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4 과오를 대하는 원칙

1. 사람은 과오가 있다고 해서 자포자기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이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알아 진실로 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과오를 발견하면 반드시 반성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여 과오의 실질과 근원을 인식해야 함으로 진실한 회개가 생겨야 구원받을 수 있다.

3. 과오의 실질과 근원을 잡아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진리를 실행함으로 과오를 대체하고, 옛 병이 재발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4. 이전의 과오에 속박받지 말고, 오직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한 회개가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최대한 다 구원해 내고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패역과 대적을 드러낼 것이고, 도성육신(역주: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 때문에 그 사람들을 일일이 징벌하지 않고, 극도로 패괴된 구할 수 없는 그 사람들만 내버려 그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주며, 일부 사람은 그 육체를 없애 버린다. 그 외의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따르면서 훈계와 책망을 경력(역주: 체험)하게 된다. 만일 따르는 기간에 거듭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한 갈수록 타락해진다면,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를 이미 잃은 것이다. 말씀의 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구원함에 있어 모두 최대한 관대해 준다. 즉, 사람을 최대한 관용해 주는 것이다. 사람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기만 하면, 사람이 회개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한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격살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고 되도록 구원하려고 하였다. 만일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을 여지가 없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징벌하지 않는 까닭은 구원할 만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인도할 뿐이지 형벌의 채찍으로 격살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얼마나 큰 환경이 임하든지, 어떤 어려움이 임하든지, 우리가 어떻게 연약하고 어떻게 소극적이든지, 우리는 성정 변화 이 방면의 일에 대해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을 잃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주었는데, 사람은 받아들일 심지가 있어야 하고 의지력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유로(역주: 흘러나옴)했을지라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거나 중간에 많은 과오가 있고 하나님을 대적한 적도 있었을지라도,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거나 원망했거나 저촉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언젠가 변화될 수 있는지만 본다.』

<좌담 기록ㆍ무엇이 성정 변화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너는 자신의 과오를 미숙하거나 우매한 사람의 실수라고만 보지 말고,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을 소질이 낮아 실행하기 어렵다는 구실로 삼지 말며, 더욱이 너의 모든 행위의 과오를 단지 능숙하지 못한 행실로 보지 말라. 만약 네가 자신을 아주 잘 용서하고 아주 너그럽게 대한다면, 나는 너를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는 비겁한 자라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너의 과오는 영원히 끊임없이 너를 얽매어 영원히 진리의 요구대로 할 수 없게 하고, 영원히 사탄의 충실한 반려자가 되게 한다. 나는 거듭 이렇게 충고한다. 너의 귀숙만 중요시하면서 너에게 숨겨진 과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과오를 중요시해야지 단지 귀숙을 위해 너의 모든 과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첫째, 너는 너의 모든 과오를 한번 성찰하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너의 행위와 생각을 한번 성찰하여라.

……

둘째, 너의 과오와 패역 하나하나를 모두 상응한 진리를 찾아서 해결하고, 그다음 진리를 실행함으로 너의 과오 행위와 너의 패역한 생각과 행위를 대체하여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너희에게 지금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기만 하면 이전의 일을 하나님이 기억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마땅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나는 성정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지 더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되고 더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사람이 가치 있는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희망이 있는지의 관건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사람이 설교를 들은 후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네가 후회하기만 하고 일해야 할 때에 또 그렇게 하고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에 대해 조금도 인식이 없고 도리어 본래보다 더욱 심해진다면 너 같은 사람은 희망이 없으며 반드시 폐기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수록, 자신에 대해 많이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능력이 있게 된다. 네가 자신의 본성에 대해 투철히 알수록 더욱 자신을 장악할 수 있으며, 경험을 총결한 후에는 더 이상 이런 일에서 실패하지 않게 된다. 사실, 사람마다 흠이 조금씩 있는데, 단지 추궁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심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며,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몰래 할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알고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 흠이 있고, 모두가 패괴 성정을 조금 드러내는데, 교만하거나 독선적이라든가, 약간의 과오와 잘못이 있다든가, 약간의 과실이나 작은 패역이 있다든가, 이런 일은 모두 상황에 비추어 용서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패괴된 사람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후에 너는 마땅히 피해야 한다. 사람이 늘 이전의 일에 시달리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두려운 것은 사람이 깨달은 후에도 변화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적합하지 않다고 너에게 알려 주어도 계속 한다면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자신에게서 사탄의 표현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너의 이전 행실에는 하나님의 현재 요구와 배치되는 것이 많이 있었는데, 너는 지금 그것을 배반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고 새사람의 새 생활이 있게 된다. 이전의 과오를 따지지 않고,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후회하지 않으며, 일어나 하나님과 협력하여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할 수 있다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이다.

……하나님이 말씀할 때마다 네가 그 말씀을 보고 깨달았으면 실행하여라. 네가 이전에 어떻게 했든지, 혹시 이전에 육체의 연약이 있고 거역과 대적이 있었을지라도 그런 것은 큰일이 아니고, 오늘 너의 생명이 자라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 네가 오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될 수 있으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매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 너에게 변화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너의 생활에 전환점이 있음을 알게 할 수 있다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이고 올바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과오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네가 깨닫고 인식한 다음 다시는 거역하지 않고 다시는 대적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여전히 너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에서 발췌

