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31 소극적인 것을 해결하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 말씀 진리에 근거해 모든 문제를 대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사람에 대해 모두 구원이고 사랑임을 인식해야 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어야 한다.

2. 반드시 소극적인 정형의 실질과 근원을 인식해야 한다. 소극적인 정형은 진리에 대해 거절하고 대항하는 것이며, 소극적이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3. 반드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더듬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달아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4. 사탄의 성정 가운데서 살면 너무나 위험하다. 수시로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에 반드시 진리를 찾고 구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진리 실제에 점유되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다종다양하다. 그러므로 매사에서 너로 하여금 온전케 되게 할 수 있는데, 적극적인 방면에서만이 아니라 소극적인 방면에서도 너를 온전케 하여 너로 더 풍부해지게 할 수 있다. ……

……너희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모든 일에서 경력(역주: 체험)할 줄 알아야 하고, 임하는 일에서 모두 깨우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한 가지 일이 임할 때마다 좋은 일에서든 나쁜 일에서든 유익을 얻어야지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문제를 보아야지, 사람의 각도에 서서 분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경력의 편차이다). 만일 이 방법에 따라 경력한다면 너의 마음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부담에 점유되고, 시시로 하나님의 얼굴빛 속에서 살게 될 것이며, 실행할 때 쉽게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큰 전망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에서 발췌

『사람 속에 늘 이런 이상(異象)이 존재한다면, 속이 환해지고 편안하게 되며 이런 일에 대해 확정할 수 있게 된다.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해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부러 저를 흉보시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저를 모욕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말씀하시는 것이 엄하고 그 말씀이 마음을 찌르지만, 그것은 다 저를 위한 것입니다. 비록 말씀이 그렇게 엄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구원하고 계시고, 여전히 저의 연약을 생각해 주시며, 사실로 임하게 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구원이심을 믿습니다.” 너에게 참으로 이런 이상이 있다면 달아날 정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양심에 찔리는 데가 있고 양심이 가책을 받아 이렇게 하나님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 자신이 얻은 그렇게 많은 은혜를 생각해 보아라,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 헛되이 들었을 리가 있겠는가? 누가 도망가도 너는 도망가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믿지 않더라도 너는 믿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린다 해도 너는 하나님을 옹호해야 하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훼방해도 너는 하나님을 훼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너에게 아무리 잘 대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너는 하나님께 죄송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그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고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고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에 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데, 이미 엄청난 굴욕을 당하였다. 그분은 거룩하고 더러움이 조금도 없는데도, 더러운 곳에 와서 얼마나 큰 굴욕을 참아야 하는가? 너희에게 역사하는 것도 여전히 너희를 위한 것이다. 네가 만일 양심을 어기면서 그분을 대한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죽는 것만 못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모압 후대를 구원하는 의의>에서 발췌

『만일 네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육체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매우 적합하고 매우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며, 너의 패역을 저주하고 너의 불의를 심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를 채찍질하고 징계하며 환경을 일으켜 너를 연마해서라도 너를 하나님 앞으로 오게 하는데, 너는 항상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생각되어 별로 큰 고통이 없는 것처럼 느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네가 만일 육체의 연약함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한다면, 너는 항상 고통스럽고 슬프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사역에 대해서도 모호해지는데, 마치 하나님이 사람의 연약함을 전혀 체휼하지 않고 사람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 같다고 느끼고, 늘 홀로 고독하다고 느끼며,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면 너는 불평을 하게 된다. 네가 이렇게 육체의 연약함을 헤아릴수록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하며, 속에는 패역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를 배반해야지 그것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남편, 아내, 자녀, 전망, 혼인, 가정, 이런 것이 다 없어야 한다! “내 마음속엔 오직 하나님뿐이야. 나는 마음껏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릴 거야. 육체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 너에게 이런 심지(心志)가 있으면 된다. 늘 이런 심지가 있으면,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조금만 힘쓰고 노력해도 너는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너희는 보편적으로 모두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즉 게으르고 진보하기를 바라지 않고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또 원망하기까지 하며, 하나님 역사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너무 힘들어한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싫어하는데, 최종에는 모두 도태될 것이다. 무릇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될 자가 하나도 없고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다. 사람이 만약 사탄 세력에 반항할 심지가 조금도 없다면 구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7)>에서 발췌

『사람의 생각, 사치한 욕망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전혀 순복의 실질이 없다. 이것은 또한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은 100% 다 배반이다.”라는 이 말씀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너희의 어떤 일, 어떤 문제, 어떤 마음, 어떤 반응을 해부하든, 네가 소극적으로 대항하든, 원망하든, 전혀 관심이 없든 아니면 침묵하든, 그 안에는 모두 대적이 있고 그것은 모두 배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부하면 정확하지 않으냐? 내가 해부하지 않는다면 일부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꽤 괜찮은 셈이지. 몇 년 전에 내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틀림없이 원망했을 것이고 믿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원망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원망하지는 않지만 너에게 인식이 있는 것이냐? 네게 있는 그 정도의 인식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 너의 그 정도의 인식에 진리가 있느냐? 너의 인식이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하나님께 인정받았느냐? 너에게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질이 있느냐? 너는 기꺼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냐? 만약 아니라면 너는 무조건 하나님과 저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한창 너를 쓰고 있기 때문에 네가 기분이 좋고 정서가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어느 날 너를 집으로 돌려보내어 기분이 가라앉아 안이 캄캄하게 될 때면 네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분량이 작은 자, 경력 시간이 짧은 자들은 돌아서서 세상으로 도망칠 것이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어쨌든 그것은 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배치한 환경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의 본성이 곳곳에서 유로(역주: 흘러나옴)되고 있는데, 만약 해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신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지 다 배반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의 반응은 싫어하거나 원망하고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이다. 네가 “사람은 속으로 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배반입니다.”라고 말하는데, 단지 이렇게만 말해도 안 된다. 네가 실질을 깊이 해부하지 않았다. 너희는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배반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인 것만이 아니다. 너희가 해부한 것은 어떠하냐? 너희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너에게 그런 정형이 있어도 너 자신은 웬 영문인지를 모른다. 너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배반이 아닌지, 네게 순복이 있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 너희는 자신의 본성을 투철히 해부하지 못한다.』

