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가장 복 있는 사람이다

목차

1 기독교 각종각파에서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는가

河南省 奉獻

하나님이 중국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하신 이래, 큰 붉은 용의 미친 듯한 추적과 잔혹한 박해를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각종각파 사람들의 잔인무도한 핍박과 저주, 욕설과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원수처럼 여기고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 그리스도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유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못 박은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각종각파의 사람들이 모두 자나 깨나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원칙대로라면 오늘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오셔서 사람과 상봉하셨으니, 당연히 기쁨에 넘치고 크게 경축해야 옳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접하기는커녕, 다시 오신 그리스도를 극력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도래를 몰아내며 그리스도를 사지에 몰아넣지 못해 한스러워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수단은 극악무도한 방법을 다 동원하였는데,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가 되지 않게 하고 놀라게 합니다. 그러면 기독교 각종각파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까요? 설마 그리스도가 때를 잘못 택하여 오셨단 말입니까? 설마 그리스도가 사람의 경배와 환영을 받을 자격이 없단 말입니까? 설마 그리스도가 그분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사실, 이 영문을 알아보려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에 일찍이 이 문제의 답을 사람들에게 밝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원을 알고 싶은가? 너희들은 바리새인의 실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2천년 전의 바리새인들이 비록 한 남자 아이가 강생하여 그들을 구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탓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 몸에 응할 것인지를 꿰뚫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장차 올 남자 아이에 대해 상상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관념에서 여기기를, 이 남자 아이는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예수로 불려서는 안 되며, 보통 가정에서 태어나서는 안 되고 갈릴리에서 태어나서도 안 되며, 그 밖에 예수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율법과 율례의 범위를 벗어나 역사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사역을 해서는 안 되며 죄인과 함께 앉아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런데 사실은 오히려 그들의 관념을 크게 반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출생하신 가정, 역사하신 지점 및 역사하신 내용은 완전히 그들의 관념과 상상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며, 예수님이 하신 것이 도대체 사람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지 없는지, 발표하신 것이 도대체 진리가 옳은지 아닌지 고찰하지도 않고, 다만 예수님이 하신 것이 그들의 관념 상상과 맞지 않는다 하여 맹목적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이런 ‘안 된다’가 그들을 부추겨 예수님을 극력 대적하게 하였고, 그들의 관념 상상 때문에 예수님을 정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었고 하나님을 또 그들의 관념 속에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우매하고 완고하고 거만하여 자기의 관념 상상이 옳고 진리이니 하나님도 그들의 관념 상상에 따라 역사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고 바로 사탄의 미혹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요 7:47 참조)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고 더욱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단지 율법의 조문을 사수할 줄만 알았는데, 어찌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임을 알겠습니까? 그들이 죽은 글귀를 고수하였는데 또 어찌 예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찌 죽은 글귀에 따라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따라 역사하실 때 그들이 또 어찌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한 근원─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입에서 나온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면 아주 비참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리새인들은 특히 완고하고 거만하여 조금도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았는데, 이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실패한 운명이 정해졌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도 역시 바리새인들의 뒤를 밟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여기기를, 하나님이 재림하실 때는 은밀히 강림해서는 안 되고 중국에 강생해서는 안 되며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해서는 안 되고 여성이어서는 안 되며…… 이렇게 많은 ‘안 된다’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질책한 ‘안 된다’와 꼭 같은 것이 아닙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마다 하나님을 압제하고 강요하여 자기의 관념 상상에 따라 역사하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분을 하나님이라 인정하지 않고 그분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로 억지를 부리고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까? 