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61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河南省 珍惜

10년 전, 저는 자신의 오만한 본성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의 부추김으로 본분을 하는 중에 언제나 교회의 안배에 완전히 순복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뜻에 맞으면 순복하고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골라서 순복하거나 순복하지 않았기에 본분을 하는 중에 사역안배를 심각하게 어기고 딴청을 피우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건드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반성하여 저는 자신의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실질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별로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 교회에서 또 저에게 한번 기회를 주어 복음 사역의 책임을 맡겼는데, 그때 저는 하나님에 대해 또 의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패괴되고 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일을 저지른 적도 있는데 어째서 나를 다시 쓸까?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이용한 다음 또 도태시키는 걸까? 에라, 교회에서 기회를 준 이상 소중히 여기자! 효력자가 돼도 괜찮아.’ 그때부터 저는 이런 마음 상태로 본분을 하였고 더 높은 목표─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것을 추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영적 수양을 할 때 저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어떻게 해야 정복되겠는가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고, 너의 이후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겠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너는 온전케 될 심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늘 자신이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진리가 그래 사람을 차별 대우 하겠는가? 진리가 그래 일부러 사람과 대립하겠는가?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가 너를 압도하겠는가? 네가 정의를 위해 일어서는데, 정의가 너를 넘어뜨릴 리 있겠는가? 너에게 정말로 생명을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회피할 수 있겠는가?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결코 진리가 너를 상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해서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일어설 수 없는 것은 정의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정의가 사실을 왜곡하였다고 네가 여겨서이다. 네가 여러 해 동안 추구하였어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너에 대하여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하여 양심이 없어서이고 네가 생명을 몰아내서이다……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너를 가치 없는 천한 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는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흑암 세력을 반항할 정신이 없다. 너는 너무나도 나약하다! 사탄 세력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이렇게 평안히 일생을 살고자 하고 이렇게 애매하게 죽고자 한다. 네가 정복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네가 해야 할 것이고 네가 다해야 할 의무이다. 네가 만일 정복되는 것에 만족한다면, 너는 바로 빛의 존재를 몰아낸 것이다.』 이 단락의 말씀을 먹고 마신 후, 저의 마음은 아주 감동받았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게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근심을 내려놓기를 원하고 더는 소극적이나 피동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힘써 추구하리라고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실질을 알지 못한 까닭에 저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또 믿지 못하게 되었고, 늘 이런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하신 것이지 저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위로하고 격려해주실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늘 자신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적이 있고 본성이 또 그토록 패괴되어 본분을 하는 중에 자주 패괴 성정을 유로하기에 아무리 추구해도 온전케 될 수 없고 효력자로 돼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부지중에 저는 또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후에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의 실질을 아는 이 방면의 진리를 여러 번 교통하였지만 저는 그래도 별로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신실한 분이어서 말한 대로 하고, 하는 대로 이룬다. 그는 신실한 분이다……』 그때 저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고, 마치 마음속의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진 듯 다년간의 오해와 의심이 일시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저는 또 이전에 먹고 마셨던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에게 정말로 생명을 추구할 심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회피할 수 있겠는가?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결코 진리가 너를 상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해서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일어설 수 없는 것은 정의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정의가 사실을 왜곡하였다고 네가 여겨서이다. 네가 여러 해 동안 추구하였어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너에 대하여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하여 양심이 없어서이고 네가 생명을 몰아내서이다……』 그 시각 저는 하나님 말씀의 행간마다 강직한 정기와 끝없는 사랑이 비췸을 느꼈고 그토록 고귀하고 위대하게 보였으며, 동시에 저로 하여금 자신의 비천함과 편협함과 의기소침함을 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은 의심할 바가 없고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신실하신 실질이 있고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최대한도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대로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사람을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하시고 하신 대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하나님도 사람처럼 이용하신 후에는 모른 체하실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대하지 않았고 더욱이 진실하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대뇌 사유와 상상 및 의심 속에서 살고 있었고 진리 앞에서 용기가 부족하였으며 나약하게 흑암 세력에 굴복하였고 정의를 위해 굳게 서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실질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진실로 체득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전부터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데 중요시했더라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근심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생명 진보를 지체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서 저를 보살펴주시고 깨우치고 인도해주셔서 안개 속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전에 저는 자신을 알지 못하고 항상 오해 가운데 살면서 당신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저 당신의 말씀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으로 삼았을 뿐 진리와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당신을 하나님으로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의 과오에 따라 저를 대하시지 않고 관용해주셨고 인내하시면서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며 저에게 깨우침과 빛비춤을 주셔서 당신의 신실하고 공의로운 실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하셨는데, 이것도 바로 사람에 대한 당신의 사랑의 체현(體現)이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저는 당신을 알아가는 이 방면의 진리에서 많은 공을 들이고 저에 대한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신의 실질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하루빨리 성정이 변화되고 당신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인식한 후 감동적인 힘이 저의 마음속에서 넘쳐 어려움에 직면해도 더는 소극적이지 않았고, 다년간의 오해, 의심, 근심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완전히 적극적인 정형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