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6 한 기간마다 영적 수양을 하는 원칙

1. 영적 수양과 반성이 없으면 쉽게 자신의 길로 치우치게 된다. 영적 수양을 통해 진리를 장비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옛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

2. 영적 수양을 하면서 자신을 반성함에 있어 반드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한다. 오직 단순하게 터놓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다.

3.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며, 자신이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 것인지, 자신의 속셈과 목적과 뒤섞임이 얼마나 되는지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4. 영적 수양을 통해 자신이 가는 길이 정확한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지,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는지를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진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든 살펴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잘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되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을 포기할 수 있고, 어떻게 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알게 되면 그렇게 행하게 되는데, 마치 모든 것에서 순리에 따른 듯 매우 홀가분하다.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나면 자신의 각종 정형을 분별할 수 있고, 복잡한 일도 꿰뚫어 볼 수 있고,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합당한지를 알게 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정형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을 배반하려고 해도 어떻게 배반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배반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네가 자신의 뜻을 포기하려고 해도 자신의 뜻이 진리에 매우 부합된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느냐? 또한 너는 그것을 성령의 깨우침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말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을 때는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이나, 뒤섞임이나, 호의나, 흐리멍덩한 사랑이나, 행위를 너는 그것이 정확한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아주 쉽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또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눈앞이 캄캄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기에 그저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어떤 일은 치우치고 그릇된 것이고, 어떤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며, 어떤 것은 열심에서 나온 것이 된다. 또한 어떤 것은 바로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 된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렇다. 왼쪽으로 치우치다가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제대로 가다가 또 곁길로 가기에 정확도가 전혀 없다. 진리가 없으면 일을 판단하는 것도 그릇된데, 어떻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 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한평생 믿으면서 인식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경력(역주: 체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하나님을 드러나게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고, 확연히 드러나는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두에게 무익한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뜻과 뒤섞임이 조금도 없으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정상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한 방면의 터득에 속하기에 그 사람의 뜻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관건은 무릇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고, 성령의 깨우침에 어긋나는 것임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데에 공을 들여야 하는데,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이 생길 수 있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너의 모든 행위, 일거일동, 속마음, 반응을 다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바로 너의 평소의 영적 생활, 기도하는 것,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형제자매들과 교통하는 것, 교회 생활을 하는 것과 네가 협력하며 섬기는 것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내놓고 감찰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행해야 자신의 생명이 자라는 데에 이롭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과정도 사람이 정결케 되는 과정이다. 네가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더욱 정결함을 받고 더욱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기에 네가 방탕하지 않게 되고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사탄이 더욱 수치를 당하게 되고, 너는 더욱 육체를 배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것은 사람이 실행해야 할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에서 발췌

『네가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알아가려 하고 진리를 실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네가 자신을 알아가려 하고 진리를 실행하려 하는 것을 보고 네가 연약하고 소극적일 때 갑절로 너를 깨우쳐 주어 더욱 자신을 알 수 있게 하고 더욱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게 하며 더욱 자신이 실행해야 할 것을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마음이 평안해지고 든든해진다. 평소에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중요시하고 자신을 알아가기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설사 소극적인 정형이 있더라도 양심의 역할로 말미암아, 또는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말미암아 즉시 돌려세울 수 있다. 사람의 성정 변화는 모두 자신의 진실한 정형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를 인식하는 동시에 도달하는 것이다. 기꺼이 자신을 알아가려 하는 사람, 자신을 털어놓으려 하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깊든 얕든, 많든 적든 모두 인식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자 또한 사람이 얻은 것이고 사람 자신의 수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안정된 후에야 비로소 성령의 감동,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수 있으며, 비로소 하나님과 진실한 교통이 있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더듬을 수 있다. 이러면 영적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훈련하여 어느 심도에 이르면, 자신을 배반할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 수 있다. 이것이 참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증오할 수 있고 자신을 저주할 수 있고 자신을 배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도달한 효과이다. 사람에 의해서는 이러한 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즉시 진입해야 할 공과이다. ……

……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 안정해야 하는데, 그래야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 하나님 앞에 안정해야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수 있고,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다. 평소에 묵상하고 교통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 앞에 안정해야만, 하나님과 진실하게 가까워질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참으로 헤아릴 수 있다. 네가 평소에 하나님 앞에 안정할수록 더욱 빛 비춤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패괴 성정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한지, 자신이 어떤 것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면에 결점이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데에 관하여>에서 발췌

