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5 실패와 좌절을 대하는 원칙

1. 반드시 자신이 실패하고 좌절당하는 근원을 해부하고 인식해야 하며, 교만방자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 꼭 좌절당하고 실패하게 된다는 법칙을 알아야 한다.

2. 반드시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실패와 좌절이 없으면 영원히 자신을 반성할 수 없고 알 수 없다. 실패와 좌절은 전환점이다.

3. 반드시 진리를 추구할 심지가 있어야 하는데, 좌절과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한사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이다.

4. 반드시 실패에서 경험과 교훈을 총결해야 한다. 진리가 없으면 굳게 설 수 없고, 과오가 있어도 진실한 회개만 있으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너에게 정말로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최후에 자신의 뜻과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보라,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해결하려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성정 변화가 없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에서 발췌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사역도 좀 할 수 있고 자격도 좀 있는 것 같아 진리가 있는 것 같이 느끼지만, 사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지금은 도리를 좀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려 줄 수 있지만, 어느 날엔가는 다른 사람이 오히려 너를 달래야 할지 모른다. 네가 누구보다 더 비참하게 좌절당할 것이고, 누구보다 더 심하게 소극적이 될 것인데, 너는 이것을 믿느냐? 너희들은 이 일을 인정하느냐? 아마 너희들은 아직 크게 소극적이 되거나 좌절을 당한 적이 없어 자신은 그래도 비교적 굳세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없으면 자신에게 아주 분량이 있는 줄로 여기게 되지만, 어느 날엔가 드러나게 될 때에는 훌쩍거리면서 “끝장이야, 나 같은 사람은 끝장났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하나의 극단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보아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아주 열정이 컸지만,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갑자기 힘이 빠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너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무슨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느냐? 각 사람마다 연약하거나 굳센 것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안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수시로 나오게 되는데, 사람 안에는 그런 더러운 쓰레기들이 적지 않다. 또한, 끊임없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을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실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좌담 기록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

