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15 이전에는 하나님과 적이 되어 세도를 부렸지만 오늘은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무안해서 후회하며 몸 둘 바를 모른다

黑龍江省 張敏力

1995년, 저는 병으로 인하여 예수님께로 쏠렸습니다. 주님을 믿은 후 저의 병은 매우 빨리 주님께 치유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아주 잘 추구하였는데, 출근하지 않고 월급을 받지 않더라도 늘 부근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년 후 저는 진리 교회의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1998년, 우리 교회는 차츰차츰 황폐해지고 또한 질투 분쟁하고 패거리를 짓는 것은 흔히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집회는 일종의 의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서 저는 있는 힘껏 자기의 능력을 다해 이런 모순을 해소하려고 하였지만 결과는 오히려 바라던 것과 정반대가 되어 저까지도 질투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저는 자오후이(召會)의 한 장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기 위해 저는 진리 교회로부터 자오후이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형제가 쓴 ≪생명의 체험≫을 많이 읽고서 정말 시야를 넓혔다고 여겼지만, 1년 반 후에는 점점 싫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모일 때마다(대형 집회) 여러 해 동안 쓴 이형제의 메시지를 말하지 않으면 녹화 영상을 보았고 죄를 벗는 실행의 길은 조금도 없었으며 또한 여기 교회 내부에도 질투 분쟁이 아주 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망하여 여러 번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이형제가 가르친 메시지는 확실히 각종각파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높아 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하늘땅과 사람을 창조하셨는가 하는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했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면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다고 제창한 그의 학설이 제 자신의 경력에서는 그리 영험한 것 같지 않고 그저 한동안만 도움이 될 뿐입니다. 주여, 저는 정말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여, 우리는 언제나 낮에는 범죄하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매일 죄 속에서 살면 당신께서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 때 우리가 다 지옥의 자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여, 지금 우리 매일의 마음과 생각은 다 자기를 위해 생각하지만 죄를 이길 수도 없는데 어떡합니까? 주여, 저는 정말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2001년 가을, 우리 자오후이의 장로님이(4개 소구역을 관할함) 전화해서는 짜증난 말투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형제와 ○○자매가 당신 집에 가면 절대 그들을 접대해서는 안 돼요. 그들은 이미 ‘동방번개’에 들어갔어요.” 이튿날, 이 장로님이 또 특별히 우리 집에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형제, ‘동방번개’는 사교에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오셨다고 전하는데, 여자 그리스도라고 해요. 이들은 아무 짓이나 다 하는데, 깡패 조직 성질을 띠고 있어요. 달라는 대로 다 주지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볍게는 팔다리를 절단하고 심하게는 포대에 넣어 강물에 던져버려요……” 장로님의 한바탕 연설을 듣고 저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동방번개’를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적극적으로 장로님께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동방번개’를 방비하려면 먼저 ‘동방번개’를 대적하는 훈련반을 꾸려 문답 형식으로 훈련시켜야 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오셨다 하고 또한 말씀이 육신 되고 여자 그리스도라고 하면 믿겠어요?’라고 물어보지요. 만약 형제자매들이 답할 수 없거나 의심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장절을 찾아 ‘동방번개’를 반박합시다.” 장로님은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습니다.

처음으로 ‘동방번개’의 사람과 날카롭게 맞선 것은 2001년 10월 30일이었습니다. 그날, 두 자매님과 한 형제님이 우리 집에 와서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심판 정결의 사역을 하신다고 간증했습니다. 저는 형제님이 상세히 말하기도 전에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흥! 당신들이 말하는 이런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저를 속이지는 못해요. 당신들이 그 무슨 하나님이 이미 말씀이 육신 되고 또 여자라고 전하는데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해요! 하나님이 남자인데 어찌 여자일 수 있나요? 당신들은 너무나 우매 무지해요, 하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면서 나와서 뭘 말세의 복음을 전한다고 그래요? 제가 당신들에게 권하는데 차라리 시원한 그늘을 찾아 즐기고 놀아요. 저는 정말 당신들의 허튼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어요. 오늘은 제가 당신들을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을 테니까 당장 가요! 당신은 당신네 여자 그리스도를 믿고 저는 우리의 하늘 위의 주님을 믿겠어요. 제가 침륜되든 말든 당신들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다시는 저를 방해하러 오지 말아요. 그렇지 않다간 저도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원망하지 말아요!”