<좌담 기록ㆍ시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인가>에서 발췌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해야 한다. 만약 수동적으로 기다린다면 여전히 소극적인 것이다. 나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시시로 나와 교통하고 나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급히 이루려고 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앞에서 나를 의지하는지, 나에게 의지할 믿음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너는 늘 나를 가까이하고 모든 일을 나의 손에 맡겨야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한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더듬어 낸다면 참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고, 또한 참으로 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네 속이 무척 환하고 편안해질 것인데, 의지할 데가 있고, 능력과 믿음도 있고, 앞길도 생기게 되며, 어떤 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9편 말씀>에서 발췌

『성령은 각 사람에게서 가야 할 길이 있고 온전케 할 기회가 있다. 너로 소극적인 것을 통해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하고, 또 소극적인 것을 벗어 버리는 것을 통해 실행의 길을 찾아내게 한다. 이것은 너에 대해 다 온전케 하는 것이다. 또 일부 적극적인 것을 통해 네 속에서 계속 인도하고 빛 비춰 주어 너로 적극적으로 기능을 하게 하고 견식과 분별이 늘게 한다. 네가 상황이 좋을 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원하고, 특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원할 때는 설교를 들어도 자신의 정형에 결부시킬 수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네 안에서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어 너로 적극적인 방면에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하는데, 이것은 적극적인 방면에서 너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정형에서 네가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또 너에게 빛 비춰 주어 실행의 길을 찾게 한다. 거기에서 나오면 바로 소극적인 방면에서 온전케 함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나 소극적인 방면에서나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경력(역주: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장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하였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가운데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네가 많은 실패를 겪고 많은 연약을 체험하고 또 많은 경우에 소극적이 되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시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든, 연약하여 넘어지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고 모두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말하면 너를 시련하는 것인데, 네가 인식하지 못한다면 시험이 된다.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은 두 가지 정형인데, 한 가지는 성령에게서 비롯되고 한 가지는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한 가지 정형은 성령이 너를 비추어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통회하게 하며,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사랑이 있게 하고 심지를 세워 하나님을 만족케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정형은 자신을 알지만 소극적이고 연약해지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사탄의 시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약 네가 이것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임을 인식하고 네가 지금 하나님께 너무 빚졌음을 인식하였다면, 이제부터는 보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마셔야지 더 이상 그렇게 타락해서는 안 된다. 늘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면서도 간절히 사모하는 심지가 있으면, 이것은 하나님의 시련이다. 고통을 받은 후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여전히 인솔하고 빛 비추어 주고 깨우쳐 주고 양육한다. 그러나 네가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소극적이 되어 아예 자포자기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탄의 시험이 임한 것이다. 욥이 시련을 겪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한 것이고,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학대하고 시련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욥을 시련하였을지라도 실제로는 사탄이 욥에게 임하였다. 사탄에게 있어서는 욥을 시험한 것이지만 욥은 하나님의 편에 섰다. 욥이 만일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았다면, 그는 시험에 빠졌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소극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면 자신을 망칠 것이고, 네 생명을 지체하게 될 것이다. 너는 반드시 이런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정형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기의 연약한 점을 극복하여 진리를 얻고 진리를 살아내야 한다. 너의 연약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고, 너의 결함도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니라, 너의 이런 미지근한 마음과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는 마음이 너의 가장 큰 어려움이고 가장 큰 결함이다. 너희 각 사람에게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곧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나약한 심리이다. 이것이야말로 너희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가장 큰 원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지금 소극적인 방면의 것들은 중요시하지 말고, 무릇 너를 소극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내려놓고 상관하지 말라. 일을 처리할 때에는 찾고 모색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을 가져라. 너희가 자신에게 연약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도 그것의 통제를 받지 말고 해야 할 기능을 다하여라. 이것이 바로 적극적으로 진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종교 관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도할 수 있고 순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고 찬송할 수 있으며…… 어쨌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으면, 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 발휘해야지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말라. 본분을 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첫째이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각기 기능을 다함에 관하여>에서 발췌

『만일 너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된다면, 외부의 어떠한 일에도 방해받지 않고, 어떠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도 점유되지 않는다. 이 방면에서 진입이 있다면, 소극적인 정형이나 사람의 관념, 처세 철학, 사람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 여러 가지 생각 등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자연히 없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으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마음이 늘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점유되면 소극적인 것들은 부지중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과 긍정적인 것이 너를 점유하면 낡은 것과 부정적인 것은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너는 그런 소극적인 것들을 중요시하지 말라. 그런 것은 너 자신이 애써 억제할 필요가 없다. 너는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누려야 하며, 하나님을 많이 찬송하고 찬미해야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기회가 있게 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온전케 하려 하고 너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기에 하나님의 영이 너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네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을 만족케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데에 관하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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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