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9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지혜를 쓰는 원칙

1. 반드시 지혜와 궤사함의 실질적인 구별을 인식해야 한다. 지혜를 쓰는 것은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서이며, 긍정적인 것이다.

2. 큰 붉은 용과 사탄의 모든 세력에 대해 지혜로운 방식을 취하여 하나님 역사를 수호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3. 반드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사랑이 있어야 하고 지혜도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유익한 점을 얻게 하고 하나님 사역에 대해 이롭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4.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함에 있어서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지혜로운 방식을 쓰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효과에 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각 방면에서 모두 지혜가 있어야 하고, 지혜로써 나의 완전한 도를 행해야 한다. 나의 말 속에서 실행하는 사람은 바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나의 말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바로 가장 잘 순복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면 바로 무엇이기에 네가 내게 변명하거나 내게 도리를 따질 필요가 없다. 내가 말한 것은 다 너를 위해 생각한 것이기에(말이 엄하든, 부드럽든) 너는 그저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해야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다(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피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49편 말씀>에서 발췌

『당시에 예수가 유대에서 역사할 때에는 공개한 것이다. 지금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말씀하는 것은 은밀한 것이어서, 이방인은 조금도 모른다.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은 모두 봉쇄되어 있다. 이 말씀과 이 형벌, 심판을 너희는 알고 있지만, 그 외의 사람은 다 모른다. 이 사역은 모두 너희들 가운데서 하고 너희에게만 열어 놓으며, 이방 가운데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형벌을 받아 곧 만들어지지만, 밖의 사람은 조금도 모른다. 이 사역은 너무나도 은밀하다!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은밀한 것이지만, 이 도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부 공개한 것이고 전부 나타낸 것이고 전부 해방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를 믿는 사람을 놓고 말하는 것일 뿐, 그 외의 이방인에게는 오히려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는 사역이 아주 엄밀히 봉쇄된 것은 바로 그들에게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알게 된다면 정죄에 핍박을 더할 뿐 믿지 않을 것이다.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바로 이 가장 낙후한 곳에서 역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사역을 공개한다면 해 나갈 수도 없고, 이 단계 사역은 이곳에서 전혀 행할 수도 없다. 공개적으로 이 사역을 한다면, 그것들이 어찌 용인하겠느냐? 더 큰 위험에 직면하지 않겠느냐? 이 사역을 은밀하게 하지 않고 또 예수 그때처럼 기세 드높이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마귀에게 ‘노략’되지 않았겠느냐? 그것들이 그래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겠느냐? 지금 교회에 들어가서 설교하고 사람을 교훈한다면, 내가 벌써 뼈도 못 추리게 되지 않았겠느냐? 그러면 사역을 또 어찌 전개해 나갈 수 있겠느냐? 지금 표적과 기사를 조금도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은밀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다고 한다. 만약 이 단계도 은혜시대의 예수처럼 역사한다면 이렇게 안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밀히 역사하는 것은 너희에게 유익하고 모든 사역에 유익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2)>에서 발췌

『나의 담력을 너의 안에 더해야 하고 믿지 않는 가족 앞에서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는 나를 위한 연고로 모든 흑암 세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고 나의 지혜를 힘입어 완전한 도를 행해야 하며 사탄의 음모가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0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현실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주로 사람에게 정상 인성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규례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분량에 따라 하는 것이다. 만일 집에서 남편이 믿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자로 대하고, 믿는 사람은 믿는 자로 대하며, 그 무슨 사랑과 인내를 논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지혜를 써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2)>에서 발췌