이튿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는데, 형제님이 재차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저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새벽, 제가 금방 회사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형제님이 회사까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여러 좋은 말로 권고하여 제가 시간을 내서 그와 함께 좀 교통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약이 바싹 올라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길래 남들이 ‘동방번개’의 사람들을 염치 없다고 하던데, 당신들은 과연 정말 그렇군요! 그저께 제가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저를 방해하러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찾아와요? 저는 당신과 교통할 시간이 없으니, 본인 편할 대로 하세요. 멀리 배웅하지 못하니 양해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저는 전기 기사실로 돌아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한 달이 조금 넘은 후, 쑤이화(綏化)에서 온 한 자매님이 또 우리 회사를 찾아 저에게 하나님의 새 사역을 전하러 왔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이 홀쭉한 체격에 옷을 너무 얇게 입은 것을 보고는 즉시 마음속에 악랄한 계책이 생겨나서 그에게 “자매님, 밖에서 좀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와 작업복을 벗고 두툼한 ‘군화’를 바꿔 신고 캐시미어 솜모자를 쓰고 외투를 걸쳤습니다. 한바탕 ‘완전 무장’을 한 후, 저는 고개를 쳐들고 허리를 쭉 펴고 걸어나와 그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먼 곳에서 온 바에 한번 오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껏 얘기해보세요. 제가 지금 귀를 씻고 공손히 들을 테니까요.” 12월의 동북 기온은 아주 낮습니다. (영하 20여 도) 그때 차가운 한풍 속에서 자매님은 추워서 안색이 창백해졌고 입술은 핏기가 없었으며, 그 홀쭉한 몸은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진지하게 저와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님, 하나님의 이 단계 새 사역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우리 두뇌 속의 그런 상상과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먼저 하나님의 3단계 역사로부터 얘기해봅시다……” 저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머리를 굴렸습니다. ‘당신들이 낯가죽이 두꺼운 것이 아닌가? 이 추운 날씨에 당신 얼굴살을 푹 얼게 할 거야. 그 무슨 3단계 역사라고 하는데 한 단계 역사도 말하지 못하고 도망칠 게 뻔하지. 다음 번에는 오라고 해도 못 올 거야.’ 그날 날씨는 실로 너무나 추웠습니다. 제가 비록 두툼한 방한복을 입기는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손발이 얼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먼저 억제하지 못하고 짜증나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리 긴 이야기 간략하게 말합시다. 우리 장로님은 당신들을 깡패 조직이라 하고 전적으로 돈을 사취하는 자들이라 했어요. 제가 권하는데 더는 저한테서 뭐 얻을 생각은 말아요, 그런 생각은 버려요. 저는 당신들 속임에 빠지지 않을 거에요……” 비록 제가 당시에 분통한 말을 많이 하였지만 그 자매님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네 장로가 우리를 깡패 조직이라 하고 전문적으로 돈을 사취하는 자들이라 했다고 하는데,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정말 깡패 조직이라면 우리가 속일 대상은 대기업 그룹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 등 돈이 많은 인물일 거에요. 제가 알기로는 형제님은 그저 보통 노동자로서 생활 형편도 별로 넉넉하지 못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뭘 속여내겠어요? 형제님,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만일 성령의 재촉과 하나님 사랑의 격려가 아니라면, 저는 이 추운 날에 찬바람을 무릅쓰면서 형제님께 하나님의 이 단계 새 사역을 전하지 않을 거에요. 이렇게 돈을 사취하는 깡패 조직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형제님이 침륜되는 걸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우리를 보내 형제님을 구하게 하신 것이니, 형제님도 자신을 너무 높이 보지 말고 더욱이 자신이 성경 지식을 좀 안다 하여 대단하다고 여기지 말길 바래요. 형제님이 만일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경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현재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할 수도 없고 형제님의 생명 성정도 변화될 수 없어요. 형제님이 알고 있는 고만한 글귀 도리는 형제님을 구원할 수 없어요. 형제님은 이것이 주님을 여러 해 동안 섬긴 사람에게 있어서 가슴 아픈 일이라 생각되지 않나요?” 자매님의 말을 듣고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 여기고는 무의식중에 누그러지고 오만할 수 없어 부득불 그에게 “오늘은 날이 너무 춥고 저도 퇴근 시간이 다 됐으니, 이후에 기회 있으면 다시 교통합시다.”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가운 한풍 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조그마한 뒷모습을 보노라니, 저는 못된 장난으로 목적을 달성한 후의 으쓱함은 전혀 없었고 도리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별안간 조그마한 그의 그림자가 돌아서서 저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찬바람을 따라 그의 미약하나 진심어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형제님, 추우니 빨리 들어가세요! 이틀 후 또 뵈러 올게요!” 이 말을 듣고 저는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남을 대한 것이 너무 비열한 것이 아닌가?’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 형제님의 폐부지언(肺腑之言)이 귓가에 울렸습니다. “형제님이 저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저버리는 거에요! ……” 그리고 찬바람 속에 휩싸인 그 자그마한 그림자가 또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형제님, 추우니 빨리 들어가세요! 이틀 후 또 뵈러 올게요!” 저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 일어나 앉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들이 정말 장로님 말대로 깡패 조직이라면, 이런 고생을 할 리가 있을까? 그들이 바라는 것이 뭘까? 세상에서 지위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 형제ㆍ동료ㆍ동창들도 깔보는 나 같은 사람을 속여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저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제가 진심으로 당신을 믿는 사람인지 당신께서 알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길 원하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주여,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만일 참 도인데도 제가 잃는다면 꼭 침륜될 것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만일 거짓 도인데도 제가 곧이듣는다면 여전히 침륜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어떡해야 합니까? 주여, 저를 깨우쳐주시고 보호해주십시오. 주여, 저는 지금 찾고 구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시비곡직 불문하고 남을 쫓아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시간을 예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들과 한번 확실한 교통을 하려 합니다.”

