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8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모든 심판, 형벌과 책망, 훈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반드시 모든 책망과 훈계를 정확히 대해야 한다.

2. 책망과 훈계가 임하면 그것이 사실에 얼마나 부합되든지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하고, 또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구하여 진실로 자신을 알 수 있어야 한다.

3. 무릇 사람의 패괴 성정을 겨냥한 책망과 훈계는 다 사람의 패괴를 치료하는 양약이니, 반드시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유익하다.

4. 책망과 훈계가 임할 때는 반드시 진리를 찾고 구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알며 진실로 회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만약 네가 이런 진리를 중히 여기지 않고 늘 이런 진리를 피하려고 하고, 늘 이런 진리 외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면, 나는 너를 죄악이 극에 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거나 구하지 않고, 너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는 도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심판을 도피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너를 희고 큰 보좌 앞에서 도주하는 꼭두각시이고 배신자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서 도주한 반역자는 하나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더 중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와서 심판을 받고 또한 정결케 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생존할 것인데, 물론 이것은 이후의 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책망과 훈계를 받은 뒤에 소극적이 되어, 본분을 해도 힘이 나지 않고 충성심도 없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한 방면은, 사람이 자신이 일처리하는 방식의 실질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여 책망과 훈계에 불복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지금까지도 책망과 훈계의 의의를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책망과 훈계를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표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하나님에 대해 충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책망과 훈계가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훈계가 따르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한다. 그런 오해로 아주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며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너무 궤사하여 고난을 전혀 받으려고 하지 않고 수월하게 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일이 공의로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이 한 일이 인지상정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행한 것이 합당하지 않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사람이 행한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표현으로 결말을 정하는 데에 내포된 뜻>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나 소극적인 방면에서나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경력(역주: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장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하였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가운데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일부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겪거나 진면목이 드러나면, 끝장났고 결말이 정해졌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모두 꿰뚫어 보지 못하고, 다 이 일에 걸려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른다. 평소에 훈계와 책망을 당하지 않고 어떠한 좌절도 당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일단 타격을 좀 받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사람의 배반 본성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어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혐오스럽고, 나중에 스스로도 몹시 혐오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신의 결말을 정한다. ‘끝장이야, 나란 사람은 끝이야. 내가 이런 일까지도 저지를 수 있게 되었으니, 끝장나지 않겠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이런 정형이 있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왜 사람은 이렇게 규정지을까?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사람이 아직도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너를 한 번 훈계하면 한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가지 작은 일을 잘못한 것 때문에 본분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작은 상황 하나 때문에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완전무결하게 추구해야만 힘이 난다고 느끼고, 자신이 너무 패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추구할 마음이 없어진다고 느끼는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다 낙심하면서 소극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아! 난 끝났어, 틀림없이 끝장이야. 구원받을 리가 없어. 설사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다고 해도 나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나란 사람은 변화될 수 없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인류가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가운데서 간혹 일부 패괴 성정이 유로된다든가, 일을 할 때 뒤섞임이 있다든가, 무책임하다든가, 충심이 없다든가, 대충대충 하여 속인다든가 하는 이런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모두 필연적인 법칙이다. 만약 이런 유로가 없다면 어찌 패괴된 인류라고 할 수 있겠느냐? 만일 인류에게 패괴가 없다면, 하나님이 하는 구원 사역도 의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사람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없고, 자신의 정형에 대해서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러내어 밝히 지적해야 한다. 드러내야만 너희가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마비되고 멍청해져 이렇게 역사하지 않으면 변화될 수가 없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내면 인정하고 순복하며, 두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얼마나 마음을 찌르든,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이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인정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하고,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 비춤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한다.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사람이 산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아래에 달갑게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발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따르고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순복하여라.