서야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그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일을 보는 관점, 인생관, 가치관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사람이 만약 참으로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자연히 생명 성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효과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최종 성과입니다. 만약 사람이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이 변화된 효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사람이 제 딴에 진리를 추구한다고 여긴 것이 거짓이고 불량품임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이런 사람은 곧 불신파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이 변화된 효과가 있는지를 보기만 하면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검증하는 기준과 원칙입니다.

6.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전적으로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 온전케 되어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기 위한 것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 얻어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기본적인 기준은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합격되게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없습니다. 패괴된 인류가 본분을 함에 뒤섞임이 너무 많고 효과가 형편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할 때에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낸 것이고, 이야말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전혀 양심과 이지(理智)가 없고 인성이 없으며, 전혀 사람으로서의 원칙이 없고 마음에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없으며, 육체만을 위해 살아가는데, 모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만 탐하는 인간쓰레기입니다. 만약 정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피조물의 본분을 잘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류입니다. 참된 인류는 모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모두 구원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는 심지(心志)가 있는 사람입니다. ……

7.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본분을 잘해야 하고 반드시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원칙을 절대 어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고통받을 수 없다면 진리를 얻지 못합니다.

인류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이미 사탄 성정으로 가득 차 사탄의 후손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께 순복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본분을 잘하여 진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반드시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는 것은 바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실행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본분을 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지는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합격되게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는 또한 사람이 구원받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분을 잘하고 진리를 실행하며 진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을 받음에 있어 주로 다음 5가지 고통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1) 큰 붉은 용이 권력을 잡고 있는 사악하고 어두운 곳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핍박과 환난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2) 깊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려면 반드시 심판과 형벌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3) 본분을 잘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반드시 책망과 훈계의 고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4) 진실로 자신을 알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시련과 연단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5) 피조물의 본분을 잘하려면 반드시 가정의 행복과 육체의 누림을 포기하고 벗어나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

8. 진리를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잘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여 하나님을 위해 잘 증거할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 의의 있고 하나님을 알면 사람의 모든 패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비밀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참으로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아는 의의를 깨달았다면 자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가치도 알게 됩니다. 사람의 모든 패괴 문제와 인생의 모든 어려움은 다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야만 철저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수록 문제와 어려움이 적어지며,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이 다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참된 인생으로 통하는 길과 다리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광명한 앞날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면서 정확한 목표가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어떤 효과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많은 고통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 자체의 어려움이 너무 많아 벗어 버릴 수 없는데, 특히 사람의 사탄 본성이 깊이 뿌리박혀 초월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심판과 형벌에 고분고분 순복해야 합니다. 이러면 자연히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말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을 때는 진리를 얻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고, 자신감 있게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진리를 더욱 깨닫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됩니다. 이때면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잔치에 참여하고 모두 하나님 생명의 풍부함을 누리고 있으며 모두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정이 변화되는 효과가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절대 홀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몇 년 동안 분주히 보냈는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 순복하는 경력이 부족하다면 결국은 다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경력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에 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만유를 주재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2) 하나님의 3단계 역사와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3)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하나님의 거룩함 및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상징적 의미를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4) 하나님이 곧 진리, 길, 생명이시고 하나님 말씀의 권병(역주: 권세)이 모든 것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5)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6)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의의를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7)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사람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방면에 관한 진리.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함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7가지 방면에 관한 진리의 실질을 깨달아야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공허한 이론만 말할 줄 알아도 소용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도리만 말할 줄 알고 앵무새처럼 남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난과 시련이 닥치면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공의이심을 부인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논단하는데,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가련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은 배워 온 것이 아니고 얻어들은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에 순복하는 가운데서 경력해 온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고 경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보고 도달한 효과이며,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후 또 각 방면의 사실이 실증되면서 얻은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어떤 일에서 인식을 얻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에 대해 어떤 일에서 인식을 얻어야 할까요?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 하나님의 소유소시에 대해 모두 많은 경력의 인식과 간증을 교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심복구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배워 온 것이 아니라 경력해 온 것이고 더욱이 성령 역사의 온전케 함으로 생긴 것인데, 하나님 선민은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9. 진리를 추구하는 직책은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릇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고, 자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여 본분을 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 무릇 교회에서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모두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비교적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사실이 바로 이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수록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및 인도가 있게 되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정상이 됩니다. 만약 사람이 늘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다면 자연히 하나님에 대해 사랑과 충성심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일생을 바칠 수 있고, 최종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는 무릇 착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무릇 악인이라면 꼭 징벌받을 것임을 완전히 증명합니다.