12월 10일, 저는 한 자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어느 형제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 형제님은 저에게 겸손하고 정직하고 온유하고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이 사람들에 대한 장로님의 묘사와는 정반대였습니다.

형제님이 저에게 말하기를, “형제님, 하나님의 이 단계 새 사역에 대하여 어떤 방면에서 이해되지 않는지,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지, 우리 함께 좀 교통하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 말하기를, “당신들이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셨다 하고 또 여성이라 하는데, 이 두 방면에서 저는 이해되지 않아요. 그것은 성경에 이 두 방면의 예언이 없으니까요.” 형제님이 저에게 말하기를, “형제님, 저도 하나님의 이 단계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 당신과 똑같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하나의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되지요.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사유와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이 경문에서 ‘너희의 생각’이 바로 우리 대뇌의 사유ㆍ상상ㆍ관념을 가리키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상상을 벗어날 수 없다면 하나님이 그래도 하나님이실 수 있겠어요? 형제님, 만약 하나님의 두 번째 오심이 우리의 상상처럼 영체로 오셔서 우리에게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알아들을 수 없지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말하기를, “그렇죠, 만약 영이 직접 인류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레 울고 번개 치고 나팔소리 나는 것과 같아(출 19:16, 요 12:28-29 참조)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의 격살을 당할 거에요. 그것은 우리가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매우 더러워 영 앞에 올 자격이 없기 때문이지요.(출 19:21-24 참조)” 여기까지 듣고 저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영체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시는 것도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다시 오실 때 육신으로 오신다는 예언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말하기를, “있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셨을 때는 ‘독생자’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알려주지요. 그런데 히브리서 1장 6절에는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세상에 오셔서 ‘독생자’로 불렸는데, 그분께서 ‘맏아들’의 신분으로 재차 세상에 오실 때에도 말할 필요 없이 여전히 육신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시는 거에요. 성경에 ‘독생자’든 아니면 ‘맏아들’이든 다 하나님 도성육신을 가리켜 말하는 거에요. 영은 정상 인성을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나 ‘맏아들’이라 할 수 없어요. 그 밖에, 우리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셨을 때 인자로 불렸는데, ‘인자’란 즉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을 가리켜 말하는 거에요. 성경 중 무릇 주님의 두 번째 강림에 관한 경문에는 모두 ‘인자’라 하였지 ‘영체’라 하지 않았어요. 예컨대, 마태복음 24장 30, 33, 37, 39, 40절, 25장 31절, 누가복음 17장 24, 26, 30절이지요.” 형제님이 계속 말하기를, “비록 성경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말씀이 육신 되신다는 예언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늘 성경의 예언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가늠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지요. 구약 성경에는 예수라는 분이 세상이 와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나중에 십자가에 오르신다는 예언이 없어요. 그런데 누가 예수님이 도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누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우리 함께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들어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써, 영의 신분으로써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로써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으며, 만일 하나님이 입은 하나의 피조된 사람의 외각이 아니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을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은 전혀 그를 접근할 수 없으며,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으로 되어야만, 즉 그가 그의 ‘도’를 그가 되려는 육신 중에 담아야만, 이 ‘도’를 친히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몸에 만들 수 있으며,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들을 수 있고 그의 도를 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의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으로써 사람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면, 무릇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또한 어느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 당할 것이고, 또는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형제님의 교통을 듣고 저는 깊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저는 늘 자신이 아는 것이 매우 많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아주 깊다고 여겼으며,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의 창세부터 말세까지 하시려는 모든 사역을 손금 보듯 하는 사람이라 여기고는 자기의 대뇌 사유와 상상 및 자기가 깨달은 고만한 성경 지식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두 번째 도성육신에 대해 사사건건 흠을 잡았고 하나님 역사에 대해 감히 이러쿵저러쿵하였는데, 지금 보니 자신이 정말 우매하고도 눈이 멀었었습니다. 오늘에야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면, 사람이 모두 격살될 것이고 또는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어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될 것입니다. 만약 오늘 하나님께서 정말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셨는데도 제가 여전히 자기의 관념을 지킨다면,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섬겼으니 꼭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스스로 여긴 저도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을 거절하고 대적한 탓에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되어 지옥의 자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형제님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교통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도성육신’,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았어요. 하지만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이라는 이 방면의 진리를 좀 교통해줄 수 없나요?”

