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9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 있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있고,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만큼 깊으면 하나님의 지위도 그만큼 높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텅 빈 것이고 막연한 것이라면, 네 마음속의 하나님도 텅 비고 막연한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너의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너의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하나님이고, 진실한 하나님 자신과 연결되지 않고 무관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제와 전능한 그 면을 인식하고, 하나님 자신의 진실한 신분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인식하고, 만물 가운데서 창현(彰顯)되는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각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각 사람의 생명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각 사람의 실제 생명과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알아가는 것을 단지 문자에만 제한하고, 너의 작은 경력이나 네가 헤아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제한하며, 하나님에 대한 너의 작은 간증에만 제한한다면, 나는 너의 하나님은 전혀 진실한 하나님이 아니고, 전혀 진실한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네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하나님 자신은 만유를 주재하는 분이고, 만유 가운데서 거닐며 만유 가운데서 관리하고 있는 그분이고, 전 인류의 운명을 장악하고 만유의 운명도 장악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행사는 단지 소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행사는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서, 만물의 생존 가운데서, 만물의 변화 법칙 가운데서 창현되는 것이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어떤 행사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도 전혀 증거하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을 전혀 증거하지 못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보잘것없는 하나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면, 너의 생각 속에, 너의 좁은 가슴속에 국한되어 있는 그런 하나님을 계속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의 믿음을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 단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을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는지, 이런 것만으로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그것은 턱없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증거하고, 진정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하려면, 하나님의 행사에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아야 하며, 하나님이 전 인류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을 보아야 한다. 네가 단지 너의 일용할 양식과 생활에 필요한 것이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만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만물을 통해 전 인류에게 공급해 주고, 만물을 주재함으로써 전 인류를 인도하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알았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너희에게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한 이런 화제는 너희 자신의 생명 진입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여기면서 이런 화제를 어떤 지식이나 학설로만 듣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그런 태도로 듣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좋은 기회를 잃을 것이다. 알겠지?

내가 이 모든 화제를 말한 목적은 무엇일까? 그 목적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야만 하나님을 알아갈 기회가 있거나 알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무엇으로 알아야 하느냐? 그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면 되겠느냐? 그 사람에게 풍부한 지식이 있는지를 보면 되겠느냐? 틀림없이 다 안 된다. 그럼 무엇을 통해 사람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의 마음과 생각, 그 사람의 언행, 그 사람이 표현해 낸 것과 유로(역주: 흘러나옴)해 낸 것을 통해 그 사람을 분별하고 알아보고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과 진실한 면을 인식하려면, 너희는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이 행한 하나하나의 실제적인 일들을 통해 알아가야 한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경로이자 유일한 경로이기도 하다. 알았겠지?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서 자신의 행사를 창현하고, 만물 가운데서 만물의 법칙을 주재하고, 만물의 법칙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

2. 하나님은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여 인류에게 안정된 생존 환경을 주었다