사람이 인성이 있는지와 진리 실제에 진입하였는지를 가늠하려면 주로 사람이 진심으로 본분을 하는지와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본분을 하면서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고 각 방면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할 수 있다면 비로소 진실로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이지적이고 진리를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며, 틀림없이 인성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만약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또 그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들을 봅시다. 그들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전혀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으며 갖은 악을 행하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하다가 최종에 드러나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무릇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무릇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틀림없이 인성이 없는 악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습니다. 사람이 늘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고 각 방면에서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을 수호할 수 있는지는 그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를 가장 잘 드러내고, 그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여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10. 진리를 추구하면서 반드시 베드로의 길을 걸어야지 바울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만약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한다면 자연히 베드로의 온전케 된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신의 패괴 본성과 패괴 진상에 대해 더욱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되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달갑게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며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일생을 바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대체 베드로의 길을 가는지 아니면 바울의 길을 가는지는 전적으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케 하기 위해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에 속하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이 상을 얻고 복을 받는 길만 선택할 뿐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거나 위로하기를 싫어합니다. 무릇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추호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육체를 배반하고 자신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베드로의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정할 수 있습니다. 무릇 베드로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모두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무릇 바울의 길을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복을 받기를 추구하고 면류관을 얻기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베드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절대 바울의 길을 갈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길을 선택하느냐가 아주 관건입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갈지는 사람의 운명과 결말을 결정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고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베드로의 길을 택해야 하고, 최소한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무릇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를 따라 마구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사탄의 심부름꾼에 속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나쁜 놈들입니다. 듣기 싫은 말로 하면 모두 망할 놈들인데,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극력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하며 갖은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 집의 출교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는 정말로 무릇 사탄에게 속한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고, 죽음이 코앞에 닥쳐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든 적그리스도와 악인은 다 양심과 이지가 전혀 없고 영이 없는 짐승 따위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전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무릇 바울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는 것만 중요시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면서 죽을 때까지 효력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바울에게 그래도 양심과 이지가 조금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출교된 그 적그리스도, 악인들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극력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하며 갖은 악을 행한 탓에 출교된 적그리스도, 악인은 모두 양심과 이지가 조금도 없고, 전혀 하나님을 위해 달갑게 효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곳곳마다 하나님과 거래하였으며, 극력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한 동시에 갖은 악을 행하면서도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마음은 창녀이면서 정절문 세우려는 것”과 같은데, 바울과 비기면 너무 차이가 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받은 고통과 치른 대가는 아무도 비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이지(理智)마저도 구비하지 못했다. 바울처럼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사람에게 없다……” 그 적그리스도, 악마들을 어찌 바울과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한 효력을 그들이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데, 그들은 몇 사람이나 전도했습니까? 그들은 전혀 바울과 비교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으로, 하나님 선민들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선민들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를 깨달았다면 자연히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면 진리를 깨닫기 쉽고 진리를 얻기 쉽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10가지 원칙은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위해 길을 닦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기만 하면 진리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기 쉽습니다. ……사람이 진리의 형상, 즉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낼 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의를 완전히 깨닫게 되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완전히 보게 되며, 피조물이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낸 진리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실질을 쉽게 발견하게 되며, 마음속으로부터 조물주, 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며 찬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류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인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를 심판하고 형벌하여 도달한 최종 효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기 아주 어렵고 더욱이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이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인데,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영원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총집 (2)ㆍ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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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④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⑤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⑥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⑦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