형제님이 말하기를, “형제님, 이 문제를 교통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무엇이 ‘그리스도’인지 알아야 해요.”

제가 즉시 말하기를, “‘그리스도’란 헬라문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지요.”

형제님이 묻기를,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자가 맞나요?”

“물론이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그에게 부어주셨어요.”

“그럼 아론이 ‘기름부음 받은 자’가 맞나요?”

“그렇고 말고요, 시편에 기름이 수염에서 옷깃까지 흘러내렸다고 했어요.”

“그럼 우리가 다윗이나 아론을 그리스도라 할 수 있나요?”

“그건 안 돼요.”

“왜요?”

“그들이 말씀이 육신이 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형제님이 말하기를, “형제님, 지당한 대답입니다. 다윗이나 아론이 그리스도로 불릴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단지 성령께 쓰임받은 사람일 뿐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오직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만이 그리스로 불릴 자격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스도’의 정확한 번역은 바로 하나님(성령)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뜻이에요. 그리스도는 비록 사람과 같은 외각이 있지만 그분의 실질은 사람과 같지 않아요. 그분의 실질은 영인데,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 자신이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지 않으셨을 때, 그분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구약 성경에서 형제님은 ‘그리스도’란 글자를 전혀 찾을 수 없어요. 하나님(성령)이 육신을 입으신 후에야 신약에 ‘그리스도’란 글자가 있게 되었지요. 요한복음 4장 24절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알려주지요.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며, 그분은 피조된 인류에 속하지 않고 성별의 구분도 없어요. 피조물만이 성별의 구분이 있는데, 마치 사람에게 남녀 구별이 있고 동물에게 수컷과 암컷의 구분이 있는 것과 같지요. 만약 누군가 하나님이 남성이다 혹은 여성이라 말하거나 남자 그리스도, 여자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다 맞지 않아요. 이는 그가 하나님─조물주를 피조물의 행렬에 배열하였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에요. 하나님(성령)이 남성의 육신을 입으셔도 그분 안의 실질이 하나님(성령)이시고, 여성의 육신을 입으셔도 그분 안의 실질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성령)이시지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들어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하는 매 단계 사역은 다 실제적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가 올 때는 남성이었고, 이번에 올 때는 여성이다. 여기로부터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영이 와서 마음대로 하나의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육신은 그를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와서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시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여자 아기이고 남자 아기가 아니라 해도, 그 단계의 사역을 여전히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 이 단계의 사역을 남성으로 바꾸어서 해야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한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 않지만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 하였는데, ‘자’라 하면 남성이다. 이 단계에는 무엇 때문에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가 사역을 하는 데는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지 다 실제 의의가 있다.』 『성별에서 하나는 남성이고 하나는 여성이므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런 관념도 없게 하였다. 즉 하나님은 남성으로도 될 수 있고 여성으로도 될 수 있으며,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실질은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남자도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으며, 그에게 있어서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도성육신의 ‘성별’ 방면에 대한 하나님 말씀의 서술과 형제님의 교통을 듣고 저는 얼굴이 줄곧 달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신이 전에 하나님을 남성이라 규정하고, 우리 집에 복음을 전하러 온 형제에 대해 빈정거리며 하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면서 말세 복음을 전하러 나오니 정말 너무나 무지하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야 저는 진정 무지한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경에 말한 바와 같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이전에 저는 ‘여성’을,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유력한 증거로 하였고 ‘여성’ 방면에서 약점을 잡았습니다. 기억하건대 언젠가 저는 ‘3자’교회의 요청에 응하여 거기에 가서 설교했습니다. 강단에서 저는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경에 아주 확실히, 아주 분명히, 아주 명확히 우리에게 성부ㆍ성자라고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남자인데, 어찌 또 여자 그리스도로 오시겠습니까?” 지금 회상해보면 정말 아주 무섭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큰 모독인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행위대로 저를 대하시지 않고 여전히 사랑으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이 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었다고 깊이 느껴졌고 자신이 정말 개돼지보다 못한 인간쓰레기라고 깊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단계 새 사역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형제자매들이 절대 제가 이전에 한 것처럼 언제나 자신이 깨달은 고만한 성경 지식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 사역을 ‘입증’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의 대뇌 사유로 하나님을 위해 계획해 놓은 ‘궤적’에 따라 운행하시게 하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가장 거만하고 가장 우매한 자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지휘하신 매 단계 역사는 다 하나님 지혜의 결정(結晶)입니다. 우리는 사람마다 자기를 내려놓고 찾고 구하고 고찰하면,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많고 너무 크고 너무 무한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신실하시니, 우리 모두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