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31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은 결코 성경에 더한 것이 아니다

遼寧省 康健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계시록 22장 18-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예언에 어긋나고 성경 예언서에 또 더한 것이니, 만일 누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른다면 천국에 참여하지 못할 거에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은 사실의 진상에 어긋나는 것이고, ‘계시록’의 배경을 보지 않고 아마 그럴 것이라고 그냥 생각한 대로 말한 것입니다.

성경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로마 황제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되어 감금된 기간에 보게 된 이상인데, 시간은 대략 주후 90여 년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신약 성경이 아직 편성되지 않았고 신구약 전서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22장 18-19절에 언급한 ‘이 책’은 오늘날의 성경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 ‘계시록’ 한 권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 누구든지 예언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고 했지 성경책에 가감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일 ‘이 책’을 오늘날의 성경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터득 방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또 경문의 말씀은 ‘사람’이 누구든지 더하거나 제해서는 안 된다고 가리키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언은 하나님 자신이 앞으로 하시려는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야 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혀 함부로 더하거나 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두 구절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계시록의 예언에 제한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예언서 외에 역사하실 수 없다고 규정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조물주이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전적으로 예언 이외에도 그분 자신의 사역을 하실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어떠한 사람도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신명기 12장 32절에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실 때 가져오신 진리와 사람에 대한 요구는 율법시대보다 더 높았고 구약 성경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 새롭고 더 높은 실행이 있으니 사람은 자연히 일부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실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율법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요구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는 오히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셨으며, 율법에는 너의 원수를 미워하라고 규정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38-44 참조). 이런 예증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하신 것과 말씀하신 것이 다 율법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율법으로 예수님을 정죄한 것입니다(요 19:7 참조). 가히 말해서, 이것은 사람에게 이지가 없는 표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는 말씀으로 도리어 하나님을 속박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셨던 옛 사역으로 하나님의 현시의 새 사역을 규정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이시고 하나님의 역사는 자신의 경영 계획대로, 자신의 자유 의지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이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공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진리이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생명의 근원이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다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은 전혀 어떠한 인사물ㆍ지리ㆍ시간의 제한도 받지 않고 더욱이 성경 글귀의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새로운 사역을 개척한 것이다. 그는 구약의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구약에 여호와가 한 그런 말씀에 따라 맞추지 않고, 그는 그 자신의 사역을 하려 하였다. 그는 더 새로운 얼마간의 사역을 하였는데, 율법보다 더 높은 사역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그가 이룬 것에 따라 허다한 규례가 타파되었다.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에 이르러 밀 이삭을 잘라 먹게 하였고,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법에 의하면, 누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로 쳐 죽였으나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그가 한 이런 사역을 구약시대에서 여호와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이미 구약 율법을 초과하였고, 이미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았으며, 구약 율법대로 하지 않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계시록에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는 말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임을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도리어 다시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되고 성경의 글귀 규례로 하나님을 속박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성경 외에 하나님께 또 새로운 역사와 말씀이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이것은 하늘땅이 뒤바뀌고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일이 아닙니까? 계시록은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보게 된 이상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직 실제로 마지막 사역을 하지 않으셨으며, 사람이 얻은 것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뿐 사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하실 때에 말씀이 사실로 된 것입니다. 즉 예언이 응한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5절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경문은 우리에게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당연히 하나님이시고, “봉하였더라”는 그 책의 내용이 한동안 사람에게 은밀하고 알려지지 않으며 비밀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책을 펴고 그 비밀을 풀 수 있겠습니까?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이 구절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으로 이해하게 하거나 연상케 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파에서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셨고 육신은 다윗의 자손에 속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33년 반 동안 계시면서 나타내신 것은 다 어린양 같은 성품이었고 사자의 성품 같은 진노와 위엄은 아주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또 여기의 사자가 예수님이라고 확정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서 “이기었으니”라고 하니 또 우리로 하여금 그 사자가 곧 예수님이라고 확신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죽음을 이기시고 사탄을 패배시키심으로써 ‘이긴 군왕’으로 되셨습니다. 이 구절 경문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이기신 분이고 그분만이 그 책을 펼치실 수 있고 그분만이 그 일곱 인을 떼실 자격이 있다고 확실히 알려줍니다. 여기의 사자는 육신으로 돌아오신 예수님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는 성품에서 구별이 있고 사역에서 구별이 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발표하신 성품은 사자의 성품이고, 위엄과 진노를 만재하였습니다. 말세에 그분은 봉한 책(책은 당연히 하나님 말씀)을 펼치실 것이고 친히 사람에게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셔서 엄한 심판 사역을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더는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오르는 죄를 대신하는 양이 아니고 더는 사람에게 마음대로 끌려 다니고 불려 다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때가 되면 그분은 책의 모든 비밀을 전 인류에게 공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영계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경영하는 계획을 알게 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 실질을 알게 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역사 원칙,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전능을 알게 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실행의 길을 찾게 하시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찾게 하시고 불의를 벗어버리고 거룩하게 되는 경로를 찾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고, 우리가 현재 경력하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새 사역입니다. 계시록 10장 1-4절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일곱 우레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이 경문은 우리에게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를 요한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는 아예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두 곳 경문에서 보다시피, ‘작은 책’의 내용과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의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만약 사람이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는 이 말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고 하나님께 성경 외에 새로운 말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면 ‘작은 책’을 어떻게 펼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세에 어떻게 심판을 시행하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작은 책을 펼치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떻게 ‘작은 책’의 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모든 비밀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성경의 예언이 또 어떻게 응할 수 있겠습니까? 