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9 시련과 연단을 겪는 원칙

1. 무릇 시련과 연단은 다 하나님의 안배이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과 요구가 그중에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2. 시련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더듬으면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한다.

3. 반드시 진리를 찾고 구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간증을 서야 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관건이며, 설령 자신을 저주할지라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4. 시련과 연단을 겪음에 있어 반드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효과에 도달해야만 진실한 감사와 찬미가 우러나올 수 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훗날의 복을 얻는 것인데,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사람에게는 다 이런 속셈과 바람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은 반드시 시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사람 속에 있는 어떤 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것으로 연단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너에게 환경을 배치해 주어 네가 어쩔 수 없이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여 나중에는 죽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수년간의 연단이 없고 어느 정도의 고난이 없다면, 사상 면에서, 심령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아직도 사탄의 통제를 받고, 어떤 방면에 아직도 자신의 욕망이 있고 아직도 자신의 요구가 있다면, 그 방면에서 고통받아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 공과를 배울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속에서 진리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일한 환경에서, 순탄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좌담 기록ㆍ시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인가>에서 발췌

『‘효력자’의 때,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이 되고 고통스러워 소리내어 울었고, 심지어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왜 효력자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못 받아들이겠어!’라고 여겼다. 네가 못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에는 사람을 이해해 주고, 간파하고, 사람을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고 거짓으로 하지 않으며 공허하지 않고 진실하다. 네가 어느 방면에 부족함이 있고 또 우매 무지하면, 하나님은 너를 불쌍히 여기고 또 너를 사랑하며 계속 너를 감동시킨다. 효력자가 되는 것을 네가 아무리 내키지 않아 하고 아무리 원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시종일관 말씀하면서 몇 개월 동안의 연단으로 사람의 패괴를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신의 추태를 알게 하였다. 그 3개월 동안 사랑이 있지 않았느냐? 만약 하나님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너를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효력자’ 때의 너의 그 꼬락서니를 봐서는 일찌감치 너를 차버렸을 것이다. 효력자가 된다니 그렇게 나자빠진단 말이냐? 하나님과 함께 고통받게 되면 너는 나자빠지고 복을 받게 되면 기뻐서 펄쩍 뛴다. 하나님에게 사랑이 없고 미움만 있다면 사람에게 있는 이런 패괴된 반응을 봤을 때, 하나님 편에서 사람은 도태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사람을 연단한 3개월이라는 시간은 조금도 길지 않다. 왜 조금도 길지 않다고 말할까? 그것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조금 더 길게 하면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늘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통한다고 해도 그런 것만 누리면 틀림없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당겨 자민으로 전환시켰는데, 거기에도 사랑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과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사람을 사로잡는데, 그것 역시 사랑의 표현이다. 그 시간 속에서도 너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시간을 단 하루도 늦추지 않고, 한 달도 늦추지 않으며, 어느 날에 이르러 말씀해야 하면 곧바로 말씀한다. 만약 몇 개월 정도의 시간만큼 더 지연시킨다면 어떤 사람들은 점차 물러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정형에 따라 사역하면서 전혀 지연시키거나 지체시키지 않으며 각 사람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이상, 끝까지 책임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떠나려고 했을 때, 성령이 특별히 감동시키고 만류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만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말 너무나 사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일부 물러간 사람들을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되면 그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 그런 사람을 철저히 상관하지 않는다. 역사 절차나 시간 면에서, 어느 절차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하는지, 어느 절차에서 말씀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어느 절차에서 어떤 어조와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지, 또 어떤 진리를 적용시켜 너를 깨닫게 해야 하는지, 여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고심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밀한 안배와 주밀한 계획이다. 하나님은 오늘까지 늘 자신의 지혜로 인류를 인도해 주고 공급해 주고 보살펴 주면서 조금씩 사람을 지금의 이 정도까지 양성시키며 이끌어 왔다. 무릇 경력(역주: 체험)해 온 사람이라면 지금은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다.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은 다 기억에 생생한데, 그 속의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참으로 깊이 사랑하지만, 사람은 영원토록 그것을 다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랑이 너무나 깊어 말로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고 시간 면으로만 보아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시간 면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데, 작은 일 하나에서도 하나님은 아주 정밀하게 고려하여 시간을 더 늘리지 않는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조금도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좌담 기록ㆍ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각 단계 사역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길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사람에게 연단 속에서 믿음이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께 온전케 될 믿음이 있게 하며, 하나님의 연단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하고 하나님의 훈계ㆍ책망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역사하여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는 것은 사람에게 협력하게 하고 실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고 음성을 발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네가 원래의 것을 지키면서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으면, 자신의 본분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너희는 모두 하나님이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시련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자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누려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도 네가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누릴 때 늘 하나님 앞에서 찾고 구하면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여 낙담하지 않게 되고 쓸쓸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예배할 때는 힘이 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캄캄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하는 것마저도 싫어한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도 자신의 본분을 해야 하며, 기도해야 할 때는 여전히 기도하고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는 여전히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을 다 해내고 원래의 이상(異象)을 굳게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받아들이기 쉽다. 만약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사역할 때,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곤란하게 된다.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고 예배에서 설교하면 아주 흥미 있게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고 후퇴하는데, 이들은 어떤 사람에 속하는가? 이들은 대세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입장이 없고 간증이 없으며 이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다 이러하다. 만약 늘 이렇게 나가다가 언젠가 큰 시련이 임한다면 너는 징벌 속에 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입장을 가장 중요시한다. 네가 하나님이 하는 각 단계 사역마다 의심하지 않고, 사람의 본분을 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실행하라는 것을 지키고, 즉 하나님의 부탁을 기억하고,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하나님의 부탁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입장을 굳게 지키고 간증을 굳게 지키면, 한 단계씩 승리하여 최종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이기는 자가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시련 속에서 네가 비록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임을 알고 있다. 네가 그를 진심으로 추구하면 그는 언제나 너를 떠나지 않고 나중에 너를 반드시 온전케 할 것이다. 그는 사람을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실제 경력 중에서 너는 우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네가 진입해야 할 것을 찾고 너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너의 실제 경력과 진입에 결부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부분을 찾아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한 방면이지만, 교회 생활도 중단해서는 안 되고 정상적인 영적 생활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지금 모든 정형을 다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하며,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지 너의 영적 생활을 정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시련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잃지 않고, 기도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를 시련할 때에도 여전히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어야 한다. ……

