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74 저는 존심이 옳아도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河南省 孟宇

언젠가 본분을 하는 중에, 저는 한 형제님이 자주 자매님들에게 지나치게 열정을 바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 이 형제님은 남녀관계에서 실족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의 이런 표현을 보고 저는 그의 나쁜 습관이 또 나올지도 모른다고 여겨져 기회를 봐서 그를 일깨워주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이 형제님이 본분을 함에 있어서 뚜렷한 효과가 없었는데, 이것은 더욱 저의 생각을 실증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기회에 그에게 좀 얘기해야겠다고 작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의 이 방면을 지적해주었을 때 그는 한사코 부인하면서 제가 그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최근 몇 년간 자매님이 저와 교통할 때 계속 지위에 서서 저를 훈계해도 이전에는 참으면서 지적하지 않았었어요. 오늘도 여전히 지위에 서서 말하는데, 이 일에 대해 자매님과 따지고 싶지도 않아요. 자매님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후에도 저는 계속 참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교통이 효과에 달하기는커녕 도리어 기분 나쁘게 끝이 났습니다. 형제님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통해주는 존심은 일부러 약점을 까발려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한 것인데, 받아들이지도 않고 내가 지위에 서서 사람을 훈계한다고 내 흠을 잡다니. 에이, 상관하지 말자. 아무튼 내 존심은 옳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증명할 수밖에 없어.’ 이 일에서 저는 시종 자신이 옳은 사람이고 형제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인사물을 통해서야 저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나이 어린 형제님을 안배하여 한가지 새로운 사역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그전에 이 형제님의 정형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임을 맡은 후로부터 그의 정신 자세도 좋아졌고 말하는 것도 힘이 있었는데, 이전에 비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가 저와 교통할 때 그의 말투, 태도, 표정은 저로 하여금 아주 불쾌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비록 그가 교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지적한 것도 저의 진실한 정형이었지만 저는 들어주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의 대립 정서가 곧 발작하려 할 때, 저는 갑자기 그에게서 저의 그림자를 발견하였고, 몇 개월 전에 그 형제님과 교통할 때의 자신의 말투와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어쩐지 형제님이 제가 그와 교통할 때 지위에 서서 훈계한다고 말한다 했더니, 보아하니 그의 그때 당시의 느낌은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형제님이 그때 저의 유로를 보고 죽은 파리를 먹은 것 같이 매우 메스꺼웠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은 저로 하여금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게 했습니다. 즉 성정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설사 그의 존심이 옳을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기 때문에 유로하는 것은 전부 천연적인 것이고 모두 사탄 성정의 발표라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리스도의 설교 교통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즉 이런 것이다. 네가 자신이 한 것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한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하나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더욱 자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속에 도대체 어떤 뒤섞임이 있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 뜻을 만족케 할 수 없는 것인지를 깊이 파고들 필요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뜻은 사람더러 자기 언행의 뒤섞임을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있고 이 본성이 하나님의 적세력이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행실이 만일 진리의 교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설사 자신이 한 것이 진리에 부합되고 아무런 착오도 없다고 여길지라도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본성 실질에 대해 말하면 여전히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고 사람이 유로하는 것도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안에 아직도 해부하고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뒤섞임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과 교통했을 때를 회상해보면, 저는 저의 존심이 그를 도와주려는 것이니 제가 옳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그와 교통할 때 제가 이미 위치를 잘못 섰고 자신을 진리의 주인으로 삼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정형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꿰뚫어볼 수 있고 지적한 정형도 정확하다고 여겼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경한 태도로 제가 말한 것을 받아들이게 하였고, 일단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저를 반박하면 그에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죄를 덮어씌웠습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제가 유로한 것은 오만하고 강경하며 사람을 속박하고 훈계하여 사람을 귀찮게 하고 메스껍게 하는 사탄의 성정이었습니다. 제가 유로한 것은 큰 붉은 용이 계급투쟁 운동에서 벌인 정치적 비판 투쟁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큰 붉은 용이 불문곡직하고 제멋대로 사람에게 죄명을 뒤집어씌우고 강제로 비판 투쟁하였는데, 저는 형제님과 교통하기 전에 이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형제님이 유로한 것이 사실에 속하는가의 여부도 실증하지 않고 그의 대한 자신의 이전의 인상에 따라 형제님이 본분을 하는 데에 효과가 없는 것은 남녀 방면에서 또 나쁜 버릇이 나온 것이라고 정죄하여 강제적으로 그더러 제가 지적한 정형을 시인하라고 했습니다. 보다시피, 저의 본성 실질은 큰 붉은 용과 완전히 같고, 저의 일거일동, 눈길, 말투에서 드러난 것은 다 큰 붉은 용의 오만한 성정입니다. 제가 패괴 성정을 지니고 다른 사람과 교통하면 어찌 남에게 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어찌 저의 몸에서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고 제 자신에 의해 교통하면 또 어떻게 효과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에야 제가 교통한 것이 효과에 달하지 못한 까닭은 형제님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기 때문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도 혐오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봐도 메스꺼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적인 역사로 저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신 동시에 또 사람에게 만일 성정 변화가 없다면 설령 존심이 올바르고 겉면의 행실이 적합할지라도 유로하는 것이 사탄의 패괴 성정이니 이때에도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생명 성정의 변화를 중요시하면서 본성 실질로부터 자신을 알고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하며, 다시는 겉면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존심이 올바르다 하여 자신에 대한 인식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매사에서 자신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면서 자신으로 하여금 하루빨리 성정 변화에 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