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8 자신에게 성정 변화가 있는지를 반성하는 원칙

1. 자신이 성실한 사람의 기준에 도달하였는지, 양심 이지를 구비하였는지, 본분을 할 때 충심이 있는지, 선행을 얼마나 예비하였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2. 자신이 일을 보는 관점, 인생관과 가치관이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지, 참된 인생관과 가치관을 구비하였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3. 자신이 진실로 욥의 믿음을 구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과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4.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지, 시련 속에서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11가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소위 성실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서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실이란 일하고 말할 때,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공손하고 아주 ‘얌전’하지만 영 앞에서는 교만방자한데, 너희는 그런 사람을 성실한 사람의 대열에 나열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네가 위선자이고, ‘교제’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면, 나는 네가 하나님을 농락하는 사람이라고 정한다. 만일 너의 말에 많은 변명과 쓸데없는 구실이 있다면, 나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만일 너에게 입을 열기 어려운 비밀이 많이 있는데, 네가 자신의 비밀, 곧 자신의 애로 사항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기 싫어한다면, 나는 너를 구원받기 매우 힘든 사람이라고 하고, 또한 너를 흑암 속에서 빛을 보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만일 네가 진리의 도를 찾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면, 너는 늘 광명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효력자가 되어 묵묵히 부지런하게,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이 없이 공헌하기만을 원한다면, 나는 너를 충성된 성도라고 한다. 그것은 네가 보수를 따지지 않고 다만 성실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네가 허심탄회하기를 원한다면, 너의 몸과 마음을 전부 바치려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다면, 네가 성실하여 하나님을 흡족케 할 줄만 알고, 자신을 위해 생각하거나 무엇을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사람들이 바로 광명 속에서 윤택해지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존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너는 너에게 진실한 믿음이 있는지, 진정한 충성심이 있는지,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은 흔적이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인 순복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너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너에게는 아직도 패역, 기만, 탐심, 원망이 있다. 그것은 너의 마음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광명 속에서 살지 못하였다. 한 사람의 운명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의 관건은 그 사람에게 성실하고도 뜨거운(원문: 鮮紅) 마음이 있는지에 달렸고, 순결한 영혼이 있는지에 달렸다. 네가 매우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마음이 매우 악독한 사람이고 더러운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의 운명에 대한 기록은 틀림없이 징벌받는 곳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이 매우 성실하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진리에 부합되는 일을 할 줄 모르고, 솔직한 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그럼에도 너는 여전히 하나님이 너에게 상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너는 또 하나님이 너를 눈동자처럼 여겨 주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 아닌가? 네가 범사에서 하나님을 기만하는데,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 또 너같이 버릇이 나쁜 사람을 용납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본분을 할 때 충성하는 이 일을 놓고 말하면 본분을 하는 것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인식이 있으며 진리 방면에서도 깨닫지만, 언제면 충심으로 하는 데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겠는가? 명실상부하게 본분을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한동안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도 아마 네가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 너를 훈계한다든가, 책망한다든가, 가로막는다든가, 몰아댄다든가, 강요한다든가, 여러 사람의 눈이 너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네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나쁘다고 깨닫게 되는데, 본분을 할 때 충심이 없으면 되겠는가? 대충대충 하며 속여서는 안 된다. 성령이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네가 일을 잘못했을 때 너를 책망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되고, 네가 하는 본분에 뒤섞임이 너무 많고 자신의 속셈이 너무 많고 자신의 욕망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네가 인식한 후 점차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행위에서 변화될 수 있다. 너희가 지금처럼 본분을 하는 것은 실질상으로 말하면 진정으로 본분을 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성정이 변화된 후 진리에 부합되는 본분을 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성찰해 보면 네가 도대체 성정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어떻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는지에 대해 너희에게 길이 있는가? 모두 어떤 것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너희에게 인식이 있는가? 너희는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한 적이 있는가? 방금 말하다시피, 성정 변화는 그런 겉면의 행위, 행실이나 규례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것인가? 너희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성정 변화는 성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성정이 변화되게 하는지, 어떤 것이 변화되게 하는지를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문화 방면에서 아니고 지식 방면에서 아니며 객관적인 그런 사상 방면에서 변화되라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을 바꾸려는 것인데, 이것이 한 방면이다. 그리고 사람됨의 원칙이 있는데, 사람됨의 원칙은 바로 너의 인생관이다. 이것이 또 다른 한 방면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힌, 사람이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사탄의 패괴 본성도 있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성정 변화는 바로 이 3가지 방면이다.』

<좌담 기록ㆍ무엇이 성정 변화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성정 변화는 인성이 세련되었다 하여 성정이 변화된 것이 아니다. 주로 그의 본성 안에 있는 사탄의 일부 독소들이 그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그런 독소들이 정결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가 그의 안에 뿌리를 내려 그의 생명이 되고 그의 생존 토대가 되어야 그를 새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그의 안의 일부 사탄 독소들이 없어졌다든가, 일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든가, 세상의 관점과 합하는 것이 한 가지도 없다든가, 그가 큰 붉은 용의 음모와 독소를 완전히 꿰뚫어 보았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가 인생의 참뜻을 더듬었으므로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이고, 이것은 성정 변화의 실질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전에 무엇으로 살았는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 본성의 개괄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이고, 복을 얻는 것은 더욱 자신을 위해서이며,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바치는 것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이며,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 자신이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 있어도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며,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 자신이 복을 얻기 위해서이고 복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며, 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의 패괴 본성의 실증적인 설명이다. 성정이 변화되면 그렇지 않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의의 있는지, 어떻게 본분을 해야 사람이라 칭할 자격이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는지 이것이 사람됨의 근본이고 당연한 직책이라고 여긴다. 만약 이렇게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칭할 자격이 없고 정말로 헛되고 무의미하다. 사람이 살아도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살아야 하고 사람의 본분을 잘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면 죽어도 만족함을 느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며 헛되이 살지 않는다.』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와의 구별>에서 발췌