말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러 오신 이상 그분 자신의 뜻대로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인 이상 틀림없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고 틀림없이 사람의 뜻에 따라 하실 리가 없으며, 하나님의 역사인 이상 그분이 발표하신 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소시(所是),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데다가 찾고 구하는 마음까지 없다면, 아주 쉽게 말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무릇 이 말씀을 본 형제자매들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깨움을 신중히 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하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는 우리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등등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가히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추호의 이해와 인식도 없습니다. 이러한데 하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무엇에 근거하여 그분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보겠습니까? 마치 어떤 아이와 같습니다. 그가 아주 어릴 적에 부모가 먼 길을 떠났는데, 그의 인상에는 부모가 떠날 때 어떤 색상의 옷을 입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부모의 애호ㆍ성격ㆍ특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러 해 지난 후 부모가 돌아올 때 입은 옷이 그 옷이 아니라면 그가 제 부모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그의 부모를 잘 알고 부모의 애호를 알고 부모의 성미와 성격을 알고 부모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가를 알고 있다면, 부모가 돌아올 때 설사 겉의 차림새가 이전과 같지 않다 해도 아이가 부모를 알아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정형입니까? 우리는 단지 성경에서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떠나실 때 유대인의 생김새였다는 것만 알았을 뿐입니다. 이 유대인의 생김새를 우리는 만나본 적도 없고 예수님의 기타 방면에 대해서는 더욱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데 우리가 또 어찌 자신이 말세에 재림하신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솔자, 목사, 장로, 그들은 성경을 알고 성경에 아주 능통하므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거에요. 우리가 그들을 따라 믿으면 틀리지 않을 거에요.” 우리가 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가 숭배하고 앙망하는 본 파별의 지도자나 그 어떤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있는지? 그들이 예수님을 잘 아는지? 가령 이런 문제의 답이 다 부정적이라면, 우리가 또 어찌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그들이 성경에 아주 익숙하고 우리보다 성경 지식이 많겠지만, 성경에 익숙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대적할 리 없음을 대표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7장 45-49절에 기록되기를,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이 몇 절의 경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거꾸로 줄줄 외우는 그 유대교 고위층 인물─대제사장ㆍ서기관ㆍ장로들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재능이 출중한 바울마저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는데, 우리가 앙망하는 그 명사들이 성경을 그들보다 더 잘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에 어떻게 익숙하든 또 성경 지식이 얼마나 많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 밖에, 지금 기독교 각종각파에서 그리스도를 미친 듯이 대적하는 데는 또 한 방면의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지위의 부추김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12장에 기록되기를,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이 경문을 보고 우리는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우리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농부’가 또 누굴 가리키는지? 2천년 전, 예수님이 유대에서 떠난 후 그분의 ‘포도원’을 하인─각종각파의 그 인솔자, 장로, 목사들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셨으며, 2천년 후인 오늘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이 육신 되어 본래 자신에게 속한 ‘포도원’에 돌아와 얻어야 할 ‘열매’를 거두러 오셨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것은 이 청지기 ‘충성된 종’들이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는커녕 배은망덕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서 그 ‘열매’는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한 신도들을 선동하여 말세의 그리스도를 ‘포도원’에서 쫓아내게 하고 그들이 오히려 그 ‘열매’를 자기 것으로 독점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이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참 도를 찾고 구하지 않고 뜻밖에도 양심을 어기고 말하기를, “‘동방번개’가 말하는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가서 듣지 말고 말하는 것이 진리라 해도 듣지 마세요.” 또 많은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말하기를, “‘동방번개’를 전하는 자들은 조직폭력배들과 같아요.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코가 잘리고 눈을 빼앗기고 귀가 잘리고……” 이 악인들은 극력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악담으로 헐뜯고, 비열한 수단을 써서 형제자매들을 속이며,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을 저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을 불러들이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 형제자매들을 잃으면 밥줄이 끊어지고 지위와 돈이 없어지고 더는 그들을 먹여 살릴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종 음험한 수단을 써서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해치며, 형제자매들을 그들의 손아귀에 농락하여 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순복하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이고 명실상부한 악한 종들입니다. 기독교 각종각파에서 말세의 그리스도를 미친 듯이 대적하는 이 주지하는 사실에서 보다시피, 기독교 각종각파에는 그리스도가 권세 잡은 것도 아니고 진리가 권세 잡은 것도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권세 잡고 악한 종이 권세 잡은 것입니다. 바로 2천년 전의 유대교가 고위층의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에게 통제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것이 진리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그들은 지위와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에 직면하면, 자기의 지위를 위해 참 도를 포기하고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고 사람을 자기 손아귀에 통제한다. 