『평소에 훈계와 책망을 당하지 않고 어떠한 좌절도 당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일단 타격을 좀 받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사람의 배반 본성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어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혐오스럽고, 나중에 스스로도 몹시 혐오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신의 결말을 정한다. ‘끝장이야, 나란 사람은 끝이야. 내가 이런 일까지도 저지를 수 있게 되었으니, 끝장나지 않겠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이런 정형이 있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왜 사람은 이렇게 규정지을까?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사람이 아직도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너를 한 번 훈계하면 한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가지 작은 일을 잘못한 것 때문에 본분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작은 상황 하나 때문에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완전무결하게 추구해야만 힘이 난다고 느끼고, 자신이 너무 패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추구할 마음이 없어진다고 느끼는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다 낙심하면서 소극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아! 난 끝났어, 틀림없이 끝장이야. 구원받을 리가 없어. 설사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다고 해도 나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나란 사람은 변화될 수 없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인류가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가운데서 간혹 일부 패괴 성정이 유로된다든가, 일을 할 때 뒤섞임이 있다든가, 무책임하다든가, 충심이 없다든가, 대충대충 하여 속인다든가 하는 이런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모두 필연적인 법칙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경력하는 중에 두 번 실패하고 한 번 성공하거나, 다섯 번 실패하고 두 번 성공할지도 모른다. 거듭 이렇게 경력해야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다. 너에게 또다시 그런 일이 닥칠 때면 자신을 신중하게 대해야 하고, 자신의 발걸음을 단속해야 하며, 다그쳐 기도해야 한다. 네가 그 일을 점차적으로 이겨 낼 수 있으면, 그것은 바로 기도에 효과가 있게 된 것이다. 너는 이번에 성공하여 안에 누림이 있고, 또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더듬을 수 있으며, 성령의 함께함을 잃지 않았음을 보게 되는데, 그때에야 하나님이 너에게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실행을 통해 너는 경력하는 중에 길이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네가 많은 실패를 겪고 많은 연약을 체험하고 또 많은 경우에 소극적이 되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시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든, 연약하여 넘어지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고 모두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말하면 너를 시련하는 것인데, 네가 인식하지 못한다면 시험이 된다.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정형인데, 한 가지는 성령에게서 비롯되고 한 가지는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한 가지 정형은 성령이 너를 비추어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통회하게 하며,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게 하고 심지를 세워 하나님을 만족케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정형은 자신을 알지만 소극적이고 연약해지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사탄의 시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약 네가 이것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임을 인식하고 네가 지금 하나님께 너무 빚졌음을 인식하였다면, 이제부터는 보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마셔야지 더 이상 그렇게 타락해서는 안 된다. 늘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면서도 간절히 사모하는 심지가 있으면, 이것은 하나님의 시련이다. 고통을 받은 후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여전히 인솔하고 빛 비추어 주고 깨우쳐 주고 양육한다. 그러나 네가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소극적이 되어 아예 자포자기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탄의 시험이 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큰일이 임하든 작은 일이 임하든, 네가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며, 간증이 조금도 없고 사람이 해야 할 것과 협력해야 할 것에 협력하지 못했다면, 너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진리가 없음을 증명한다. 성령 역사가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경력하고 이렇게 많은 진리를 들은 것으로, 게다가 양심이 조금 있고 의지로 억제한다고 해도 가장 낮은 표준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 너처럼 지금 이렇게 마비되고 이렇게 연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아마 너희는 최근 2년 동안 모두 흐리멍덩하게 지나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마비되고 이렇게 무디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너 자신도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다. ‘나 같은 사람은 안 돼, 패괴되어 이런 거야, 패괴될 대로 되라지!’ 너는 스스로 자신을 단정하고 스스로 힘을 내지 않으면서 또 말한다. “이것은 저의 어려움이에요! 차라리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네가 이러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닌가? 네가 이러면 순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는 것이다. 네가 만일 양심과 이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너는 네가 해야 할 사명을 잘 완성해야 한다. 도망자가 되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함에 굳센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너무 소극적이고 너무 취약한 사람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끝까지 믿을 수 없으며, 진리를 얻어 성정이 변화되는 것에는 더욱 희망이 없다. 진리를 추구하고 심지가 있는 사람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좌담 기록ㆍ어리석은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취약하고 의지력이 없어 자그마한 일이 닥치기만 하면 훌쩍이며 울고, 연약해진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의지력과 심지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지 못했으면 자신을 증오할 줄 알아 다음에는 확실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이번에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지 못했으면 다음에 이런 일이 닥칠 때에는 단호히 육체를 배반하여 꼭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는 데에 도달한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소극적이 되면 일에서 손을 떼고, 번번이 좌절을 당하면 일어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고 범속한 사람이며, 평생 동안 진리를 얻지 못하는데 어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는가? 똑같은 일이 너에게 10번 임하는데 네가 그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범속한 사람이고 폐인이다. 영리한 사람, 참으로 소질이 있고 영이 통하는 사람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일이 10번 임하면 아마 8번은 그 일에서 얼마의 계시를 받고 교훈을 얻고 깨우침을 받아 성장할 것이다. 범속한 사람은 10번의 일에서 한 번도 생명에 도움을 얻지 못하고, 한 번도 변화를 받지 못하며, 한 번도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이러면 끝장이다. 일이 임할 때마다 좌절을 당하여 다른 사람이 그를 잡아당기고 이끌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달래야 한다. 달래지 않고 이끌지 않고 때리지 않고 잡아당기지 않으면, 끝장이고 일어나지 못한다. 일이 임할 때마다 좌절당할 위험이 있고 타락할 위험이 있는데, 그러면 끝장이 아닌가? 또 무슨 구원할 여지가 있겠는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 심지가 있는 그 부분이고, 마음속으로 진리와 정의를 지향하는 그 부분이다. 사람에게 심지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정의를 지향하고,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진리를 지향하고, 양심이 있는 그 부분인데,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이 부분을 통해 네 패괴 성정의 그 방면을 변화시킨다. 너에게 만일 이런 것이 없으면 너 같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왜 베드로를 한 알의 열매라고 하는가? 바로 그에게 가치 있는 것들이 있었고, 온전케 될 만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리를 추구함에 심지가 있고, 의지가 굳세고, 이지가 있고, 기꺼이 고통받았으며, 마음으로 진리를 사랑하였고 일이 임하면 놓치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두 장점이다. 만약 네게서 이런 장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이고 일을 망치게 된다.』