『네가 매우 진지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너의 과오는 반드시 용서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고, 또한 네가 거역하는 차수도 반드시 점점 적어질 것이다. 네가 진리를 실행하기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의 너의 과오는 반드시 점점 많아질 것이고, 네가 거역하는 차수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것이 극에 달할 때에는 또한 네가 철저히 멸망될 때인데, 그때는 네가 복받으려는 아름다운 꿈도 깨질 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이전에 하나님을 어떻게 대적했든지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닫고 또한 힘써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의 이전의 죄를 단번에 도말한다. 오직 사람이 진리를 찾고 구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행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 또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의롭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일부 사람들은 과오가 좀 있으면 ‘하나님께 격살당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온 것은 사람을 격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 잘못이 없겠느냐? 만일 모두 격살한다면 구원이라 하겠느냐? 사람의 어떤 과오는 고의적이고 어떤 과오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면 변화될 수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너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격살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이렇게 구원하겠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자신도 어쩔 수 없든 또는 패역 본성이 나왔든, 기억하여라. 일이 지난 후에 빨리 각성하여라! 어떤 상황이 오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므로 그는 구원할 사람을 마음대로 격살할 리가 없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될 수 있든지, 설사 하나님이 마지막에 너를 격살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는 것은 확실히 공의로운데, 때가 되면 그래도 네가 알도록 할 것이다. 현재 너의 임무는 오로지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본분을 하여라. 이러면 틀림이 없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확실히 공의로운 것이다. 이것을 너는 의심해서는 안 되고 근심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공의를 설사 지금 네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진심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정부 관원이나 마왕과 같지 않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자세히 되새겨 본다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한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사역인 이상, 사람이 유로하지 않는다면 사역할 수 없고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유로한 다음에도 네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골칫거리이다. 그러면 행정을 거스르게 되고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어서 하나님이 서로 다른 정도로 보응을 내릴 것이고, 사람도 자신의 과오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다가 방탕하면 하나님이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거기에 책망과 훈계를 더하며, 네가 좋게 변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변화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구원 사역의 참뜻은 곧 이런 과정에서 표현되는데, 이것이 중요한 요점이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간에 사람에게서 본성이 유로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과오도 좀 있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하여 도달하는 효과도 어느 정도 있게 된다. 만약 하나님이 효과라는 일면을 보지 않고 사람의 본성이 유로되는 그 일면만 본다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을 구원하는 효과는 주로 사람이 본분을 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방면에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둔 이 방면의 성과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고, 또 과오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도 보아 이 두 방면을 종합하여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데, 사람을 남겨둬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패괴되어 이전에는 전혀 하나님 집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지도 않으면서 전적으로 육체를 위해 살았다. 하지만 지금 본분하는 것을 보면 힘이 있고 하나님에게 일편단심이다. 이 방면에서 보면 변화가 보이지 않느냐? 이것도 변화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이다. ……하지만 너에게 아무리 변화가 있다 해도 너의 본성이 단번에 다 변화될 리는 없으니, 과오를 조금도 유로하지 않을 리도 없다. 그러나 사람의 진입이 규칙적이 된다면, 설사 패역이 어느 정도 있을지라도 그 당시에 의식할 수 있다. 그렇게 의식하고 재빨리 돌이키게 되면, 정형이 갈수록 좋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패역이 한두 번은 있을 수 있지만 재삼재사는 없게 된다. 이것이 변화이다. 그 사람이 어느 방면에서 변화되었다고 하여 과오가 조금도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변화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겪고 난 뒤에, 실행해 낼 수 있는 진리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님이 요구한 것을 부분적으로 실행해 낼 수 있게 되고, 과오가 갈수록 적어지고, 패역하는 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하였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에게서 효과에 도달한 표현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것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공의롭고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너는 그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주저 말고 담대하게 네가 행해야 할 진리를 실행하기만 하여라. 아무 염려도 하지 말라. 하나님은 너를 부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표현으로 결말을 정하는 데에 내포된 뜻>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사람의 어떤 과오는 용서할 만한 것이고 어떤 과오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겠습니까? 이 과오가 생긴 배경과 당신이 도대체 깨달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알면서 일부러 범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 한 것이라면 한 뒤에 책망하고 훈계해야 합니다. 당신이 진리를 깨달은 후 변화되면 용서합니다. 훈계와 책망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거듭 범한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심에 역시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사역은 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과오가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하지만 경중 정도가 다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과오를 범하고 투철히 인식한 후 변화되어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 번 뱀에게 물리면 3년 동안 풀밭에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는 하지 않고, 나중에는 이런 일에서 과오가 없게 됩니다. 이런 일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습니다.

……사역하는 가운데서 어느 누구나 편차가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에 과오나 편차를 발견한 후 즉시 그것을 잡고 잘 반성해야 하며, 이후에 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하고 해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섬기다가 담도 커지고 자신의 뜻도 나오고 대수로워하지도 않으며 세심하지도 않고 거들먹거린다면 위험합니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면 즉시 점검하고 늘 자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돈, 지위, 남녀관계에 생각이 좀 있으면 재빨리 억제해야 하는데, 이러면 확실히 문제가 없습니다. 간혹가다 누가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하거나 어떤 일을 잘못 했을 때 당신이 그 사람을 훈계하다가 마음이 급해 어떤 말을 거칠게 하고 화를 냈다면 이런 일은 큰 문제가 아니고 과오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급한 것이니 주의해서 극복하면 됩니다. 혹은 어떤 일에서 실수하여 하나님 집에 어느 정도 손실을 초래했다면, 그 일에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큰 손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사역을 하든 문제가 어느 정도는 생길 것입니다. 누구라도 약간의 과오가 없을 수는 없지만 큰 과오는 있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인솔자들이 한동안 지나면 모여야 하고, 책망과 훈계를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가장 좋고 가장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많이 깨닫는 것인데, 이 한 가지가 가장 관건입니다. 전력을 다해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적극적인 방면의 진입입니다. 당신이 사역하는 한편 점차적으로 과오가 적어지고, 부단히 변화되며, 정형이 갈수록 정상이 되면 이것이 바로 가장 효과적으로 과오를 피하는 방법입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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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③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⑤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