……

……연단할 때 너는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할 줄 알아야 하며, 배워야 할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자신의 정형에 비춰 볼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너무 많음을 발견해야 한다. 연단 속에서, 진실하게 추구할수록 더욱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 있다. 연단 속에서 많은 일이 너에게 임하면, 네가 꿰뚫어 보지 못하고, 원망하며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그제야 자신에게 패괴 성정이 너무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시련을 경력하는 중에 사람이 연약하든, 내면이 소극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 실행할 길에 대해 별로 명확하지 못하든, 그런 것은 다 정상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소유한 것들은 다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분도 역시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하든지 그는 그렇게 인정하였다. 네가 경력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가 그렇게 하여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고 또한 사람의 심지이다. 그는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게 하는데,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너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육안에 보이지 않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버리지 못할 때에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깨닫지 못할 때에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이 입장을 확고히 하고 이 간증을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실망한다면 너는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력하겠는가? 그러므로 네가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경력 중에서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며,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믿음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연단이 있어야 믿음이 있게 되고, 연단이 없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믿음이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바로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아 사람이 도달하지 못할 때, 사람이 갖춰야 할 진실한 믿음과 사람에게 있어야 할 성실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믿음이다. 사람은 고통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고, 연단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있게 되면 따라서 연단도 있게 되는데, 이 둘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생명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너에게 전개되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대로 행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네가 연단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의혹이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네가 여전히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