그들은 영원히 지위의 복을 누리기 위해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는데, 마치 사람을 잃으면 지위를 잃고 지위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극력 하나님과 선민을 쟁탈하며 하나님의 양을 그들의 양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이며, 그들이 섬기는 것은 자기의 지위와 밥줄이다. 그들의 마음이 갈수록 강퍅해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또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려 하며 하나님 선민에게 있어야 할 자유 선택의 권리마저도 주지 않는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 악한 종들이다.” 그런데 비참한 것은 많은 형제자매들이 아직도 자기가 악한 종에게 속임 당한 줄을 모르고, 자기가 오늘 숭배하는 그 소위 견식 있는 ‘충성된 종’들과 ‘명사’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 중의 ‘농부’들이고 악한 종들임을 모르며, 더욱이 자기가 믿는 분이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한 종들을 따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며, 나아가 이 악한 종들의 황당무계한 논리와 사설과 거짓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조금도 식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이렇게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한 종을 따르고 말세의 그리스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최종의 결국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신으로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오셨는데, 그분은 더는 예수로 불리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비미은장(卑微隱藏)하신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메시아가 올 것이라 예언하였지만 와서는 메시아로 불리지 않고 예수로 불린 것과 같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사람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그분의 역사 방식에 따라 일찍이 계획해 놓은 사역을 하십니다. 즉 국도시대를 개척하고 은혜시대를 끝마치시며, 진리를 발표하여 전 인류를 정복하고 구원하시며,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그분을 대적하고 저버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멸하시며, 사람을 모두 각기 종류대로 하신 다음 적합한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가십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여러 해 동안의 국도복음 확장에서 보다시피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였으면, 오늘도 온 종교계에서 말세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받은 악담, 모함, 정죄와 저버림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한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각종각파 중 그 소위 ‘충성된 종’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먹고 마시고 누리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짓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연합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합니다. 부정적인 선전 소책자를 인쇄 발행한다든가, 교회를 봉쇄한다든가, 각종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날조하고 퍼뜨려 그 무슨 “‘동방번개’를 전하는 자들을 접대해서는 안 돼요. 그들은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이니, 물 한 그릇도 주지 말아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전하러 오기만 하면 이단이고 거짓이니 쫓아내야 해요. 쫓아내지 못하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동방번개’에서 말하는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가서 들어서는 안 되고 말하는 것이 진리라 해도 들어서는 안 되며, 당신들이 어떤 일을 해도 다 되지만 전능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돼요.” “머리가 잘리고 피를 흘려도 ‘동방번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동방번개’를 전하는 자들은 조직폭력배의 사람들과 같아요.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코가 잘리고 눈을 빼앗기고 귀가 잘릴 거에요.” 등등, 그야말로 훼방하는 소리가 도처에 자자했습니다. 더욱더 불가사의한 것은 그들이 뜻밖에 국가 정부와 연합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형제자매들을 박해하고 체포하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붉은 용의 졸개와 앞잡이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는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무릇 성경에 대해 익숙하고 각종각파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내막을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독교 각종각파의 언행과 당시에 예수님을 대적한 유대교의 언행에 아주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수단은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가령 예수님을 대적한 그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오늘의 이러한 장면을 본다면 꼭 한탄하기보다는 감탄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손답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왜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인지? 너희는 아는가? 그를 먹고 그를 마시고 그를 누린 그와 제일 가까이한 유다가 팔어먹은 것이 아닌가? 팔아먹은 원인이 바로 예수가 단지 하나의 작디작은 정상 사람인 ‘선생’에 불과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이 정말 예수가 하늘에 속한 비범한 분임을 보았다면, 또 어찌 그를 잔혹하게 십자가 위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24시간 동안 매달 수 있는가? 사람이 누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탐욕스럽게 하나님을 누릴 줄만 알고 전혀 그를 알려고 하지 않으며, 다만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예수’로 하여금 완전히 자기의 지휘를 듣게 하고 자기의 심부름을 듣게 하는데, 누가 또 약간의 너그러움을 베풀어 이 머리 둘 곳 없는 ‘인자’를 불쌍히 여겼는가?』