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달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진리 실제

목차

7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원칙

1.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진리이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모두 긍정적인 것의 실제이며, 천지가 뒤집혀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든, 사실에 어느 정도 부합되고, 찾고 구할 만한 진리가 있다면, 순복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찾고 구해야 한다.

3.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시련하고 연단하시든, 그것은 모두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순복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함에 있어 반드시 자신의 패괴 진상과 본성 실질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며,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진리’는 가장 실제적인 것이고 또한 인류의 최고 인생 격언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제출한 하나님의 요구이고, 게다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 격언’이라고 칭한다. 이 격언은 귀납해 낸 것이 아니고 위인의 명언도 아니라 천지 만물의 주재자가 인류에게 발한 음성이며, 사람이 귀납하여 있게 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인생 격언’이라 칭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나의 말은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나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인류를 인도하는 유일한 선도자이며,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의 실질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다. 설령 이 세계에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나의 도움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말을 반박하는 많은 사람들, 또는 나의 말에 대해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이다. 즉, 시간과 사실이 나의 증거가 되게 하여 나의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실증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고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나의 말에 정죄되는 사람이고, 더욱이 나의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 형벌의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내 말은 전 인류를 향한 진리이지, 전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어떤 부류의 사람들만 위해 발표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로지 진리의 각도에서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한 태도는 반드시 한결같고 진실해야지, 내 말의 매 구절과 내가 말한 모든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나의 모든 말을 경멸하는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훈언 3칙>에서 발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내면 인정하고 순복하며, 두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얼마나 마음을 찌르든,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이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인정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하고,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 비춤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한다.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너희는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픔도 두려워하지 말며,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의 마음을 찌르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 방면의 말씀과 사람의 패괴 실질을 폭로하는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 많이 보고 많이 맞추어 보되,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맞추어 보아야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사람에게 적지 않게 있고 다 맞추어 볼 수 있다. 믿어지지 않으면 네가 경력(역주: 체험)해 보아라. 일부 사람들은 불복하며 말한다. “봐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음녀, 창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그러면 형제가 말하기를, “그건 틀림없이 저를 두고 말한 게 아닙니다. 제가 여성이 아닌 이상, 틀림없이 음녀도 아니고 창녀도 아닙니다.” 어떤 자매들이 말하기를, “저는 남편에게 충실해요. 다른 사람과는 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저는 하나님을 믿기에 정결을 지켜야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저를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또 어떤 자매가 말하기를,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싱글입니다. 저는 지금껏 음란을 행한 적이 없고, 더욱이 남자에 대해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또 어떤 자매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듣기 거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을 욕하는 것이지 실제에 부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 말씀도 정확하지 않은 데가 있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태도가 옳은가? 분명 틀린 것이고 무조건 틀린 것이며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이 하는 말씀이 듣기 싫든 듣기 좋든, 쓰든 달든, 시든 아리든,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희에게 무엇보다 먼저 있어야 할 태도이다. 이것은 어떤 태도인가? 경건한 태도, 성실한 태도인가, 아니면 인내하는 태도인가? 아니면 고통을 참는 태도인가? 너희가 좀 어리둥절하여 이것이 어떤 태도인지 모른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는데, 모두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야 한다. 진리인 이상, 너는 이지(理智)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인식할 수 있든 없든, 인정할 수 있든 없든, 너에게 있어야 할 첫 번째 태도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빠뜨리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뜻은 네가 이 일을 했다거나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렇게 말한 것이 너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아니라면 누구에 대해 말한 것인가? 너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면 왜 또 너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모순되는가, 되지 않는가?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에게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해석하라고 하면 분명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왜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는가? 바로 하나님이 하는 말씀마다 모두 그 말씀의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말씀마다 표면 현상을 말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겉면의 규례를 말한 것도 아니며, 사람 겉면의 단순한 행위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의 각 말씀을 사람의 단순한 행위와 표면 현상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여긴다면 너는 영이 통하지 않는 것이고, 진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하다. 심오함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의 말씀마다 말하고 드러낸 것은 사람의 패괴 성정 안에, 생명 안에 있는 실질적인 것들이고 깊이 뿌리박힌 것들이지, 표면 현상이 아니고 더욱이 표면 행위도 아니다. 표면 현상에 따르면 너는 아마 누구에게나 다 아주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들은 악령이고,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였는가? 이것은 네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본 것이나 현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교통한 후에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너희 태도가 조금 바뀌었는가? 얼마나 크게 바뀌었든 총괄적으로 말해서, 틀림없이 이후에 너희들이 또 이런 말씀을 만나면 최소한 하나님과 말씨름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님 말씀은 너무나 듣기 거북하다. 