우리는 방금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의 법칙을 주재하는지, 또 만물의 법칙 속에서 어떻게 만물의 법칙으로 전 인류에게 공급하고 인류를 양육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한 방면이다. 이어서 우리가 나눌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고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였는가’이다. 이 제목도 너희에게는 좀 크다.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이런 일을 사람이 할 수 있느냐? 사람은 할 수 없다. 사람은 파괴할 줄만 알고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렇게 큰 권병도 없고, 그렇게 큰 능력도 없다.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것 역시 인류의 생존과 크나큰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하려는 매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다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고 인류에게 좋은 생존 환경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들과 중요한 일들을 하여 인류의 생존을 유지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균형되게 한다’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아주 두리뭉실한 화제이다. 그리고 우선은 사람에게 하나의 개념을 주고, 만물은 여전히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균형되게 한다’의 글자 표면의 뜻은 무엇을 말할까? 우선, ‘균형되게 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지 않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들 천칭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천칭으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물건을 한쪽 저울판에 놓고 다른 한쪽 저울판에는 분동을 놓는데, 그 분동의 수량이 나중에 그 물건의 무게를 결정한다. 그것을 균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균형되게 하려면 양쪽의 무게가 반드시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 속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고정된 것, 움직이는 것, 살아 있는 것, 숨 쉬는 것, 그리고 숨 쉬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부딪치며, 또 함께 숨 쉬며 생존하는 그런 관계를 갖게 하려면 쉬울까? 거기에는 틀림없이 원리가 있다. 비록 아주 복잡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연구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 비록 네가 보기에는 그저 간단한 균형이란 단어이지만, 그 ‘균형’을 인류에게 연구하라고 하고 균형되게 하라고 한다면, 인류의 생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나아가 역사(歷史)를 연구하는 정상급 인물까지 다 출동한다고 해도 나중에 연구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연구한 결과는 바로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너무 기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만물들 사이에 원리를 제정해 주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제정해 주어 서로 제약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공급하게 하였다. 그런 여러 가지 방식은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지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머리와 배운 지식, 눈으로 보게 된 그런 현상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는 원리를 입증하거나 연구한다면, 그 원리를 발견하기 아주 어렵고, 그 결과 또한 발견하거나 얻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기에 인류가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머리와 지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스린다면, 인류는 그것들의 균형을 유지시키기 매우 어렵다. 인류는 만물이 생존하고 있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들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시켜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만물을 관리하게 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면, 인류는 아주 쉽게 그 균형을 파괴해 버릴 수 있다. 일단 파괴해 버리면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데,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 동시에 그에 따라 인류의 생존에 위기가 생기게 되고,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인류가 재난 속에서 살고 있을 때면, 인류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추측하기 매우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바로 그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할까? 우선, 지구상의 어떤 곳은 1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어떤 곳은 1년 내내 봄날처럼 따뜻하다. 얼음 한 조각도 볼 수 없고, 눈꽃도 볼 수 없으며, 겨울철이 없이 1년 사계절이 봄날 같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방식인데, 전반적인 기후를 놓고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이쪽 산을 보면 식물이 무성하고, 여러 가지 식생이 땅을 뒤덮고 있어 숲들로 우거져 사람들이 그 속에서 다니면 태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쪽은 오히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민둥산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겉으로 보면 다 토양이 쌓인 산(원문: 山體)이지만, 한쪽은 숲이 무성하고, 다른 한쪽은 오히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이것이 두 번째이다. 세 번째, 이편의 초원은 일망무제하고, 온통 푸른 물결이나, 저편의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으며, 수원은 더더욱 볼 수 없고, 모래바람만 휘몰아친다. 네 번째, 이쪽은 바닷물로 뒤덮여 있고 영역이 넓지만, 저쪽은 오히려 샘물 조차 보기 힘들다. 다섯 번째, 이쪽 땅에는 늘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며 공기가 촉촉하지만, 저쪽 땅은 오히려 늘 뜨거운 태양이 떠 있어 비 한 방울도 보기 어렵다. 여섯 번째, 이쪽은 고원이어서 공기가 희박하고 호흡하기 곤란하지만, 저쪽은 오히려 움푹한 늪지대여서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기후, 또는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 따른 기후나 환경이다. 즉, 하나님은 큰 환경에서 기후부터 지리 환경까지, 토양의 서로 다른 성분부터 수원의 다소까지,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환경을 균형되게 하여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 속의 공기, 온도, 습도를 균형되게 하였다. 서로 다른 이런 지리 환경이 어우러져 있기에, 인류에게는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공기가 있게 되었고,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서로 다른 계절의 온도와 습도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런 생존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 우선, 큰 환경에서 균형되게 하였는데, 서로 다른 지리 방향과 위치, 서로 다른 지리 방식, 그리고 서로 다른 기후의 변천으로 서로 제약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균형에 도달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그 균형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