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60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浙江省 張瑞

저는 궤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궤사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칭찬받는다는 것을 보고 저는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정확하게 말하기를 훈련하였고 객관적으로, 실제적으로, 실사구시적으로 문제를 반영하고 사역에서 편차나 허점 등을 낱낱이 인솔자에게 반영하였으며 자신의 패괴도 의식적으로 해부하고 드러냈습니다…… 매번 이렇게 실행할 때마다 저는 자신이 어느 정도 변화가 있고 성실한 사람의 모양이 조금 있다고 여겼습니다.

최근, 한차례 동역자 회의에서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반드시 각 부류의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통을 했습니다. 그때 인솔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변화가 있으니 비교적 단순하고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라 할 만하지. 인성이 나쁘다고 말하자니 또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것 같고, 인성이 좋다고 말하자니 또 인성이 좋은 표현의 매 조항마다 구비한 것도 아니야. 최소한 비교적 단순하고 성실하며 사람을 해칠 마음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상대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인성이 좋은 편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인솔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자신이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이지가 없고 자신을 너무 몰라요. 자신이 비교적 단순하고 성실하다고 여기는데, 정말 모든 일에서 감히 마음을 터놓고 진상을 드러내 보일 수 있어요?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 100% 의심이 없어요? 정말 감히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이고 자신의 존심과 목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불복하면서 변명했습니다. “설교 교통에 좋은 사람도 패괴 성정이 있고 여러 가지 패괴를 유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까?” 저는 어떻게 해도 자신의 견해를 부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지난 뒤, 저는 인솔자가 한 그 말을 자세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모든 일에서 감히 진상을 드러낼 수 있을까? 아니야.’ 제가 터놓은 것은 단지 긴요하지 않고 저의 명예와 이익에 관련되지 않는 일이며 저의 패괴를 터놓은 것도 역시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패괴된 표현이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들은 감히 터놓고 진상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에 대해 100% 의심이 없을까? 아니야.’ 사역에 효과가 없어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생기고 자신이 효력자이니 아무리 추구해도 소용없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100% 믿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람에게 상벌을 주실 것임을 믿지 않으므로 자주 하나님의 성품을 시험합니다. 오늘 제가 뛰어다니면서 사역을 좀 하는 것도 다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고 이후에 복을 얻고 화를 입지 않기 위한 것이지 하나의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겉면의 좋은 행위가 조금 있을지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이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이런 유로를 생각해보니 모두 궤사한 사람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제가 자신이 비교적 단순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것은 너무나 자신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본성에 대한 사람의 인식과 사람의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폭로는 언제나 차이가 큰데, 이것은 하나님이 폭로한 것이 착오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가 깊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근원적으로, 실질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행실이나 겉면의 유로에서 방책을 구하고 공을 들이는 것이다. 설령 어떤 사람이 간혹 자신을 아는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라도 별로 깊지 않고, 자신이 이런 종류의 일을 해낼 수 있거나 어떤 방면의 유로가 있는 이상, 이런 부류의 사람이나 이런 본성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폭로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사람의 실질이다. 하지만 사람이 인식한 것은 사람의 행실이나 논법상의 착오나 폐해이다…… 사람은 자신의 착오가 그저 우연한 표현이고 조심하지 않아 유로한 것일 뿐 본성의 유로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할 때 대충대충 규례를 지킬 뿐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본성이 별로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사실, 표준에 비해 아직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단지 겉으로 보기에 진리와 어긋나지 않는 얼마간의 행실이 있을 뿐 사실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을 통해서야 저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천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사유 관념에서 자신을 안 것이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의 패괴된 본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단순하고 성실하고 인성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는데, 다만 겉으로 보기에 엄중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방면에서도 단지 겉면의 행실에서만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이 솔직한 말을 좀 하고 실제적인 일을 좀 한다 하여 성실한 사람의 표준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는데, 저는 참으로 너무 오만하고 너무 자신을 몰랐던 것입니다! 자신이 성실한 사람의 실질을 조금도 구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표준과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자기 자신을 안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서 사람을 폭로하신 말씀이면 그는 엄격하게 자기 자신과 대조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사람 중에서 자신의 패괴에 대해 가장 인식이 있는 사람이자 역시 가장 성공적으로 경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따라도 여전히 자신을 알아갈 줄 모르는데, 저의 진입은 실로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로 하여금 자신의 빈궁함과 가련함을 보게 해주시고 또한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을 알아야 객관적이고 실제적임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무릇 하나님께서 사람의 패괴된 본성을 폭로하신 말씀이라면 엄격하게 자신과 대조해보고 다시는 자기 관점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참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