……고난이 닥칠 때, 네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이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네가 하나님의 지배대로 하고 차라리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임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릴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우선 너는 이런 고난을 받으려는 심지와 진실한 믿음을 갖춰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려는 심지를 갖춰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하고, 또한 자신을 통회하는 마음을 갖춰야 하며, 이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만족케 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자신을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너는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온전케 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연단 사역은 주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한다. 나중에는 네가 떠나려고 해도 떠나지 못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 가닥의 희망조차 없을 때도 여전히 믿음이 있게 되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는 희망이 조금도 없게 된다. 그때에야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아직 모진 고초를 당하는 그 지경에 이르지 않았고 죽음의 맛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이 연단은 끝나지 않는다. 효력자 단계에서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도록 연단하지는 않았다. 욥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도록 연단을 겪어 의지할 데가 조금도 없었다. 반드시 사람을 희망이 조금도 없고 의지할 데가 조금도 없는 그 지경까지 연단해야 한다. 그럴 때야말로 진실한 연단이다. 효력자 때에 너의 마음은 늘 하나님 앞에 안정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든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든지, 네가 늘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면서 길 끝까지 왔기에 너는 모든 것을 다 깨닫게 되었다. 너는 욥의 시련을 경력하는 동시에 베드로의 시련도 경력하는 것이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간증을 굳게 섰기에 마지막에는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으며, 그는 간증을 굳게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있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더러운 땅을 향해서는 숨고, 성결한 나라를 향해서는 나타난다”고 말하는가? 다시 말하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간증을 굳게 서야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지, 간증을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연단 속에서 물러나거나 연단 중에 원망하여 간증을 서지 못해 사탄이 너를 치소하게 된다면, 너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얻지 못한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하고 절대 불평하지 않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면 간증을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다른 요구가 없고 관념도 없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지금은 연단을 좀 받지만 후에는 너로 하여금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나중에 너는 “하나님의 행사는 참 너무나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인데, 그것은 네 마음속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의 연단(효력자, 형벌시대)을 겪고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말하였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가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아주 의의 있고 아주 가치 있으며 사람이 아주 귀하게 여길 만한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을 네가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내가 한 일이 가치가 있겠는가? 반드시 너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묘하구나,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정말 사랑스럽구나!”라는 이런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한동안 경력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네가 너에게 한 역사를 이미 얻었음을 증명한다. 어느 날 네가 외국에 가서 전도할 때, 다른 사람이 너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데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너는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도 기묘해요!”라고 말할 수 있다. 네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는 네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행사는 정말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간증이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가 정말로 지혜롭고, 너에게 한 일이 실로 너를 심복구복하게 하여 너의 마음을 정복하였고, 하나님은 사람이 너무나 사랑할 만하기에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여라. 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데, 이런 것은 다 간증이다. 네가 만약 이 간증을 드높게 하여 사람으로 다 감동받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다면, 너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간증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행사가 너를 통해 발표될 수 있어, 너의 발표를 통해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행사를 찾을 수 있고, 모두 하나님을 경력할 줄 알게 되며, 어떤 상황을 겪든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증이라야 진실한 간증이다. 지금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너는 마땅히 하나님의 행사는 아주 가치 있고 사람이 아주 귀하게 여길 만하며, 하나님은 아주 보배롭고 아주 풍부하며, 하나님은 말씀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마음을 연단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누림이 있게 할 수도 있으며,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사람을 정복할 수 있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하며, 경력 중에서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게 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지금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가? 너는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이런 말을 해낼 수 있는가? 언제 네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그때는 너에게 간증이 있을 것이다. 네가 이 정도까지 경력하게 되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자격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정도까지 경력하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차이가 매우 크다.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연약이 있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연단 후에는 네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너무나 지혜롭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정말 이 말의 실제 인식을 얻을 수 있다면 보배로운 것이고, 너의 경력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의 정형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해 인식도 순복도 있게 하고, 사랑도 간증도 있게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ㆍ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연단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心志)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에게 연단의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니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정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의 성품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모두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만일 고통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한다.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으로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그에 따라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사람의 사랑은 오직 연단 속에서만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지금 정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시작한다.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폭로, 심판, 형벌을 거치고 하나님 말씀의 시련과 연단(효력자와 같은 시련)을 겪어야 하며, 또 반드시 죽음의 시련도 이겨 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신을 배반하며, 그에 따라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성취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 대해 사람이 함부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은 다만 생명 진입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장 근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 역사의 절차에 관하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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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⑤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⑥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