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폐부지언(肺腑之言)입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 가득히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시지만, 매번 도래하신 다음에는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초대한 것은 뜻밖에도 차디찬 십자가와 인지상정(人之常情)에 어긋난 욕설, 모함, 훼방, 박해였습니다. 말끝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뜻밖에 하나님을 이처럼 대하였는데, 이것은 황당하고도 비참한 일이 아닙니까? 각종각파의 형제자매님, 우리가 자기의 발걸음을 삼가하여 좀 찾고 구하고 고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대체 재림하신 예수님이 옳은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언어가 도대체 진리가 옳은지? 예수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기호인데, 그 속의 이해 관계를 우리는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지, 악한 종들이 날조한 유언비어를 곧이들어서는 안 되고 관념과 글귀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며, 자기의 관념과 성경의 글귀를 내려놓고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믿건대 하나님께서 꼭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시고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에 말씀하시기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니, 우리는 마음놓고 담대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인데 어찌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도가 곧 진리, 길, 생명이시니,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시면 거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사역을 개척하시니, 율법시대의 사역이 곧 끝났고 유대교는 더 이상 성령 역사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중국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국도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이 무리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져오셨는데, 이러면 은혜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각종각파도 자연히 더는 성령 역사가 없고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헛되이 지키고 죽은 글귀만 헛되이 지킬 뿐입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어느 종파든지 진리가 없고 진리를 발표할 수도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발표할 수 있으며 오직 그리스도께만이 생명의 도가 있습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 각종각파에서 지금 이처럼 미친 듯이 말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진리가 없고 또 진리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가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방향을 밝히 가리켜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별로 해석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바로 어디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으면 거기에 곧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듣기에는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하자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를 모르며, 하나님이 어디에서 나타나려 하는지 또는 하나님이 어디에서 나타나야 하는지를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매우 충동적으로 어디에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혹은 어디에 영적 인물이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으며, 혹은 어디 사람이 지명도가 높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우리는 잠시 이러한 여김이 도대체 옳은지 그른지를 연구 토론하지 말자. 이러한 문제를 해석하려면 먼저 하나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있는 것이지 영적 인물을 찾는 것이 아니고, 지명 인사를 추종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야 하며, 하나님의 발하는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디에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으면 거기에 곧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어디에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으면 거기에 곧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어디에 하나님의 발표가 있으면 거기에 곧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어디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으면 거기에 곧 진리ㆍ길ㆍ생명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리가 없고, 더욱이 사람의 요구에 따라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자신의 선택이 있고 자신의 계획이 있으며, 더욱이 자신의 목표가 있고 자신의 방식이 있다. 그가 어떤 사역을 하든지 사람과 상의하여 사람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고, 더욱이 각 사람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고 더욱이 사람마다 인식해야 할 바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면, 우선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하나님께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가혹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너의 범위 내에 제한하지 말고 너의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어떻게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겠는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좋습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으면 거기에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고 하나님의 발표가 있으며 진리, 길, 생명이 있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길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는 현실적인 길입니다. 믿건대 무릇 예수님의 구원을 바라는 형제자매들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상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끄신 길에 따라 진리를 찾고 구하기만 하면, 꼭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