『너희는 많이 교통해야 하고 자신의 영적 수양에 독립적인 먹고 마심이 있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잡아서 즉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말의 실제를 더듬어야 하며, 중심과 요점을 잡고 느슨하게 하지 말고 늘 묵상하고 늘 나와 교통하면 차츰차츰 뚜렷해질 것이다. 잠깐만 하나님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임하여 방해를 받으면 언제나 흐리멍덩하고 환히 알지 못하고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마음을 분명히 더듬을 수 없고 조금 더듬었다 해도 확신할 수 없으며 여전히 의심하는 것이다. 너의 마음이 전부 나에게 점유되고 마음이 모든 세속적인 것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편안히 안정하여 기다릴 때면 내가 조금씩 나의 뜻에 따라 너희에게 하나하나 나타낼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9편 말씀>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 반드시 자신의 실제 정형에 결부시켜야 한다. 즉 실제 경력 가운데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발견한 후 실행의 길을 찾고 자신의 부정확한 속셈과 관념을 배반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늘 이 방면에서 공을 들이고 너의 마음을 늘 이런 일에 쏟는다면 행할 길이 있게 되고 공허함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러면 너는 정상 정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에 대해 부담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실행해 내지 못하는가? 모두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닌가? 모두 생명에 대해 속이는 사람들이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잡을 수 없고 실행할 길이 조금도 없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형에 결부시킬 수 없고 자신의 정형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자신의 정형에 결부시켰어요. 저는 자신이 패괴되고 소질이 낮다는 것은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없어요.” 이것은 네가 그저 겉면만 조금 보았을 뿐이다. 어떻게 육체적 누림과 독선적인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이런 것에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너의 소질을 높여야 하는지, 어느 방면으로부터 착수해야 하는지, 이런 것은 다 실제적인 것에 속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7)>에서 발췌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잘 증거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사역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뒤섞임과 속셈을 살펴보아야 하고,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며, 성령의 깨우침에서 나온 것이 얼마나 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언행을 살펴보아야 한다. 항상 이렇게 실행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기려면 반드시 많은 진리를 갖춰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후에야 분별이 생기게 된다. 어떤 것이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 것이 사람의 속셈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 것을 사람의 뒤섞임이 있다고 하는지, 어떤 것을 진리에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너는 어떻게 순복하면 더욱 순수하고 올바른지를 알게 된다. 진리가 없으면 분별력이 있을 수 없다. 멍청한 사람은 한평생 하나님을 믿어도 패괴 유로(역주: 흘러나옴)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진리가 없고, 그의 머리에는 아예 그런 개념(원문: 弦)이 없기 때문이다.』

<좌담 기록ㆍ일꾼이 사역하는 주요 원칙>에서 발췌

『아주 관건적인 원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이 닥치면 재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내놓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항상 자신의 정형을 성찰해 보아야 하는데, 이것도 한 가지 원칙이다. 자신의 행위에서 어떤 일들이 진리에 부합된 것인지, 어떤 일이 원칙에 어긋난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하나는 그 당시에 살펴보고 하나는 일이 지나간 뒤에 성찰하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본성을 해결하는 것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서 발췌