이로부터 보다시피, 하나님께 말세에 반드시 새로운 역사와 말씀이 있어야만 성경의 모든 예언이 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시고 역대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비밀을 풀어 놓으셨는데, 바로 계시록의 예언이 응한 것이고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이며 어린양이 펼친 책입니다. 이것은 이미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로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은 모두 두 번째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전능자의 이름 아래에 돌아올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솔을 받을 수 있고, 더 많고 더 높은 진리를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인생을 얻을 수 있고, 이전 사람이 보지 못한 이상(異象)을 볼 수 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시록 1:12-16) 이 이상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표인데, 이 모든 성품의 발표가 곧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 사역의 발표이다. 이따금씩 형벌 심판하는 중에서 인자는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는 방식으로 그 고유한 성품을 발표해내어, 그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인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하였다. 이 모습이 바로 요한이 본 인자의 모습의 진실한 묘사이다(물론, 하나님의 국도시대에서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이런 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서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낡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이 성경에 기록이 없다 하여 더한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은 성경에 더한 것이 아니라 계시록의 예언이 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구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한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메시아가 그들을 구원하러 오실 것을 알고 있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고 속죄제로 되실 것이라는 등등도 알고 있었지만 메시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오시고 또 오셔서 어떻게 사람의 속죄제로 되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예언들은 다만 글귀일 뿐 성취된 후의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다 응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약(즉 예수님의 사역)을 구약 예언에 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새 사역이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고 사람의 관념에도 부합되지 않았으며 여호와의 역사와 말씀과는 같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율법에 가감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율법시대 역사의 기초에서 하신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인데, 그 사역은 율법을 완벽하게 하여 사람에게 새로운 실행이 있게 하였고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구약 성경에 예수님 사역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 율법을 벗어났고 또 새로운 계명을 더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자신의 계획 중의 사역을 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앞 단계 율법 사역의 기초에서 하신 한 단계 새롭고 높아진 사역이었는데,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신약 성경의 예언을 이룬 것이고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의 기초에서 하신 제3단계 역사인데, 성경에 “더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하나님의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이 바로 그 말씀을 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신 말씀은 역대 이래 감춰진 비밀을 사람에게 풀어 놓았고, 우리가 접촉한 적이 없던 많고 많은 진리를 가져왔으며, 사람에게 정결케 되어 국도로 들어가는 길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여호와와 예수님의 두 단계 역사의 기초에서 하신 한 단계 더 새로운 사역이고 이전의 두 단계보다 더 높은 사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한 사역은 단지 성경 구약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사역인데, 이것으로써 한 시대를 전개하였고 한 시대를 이끌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가? 그런데 그가 한 사역에는 구약 이스라엘 사람이 실행한 율법과 지킨 계명과 같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율법을 지키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완전케 하는 과정에는 허다한 실제적인 것들이 포괄된다. 그가 한 것은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며 또한 산 것이지 규례를 고집스레 지킨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닌가? 예수 그때에 이르러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인자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였고, 안식일의 주인이 오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는 구약 율법을 완전케 하려는 분이자 율법을 변화시키러 온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는 것은 완전히 현재에 근거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율법시대의 여호와 사역의 기초에서이지, 이러한 범위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입과 혀를 경계해야 하고 음란 죄를 범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도 구약 율법이 아닌가? 현재 너희들에 대한 요구는 단지 십계명에 제한된 것이 아니며, 바로 이전보다 더 높은 계명이고 더 높은 율법이지, 그것을 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매 단계 사역은 모두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것, 예를 들면 제사를 드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되고, 사람을 때리지 않고, 사람을 욕하지 않고, 간음죄를 범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죽은 것을 먹지 않고, 피를 먹지 않는 것인데, 현재까지도 너희들이 이런 기초에서 실행하지 않는가? 이전의 기초에서 현재까지 해오면서 비록 이전의 율법을 언급하지 않고 너에 대하여 또 새로운 요구가 있게 되었지만, 이런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니라 높인 것이다. 폐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시대가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분 계명은 네가 영원히 지켜야 한다. 이전의 계명은 사람이 이미 실행해냈고 이미 사람의 소시로 되었다. 바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등등과 같은 이런 것을 더 이상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 기초에서 또 너희들 현재의 필요에 근거하여, 너희들의 분량에 근거하여, 현재 하는 사역에 근거하여 다시 새로운 계명을 정하였다. 새 시대의 계명을 반포한 것은 결코 옛 시대의 계명을 폐한 것이 아니라 이 기초에서 더 높인 것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더 완전하게 더 실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매 단계 역사가 겉으로 보면 어느 정도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 3단계 역사는 아주 완전한 총체입니다. 매 단계 사역은 원래의 기초에서 한 단계씩 더 높아진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중의 한 단계나 두 단계만 인식한다면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전면적이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3단계 역사를 인식해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람이 밥을 세 공기 먹고 배불렀다 하여 앞서 두 공기의 밥을 괜히 먹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앞서 두 공기의 밥으로 요기하지 않았다면 마지막 공기의 밥으로 배불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 성경에 가감한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와 말씀이 전체 성경에 가감한 것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터득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됨입니다.

형제자매님,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 및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일 뿐 하나님께서 말세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는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정확히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지 않으셨을 때는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여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에 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개척하시고 새 사역을 하셨을 때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사역으로 하나님의 새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이 성경 외에 더한 것이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율법을 ‘초과’하여 신약 시대의 사역을 하실 수 있고, 마찬가지로 성경을 ‘초과’하여 말세의 사역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발표는 우리를 인도하여 구원받는 것을 추구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진리에 진입하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목을 곧게 세워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자매님, 우리 모두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세 역사와 말씀을 찾고 구하며 고찰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쳐주셔서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본받아 성경에서 나와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따라야 합니다. 이래야 우리가 비로소 오랫동안 바라던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