『교통함에 있어 영 안의 일을 알아야 하며, 지혜가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더듬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섬기려면 자신이 반드시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교통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3편 말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궤사한 사람이 궤사하게 행하는 것은 본성의 유로(역주: 흘러나옴)이고, 성실한 사람이 지혜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이고 또한 사역의 필요이며 더욱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구비해야 할 바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만약 우매하다면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없으면 사역 효과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지혜가 있다고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 각종 방식과 방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긍정적인 것에 속하고 정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를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일에 관련되면 어떤 방식과 방법을 취하든지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지혜가 있는 것이며, 사람이 방식과 방법을 적용하여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궤사함은 부정적인 것에 속하는데, 사탄에게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반동적인 목적 및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쓰는 수단입니다. 비록 어떤 때에 지혜와 궤사함은 겉으로 보면 방식이 비슷하지만 각개의 의의나 도달하는 목적이 같지 않기 때문에 성질도 같지 않습니다. 궤사한 사람은 나쁜 일을 저지름에 있어서 자신의 비열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쓰기에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궤계나 음모를 꾸민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민이 지혜를 쓰는 것은 원수를 패배시키기 위해서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서이니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에 속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입니다. 지혜를 쓰는 것 또한 정당한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이것이 궤계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것을 모독하고 흑백을 전도하는 논법이고 또한 우매 무지하고 분별이 없는 사람의 황당무계한 논리입니다. 일을 판단할 때 그 실질을 보아야 하며, 근원을 더듬어야 합당한 정론이 있게 됩니다. 표면 현상만 보고 터무니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좌담 기록ㆍ지혜 있는 것과 궤사한 것의 구별>에서 발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많은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랑을 구비하는 것 외에 지혜가 부족해서도 안 됩니다. 지혜를 쓰는 원칙은 사람에게 좋은 점을 얻게 하고 남에게나 본인에게나 교회에 대해서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지혜가 없다면 어떤 문제들은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한 가지 일을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인지에 대해 꼼꼼히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적합하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지, 혹은 상대방이 어떤 성정이 있는 사람인지, 그와 지내면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고 해가 없는지,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을 알려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만일 말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이런 것은 다 지혜로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좌담 기록ㆍ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맺는 데에 갖추어야 할 실행 원칙>에서 발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지혜를 쓸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혜를 쓰면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지혜를 쓰면 궤사한 꾀를 부리는 게 아닌가요?” 지혜는 궤사한 것이 아니고 궤사한 것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지혜를 쓰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분량이 작을 때에 얼마의 방식을 쓰는 것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밖에 분량이 작은 사람, 특히 진리를 구비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패괴 유로가 있고 아직도 패괴 성정이 있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무엇이나 다 말해 버리면, 어떤 때는 남에게 약점을 잡히고 이용당하기 쉬운데, 이것도 좋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좀 방비해야 하고 방식을 좀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방비한다는 것은 돕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집의 일부 중요한 일은 사람들에게 미리 말하지 말고 진리만 교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상의 영 안의 도움이 필요하고 진리상의 공급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려 하고 인솔자와 일꾼들의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려 한다면, 이런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그 사람에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기 쉬우니, 하나님 집의 사역에 영향을 끼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과 알 필요가 없는 것이면 알지 못하게 하며,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면 최선을 다해 알게 하고 확실하게 남김없이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이 알아야 할 것입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진리를 장비해야 하는지, 어떤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떤 본분을 하는 것이 적합한지, 어떻게 본분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은 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 집의 규범과 원칙, 교회의 사역을 함부로 이방인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고, 형제자매들의 상황도 이방인들에게 말해서는 안 되며,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지혜를 쓰는 데에 준수해야 할 원칙입니다. 어느 인솔자가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사는지 이와 같은 것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면 언젠가는 이방인들의 귀에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또 일부 간첩 노릇을 하는 나쁜 놈들에게까지 전해지면 위험하게 됩니다. 이런 일에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것은 아주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당신이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을 때, 일부 특별한 사적인 일은 함부로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형제자매들의 분량을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죄다 말해 버린 후에는 그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당신의 그 일을 장난으로 여겨 퍼뜨리면 문젯거리가 되고, 당신의 인격에 손상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을 때에도 지혜를 써야 합니다.』

<설교 교통 (1)ㆍ어떻게 교회 생활을 이루는지와 교회 생활을 이루는 의의>에서 발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참 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게 하고 이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의의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원칙과 방식은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의의에 근거하여 확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실행 원칙과 방식이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의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원칙과 방식은 잘못된 것이고 편차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왜 복음을 전할 때 지혜와 방식을 써야 합니까? 바로 큰 붉은 용 국가는 사탄 악마가 권력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악마 무리들이 극력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없애려고 시도하기에 이런 흑암한 배경 하에서 반드시 실행 원칙과 지혜로운 방식을 취해야만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설사 종교신앙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일지라도 온 종교계는 다 적그리스도, 악마에게 통제되어 있고 다 하나님의 역사를 정죄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세계 각지로 확장하려면 반드시 지혜로운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실행 원칙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복음 사역을 확장한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하나님 선민은 많은 경험과 교훈을 총결하였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확정한 복음 전도의 실행 원칙과 지혜로운 방식은 모두 효과적인 것입니다. 사탄 세력의 핍박, 박해, 추적 때문에 하나님 선민은 복음을 전할 때에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자신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혜로운 방식을 쓰지 않는다면 쉽게 실패하게 되고, 사람을 얻기는커녕 큰 붉은 용이나 각종 종교의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붙잡힐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훈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복음도 전하고 자신도 잘 보호하려면 지혜로운 방식을 써야 합니다. 드러내 놓고 하면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어떤 사람들은 원칙과 지혜가 없고 규례만 지키기에 역시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만일 사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사탄에게 노략되지 않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복음을 전해도 됩니다.』

<총집 (2)ㆍ각지 교회에서 급히 해결해야 할 12가지 문제>에서 발췌

『예를 들어, 어떤 때에 복음을 전하면서 당신이 복음 전도 대상에게 진지하게 진리를 교통하고 하나님 역사를 교통하지만 패괴된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어 진리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지혜롭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때는 좀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비록 어떤 방식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지만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 흔히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적절한 방식이 오히려 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규례를 지키지 말고 당시의 환경과 배경에 근거해 효과를 따지면 됩니다. 이것이 원칙이 아닙니까?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 비열한 수단을 쓰는 것을 제한합니다. 하지만 일부 방식은 비록 그리 올바르지 않고 수단을 쓰는 성질을 좀 띠고 있다 해도 비열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이런 수단을 쓰면 그 사람이 믿을 수 있고, 이런 수단을 쓰지 않고 긍정적인 방식을 쓰면 그 사람이 진리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효과만을 따지고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 비열한 것이 아니면 됩니다. 그러면 법으로도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에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이 보기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어떻게 그 사람을 얻을지 방법을 생각하고 오직 효과를 따지고 비열한 수단이 아니고 법을 어기거나 남을 해치지 않고 그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추궁하는 사람이 없으면 됩니다. 만일 그 사람을 얻지도 못하고 비열한 수단을 써서 남에게 고발당하면 그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하고 미련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사고력이 있는지와 지혜가 있는지에 달렸습니다. 어떤 일들은 융통성 있는 일이지만 어떤 일들은 안 됩니다. 법을 어기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은 아무런 위험성도 없고 단지 약간의 수완을 써도 비열한 수단이 아니기만 하면 융통성 있게 장악할 수 있는데, 하나님 집에서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들은 죄를 범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효과만을 따집니다. 만일 일부 사람들이 따지면 모르는 척하면 됩니다.』

상면의 설교 교통에 근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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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