<좌담 기록ㆍ어리석은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에서 발췌

『너희에게 지금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기만 하면 이전의 일을 하나님이 기억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마땅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나는 성정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지 더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되고 더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사람이 가치 있는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희망이 있는지의 관건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사람이 설교를 들은 후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네가 후회하기만 하고 일해야 할 때에 또 그렇게 하고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고 도리어 본래보다 더욱 심해진다면 너 같은 사람은 희망이 없으며 반드시 폐기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수록, 자신에 대해 많이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능력이 있게 된다. 네가 자신의 본성에 대해 투철히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수 있으며, 경험을 총결한 후에는 더 이상 이런 일에서 실패하지 않게 된다. 사실, 사람마다 흠이 조금씩 있는데, 단지 추궁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심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며,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몰래 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알고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흠이 있고, 모두가 패괴 성정을 조금 드러내는데, 교만하거나 독선적이라든가, 약간의 과오와 잘못이 있다든가, 약간의 과실이나 작은 패역이 있다든가, 이런 일은 모두 상황에 비추어 용서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패괴된 사람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후에 너는 마땅히 피해야 한다. 사람이 늘 이전의 일에 시달리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두려운 것은 사람이 깨달은 후에도 변화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고 너에게 알려 주어도 계속 한다면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유로했을지라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거나 중간에 많은 과오가 있고 하나님을 대적한 적도 있었을지라도,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거나 원망했거나 저촉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언젠가 변화될 수 있는지만 본다. 성경에 그런 예가 하나 있는데, 탕자가 돌아온 이야기이다. 왜 그런 비유를 하였겠는가? 바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사람에게 변화될 기회도 준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해 주고 사람의 연약을 잘 알고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이 좌절당할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사람이 어릴 때에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어릴 때 체질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튼튼해도 걸음마를 배울 때에 엎어질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으며 부딪칠 때도 있고 걸릴 때도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하나님도 그렇게 각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각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알고 있고 각 사람의 필요도 알고 있으며 더욱이 각 사람이 성정 변화 이 진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날 것인지, 어떤 연약함이 있을 것인지, 어떤 실패가 있을 것인지도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한다고 말한다. 네가 어떻게 연약하든지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성정 변화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 우리에게 성정 변화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무엇이 성정 변화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두 번째 방면,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해 대적과 거역이 있으면 성찰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대적하였는지, 왜 하나님을 거역하였는지, 어떤 일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성찰해야 합니다. 성찰하고 인식하고 나서는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이 한 조목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패괴 행위를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의 패괴 실질을 인식할 수가 없으며, 자신의 패괴 실질을 인식할 수 없으면 진실한 회개가 있을 리도 없습니다. 세 번째 방면은 더욱 관건입니다. 바로 자신이 도대체 하나님과 어떤 간격이 있는지, 어떤 논쟁이 있는지,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는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심각한 과오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하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에 하나님을 논단한 적이 있고 하나님을 모독한 적이 있지만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으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제가 패괴되었습니다, 제가 패역합니다……”라고 대강대강 말하고 지나가면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간격, 하나님과의 논쟁이 해결되었습니까?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습니까? 그러면 지금 하나님과 교통하는 관계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에게 역사하시지 않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과오, 거역, 대적 혹은 과거에 하나님을 모독했던 것을 반드시 철저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 일에 있어서 말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자신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일에서 하나님이 양해하시고 용서하시고 사해 주셨다고 마음속에 실증이 있으면 그 후에 계속해서 앞을 향해 추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교통 (5)ㆍ진리를 추구하는 가치와 의의>에서 발췌

『과오가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매우 좋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반드시 과오가 있게 된 후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겪은 후에야 진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때에 사람은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에 대해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대조하게 되는데, 깊이 생각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그렇구나.’ 한 번으로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철저히 인식하고 머리를 숙이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게 됩니다. 어떻게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깨달아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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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