이 페이지는 보지 말고 넘겨 축복이나 약속의 말씀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좀 위로하자”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고르고 택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통 설교ㆍ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발췌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는 비록 연단이 되고, 또 무정하게 드러내고, 사람의 죄와 육체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체를 정죄하여 멸절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엄하게 드러내는 것은 다 너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많은 역사를 체험해 보았는데, 너희를 모두 사악한 길로 이끌어 간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은 다 네가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모두 너의 정상 인성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각 단계 사역을 하는 것은 다 너의 필요에 근거하여, 너의 연약한 정도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따라 하는 것이지, 결코 지기 어려운 짐을 너희에게 억지로 지우지 않는다. 비록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해 마치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늘 내가 너를 미워하기 때문에 날마다 형벌, 심판하고 책망한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은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해 사랑이고 또한 크나큰 보호이다. 네가 이 단계 사역의 더 깊은 의의를 알지 못한다면, 전혀 경력하지 못한다. 너는 마땅히 이런 구원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아야지, 계속 자신의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지금에 이르러, 너는 정복 사역의 의의를 분명히 알아야지, 더 이상 이런저런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너희가 받아들인 것은 전부 형벌과 심판, 무정한 격타(擊打)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 무정한 격타에 아무런 징벌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어떻게 엄하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다만 너희가 보기에 조금도 인정미가 없는 몇 마디 말씀이고, 나의 노가 얼마나 크든지 너희에게 임한 것은 여전히 교훈의 말씀이니 너희를 해치려는 뜻이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닌가? 너희가 알다시피, 지금 공의로운 심판이든지 아니면 무정한 연단과 형벌이든지 그것은 다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지금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려 하든지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 하든지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정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든 채찍질이든 다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구원 방식은 더 이상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오늘,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제일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정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 형벌과 심판에 직면하여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너희가 시종 누리는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닌가? 너희는 하나님이 도성육신(역주: 성육신)한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의 소재도 깨달았으며, 더욱이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격타와 징계도 경력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는가? 너희의 복은 어느 누구의 복보다도 더 크지 않은가? 너희의 은혜는 솔로몬이 누린 그 부귀영화보다도 더 풍성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은 사람에 대해 모두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연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한 각 단계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데,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지 어쨌든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지 자신감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해야 할 것을 해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마음속으로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하나님이 말씀한 이긴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즉 흑암 세력에서도 여전히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여전히 원래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충심을 지킬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지킬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간증을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이긴 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가운데서 무릇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이라면 자신에게 엄격히 맞추어 보고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더듬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다. 그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신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실질과 본성도 인식하였고, 사람의 여러 가지 부족한 면도 인식하였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한 방면으로는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발표된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이 역사하는 뜻,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서, 이런 말씀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고,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처럼 이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에게서 오히려 이 몇 가지 방면의 효과에 도달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귀한 것이다. 베드로가 수백 번의 시련을 겪은 것은 헛수고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지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베드로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환해졌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했다. 하나님의 어느 방면의 말씀이든지 무릇 자신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베드로는 마음속에 새겨 두고 늘 묵상하며 터득하였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후 마음에 두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매우 중시하였음을 설명한다. 나중에 확실히 효과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 말씀을 자유자재로 적용하여 실행하면서 진리를 정확히 실행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정확히 행할 수 있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자신의 주장과 상상을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였다.』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성정이 변화되려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알고, 자기 본성 안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를 알며, 자신의 우매 무지를 인식하고, 자기 본성의 취약함과 소극적인 요소를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밝히 알고 난 후, 참으로 육체를 배반하게 되고, 참으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견지하게 되고, 참으로 심지가 있어 절대적으로 성령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게 된다면, 너는 베드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으면 그 어떤 문제도 전혀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정도 절대 변화될 수 없다. 반드시 어떤 깊이까지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즉,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네가 그런 것들을 정말 증오할 수 있는지, 네가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자신의 진상을 보았다면,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때, 네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그때는 육체를 배반할 수 있어 진리를 실행할 힘이 생기며,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랐느냐?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기면서 무슨 잘못한 점이 없고 심지어는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는 것을 보게 되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보게 되면,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비로소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좌담 기록ㆍ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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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