『너희가 지금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베드로처럼 생명을 추구하고 자신을 알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베드로의 길이 아니다. ……사람에게 사탄의 본성이 있기에 세상에 있으면 지식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두각을 나타내기를 추구하며, 하나님 집에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충성하면서 나중에 면류관을 얻고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만약 진리가 없고 성정 변화가 없다면, 가는 길은 틀림없이 이런 길이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길과 판이하다. 너희가 지금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비록 너에게 바울의 길을 걸을 생각이 없지만 너의 본성이 이렇게 지배하기에 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네가 마음속으로 베드로의 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베드로의 길을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게 여전히 바울의 길을 가게 된다. 사실이 바로 이렇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현재 도대체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하겠느냐? 네가 만약 베드로의 길과 바울의 길에 대해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거나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네가 아무리 베드로의 길을 간다고 말해도 빈말이다. 너는 마음속으로 먼저 베드로의 길은 어떻게 된 것인지, 바울의 길은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네가 베드로의 길이 생명의 길이고, 유일하게 온전케 되는 길임을 참으로 인식해야 베드로의 길을 감에 있어 갖춰야 할 진리와 구체적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장악할 수 있다. 네가 만약 베드로의 길에 대해 모른다면, 틀림없이 바울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따로 갈 길이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가 없는 데다가 심지도 없다면, 베드로의 길을 가기 어렵다. 하나님이 오늘 너희에게 구원받는 길과 온전케 되는 길을 뚜렷이 보여 준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높여줌이고, 하나님이 너희를 인솔하여 베드로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아무도 베드로의 길을 갈 수 없고, 모두 바울의 길을 가고 바울의 뒤를 따라 멸망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자기의 길을 갈 때 당시에 틀린다고 여기지 않고 정확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었고 성정 변화는 더욱 없었다. 그는 너무 자신을 믿었기에 그렇게 가면 착오가 조금도 없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믿음 가득, 자신감 가득 걸어갔지만, 최종에 가서도 철저히 깨닫지 못하였다. 심지어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여겼다. 이렇게 계속 마지막까지 걸어갔는데, 최종에 가서 징벌받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늦었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사역하는 가운데서 어느 누구나 편차가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에 과오나 편차를 발견한 후 즉시 그것을 잡고 잘 반성해야 하며, 이후에 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하고 해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섬기다가 담도 커지고 자신의 뜻도 나오고 대수로워하지도 않으며 세심하지도 않고 거들먹거린다면 위험합니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면 즉시 점검하고 늘 자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돈, 지위, 남녀관계에 생각이 좀 있으면 재빨리 억제해야 하는데, 이러면 확실히 문제가 없습니다. 간혹가다 누가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하거나 어떤 일을 잘못 했을 때 당신이 그 사람을 훈계하다가 마음이 급해 어떤 말을 거칠게 하고 화를 냈다면 이런 일은 큰 문제가 아니고 과오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급한 것이니 주의해서 극복하면 됩니다. 혹은 어떤 일에서 실수하여 하나님 집에 어느 정도 손실을 초래했다면, 그 일에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큰 손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사역을 하든 문제가 어느 정도는 생길 것입니다. 누구라도 약간의 과오가 없을 수는 없지만 큰 과오는 있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인솔자들이 한동안 지나면 모여야 하고, 책망과 훈계를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가장 좋고 가장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많이 깨닫는 것인데, 이 한 가지가 가장 관건입니다. 전력을 다해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입니다. 당신이 사역하는 한편 점차적으로 과오가 적어지고, 부단히 변화되며, 정형이 갈수록 정상이 되면 이것이 바로 가장 효과적으로 과오를 피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사역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역할수록 ‘이런 일을 나는 다 할 줄 안다. 나는 이런 경험으로 사역을 잘할 수 있다.’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고 위험한 일입니다. 이때면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진리를 대체할 수 없고 경험은 성정 변화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너무 얕게 인식하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서도 많이 실패하게 됩니다. 육체를 따르고 감정에 휘둘려서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훈계를 거치고 나서야 나중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자신의 뜻이 없어야 하고 자신을 배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데, 속으로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만족해하실까? 이번에 사역한 것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한 것인가? 이번에 사역한 것이 형제자매들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의의가 없다면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사역을 마칠 때마다 이렇게 성찰합니다. ‘만약 이 사역을 한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다음에는 하지 않겠어. 만약 이런 사역이 형제자매들에게 아무런 도움과 공급이 없다면 다음에는 하지 않겠어. 만약 이런 사역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다면 다음에는 하지 않겠어.’ 한 단계 사역을 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고,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점점 효과를 보았습니다.』

<설교 교통 (6)ㆍ하나님 말씀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 관한 설교 교통>에서 발췌

『만약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늘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맞는가? 나는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맞는가? 내가 지금 이렇게 믿으면 도대체 구원받을 수 있는가? 나의 지금 이런 인성, 이런 살아냄에 도대체 생명 성정의 변화가 있는가? 진정한 사람의 모양이 있는가? 내가 지금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는 항상 반성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항상 이렇게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반성했겠습니까? ‘나의 이런 섬김이 도대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데가 없는가? 내가 했던 말과 일이 진리에 어긋나는 데가 없는가?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생명 진입과 구원받는 것을 지체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또 어떤 사역을 해야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할 수 있고 하나님 선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참으로 진입하게 할 수 있을까?’ 저는 항상 이렇게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일단 자신이 잘못한 일이나 치우친 길을 발견하기만 하면 얼른 바로잡았습니다. 만약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멀리 빗나가고 잘못이 너무 크다면 상황이 심각하여 고치기 힘들고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지장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많은 하나님 선민에게 지장을 주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누가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반성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가치가 있겠죠? ……』

<설교 교통 (5)ㆍ무엇을 참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 하는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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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