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57 시련 속에서 죽기까지 순복하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해야 하며, 모든 환난과 연단은 다 하나님의 지배에서 나오고 사람의 공사를 검증하여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2. 피조물의 위치에 잘 서야 한다.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지 조건과 이유를 따져서는 안 된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베드로의 심지를 구비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모든 것을 내걸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하며, 죽을지언정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4.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배하시든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의 부탁에 충성해야 하고 목숨을 내걸고라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국도시대(역주: 왕국시대) 기간에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할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 사람은 연단과 환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환난 속에서 이기는 자, 간증을 서는 자는 최종에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곧 이기는 자들이다. 환난 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바로 이번의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단은 최후의 한 차례 사역인데, 전체 경영 사역이 끝나기 전에 있게 되는 최후 한 차례 연단이다. 무릇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최종의 검증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최후의 한 차례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은 모두 분량(원문: 工程)의 검증을 이겨 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조만간에 모두 쫓겨날 것이지만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남게 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인지는 분량(원문: 工程)의 검증을 통해, 즉 시련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함부로 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은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과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사역은 하지도 않는다. 참 믿음인지 아니면 거짓 믿음인지는 모두 사실로 검증한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밀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밀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최종에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남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어떤 사람도 섭섭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무릇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닥치고 네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때면 너에 대해 다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 전에는 각 사람에 대해 모두 한 차례 준엄한 검증이고 커다란 시련이다. 이 일을 네가 꿰뚫어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시련할 때 항상 사실의 진상이 드러나기 전에 사람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시련할 때 언제나 너에게 진상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래야 사람을 드러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한 가지 방식인데, 네가 오늘의 하나님에 대해 도대체 알고 있는지에 달렸고 도대체 너에게 실제가 있는지에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에서 발췌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한다.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으로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그에 따라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사람의 사랑은 오직 연단 속에서만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시련을 경력(역주: 체험)하는 중에 사람이 연약하든, 내면이 소극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 실행할 길에 대해 별로 명확하지 못하든, 그런 것은 다 정상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소유한 것들은 다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분도 역시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하든지 그는 그렇게 인정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정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피조된 사람인 이상 너의 창조주께 순복해야 한다. 그 까닭은 네가 근본적으로 자신을 장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만큼, 거룩해지기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해도 내가 칭찬하지 않고 마지막에 너를 사탄의 손에 내버리겠다고 알려 주었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하나님, 천지 만물 가운데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저의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역주: 권세)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비록 육체가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고난이 닥칠 때, 네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이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차라리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임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우선 너는 이런 고난을 받으려는 심지와 진실한 믿음을 갖춰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려는 심지를 갖춰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이 단계 사역에서는 우리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 단계 사역이 이전의 그 어느 단계의 사역과도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실족할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인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믿음으로 되고 말씀이 사랑으로 되며 말씀이 생명으로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많은 연단을 겪고 욥보다 큰 믿음을 구비하려면 크나큰 고통과 온갖 시달림을 받아야 하고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모두 죽기까지 순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크나큰 믿음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8)>에서 발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를 위해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보고, 또한 이전에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 원한다고 맹세한 것이 생각나서 불평하지 않았다. 그가 그 후에 다시 기도할 때는 이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는 또 기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가 전에 당신을 떠난 적이 있었고, 당신도 저를 떠나신 적이 있었나이다. 우리가 전에 헤어질 때도 있었고 함께 만날 때도 있었으나, 당신은 그 무엇보다 더 저를 사랑하였나이다. 제가 여러 번 당신을 거역하고 상심케 했는데, 이런 것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께서 저에게 하신 사역과 부탁하신 것을 저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늘 마음에 두었나이다. 당신이 저에게 하신 사역에 저는 이미 힘을 다하였나이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이 아시고, 제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섭리대로 하기 원하고, 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오로지 당신만이 아시나이다. 비록 사탄이 저를 이렇게 우롱하여 제가 당신을 거역한 적도 있었지만, 당신은 그것으로 인해 저의 과오를 기억하시지 않고 그것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시리라 믿나이다. 저는 저의 일생을 모두 당신께 바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어떤 희망이나 타산도 없으며 오직 당신의 생각과 뜻대로 할 수 있기만을 구하나이다. 저는 당신의 쓴잔을 마시기 원하옵고 당신의 섭리대로 하기 원하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간 과정>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든 네가 전력을 다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보좌 위에서 즐거운 웃음을 짓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설령 그때가 바로 네가 죽는 시각이라고 해도 너는 눈을 감을 때에 웃음소리를 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본분을 해야 한다. 전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너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위해 너의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배대로 해야 한다. 사람에게 무슨 원망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41편 말씀의 게시>에서 발췌

『예수가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었고 전 인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자신의 타산과 안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지기, 즉 하나님 자신이다(사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인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그의 이 사실로 어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핵심으로 하여 늘 천부에게 기도하면서 천부의 뜻을 찾고 구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시여,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께서 이루시옵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행하시옵소서, 사람이 연약하지만 어찌 당신의 체휼을 바라겠나이까? 당신의 수중에 있는 개미와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겠나이까? 제 마음은 단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옵고, 당신께서 하시려는 것을 당신의 뜻대로 저에게서 이루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늘 강대한 힘이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곳을 향해 나아가게 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전 인류를 구속하는 이 사역을 완성했고, 모든 죽음의 그늘의 통제를 초탈했는데, 사망, 지옥, 음부가 그의 앞에서는 위력을 잃었고, 그는 이것을 모두 이겨 내었다. 그는 33년이라는 일생 동안 늘 하나님이 그 당시에 하는 역사에 따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였고, 자신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침례를 받은 후,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의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중책을 그에게 맡겨 완성하도록 했는데, 그는 그 중임을 완성할 자격과 권리가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탄의 시험을 겪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낙심한 적이 없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맞겠는가>에서 발췌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는가?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라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하는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한다. 욥에게서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로소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지금 참으로 자신의 실질을 알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다면, 또 어떤 전망이나 소망을 추구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나는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다 나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 더러움을 떨쳐 버리고 사탄의 권세를 벗어나 사탄의 권세하에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인식해야 할 바이다. 물론 너에게는 이렇게 요구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저 정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 안에 순복할 심지(心志)가 있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게 하는데, 이러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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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