『어느 날까지 경력(역주: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근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는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의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에 대해 그것이 있으나 없으나 다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일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의 모양이 있는 사람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고난이 닥칠 때, 네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이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차라리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임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는가?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라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하는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한다. 욥에게서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로소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지금 참으로 자신의 실질을 알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다면, 또 어떤 전망이나 소망을 추구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나는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다 나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 더러움을 떨쳐 버리고 사탄의 권세를 벗어나 사탄의 권세하에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인식해야 할 바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너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네가 성령의 현실 말씀을 따르는지의 여부, 진실한 인식이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이것은 너희가 이전에 터득한 것과 다르다. 이전에 터득한 성정 변화는 네가 논단하기 좋아했었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한 방면의 변화에 불과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따르고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순복하여라.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이나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해야 한다. 이전에 성정 변화에 대해 말한 것은 주로 자신을 배반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받고 자신을 극복하고 육체적인 취향을 버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도 한 가지 성정 변화이다. 지금 다 알다시피, 성정 변화의 실제 표현은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새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이전의 그 관념적 인식을 제거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 이야말로 성정 변화의 참된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현재 너희는 되도록 빨리 너희에게 아직도 나를 배반하는 성분이 얼마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나는 매우 절박하게 너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너희는 모두 나를 건성으로 대하지 말라. 나는 여태껏 사람들과 유희놀이를 한 적이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또 반드시 해낸다. 너희가 모두 나의 말을 참답게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의 말을 공상과학소설에 불과하다고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의 실제 행동이지 상상이 아니다. 아래에 너희가 모두 나의 이와 같은 문제에 대답하여라. 1. 만약 네가 정말 효력자라면 너는 기만과 소극적인 성분을 조금도 뒤섞지 않고 나를 위해 충심으로 효력을 할 수 있는가? 2. 만약 내가 전혀 너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네가 알게 되었다면 너는 남아서 나를 위해 일생 동안 효력을 할 수 있는가? 3. 만약 네가 많은 힘을 내었어도 내가 여전히 너를 매우 쌀쌀하게 대한다면 너는 계속 나를 위해 묵묵히 일을 할 수 있는가? 4. 만약 네가 나를 위해 얼마의 것들을 지불한 후에도 너의 조그마한 요구를 내가 너에게 만족시켜 준 적이 없다면 너는 나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심지어 노기등등해하며 욕설을 퍼붓지 않을 수 있는가? 5. 만약 네가 줄곧 매우 충성하고 줄곧 나를 매우 사랑하지만 오히려 병고의 시달림과 생활의 곤란을 받고 또한 친척과 친구의 버림이나 어떤 생활상의 불행을 당한다면 나에 대한 너의 충심과 사랑을 여전히 계속할 수 있는가? 6. 만약 네 마음속에 상상한 것과 내가 한 것이 모두 맞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이후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7. 만약 네가 얻을 수 있기를 바라던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면 너는 계속 나를 따르는 자가 될 수 있는가? 8. 만약 네가 여태껏 나의 역사 목적과 나의 역사 의의를 깨달은 적이 없다면 너는 순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마음대로 논단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9. 너는 내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한 말과 역사를 모두 귀하게 여길 수 있는가? 10. 너는 나를 충실하게 따르는 자가 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언정 나를 위해 일생 동안 고통을 받고자 할 수 있는가? 11. 너는 나를 위해 자신이 앞으로 생존할 길을 생각하거나 타산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문제는 내가 너희에게 제기한 최후의 요구이니 너희가 모두 나에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이런 문제에서 네가 그중의 하나나 둘을 구비하였다면 너는 여전히 계속 노력할 것이 필요하다. 만약 네가 이런 요구 중 어느 한 가지도 해낼 수 없다면 너는 틀림없이 지옥에 갈 종류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나와 합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다 나를 배반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을 내가 어찌 나의 집에 남겨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환경에서 여전히 나를 배반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은 내가 그의 표현을 관찰한 후에 따로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무릇 나를 배반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조건에서든지 나를 배반하는 사람은 내가 잊지 않고 하나하나 마음속에 기억하였다가 시기를 기다려 그의 악행에 보응할 것이다. 내가 제기한 요구는 모두 너희가 자신을 성찰해야 할 문제이다. 나는 너희가 모두 참답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나를 대충대충 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머지않은 장래에 나는 나의 요구로 너희가 나에게 준 대답에 대조해 볼 것이다. 그때에 나는 너희에게 더는 무엇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더는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으로 무엇을 말하지도 않을 것이며, 나의 권병(역주: 권세)을 행사하여 남겨두어야 할 자는 남겨두고, 상을 주어야 할 자는 상을 주고, 사탄에게 넘겨주어야 할 자는 사탄에게 넘겨주고, 중형을 받아야 할 자는 중형을 받게 하고, 멸망시켜야 할 자는 멸할 것이다. 이러면 나의 날에 다시는 누가 나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의 아주 엄중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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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③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