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이나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한 가지 일을 네가 인식하자마자 실행할 수 있는가? 즉시 실행할 수 없다. 인식하는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은 너를 책망하고 어떤 사람은 너를 훈계하며, 게다가 환경이 너를 핍박하여 억지로 이렇게 저렇게 하게 한다. 어떤 때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데 왜 해내지 못할까?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이 말해 준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는 거예요.” 나중에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러 또 어떤 시련을 겪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일부 진리를 깨닫고 나면 좀 달갑게 할 수 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좀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본분을 할 때 충성하는 이 일을 놓고 말하면 본분을 하는 것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인식이 있으며 진리 방면에서도 깨닫지만, 언제면 충심으로 하는 데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겠는가? 명실상부하게 본분을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한동안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도 아마 네가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 너를 훈계한다든가, 책망한다든가, 가로막는다든가, 몰아댄다든가, 강요한다든가, 여러 사람의 눈이 너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네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나쁘다고 깨닫게 되는데, 본분을 할 때 충심이 없으면 되겠는가? 대충대충 하며 속여서는 안 된다. 성령이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네가 일을 잘못했을 때 너를 책망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되고, 네가 하는 본분에 뒤섞임이 너무 많고 자신의 속셈이 너무 많고 자신의 욕망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네가 인식한 후 점차 정상 궤도에 들어서면 행위에서 변화될 수 있다. 너희가 지금처럼 본분을 하는 것은 실질상으로 말하면 진정으로 본분을 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성정이 변화된 후 진리에 부합되는 본분을 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성찰해 보면 네가 도대체 성정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구하고 고찰하여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성정 변화에 도달할 희망이 있다.』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사람의 정형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해 인식도 순복도 있게 하고, 사랑도 간증도 있게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ㆍ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진리는 모두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진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만일 고통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그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한다.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으로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그에 따라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사람의 사랑은 오직 연단 속에서만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대면하여 말씀하시지 않고, 친히 당신에게 임하셔서 “오늘 내가 너의 패괴를 보았으니 너에게 심판의 말씀을 발표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신 후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 당신이 가장 업신여기는 사람을 감동시켜 보내어 당신을 책망하고 훈계하게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는데, 순복하겠습니까, 순복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당신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고, 당신이 그에 대해 가장 크게 반감을 가지는데, 성령께서 그를 감동시켜 당신을 책망하고 훈계하게 하신다면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이것은 사실입니다. 설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하나님, 당신이 오시는 건 괜찮지만, 그 사람이 오면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말씀하시든지 저는 다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이는 거역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이 말씀에 실제적인 면이 있고 난이도가 있습니다. 무엇이나 다 당신의 관념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니 순복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한동안 저와 접촉하면서 저의 책망과 훈계를 잘 받아들이더니 뒤에서는 ‘다른 사람은 누구도 저를 꾸짖고 책망하고 훈계해선 안 되지만 그 형제님만은 괜찮아요. 그가 저를 꾸짖으면 받아들이겠지만 다른 사람이 꾸짖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순복이 있겠습니까? 그의 이 말이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이것은 진실한 순복이 아닙니다. 진실한 순복에는 자신의 선택이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든, 어떤 속셈을 갖고 있든 다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실한 순복입니다. ‘어떤 사람, 어떤 인솔자, 어떤 일꾼이 훈계하고 책망하든, 이 일이 완전히 사실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일부분이라도 부합되기만 하면 나는 받아들이고 순복하겠어. 일부분이라도 부합되기만 하면 나는 전부 받아들이고 그와 이유를 따지지 않고, 내가 몇 %는 받아들이고 몇 %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유를 따지지 않겠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는 표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런 순복이 없다면 진리를 얻기 어렵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순복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데, 각 사람 앞에 놓이면 사람마다 선택해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당신이 피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설교 교통 (1)ㆍ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야만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서 발췌

『과오가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매우 좋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반드시 과오가 있게 된 후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겪은 후에야 진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때에 사람은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에 대해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대조하게 되는데, 깊이 생각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그렇구나.’ 한 번으로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철저히 인식하고 머리를 숙이게 되면 진리를 실행하게 됩니다. 어떻게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깨달아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좌담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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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